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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은 아는데 양자는 몰라 / 박성관

양자역학 관련 서적을 읽은 사람과 대화를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들은 양자역학에 대하여 인상적인 사실들을 다양하게 열거했지만, 내가 간단한 질문을 하나 던졌을 때 답하지 못했다. TV에서 양자역학에 관한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과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내가 만나본 독자와 시청자를 다 합쳐도 표본수가 많지 않아 일반화할 순 없지만, 좀 이상했다. 양자역학“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양자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는 게. 더 이상한 건, 그들이 양자가 뭔지 한번도 자문해본적 없는 사람들처럼 반응했다는 점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혹시 당신도 책이나 TV에서 양자역학을 접해본 적 있다면 함 자문해보시라.

“얏호! 드뎌 양자역학 책, 다 읽었당”.

“와~ 며칠만이야. 해냈구나. 완독을 축하해. 근데... 양자가 모야?”

“어? 뭐라구? 양자? 어... 음.... ”

“책에선 뭐라고 그래? 혹시 기억 나?”

“ ... ”

사실 가장 많은 경우를 차지한 건 이들 외에 따로 있었다. 다수는 자신이 분명하게 답할 수 없는 게,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해서’ 또는 ‘그 프로그램을 한, 두 편만 봐서’ 그런 거 같다고 답했다. 과연 그래서일까? 확인해보자. 내가 올해 보았던 책과 프로그램 중 꽤 괜찮았던 것을 골라, 양자를 뭐라 그랬는지 보면 된다. 간단하다.

2.

󰡔아인슈타인 & 보어: 확률의 과학, 양자역학. 이 책 초반의 박스 글 안에 담긴 글이다.

(아인슈타인 & 보어 : 확률의 과학 양자역학, 이현경 (지은이) 김영사, 2006. p.17.)

‘양자’가 뭐지?

양자(quantum)라는 개념이 생소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고전 역학에서는 에너지를 ‘흐른다’고 표현하면서 연속적인 개념으로 생각했다. 수에 비유해 본다면 실수에서는 아무리 0에 가까운 수를 만들려고 해도 0.1. 0.01, 0.001, … … … . 0,000000 … … 1 처럼 끝이 없기 때문에 수 자체를 연속적인 개념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반면 자연수는 1, 2 3 ……… 와 같이 1의 간격으로 일정하게 나뉘어 있다. 양자는 이렇게 에너지가 자연수처럼 일정한 양으로 나뉘어있는 것을 말한다.

자, 이걸 읽고 당신은 감이 오는가? 이 내용을 친구랑 만나 대화하다가 떠올리며 설명할 수 있겠는가? 뭐랄까, 이해 안 되는 건 아닌데 이해가 잘 되는 것도 아닌 그런 애매모호한 상태 아닌가? 그럼 하나 더 보자. 사이언스 워크 1부 양자역학 중 앞 부분이다. 우선 나레이션, 이어서 박제근 교수가 설명한다.

나레이션 :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죠.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띄엄띄엄 궤도로 돌고 있습니다. 양자란 말도 거기서 나왔습니다.

=>이는 사실이 아니며,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다만, ‘전자-원자핵-궤도’ 식의 이해가 초기에 양자성에 대한 이해를 획기적으로 제고하였고, 또한 지금도 화학 분야에서는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근사 이론이다. 결국 이런 이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지만, 과학서나 과학자들이 일반인에게 쉽게 설명할 때 사용되곤 한다.

박제근(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의 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다지 연속적이지 않아. 에너지 준위 자체가 불연속적이다. 띄엄띄엄 있으니까, 띄엄띄엄 있는 것을 소위 양자화되어 있다. 영어로 quantize라고 하는데, 쉽게 우리 일상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연속적이지가 않고 불연속적이다...라는 겁니다.


앞에선 두 개 보자고 했는데, 하나만 더 추가하자. 본 연재의 2편에 이어서 다시 김상욱 교수가 양자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김상욱 : 양자는 너무 괴상하기 때문에 정체를 거의 알 수 없다. (...) 인간의 상식과 직관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미쳤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다. (...) 양자는, 원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떤 여성 출연자 : 안 보여? 너무 작다는 거야 투명하다는 거야?

김상욱 : 사실 그... 용어가 틀렸는데, 양자라는 용어가 그리 좋은 용어가 아니야, 양자역학을 설명함에 있어서. 양자라는 거는 뭔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는 뜻이야. 양자를 설명하는 최소단위는 원자야.



3.

세 경우 모두 꽤나 잘 설명한 편이다. 그렇지만 나는 대부분의 독자나 시청자들이 이걸 읽고 느낌이 뙇!하고 오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상태는 끝까지 이어지는데, TV든 책이든 이에 대해 더 설명하지 않는다. 그 공백을 희한하고 신기한 양자역학 이야기들이 메운다. 양자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리 어려운 거 같지도 않은데, 양자가 뭐 그리 괴물같고 정체를 알 수 없고 미쳤다는 건지... 그런 생각이 드는 반면, 정확하게 100% 느낌을 포착하려고 하면 당췌 잘 잡히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것이 양자역학 입문시 최대의 난관이고, 이를 애매하게 처리하면 끝까지 가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함 설명해보겠다.

3. 1) 양자란 띄엄띄엄하다는 것이다. 즉, 양자는 어떤 물체나 입자나 소립자가 아니며 극미하든 어떻든 하나의 물질이 아니다. 그저 띄엄띄엄하다는 것이다. ‘양자’라는 이름 때문에 무슨 양성자나 전자, 원자, 소립자 같은 어떤 물체나 존재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김상욱 교수님도 말했지만 사람들의 혼란 중 상당 부분은 바로 이 용어 때문이다.

3. 2) 양자란 그냥 ‘띄엄띄엄한 것’이 아니라 ‘띄엄띄엄할 리가 없는 것들이 띄엄띄엄하다는 사실’이다. 뭐라고? 그게 설명이야? 아니, 세상에 띄엄띄엄한 게 뭐가 그리 이상하다는 건가? 사람이나 나무나 아파트나 카페나 기생충이나 주사바늘 등등등 세상의 하고많은 것들이 띄엄띄엄하잖아. 맞다. 그러니까 띄엄띄엄한 게 이슈가 되는 이유는 그냥 띄엄띄엄한 것에 있지 않다. 띄엄띄엄한 사실 자체는 기괴할 것도 없고, 이상하거나 괴물 같은 것도 아니다. 그럼? 결코, 도저히, 설마 띄엄띄엄할 거 같지 않은 어떤 것이 띄엄띄엄할 때, 그것을 그 띄엄띄엄한 하나 하나를 양자라 부른다. 그러니까 양자는 물체나 존재이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우선 어떤 사실이요 사태다.

3. 3) 그럼 뭐가 ‘결코, 도저히, 설마 띄엄띄엄할 거 같지 않은 어떤 것’인가? 예컨대 에너지가 바로 그러하다. 가령 열을 생각해보라. 열을 한 개, 두 개, 세 개 셀 수 있는가? 당연히 셀 수 없다.... 라고 생각들 하시겠지만, 하나 둘 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하나하나의 단위보다 작은(혹은 적은) 열량은 없다. 이것이 막스 플랑크가 (거의) 밝혀낸 충격적인 사실이고, 양자역학의 회임이었다. 덧붙이자면 열의 양, 즉 열량은 한 개거나 두 개, 혹은 세 개, 네 개일 순 있어도 그 사이에 소수점을 포함해 존재하는 수많은 양들은 다 불가능하다. 3.2, 5.9 같은 열의 양은 없다.

반면 사과는 어떤가? 한 알, 두 알 셀 수 있고, 이 사과와 저 사과는 띄엄띄엄 존재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사과나 사람, 수소나 산소 또 연못이나 산 같은 것들은 연속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거의 연속적인데 종종 불연속적인 것’들도 전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양자를 ‘불연속(적)’이라 표현하는 건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크다고 본다. ‘띄엄띄엄’이 훨씬 적합하며 한자로 ‘이산적(離散的)’이라는 표현은 완벽에 가깝게 적확하다. 영어로는 discrete다. 이산가족이라고 할 때의 그 이산이다.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데, 그 간격이 규칙적이지도 않으며, 각각 어디에 있는지를 모두 다 파악할 수도 없다.

3. 4) 여기까지 오니 우리는 원자와 양자를 구별할 수 있다. 어렵지 않다. 사람, 나무, 아파트, 카페, 기생충, 주사바늘 등등은 각각 하나의 존재자들, 즉 개체들이다. 이 개체들은 죄다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분자들은 더 작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생명체들은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고, 타고타고 아래로 내려가면 결국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이런 개념이다. 그런데 만일 열이 한 개 두 개 셀 수 있다면? 그래서 어떤 기본 단위가 있고 그보다 작은(혹은 적은) 양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큰 양도 2배, 3배, 4배 등 정수배만 가능하짐 2배보다 조금 크고 3배보다 조금 작은 그런 양으로는 실존하지 않는다면? 그럴 경우 그 기본 단위를 양자라 한다.

3. 5) 정리하자. 양자란 기본 단위가 도무지 있을 거 같지 않은 어떤 것이 세상에나 글쎄 기본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하자면 놀라움의 개념이다. 당연히 그 기본 단위 이하의 양으로는 실존하지 않는다. 단위 이상으로도 정수배만 실존한다. 이게 정말일까? 대체 자연이 왜 이래야 할까?

3. 6) 한 가지 더 알아둘 것이 있다. 양자는 바로 이 기본 단위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에너지다. 그래서 󰡔아인슈타인 & 보어󰡕는 에너지로 설명했고, 나도 ‘열’을 예로 든 것이다. 또 하나는 빛이다. 빛은 전자기파 중 가시광선 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자기파에는 가시광선 이외에 적외선, 자외선, X레이 같은 게 있다. 실용적으로는 전자기파를 광파라 불러도 좋다. 자, 그럼 광파는 한 개, 두 개 셀 수 있나? 그렇다. 그럼 광파의 양자는 무엇일까? 바로 광자다. 세상에나 빛이 한 개 두 개 셀 수 있다니.... 그 정도로 놀라긴 이르다. 광자는 광자총으로 한 개씩 따로 발사할 수도 있다(전자도 한 알씩 따로 발사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그래서 이를 빛의 양자, 즉 광양자(光量子)라 불렀고, 영어로는 light quantum이었다(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이 아니라 광양자설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후 양자역학이 확립되자 아예 광자, 즉 photon으로 개명된다. 빛알갱이라 불러도 좋다(빛알갱이 역시 과학계의 공식 용어다). 물론 빛은 여전히 파동이다. 그래서 빛은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기도 하다는 게 경악할만한 사변인 것이다. 빛이 양자(따라서 입자)라는 것도 황당한데, 바로 이런 빛이 파동이었다가 입자였다가 하니 말이다.

4.

세계적인 과학 베스트셀러 󰡔모든 순간의 물리학󰡕의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에서 시간도, 공간도 양자라 한다. 시간 한 개, 공간 한 개가 있다는 거다. 그는 시간 양자, 공간 양자라 부른다. 이건 정말 턱뼈가 빠질 정도로 놀라야 한다. 왜 그래야만 하냐고?

시간 양자가 있다면 첫째 그보다 짧은 시간은 없다는 건데, 그게 어케 가능하며, 그 시간 단위가 정말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확인은 어떻게 가능한 거지? 현재의 과학기술이 완전히 발전하지 않아서 최소 단위라 여겨지는 걸 수도 있잖아?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놀라야만 하는 둘째 이유는 이렇다. 우선 공간이나 시간이라는 건 무슨 사과나 자동차 같은 체가 아니잖아? 심지어 열이나 빛 같은 유체(流體)도 아니지. 가령 어떤 물체가 있는데, 그 물체를 빼서 옮기면 그 물체가 있던 그 자리, 그 텅 빈 곳, 그걸 공간이라 부르는 건데, 그걸 나눈다는 것부터가 이상해. 그래놓고 또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종 단위가 있다고? 대체 그게 어케 가능한 거임? 시간은 더 말 안 해도 되겠지?



여기서 화제를 잠시 바꿔서 이야길 마무리하자면, 여러분이 직접 ‘플랑크 시간’이나 ‘플랑크 길이’를 검색해보시라(한 20~30초밖에 안 걸린다). 이걸 보면, 물리적으로 유의미한 최소 시간과 최소 공간이라는 게 아주 오래전부터 과학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걸 아시게 될 거다. 여기서 플랑크는 우리가 다음 편에서 만나게 될 양자역학의 할아버지 막스 플랑크다. 플랑크 시간과 플랑크 길이를 생각할 때, 공간 양자와 시간 양자는 허황된 얘기긴커녕 우리의 상식보다 진실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하나 더 놀라운 건, 아니 어쩌면 가장 경악스러운 건, 만일 그렇다면 시간이 띄엄띄엄하다는 거다. 또한 공간이 띄엄띄엄하다는 거다. 이게 무슨 얘기겠는가? 가령 공간의 최소 단위가 두 개 있는데, 이 둘은 서로 떨어져 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 두 공간 사이에는 공간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없다고 하면 공간은 띄엄띄엄하지 않고 연속적인 게 된다. 반대로 있다고 하면 대체 이때 있다는 건 뭐가 있는 것인가? 두 존재자 사이에 텅 빈 그것을 공간이라 일컫는 것인데, 두 공간 사이에 텅 비어 있는 이 X란 무엇이란 말인가?


자, 여기까지 오니 왜 양자 개념이 그리 충격적이었고, 왜 양자 얘기만 하면 장삼이사나 앨리스와 봅 같은 이들이 동양사상이나 불교니 화엄이니 하는 이유를 아시겠는가?

아! 이 대목에서 말해두자면, 나는 양자역학 이야기하면서 동양사상, 불교 같은 거 가져오는 사람 이야긴 거의 듣지 않는다. 그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그게 사이비고 아니고를 떠나서 내게 가치 있는 얘길 들어본 적이 거의 없어서다.

원래는 오늘 양자가 무엇인지를 가볍게 터치하고 흑체복사와 플랑크의 양자(특히 작용양자) 얘길 하렸는데, 이건 또 다음 달로 휘리릭! 그리고 이 양자 개념이 현대 수학(특히 이산수학, discrete mathematics)과 21세기 인류학, 또 21세기 철학과 어떻게 커플링되는지도 이후로. 다 미뤄 미안하지만 양자란 󰡔숲은 생각한다󰡕에 등장한 디컨이 말했던 부재(不在)이기도 하므로 뭐 이 정도야!


박성관(<중동태의 세계>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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