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심이, 하니, 파랑새 / 김보슬

영심이와 하니는 내가 어릴 때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서로 다른 두 만화영화의 주인공들이다. 만화영화에 이렇다 할 관심이 없었던 나조차 모를 리 없을 만큼 국민적 인기를 누린 인물들이다. 새삼 영심이, 하니를 챙겨본 것은 뜻밖에도 성인이 되고 난 뒤의 일이다. 우연한 기회에 한 편, 두 편 보다가 어느새 ‘정주행’을 해 버리고, 지금은 유튜브에서 둘리와 고길동 아저씨를 찾아다니는 중이다. 문득 해묵은 먼지를 털고 일어난 어린 시절의 감성 같은 것 때문은 아니다, 특별하게 간직했던 기억이 원래 없었으니. 순전히 어른이 된 지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달려라 하니>, 이진주 作, 1985년 『보물섬』 발표]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고 보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삶의 질곡이라 할 만한 것의 본래꼴이 세상을 채 모른다고 여겨지는 10대에게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나의 얕은 지식으로 정신분석적 인과를 규명할 수는 없지만 괜찮다, 숨은그림찾기를 해 낸 정도로도 나쁘지 않으니까.

각 만화들의 탄생 배경이나 발표 시기, 작가와 감독, 회차별 에피소드에 관한 자료는 여러 네티즌들에 의해 인터넷에 잘 정리돼 있으니 참조해도 좋겠다. 하니는 상이한 두 편의 시리즈를 통해 한 번은 육상선수로, 다른 한 번은 체조선수로 그려졌지만 그 모두를 관통하는 동일 인물로 간주하여도 무방할 듯하다. 두 번 다 죽은(죽었다고 알려진) 엄마를 그리워하는 소녀 체육스타로, 이름도, 외모도 동일하다. 진로탐색을 위해 육상도 해 보고, 체조도 해 보았다고 치기로.

<달려라 하니>, 이진주 作, 1988년 KBS 2TV 방영]

<천방지축 하니>, 이진주 作, 1989년 KBS 2TV 방영]

빛나리중학교 육상부 하니는 열세 살. 라이벌인 나애리가 유복한 집안의 딸로 든든한 후원을 받고 체격조건도 우월한 데에 비해, 하니가 가진 것이라곤 유난히 작은 체구에 깃든 강한 자존심과 빼어난 운동신경 뿐이다. 씩씩함으로 똘똘 뭉친 하니의 마음을 가장 유약하게 만드는 것은 일찍 여읜 엄마에 대한 그리움, 그런데 그 유약함을 딛고 훈련에 몰입하는 의지력의 근원 또한 ‘하늘에서 보고 계실’ 엄마의 눈길이다.

하니가 전력질주로 향하는 곳은 아무리 멀리 달려도 닿으려야 닿을 수 없는 엄마의 품이다. 그럴수록 하니는 더욱 사무치게 달려간다.

‘저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상담사나 의사의 도움은 아닐까?’

하니의 갈증은 애절하다 못해 집요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본능적 애착이기로서니…. 위태로워 보인다. 하니는 엄마 있는 아이들에 대한 부러움을 내색하지 않는다. 하니를 괴롭히는 것은 부러움 따위가 아니다, 달콤한 기억이 남기고 간 깊고 진한 그리움이다.

실낙원. 그 시절 TV 앞에 앉았던 우리들이 그런 걸 알았을 리 만무하지만, 어른이 된 내게 는 흡사 그게 떠오르는 것이다. 더욱이 가수 이선희가 부르는 주제가가 애처롭다. “난 있잖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늘, 땅만큼. 엄마가 보고 싶음 달릴거야. 두 손 꼭 쥐고!”

세상에 슬픈 것이 어디 한 둘이겠냐마는 각각의 슬픔들은 모두 다른 곳에서 시작해 공통의 한 점에서 통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하니의 결승점 같은 그 ‘1점 소실점’에서 슬픔들이 다 연결되는 순간, 삶의 공간은 색깔을 잃는 대신, 실낱같은 희망들이 가까이 당겨지며(zoom-in) 도리어 입체감을 확인받기도 한다.

<달려라 하니>, 이진주 作, 1988년 KBS 2TV 방영]
<달려라 하니>, 이진주 作, 1988년 KBS 2TV 방영]

우리 모두는 그러한 1점 소실점을 저만치 앞에 두고 있다. 하니에 대한 나의 진한 공감은 비로소 이 아득한 슬픔의 소실점에서 온다. ‘엄마’는 우리 모두가 저마다 짊어진 상실과 결핍의 무게를 가리키는 장치, 즉, 알레고리일 뿐이다. 열세 살 소녀 육상선수의 설움에 북받친 몸부림은 무엇인가에 애타도록 목마른 인간 표준을 대변한다. 그런 목마름이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지 않던가.


<영심이>, 배금택 作, 1990년 KBS 1TV 방영]

한편, 오영심은 화목한 가정에서 부모, 오빠, 여동생과 살고 있다. 역시 중학교 1학년.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가정 환경에, 학교생활이 원만한 편인 데다, 성적이라든지 외모, 또는 좋아하는 연예인에 울고 웃는 평범한 성장기를 보내고 있다. 남자친구 왕경태에게 일편단심 짝사랑을 받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도 영락없는 ‘명랑 청소년’인 영심이가 유행시킨 그 유명한 주제가를 살펴보자. “보고 싶고, 듣고 싶어. 다니고 싶고, 만나고 싶어. 알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 영심이. (…) 해 봐, 해 봐. 실수해도 좋아. 넌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 과연, 생동하는 연둣빛 에너지를 한가득 품고 있는 발랄한 노랫말이 아닌가.


<영심이>, 배금택 作, 1990년 KBS 1TV 방영]
<영심이>, 배금택 作, 1990년 KBS 1TV 방영]

그런 영심이라고 해서 쾌활하고 거리낌 없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알고 싶고, 하고 싶고, 다니고 싶은 그 마음은 또 다른 주제가 어디에선가 조숙한 애수를 자아내기도 한다. “새벽은 왔다가 어딜 가는지. 어둠은 밀려서 어딜 가는지. 알고 싶어요, 난 알고 싶어요. 알고픈 건 하늘 그리고 땅만큼인데.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 둘 다 가수 권성연의 목소리.

그러나 이 두 번째 노래의 가사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여 있어, 철저히 영심의 속마음이다. 담아두었다가 혼자서만 꺼내어 매만져보는 영심의 마음에는, 알고 싶은 것들을 향하여 혼자의 힘으로 다가가야 하는 두려움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것은 어린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어휘들의 테두리 바깥으로 너무 많이 삐져나가는 탓에, 채 완전히 표현되지 못하고 안으로 숨는다. 그런데 그 테두리를 이탈하는 바로 거기에, 영심만의 공간이 있다. 만화 안에서는 영심이가 창가에 기대어 달님에게 말 거는 장면으로 그려진다. 또한 바로 거기에, 하니에게는 결승점과 그리운 엄마가 있다.

이 두 소녀들한테 그들과 말이 잘 통할 것 같은 한 사람을 소개할까 한다. 뜻밖에 시대도, 국적도, 성별도, 언어도 다르고, 인상마저 우락부락한 노인이다. 그러나 이 미국의 시인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1920-1994)는 어쩐지 하니와 영심을 제일 잘 이해해 줄 것 같은 <파랑새(Bluebird)>라는 시를 남겼다. 후대에 이 시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 영상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찰스 할아범도 의외일 테지, 오랜만의 나의 호출. 천방지축 소녀 두 명을 함께 데려와 파랑새를 보여달라니?


파랑새

내 가슴 속에는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파랑새 한 마리가 있다.

그러나 난 그놈에게 아주 터프하다.

그대로 있어, 난 아무도

너를 보게 하지 않을 거야.

내 가슴 속에는 밖으로 나오려는

파랑새 한 마리가 있다.

그러나 난 그놈에게 위스키를 퍼붓고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창부들과 바텐더들

그리고 식료품점 점원들은

그놈이

거기 있다는 걸

모른다.

내 가슴 속에는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파랑새 한 마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놈에게 아주 터프하다.

그대로 있어, 나를 망칠 셈이야?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고 싶어?

유럽에서 내 책 판매에

타격을 주고 싶은 거야?

내 가슴 속에는 밖으로 나오려는

파랑새 한 마리가 있다.

그러나 난 너무 영리해서,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만 가끔

그놈이 나오게 한다.

네가 거기 있는 거 알아,

그러니

슬퍼하지 마.

그러고는 그놈을 다시 집어넣는다,

그놈은 그 안에서

조금 노래를 부른다, 난 그놈이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우리는 비밀조약을 맺고

그렇게 함께 잠든다,

그건 남자를 울게 하기에

아주 그만이다, 그러나 난

울지 않는다,

당신은?

- 찰스 부코스키

(홍경님 옮김)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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