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 오리엔탈리즘 – 매혹, 공포, 혐오의 아시아 너머 / 김아영

최종 수정일: 2월 5일

수리솔 수중 연구소 광고


해조류 경작은 적합한 수온과 생육조건,

양식과 수확의 까다로움으로 인해 세계 모든 곳에서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부산 기장에서 오륙도 앞바다까지 펼쳐진 바다숲의 다시마는

19세기부터 그 품질과 수확량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부산 바이오매스타운의 다시마는 새로운 에너지원이 되었습니다.

부산 바다숲은 한류와 난류의 교차로 영양염류, 플랑크톤, 부유 유기물이 풍부하고

높은 일조량으로 해조류를 위한 천혜의 환경을 갖추었습니다.


오륙도 수리섬과 솔섬 사이,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의 공동투자로 설립된 수리솔 수중 연구소는

다시마 종자를 선별하고, 채묘하고, 경작하고, 발효하고,

바이오 에탄올을 생산하는 모든 과정을 주관합니다.


50미터 수심의 표해수층을 오르내리는 자동 로봇 드론 부이가

탄소를 흡수하며 성장하는 다시마를 경작합니다.


푸른 대양, 푸른 다시마

여러분의 에너지, 여러분의 미래입니다.

수리솔 수중 연구소가 함께 합니다.


-김아영,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 (2020) 중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가 쏘아 올린 매혹의 불꽃

비-아시아권에서 제작된 주류 SF영화에서 아시아의 도시들은 빈번히 내러티브를 위한 구멍으로, 클리셰로 사용되어 왔다. 이야기의 일탈과 가능성을 위한 구멍-포탈로서. 일견 매혹적인 테크노 오리엔탈리즘(Techno-Orientalism)을 추동하는 창백한 인공조명과 형형색색의 네온으로 가득한 밤의 거리들, 비-아시아인 주인공들이 죽음을 감수하고 뛰어들 만큼의 음모와 매혹이 혼재하는 거부할 수 없는 장소, 최첨단의 무면허 불법 의술이 펼쳐지는 뒷골목에서 때로는 신체를 증강할 수 있는 아시아 도시의 풍경은 매우 친숙하다. 1982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그러한 매혹의 불꽃을 밤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이 영화 속 축축하고 혼잡한, 또는 명멸하는 조명으로 가득한 아시아의 밤거리와, 마천루의 파사드를 가득 메운 츄잉검 광고 속 게이샤의 모습은 관객들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어, 아마도 영원히 잊히지 않을 사이버펑크의 한 챕터가 되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1982) 스틸컷, 배우 알렉시스 리

《블레이드 러너》 이후 사이버펑크의 주요 참조물이 된 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1984)의 저자 윌리엄 깁슨은, 2001년 와이어드 매거진에 실린 글(https://www.wired.com/2001/09/gibson/)에서 도쿄의 풍경에 대해 이렇게 썼다: "《블레이드 러너》의 도쿄 거리 영화세트보다 나은 고전적 클리셰인 신주쿠의, 비닐 천막이 드리워진 길거리 국수가게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며, 내 옆자리 손님이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을 넘겨다본다. 웨하스처럼 얇은, 캔디 컬러의 펄 화이트, 복잡하게 유선형적이며 지극히 덧없는 외관의 핸드폰 스크린은 신주쿠의 네온조명 쇼의 축소판으로 들끓는다. ...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도쿄는 늘 나의 가장 편리한 소품 가게였다: 완전한 아이 캔디" (-윌리엄 깁슨, 「나만의 프라이빗 도쿄」[1])



최첨단 기술 공급자의 매혹, 파워풀한 타자의 위협

윌리엄 깁슨의 서술을 테크노 오리엔탈리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파편적 이미지로 보아도 좋겠다. 그에게 당시 경제대국 일본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글감으로 가득한 테마파크이자, 기술적으로 오래 전 서구의 근대로부터 영향받은 신천지였다면, 이후 부상한 아시아의 각 국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테크노 오리엔탈리즘의 풍경이 되었다. 이를테면, 일본의 이미지가 혁신의 장소로 존재해 왔다면, 생산 및 소비 기지로 급부상한 중국의 경우는 지구행성적 경제를 떠받치는 공장이자 생산의 중추 엔진이 된 지 오래다. 이로써 아시아는 최첨단 기술 공급자가 지닌 매혹과, 파워풀한 타자로서의 위협을 동시에 내포한 복잡한 대상이 되어 왔다.

1980년대 디트로이트에서는 백인 남성 노동자들이 당시 막 수입되기 시작한 일본 자동차산업이 미국의 제조업을 위협한다고 여기고 아시아인을 린치해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마치 노동자를 대체하기 시작한 기계를 적으로 간주하고 파괴했던 러다이트 운동처럼, 아시아인을 위협적이고 성가신 아시아의 현현 그 자체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2]. 이는 2019년 시작된 COVID-19으로 인한 팬데믹 이후, 서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아시아인에 대한 폭력과도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의뭉스럽고 변칙적인 바이러스와 동일시되는 아시아인. 동시에, 최첨단 기술을 생산하고 문화를 견인하는 아시아인.

소거된 아시아 주체

현재 진행중인 K-문화의 확산을 포함하여 더 깊고 넓은 논의가 필요해 보이지만, 현재까지 흘러온 테크노 오리엔탈리즘의 양상에 대해 조심스러운 일반화를 허용한다면, 차용된 아시아의 장소에서 아시아 주체가 소거되거나 주변화되어 있는 SF 문화생산물의 면모를 주요 특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인이 소거된 장소에 삽입된 서구 주체들은, 적극적으로 상정된 반대항으로서의 아시아인들에 둘러싸인다. 데이빗 미첼 소설 원작의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2012)에서 배두나가 연기한 파브리컨드 손미 451과 그가 속해 있는 네오 서울은, 백인 배우 짐 스게터스가 연기한 아시아인 “해주”라는 캐릭터로 인해 결코 아시아인이 주체가 될 수 없는 공간이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스틸컷

《블랙 팬서》의 아프로퓨처리즘과 테크노 오리엔탈리즘의 결합

한편, 2018년의 영화 《블랙 팬서(Black Panther)》(2018)에서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해진다. 이 영화는 한 세기를 관통하는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이라는 흑인 고유의 찬란한 서브컬처를 주류 문화로 띄워 올린 사건으로 기록된다. 영화에서 와칸다국의 주권을 위해 사투하는 주인공들을 둘러싼 활극의 무대는 다름 아닌 부산이다. 수퍼카는 광안대교를 질주하고, 히어로는 한글 치과 간판을 배경으로 공중제비를 돈다. 자갈치 시장의 푸른 비닐장막 너머로 호화로운 지하 카지노가 펼쳐치고, 다국적 인물들이 음모를 도모한다. 장막 너머로 현실은 증발해 버리고 이야기는 -늘 그렇듯- 순식간에 알 수 없는 구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간다, 포탈과도 같은 구멍 속으로. 이제 백인 주인공들이 아니라 흑인 주인공들이 아시아 도시를 배경으로 활극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블랙 팬서》 (2018) 홍보 이미지

“소피아 아줌마, 얼굴 보니 좋네요.” “이 두 명은 누구야?!” “나이로비에서 온 친구들이 보자 해요. 좋은 분들이에요.”

-영화 《블랙 팬서》 중에서

주지하다시피, 영화 《블랙 팬서》를 통해 널리 확산된 아프로퓨처리즘은, 20세기 초반에 창발하기 시작한 흑인 고유의 문화 체계이자 수백 년 동안의 노예제와 차별을 포함한 블랙 디아스포라를 극복하기 위한 기획이다. 역사와 시간이 소거된 현실 대신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미래를 상상하는 일,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행성을 표류하게 된 외계 지성/에일리언으로 스스로를 상정하는 적극적 이야기 만들기 행위. 이는 반세기 넘게 우주의 드넓은 공간을 상상함으로써 현실을 극복해 내고자 했던 정치적이며 미학적 방법론이었다.

앞서, 단순화를 무릅쓴 테크노 오리엔탈리즘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아시아인 스스로가 소거되어 주체가 되지 못한 아시아의 장소, 그리고 그곳에 삽입된 서구 주체들의 면모라고 서술했다. 그런데 이제 《블랙 팬서》에서, 아프로퓨처리즘이라는 유구한 저항서사의 주체들이 서구 주체를 대체해 아시아 도시에 출현하는 희대의 사건이 벌어졌다. 부산이라는 새로운 도시가 흑인 주체의 테크노 오리엔탈리즘 활극의 배경이 되어버린 ‘사태’, 아프로퓨처리즘의 열띤 팔로워로서 이 오랜 서브컬처의 주류 문화 되기라는 역사적 순간에 대한 전율과 함께, 석연치 않음이 뒤얽힌 복잡한 감정의 물결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 하나의 저항문화가 지닌 날카로운 면모가 탈각되거나 둥글어지는 모습을, 서브컬처가 주류 문화에 포섭되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상상된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

나의 작품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는 바로 이러한, 내면의 석연치 않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김아영,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 단채널 영상 (2020) 스틸컷

소하일라

안녕 수리솔. 잘 있었어요?


수리솔

안녕 소하일라, 오랜만이에요.

바깥 날씨는 어때요?


소하일라

다 알고 있으면서. 맑고 좋아요.

라마단 기간에 휴가 당겨쓸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수리솔

그정도쯤은요.

좋은 라마단이었나요?


소하일라

늘 같지요 뭐.

낮 내내 집중력이 좀 떨어진 상태로 있다가 저녁부터 새벽까지 실컷 포식하는 거예요.

말레이시아에 들른 우리 가족들 만난 게 제일 좋았던 일이네요.

-김아영,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 (2020) 중


이 글에서 본인의 작품에 대해 길게 늘어놓을 생각은 없고, 다만, 느닷없는 주체를 위한 활극의 배경으로서의 아시아 공간이 아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지정학적, 지질학적, 현실적 요소들이 해체되고 재조립되어 어떤 이야기를 빚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시도로서 이 사례를 들고 싶다. 영상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는 팬데믹 이후 가까운 미래의 부산을 배경으로 상정하고 있고, 이야기의 주인공은 수리솔 연구소의 운영체제인 AI 수리솔과, 예멘인 이주자 선임 연구원 소하일라라는 여성이다. 이야기는 동시대의 조건들을 반영하거나 왜곡하면서 가능세계의 구축을 시도하는데, 주요한 외삽의 요소는, 해초, 특히 다시마를 발효해 생산하는 해초 연료가 세계의 주요 에너지원이 되었다는 설정이다. 부산 기장으로부터 오륙도 근해에 이르는 긴 벨트를 따라 바이오매스 타운과 바다숲이 형성되어 있고, 다시마 양식과 수질, 해류, 바이오매스 공정을 통합 관리하는 연구소인 수리솔 수중 연구소가 오륙도 부근 해저에 자리잡고 있다는 설정이다. 연구원 소하일라는 라마단 기간에 맞춰 당겨쓴 한 달의 휴가 후 연구소에 돌아온다. 그리고 연구소를 관리하는 AI 수리솔로부터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하나씩 듣게 된다. 이 사회를 둘러싼 탄소배출권 문제, 이상기후로 인한 징후들과 함께, 과거 팬데믹 시기 소하일라에게 벌어졌던 일들이 조금씩 밝혀진다. (http://ayoungkim.com/wp/3col/at-the-surisol-underwater-lab-2020)



민족미래주의, 아시아 퓨처리즘

마지막으로, 민족미래주의(Ethnofuturism)라는 사조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하고 싶다. 이는 열강들에 의해 간섭된(disturbed) 근대를 경험한 국가 또는 민족들이 스스로의 근대를 재수용하기 위한 기획으로, 망각된 과거에 대한 적극적 사변과 상상하기를 정치적이며 미학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아프로퓨처리즘을 선두로 하여 걸프 퓨처리즘, 중화미래주의, 인도 퓨처리즘 등 뿐 아니라, 토착미래주의(Indigenous Futurism)로 분류되기도 하는 폴리네시안 퓨처리즘, 하와이 퓨처리즘 등의 다양한 분파를 창출해내 왔다. 이 사조의 특징은 결국, 국민/민족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이야기, ‘우리’가 속한 가능세계를 직조해 낸다는 것이다.


"민족주의가 급진적으로 변화한 의식의 형태를 표출한 것이라면, 그러한 단절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오래된 의식에 대한 필수적인 망각은 고유의 내러티브를 창조하지 않겠는가?"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된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보급에 대한 고찰』, 서지원 역 (서울: 길, 2018), p.15 중


이는 종종 국수주의와 연결되는, 국민/민족이라는 용어가 함의할지 모를 배타성과 폐쇄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논의에 따라, 민족/국민의 범주를 “창출”된 개념이자 끊임없이 유동하는 불확정의 개념으로 본다면, 그 연대와 결속을 위한 이야기-판타지 만들기는 어쩌면 필수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민족미래주의는 어쩌면 미래보다도 과거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미래를 '소급'하고 '회고'하는 일이다. 나아가 현재를 재감각하는 툴이다. 스스로와의 화해, 스스로를 주체화하기 위한 이야기 만들기라는 도구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다양한 주체들이 출몰하며 조우하되, 공존을 위한 능동적 조율을 필요로 하는 장소에 대한 상상. 그리고 결국에는 어떤 집단도 쉬이 물러나지 않는 장소에 대한 상상. 나는 그러한 장소를 꿈꾸었던 SF와 사변 소설가들을 여럿 알고 있다. 어쩌면 앞서 언급한 <수리솔>이란 작업은 내부(아시아 퓨처리즘)로부터 욕망과 외부(테크노 오리엔탈리즘)로부터 요구 사이를 진자운동 하며 탈주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1] Gibson, William. (2001, 1 Sep) “My Own Private Tokyo”. WIRED. Retrieved from https://www.wired.com/2001/09/gibson/, 29 Jan 2022. [2] David S. Roh, Betsy Huang and Greta A. Niu. “Technologizing Orientalism.” Techno-Orientalism: Imagining Asia in Speculative Fiction, History, and Media, edited by David S. Roh et al., Rutgers University Press, 2015, p.11.


김아영(현대미술가, 미디어 아티스트), 사진: 민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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