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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문학 연구와 외국(어) 콤플렉스(2) / 김영민

한국 근대문학 연구에서는 이른바 일본식 문장 표기법에 대한 논란이 가끔 일어난다. 내 기억 속 가장 심란했던 것은 한국 근대문학사 초기의 ‘후리가나’ 표기에 관한 것이었다. 후리가나표기란 일본어에서 한자 위에 일본 문자를 나란히 적는 것으로, 한자를 읽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때 한자로 된 본문 위에 붙은 작은 일본어 활자를 루비활자라 칭한다. 몇몇 문학사 저술에서는, 한국 최초의 신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이인직의 작품 「혈의루」가 바로 이 후리가나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주목했다. 1906년 󰡔만세보󰡕에 연재된 「혈의루」의 도입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내가 읽은 한국 근대문학사 저술들은 이를 일본식 표기를 모방한 무국적의 문장이라고 비판했다. 몇몇 문학사 연구자들은 이인직의 「혈의루」 등 신소설의 문장이 일본식 문체를 모방했고, 우리 소설사의 한글 사용 전통을 후퇴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모방이 우리에게 충격적이었고, 그것이 당시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거부감을 주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 근대소설사가 일본식 문장을 모방하며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대학원생이던 나에게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달리 설명할 방법도 없어 역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문학사 저술들은 이러한 일본식 문장의 등장 원인을 친일파 작가였던 이인직에게서 찾았다. 이인직은 이완용의 비서로 활동하면서 일본인 외사국장과 만나 한일병합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친일파였던 이인직이 일본식 표기를 활용해 한국 근대소설을 창작했다는 설명은 나름 그럴듯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이인직의 작품 「소설 단편」을 읽다가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소설 단편」은 「혈의루」보다 먼저 발표되었고, 이른바 후리가나 표기를 사용한 그의 첫 작품이었다. 「소설 단편」의 서두에는 특이하게도 작가의 요구 사항이 한 줄 붙어 있었다. 그 요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작품을 접할 때마다 그의 요구 사항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국문과 한문을 나란히 적어 놓고, 한문으로는 읽지 말라고 굳이 주석을 단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럴 것이면 차라리 처음부터 한글로만 작품을 쓰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지만 그렇게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문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질문을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 답을 찾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내 나름 연구의 길을 가면서 얻은 작은 깨달음 가운데 하나인데, 이 경우도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가기 시작한 것은 국내 대학의 한 학술모임에서 우연히 강연을 듣게 된 이후부터였다. 강연자는 당시 동경외국어대학의 사에구사 도시카쓰 교수로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문학 연구자였다. 강연 주제는 이중 언어 표기와 근대적 문체 형성에 관한 것이었는데, 거기서 나는 의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에구사 교수는 이인직의 「혈의루」의 문체와 루비활자 사용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이 일본의 후리가나식 표기와는 차이가 크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요약하면, 한국 사람들은 「혈의루」의 문장이 일본식 표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단정하지만 일본인인 자신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혈의루」 문장의 원리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일본 문장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루비활자의 사용 자체는 일본어를 보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사용법은 근본적으로 일본어와 차이가 난다는 것이 그의 결론적 견해였다.


 「혈의루」 등 신소설의 문장 표기를 일본어의 영향과 모방이라고 정리했던 연구자들은 대부분 일본어에 익숙한 세대였다. 그들의 주장에 두말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그들보다 일본어에 더 익숙한(?) 사에구사 교수의 견해에 커다란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혈의루」의 문장, 아니 한국 근대 초기 문체의 전반적 특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 주변의 다양한 전공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깨닫게 된 것은 한국 신소설의 문장 표기가 일본의 후리가나 표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외형만 유사할 뿐 출현의 이유와 한글 및 한자 사용의 원리와 방식이 전혀 다르다. 이인직이 친일파 문인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이 사실과 신소설의 문체 특징 사이에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다. 「혈의루」가 연재된 󰡔만세보󰡕를 직접 확인해 보면, 이 신문은 소설들뿐만 아니라 논설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기사에 한자와 한글을 나란히 적는 문장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장이 󰡔만세보󰡕의 일반적 문장이었던 것이다.


 한국 근대문학사 초기에 등장하는 다소 낯선 문체, 이른바 후리가나 표기로 오해 받았던 문체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 대해 알아야 한다. 하나는, 근대 초기 신문 · 잡지 등 대중매체의 문체 선택의 원리와 이유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문체 등장의 사회적 · 역사적 배경이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한자/한문과 한글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문장 표기를 중심으로 한국문학사를 정리한다면, 한문에서 출발해 국한문혼용을 거쳐 한글 작품 창작으로 가는 과정이 한국 근대문학사의 전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행 과정에는 나름의 시간과 절차가 필요했다. 오랜 기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분과 성별 등에 따라 선호하는 문체가 달랐다. 한문체가 지식인 남성을 대표하는 것이었다면 일반적인 남성과 대부분의 여성은 한글을 주로 사용했다. 근대계몽기에 들어오면 국한문혼용체의 사용이 활발해지는데, 국한문혼용체의 사용 계층은 대체로 한문 사용 계층과 중첩되었다. 그런데, 신문과 잡지 등 대중매체가 생겨나면서 지식인의 글쓰기 관습은 적지 않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대중매체 출현 이후 지식인의 글쓰기는 작가 중심 체제에서 독자 중심 제제로 변화한다. 한국근대소설사의 변화를 이끌어 간 가장 영향력 있는 주체는 작가가 아니라 매체이다. 매체는 작가의 취향이 아니라 독자의 취향을 고려한다. 매체의 문체 선택은 작가가 아니라 그 매체를 읽게 될 독자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다. 특정한 매체가 한문/국한문체 혹은 한글체를 선택했을 때, 이 선택은 곧 누구를 독자로 선택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예를 들어, 󰡔제국신문󰡕이 한글을 선택한 것은 여성과 일반 대중을 독자로 선택한 것이고, 󰡔황성신문󰡕이 국한문을 선택한 것은 지식인 남성을 주된 독자로 선택한 것이다. 결국 근대 매체는 문자에 따라 독자층이 명확히 분리되어 있었던 셈이다.


 특정한 근대 매체가 여성과 남성, 일반 대중과 지식인을 모두 자신의 독자로 끌어들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한말의 대표적 민족지였던 󰡔대한매일신보󰡕는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고민했고, 그 결과 하루에 두 가지 종류의 신문을 발행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즉 국한문판과 한글판을 각각 인쇄해 동시에 발행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세보󰡕는 같은 목적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 즉 하루에 한 가지 신문만으로도 다양한 문자 계층을 모두 독자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시험한 것이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본문을 한자로 인쇄하고 그 위에 한글을 달아 이를 읽어주는 것이었다. 󰡔만세보󰡕는 한자 위에 적은 한글을 스스로 ‘부속국문’이라 불렀다. 따라서 󰡔만세보󰡕가 사용한 문체는 ‘부속국문체’라 칭할 수 있다. 󰡔만세보󰡕의 부속국문체 문장들의 성격은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된다. 하나는 원래 국한문혼용체로 쓴 글에 한글을 추가해 한자를 읽어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원래 순한글로 쓴 글에 의미가 유사한 한자를 찾아 나란히 적는 것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일본의 후리가나 표기와 󰡔만세보󰡕의 부속국문체 표기의 근본적 차이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인직의 작품 「소설 단편」이나 「혈의루」는 원래 순한글로 쓴 작품들이었다. 이를 󰡔만세보󰡕에 게재하면서 한자를 추가하고 부속국문체로 인쇄한 것이다. 순한글로 쓴 작품에 다시 한자를 추가해 부속국문체로 인쇄한 경우, 소설 읽기는 원문인 한글만으로도 충분하다. 「혈의루」 등 소설 작품에 추가된 한자의 음은 한글과 같은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한자를 음독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한글에 병기된 한자는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만 보는 것이었다. 이인직이 부속국문체로 인쇄된 자신의 작품들을 ‘한문음’으로는 읽지 말 것을 당부한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부속국문체 문장은 󰡔만세보󰡕가 창안한 것도 아니다. 이미 우리 옛 문헌들에는 본문을 한자로 쓰고 거기에 한글로 토를 단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 반대의 경우 즉 본문을 한글로 쓰고 거기에 한자를 병기한 경우도 발견된다. 근대계몽기에는 특히 기독교 성서에서 부속국문체의 사용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만세보󰡕 이후에는 󰡔대한민보󰡕와 󰡔기독신보󰡕 등이 이러한 문체를 사용했다. 󰡔만세보󰡕가 부속국문체를 활용한 이유는 한자를 모르는 대중들의 편의를 위할 뿐만 아니라, 한 장의 신문으로 국한문 독자와 한글 독자를 모두 흡수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부속국문체는 과거 우리의 전통 속에 존재하던 한자/한글 표기법의 새로운 시대적 응용이었던 셈이다.

 한국 근대 초기 신소설들에 사용된 부속국문체 문장을 보며 콤플렉스를 느끼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부속국문체 문장은 부끄러운 문장도 비난받을 문장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부속국문체 문장은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을 배려한 고민의 결과 탄생한 문장이다. 근대문학 연구를 하다보면 원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작품의 의미를 논의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낯선 현상들에 대한 가치 판단에 앞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근대문학 연구에 처음 관심을 갖고 자료를 읽기 시작했을 때, 근대 초기 지식인들의 어눌한 문장에 의문과 불만을 품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그 어눌한 한글을 구사하기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한문이라는 기득권의 무게를.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들이 겪었을 난관과 노고에 대해 조금씩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그때 비로소 내 연구의 작은 길이 열렸던 것 같다.

     

김영민(한국연구원 이사장,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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