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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된 논문과 지성사 자료로서의 KCI-1 / 김병준

최종 수정일: 2023년 2월 17일



1. 한국 인문학계의 ‘웃픈’ 농담

한국 인문학계에는 웃기지만 슬픈 농담이 있다. 나의 논문을 읽어주는 사람은 지구상에 단 세 사람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두 명은 내 논문의 심사자이며, 나머지 한 명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다. Korean Citation Index (한국학술지인용색인, 이하 ‘KCI’)의 도입과 실적 평가 위주의 학술진흥 정책이 맞물리면서 생긴 한국 인문학계의 자화상 같은 농담이다. 이 농담에 더해 혹자는 한국 인문학의 미래가 없다며 스스로 종언을 고하기도 한다. 나는 (인)문학의 종언 같은 수사를 펼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웃픈 농담 속에 새로운 연구의 가능성을 보았다. 내 논문을 읽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세 명뿐이라는 농담은 예상 외로 통찰을 담은 말이었다. KCI에 2019년까지 게재된 인문학 대분류 논문은 약 25만 건에 달하는데 2021년 8월을 기준으로 전체 인문학 논문의 평균 피인용 수는 3.2건에 불과했다. KCI 시스템이 제대로 된 피인용 수 검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기에 실제 평균 피인용 수는 3.2건보다는 좀 더 많을 것이다. 또한 인문학 논문의 피인용 수 중앙값은 2건으로 25만 건 중 반 정도의 논문은 2건 이하의 피인용 수를 기록한다는 말이다. 논문 대다수가 인용되지 못하고, 매우 소수의 논문만이 수십, 수백 건의 피인용 횟수를 기록하는 상황은 실은 웃픈 현실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네트워크 과학에서 멱 법칙(Power law)은 매우 소수의 점(Node)이 많은 연결(Edge)을 차지함을 뜻한다. 이를 한국 인문학계에 적용한다면, 소수의 논문에만 많은 연결(인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 인문학계의 불평등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술계에서 중요한 텍스트의 선별과 지적 구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나아가 단순 피인용 수에 그치지 않고, 여러 다른 지표를 통해 네트워크 구조에서 논문(연구자)을 바라본다면 Impact Factor에 미쳐 있는 한국 학문장을 조금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논문쓰는 일의 외로움'. By Midjourney bot, 프롬프트: 오영진

2. KCI 시스템의 시작, 그리고 양산된 논문

KCI는 2007년 11월 시스템을 시범 공개한 이후, 현재까지 국내 인문학 연구자들의 졸업, 임용, 승진 등 연구자의 커리어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시스템이다. 국제 학술지(이른바 SCI) 논문으로 학술 커뮤니케이션이 빈번한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공학계와 달리 한국 인문학계는 KCI를 중심으로 학문장이 형성되었다. 이는 한국 인문학에서 한국학이 중심이 되어왔기 때문에 국제 학술지를 통한 소통이 적었기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연구자의 양적 평가 시스템 도입 이후 단행본보다는 학술지 위주의 평가가 이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인문학계의 ‘위기’나 ‘축소’에 관한 여러 논의가 이뤄지는 와중에도 KCI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2004년 기준으로 약 만 건의 논문이 KCI에 인문학 대분류로 게재되었는데, 2021년에는 약 18,000건에 이르는 인문학 논문이 생산될 정도였다. 한국 인문학은 KCI 기준으로는 지난 15년간 2배 가까운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자들 스스로 지금까지의 양적인 성장을 보고 한국 인문학이 그만큼 질적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적다. 오히려 많은 인문학자들은 KCI가 한국 인문학을 통치하는 헤게모니로서 작동해왔다고 여긴다.2) KCI의 등장은 신자유주의 체제 및 대학 평가 시스템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 시스템이 인문학자들에게 규격화된 글쓰기만 강요해 인문학계를 형해화한다는 것이다. 인문학계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KCI 시스템은 현재 학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BK, HK, SSK 등의 국가 주도 연구 진흥 사업은 KCI 시스템을 더 공고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해당 사업들이 정량적인 논문 실적 제출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학진’ 체제가 오히려 한국 인문학에 악영향을 미친 장본인이며 인문학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라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3)

3. 지성사 자료로서의 KCI

그러나 KCI 시스템이 인문학자들에게 연구와 논문을 작성하는 방식을 정해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 것과는 별개로, 지난 20년간 KCI를 통해 이뤄진 한국 인문학의 학술 커뮤니케이션과 지식구조에 대해 정량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드물었다. 한국 인문학의 지식구조를 밝히는 연구는 주로 문헌정보학 연구자들에 의해 시행됐다. 문헌정보학 연구에서는 인문학 내 세부 전공 분야에 대한 분석을 진행했고4), 한국 인문학의 모든 영역을 다루는 연구는 아니었다. 한국학 연구의 지식구조를 밝히는 연구가 존재하긴 했으나 국제 저널인 SCOPUS의 서지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였다.5) KCI, RISS 등의 학술 플랫폼의 개선으로 논문 서지 데이터의 접근이 쉬워졌고, 이전보다 손쉽게 컴퓨팅 파워와 프로그래밍 언어를 활용하게 되면서 인문사회과학에서도 지식 구조에 관한 거시적인 연구들이 시작되었다. 특히 디지털인문학 분야가 각광받으면서 연구 경향(Research Trends) 분석에 관한 연구들은 여러 전공 단위에서 이뤄지고 있다. 해당 연구들은 특정 전공자의 학위 논문을 분석하거나6), 수십 년 치의 학술지 논문을 분석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7) 이렇듯 기존에 문헌정보학에만 국한돼서 연구가 이뤄졌던 계량서지학 기반의 연구는 인문사회과학에서도 앞으로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

4. 계량서지학으로 인문학계를 분석하기

계량서지학(Bibliometrics)이란 통계나 수학같이 정량적인 방법을 적용해 논문이나 문헌 등의 학술 커뮤니케이션의 양상을 분석하는 방법론이다. 이때 중요하게 여기는 학술 커뮤니케이션 지표는 바로 인용이다. 주지하듯 인용은 연구자가 자신의 논문을 뒷받침하는 적극적인 학술 참여 행위로, 계량서지학에서는 인용을 분석해 그간 축적된 지식의 양과 주제를 분석할 수 있다. 이용에 관련한 계량서지학의 분석 방법은 다양하지만, 여기에서는 대표적인 두 가지 방법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서지 결합 분석(Bibliographic coupling analysis)이며 또 다른 하나는 동시인용 분석(Co-citation analysis)이다.


위 그림을 보면 서지 결합, 직접 인용, 동시 인용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그림의 각 점은 논문이며 얇은 점선은 직접 인용인데 1번 논문이 3번 논문을 직접 인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번과 4번이 동일한 2번 논문을 직접 인용했을 때 1번과 4번을 서지 결합 관계(굵은 점선)라고 부른다. 반대로 참고문헌의 입장에서 1번 논문이 3번과 2번 논문을 동시에 인용하면 3번과 2번 논문은 동시 인용 관계(실선)를 맺는다. 예컨대 연구자가 쓴 논문의 참고문헌에서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가 함께 있다면 두 학자는 뭔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방법이 동시 인용이고, A 논문에서 미셸 푸코를 인용하고 B 논문에서도 동일하게 미셸 푸코를 인용했을 때 두 논문이 어떤 관계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서지 결합이다. 학계에서 대다수 인용되는 논문이나 단행본은 매우 소수이기 때문에 직접 인용만으로는 계량서지학 분석이 어렵다. 따라서 서지 결합과 동시 인용 관계가 주로 계량서지학 분석에서 활용된다. 그렇다면 왜 단순 피인용 횟수 대신 이런 관계망을 써야 하는가? 단순 피인용 횟수는 연구와 연구 사이의 관계망을 그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인용 횟수가 1차원이라면 네트워크는 2차원 좌표 내에서의 해당 연구의 중요도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인용 네트워크 분석은 노벨상 수상자를 예측한다거나 앞으로 주목받을 과학 기술을 전망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2편에서 계속)



1) 이 글은 필자의 학위 논문과 아래 기고문에서 일부를 발췌, 수정한 것이다. Kim, Byungjun. "Mapping the knowledge structure of Korean humanities:Bibliographic data analysis of humanities journal articles in the Korea citation index, 2004~2019." 박사학위논문, 성균관대학교, 2022 김병준. (2021). 계량서지학 기반 개념사 연구의 가능성. 개념과 소통, 28, 233-246.

2) 천정환, 「신자유주의 대학체제의 평가제도와 글쓰기」. 『역사비평』 92, 2010, 185~209쪽.

3) 정민우, 「지식 장의 구조변동과 대학원생의 계보학, 1980~2012」, 『문화와 사회』 15, 2013, 7~78쪽.

4) 송민선, 「한국학 분야의 지식 구조 분석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논문, 2015.

이재윤, 「문헌동시인용 분석을 통한 한국 문헌정보학의 연구 전선 파악」, 『정보관리학회지』 32(4), 2015, 77~106쪽.

이재윤, 「KCI 인문학과 사회과학 학술지의 다학문성과 학제성 분석 : 일반 및 기타 분야를 중심으로」, 『정보관리학회지』 38(2), 2021, 227~250쪽.

정유경, 「국내 문헌정보학 분야 학술지의 인용 네트워크 분석」, 『한국문헌정보학회지』 54(4), 2020, 221~238쪽.

5) 김혜진, 「텍스트 마이닝을 활용한 한국학 주경로(Main Path) 분석: ’한국’을 키워드로 포함하는 SCOPUS 문헌을 대상으로」, 『정보관리학회지』 37(3), 2020, 301~326쪽.

김혜진, 「문헌동시인용 분석을 통한 한국학 지식구조 파악: 주체 인식과 타자 인식의 차이」,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51(1), 2020, 179~200쪽.

6) 김병준·천정환, 「박사학위 논문(2000∼2019) 데이터 분석을 통해 본 한국 현대문학 연구의 변화와 전망」, 『상허학보』 60, 2020, 443~517쪽.

7) 설동훈·고재훈·유승환·이기재, 「한국조사연구학회 발표 논문 내용분석, 1999∼2019년: 학문분야ㆍ방법론ㆍ연구대상ㆍ데이터분석기법의 지속과 변동」, 『조사연구』 21(1), 2020, 1~32쪽.



김병준(디지털인문학자, 카이스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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