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점거한 극장상황 / 김보슬

4차 산업 시대에 발맞춰 공연 제작도 부분적으로든 전면적으로든 비물질화·비인간화 공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 배달산업이 비교적 잘 발달된 우리나라에서 공연예술 또한 집에 앉아서 즐길 수 있게끔 원격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들리던 참이었다. 이때, 코로나19 정국을 맞아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는 사태를 목도 중이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밀착되는 일이 바이러스의 역가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이 이 바이러스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을 여러 가지로 예측하던 중, 고령인구를 줄여줄 바이러스의 순기능으로 보자는 목소리가 빈축을 사기도 했고, 이참에 사이비종교(“중간숙주”에 비유된 신천지예수교를 포함)를 근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기도 했다. 나는 공연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연계가 맞은 이번 참사를 두고 마음이 착잡하기만은 하지 않다는, 다소 발칙한 발언을 하려고 한다. 역병의 위험이 ‘극장예술’을 부정하기만 한 게 아니고, 어떤 쓸모 있는 물음을 가리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요컨대, 무대의 정면성, 객석의 고정성이 여전히 유효한 양식인지는 이미 오랫동안 이 ‘바닥’ 안에서 돌고 돌던 의문이었지만, 구체적인 재난 앞에서 이제는 정말 대안을 끄집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때를 맞은 게 아니냐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작금의 위기를 새로운 논의의 발로로 여기고 싶다.


도시의 빈 공간들을 조사하고 그것들 안에서 춤을 발견하기 위해 캐나다로 떠나 있는 동료와 연락이 닿았다. 서울은 자정, 토론토는 아침. 안무가 김이슬과 채팅창에서 만났다.

ndxzstudio: 잘 지내요? 한국은 난리네요. 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데, 기분이 침울하네요.


Esl: 그러네요, 사태가 심상찮네요. 보슬씨는 괜찮으신지? 여파로 공연도 많이 취소되고 있지요?

[사진 1. 토론토, 김이슬의 방 아침, 사진 제공_김이슬]

ndxzstudio: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평화로운 일상을 빼앗긴 듯해요. 그저 자유롭게 만나고, 모이고 하는 일상이 마비가 됐어요.


Esl: 저야 피부로 느끼긴 어렵지만...


ndxzstudio: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참에 새 국면을 모색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같은 공간에 사람들을 모으고서 <들어가> <인터미션 때까지 움직이지 마> <숨죽여> <무대 쳐다 봐> 하는 식의 억압성이야말로, 지금과 같은 재해 앞에서 약점이 되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식당도, 마트도 모두 인적이 줄었지만 그래도 공연장처럼 '단체행동'을 요구 받던 곳은 아니죠. 이제껏 공연장이 취해온 부자연스러움이 새삼 환기돼요. 이슬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극장엘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예요?


Esl: 이제 공연 문화 자체가 필요 없는 시대가 왔다고 이해해야 할까요? 하지만 저는 공연이 가지는 의미나 역할, 목적 등을 영상으로는 대신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공연을 집에 앉아서 본다면 그것은 공연이 아니라 영상소비라고 해야겠지요. 공연은 태생적으로 제품화되기 힘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렇기 때문에, 라이브의 일회성, 직접 보는 무대의 생동감이 엄청나다고 믿어요.


ndxzstudio: 그런데 생생하게 같은 공간에 가까이 있다는 게 관람기피 요인이 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공연이 관객을 만나고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어떻게 정비돼야 할지, 묻지 않을 수 없어요.


ndxzstudio: 요 근래 저를 우울하게 한 게 뭐냐 하면요, 집단의 움직임에 합류해야 한다는 거죠. 남들의 기준, 타인의 대열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상황이 이쯤 되니 저항할 수는 없어요. 예컨대, 거리에 나서면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마스크를 써야 하구요, 다른 이에게서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바라보거나, 맘대로 누구 손을 잡지도 못해요. 애인에게도 입맞춤을 아껴야 해요. 고향을 방문한다고 기차에 몸을 싣는 일도 위험해요. 늘 긴장해야 하니까, 일상에서 누리던 자연스러움이 사라졌어요. 그게 참 슬퍼요. 그러면서도 극장에서 느꼈던 그 마음, 극장의 부자연스러움에 도전하고 싶은 그 마음을 다시 만난 것 같기도 해요. 일상과 공연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연스러움을 쟁취할 수 있느냐, 하는 게 제 고민이에요.


Esl: 공감합니다, 보슬씨. 극장이라는 공간이 자연스러움을 위배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일상과 공연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연스러움을 쟁취하느냐, 하는 부분도요.


ndxzstudio: 아무래도 극장은 억압적인 구석이 있잖아요? 무대(전통적 무대·극장)는 그 정면성 때문에 일방적이며, 도전적이고요.


Esl: 그럼요.


[사진 2. 프로시니엄 형 극장]

ndxzstudio: 비록 극장은 억압적이지만, 공연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Esl: 어떠한 공간 안에서, 내가 나로서 움트는 자연스러운 방식은 무엇일까요?


ndxzstudio: 글쎄요. 이거 참, 좀 난데없지만 요즘 저는 식민지시대를 떠올려 보곤 해요.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고는 나라를 빼앗긴다는 게 이런 건가, 싶어지고요. 나라를 빼앗긴다 = 공간을 점유하는 나만의 방식을 빼앗긴다 = 스스럼없이 공간을 점유·활보할 자유를 박탈당한다. 뭐, 그런 것 아닐지?


Esl: 맞아요!


ndxzstudio: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이동시키고, 자유롭게 내 일부를 다른 무엇에 가져다대고 하는 그런 것. 접속의 자유. 그게 어떤 공간 안에서 내가 내 식으로 움틀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공연 공간에서도 시선을 어디에 고정시키고 싶으면 고정시키고, 귀만 고정한 채 한 눈 팔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 생각 따로, 몸 따로. 긴장과 이완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


Esl: 공연장의 억압성은 결국 한 방향을 바라보는 프로시니엄 무대, 그리고 어둠과 침묵을 지키는 객석에서 유래했을 거예요.


ndxzstudio: 그게 요 며칠 대한민국의 일상과 닮아 있어요. 끊임없이 긴장하는 것, 끊임없이 자기 몸을 단속하는 과정의 연속이에요. 바이러스로부터, 타인으로부터 스스로를 떼어놓기 위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이 마치 24시간 공연상황인 것 같아요.


1) 집단의 약속에 따라 performing 해야 하니까 공연 상황

2) 계속 긴장하고 상황을 주시해야 하니까 공연 상황


Esl: 오! 깔끔한 정리네요.


ndxzstudio: 1번은 무대에 오른 자, 2번은 객석에 있는 자.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요즘 이 시국은 ‘극장상황’인 듯해요.


Esl: 혹시 <로마비극> 보셨나요? LG아트센터에서 했던. 이보 반 호프 연출 극이요.


ndxzstudio: 아니요, 안 봤어요.


Esl: 극장 안에서 새롭게 그 구조를 활용한 하나의 대표적 케이스였다고 생각했는데요. 흥미롭게도 그 자유 속에는 역시 또 명확한 규칙들, 제약들이 존재했어요. 전체의 자유를 위해, 우리들 각각은 규약에 안에 놓여 있었구요. 어떻게 보면 ‘조용히 하시오’, ‘움직이지 마시오’, ‘ 나가지 마시오’ 등의 객석 운영 룰도 전체의 자유를 위한 통제 방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한 가지 달랐던 점은 규약이 있었지만 꼭 따르지 않아도 됐어요. 그냥 자신이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물기 원한다면요.


ndxzstudio: (그림 1 파일전송)


[그림 1. 프랙탈 기하학 모델]

ndxzstudio: 프랙탈 기하학이라고 하죠, 이런 구조. 그 연출가가 제시한 자유와 제약이 바로 이런 것인가 싶어요. 자유 안에 제약이 있지만, 그 안에 다시 자유가 있고.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뒷받침. 그러면서 촘촘해지는 것. 그런 것이면 멋지네요.


Esl: 오호호.


ndxzstudio: 일상도, 공연도, 바로 그러한 관계(자유와 제약의 적당한 ‘밀·당’) 안에 있으면 좋겠어요! 이즈음 읽는 기사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e)’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해요. 이 시국이 타개된다 하여도, 공중예절을 의식하고, 건강한 거리를 지키고, 에티켓을 준수하는 건 여전히 중요하겠죠. 그럼에도 소박하고 다정하게, 애인 궁둥이 옆에 덥썩 붙어앉아 밥 한끼 나눠먹을 수 있는 삶...


Esl: 크흐!


ndxzstudio: 그런게 너무 좋지 않나요? 공연 속에 그런 기쁨이 있다면!


[사진 3. 공연 공간 실험 중, 사진 제공_김이슬]
[사진 4. 2019년 김이슬 안무작 <비하인쥬> 공연 후 커튼콜, 사진 제공_김이슬]

*촬영은 객석에서. 공연자들이 객석에 뒷모습을 보이며 인사하고 있다. 극장의 억압성에 균열을 내고, 무대와 객석 사이의 자연스러운 거리에 관한 물음을 던지기 위한 것이었다.


김이슬.

안무가, 공연예술가. 여행하는 연구자 또는 연구하는 여행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대치와 화해를 다양한 스케일의 공간에서 실험 중이다. 2020년 여름, 서울문화재단 지원의 신작 발표를 앞두고 있다.

창작그룹 뭄플레이Moomplay 대표/예술감독

영국 런던 The Place, 독일 함부르크 K3 레지던시 아티스트

<Cross-eye HD> <비하인쥬: Behind You, Babe> 연출

<A Piece of Shit> 작품상·연출상 수상

<코끼리가방에: An Elephant in The Room> <NO답> 안무, 출연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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