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닿는 전통, 아시아의 음악과 몸짓 / 김보슬

2018년 10월의 저녁, 광주광역시 동명동에 위치한 어느 피자 가게. 그곳에 아시아 각국의 음악과 몸짓들이 모였다.

커다란 유리창에 “Monday Off Please”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곳. 음식점인데, 미술관처럼 월요일 휴관? 기백이 마음에 든다. 여기서 피자를 굽는 주인장은 같은 동네에서 레코드숍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식당에 틀어놓은 음악이며 인테리어 디자인을 통해 그의 음악적 취미가 돋보였다. 업장 한편에 놓은 턴테이블에서는 정기적으로 게스트 디제이들을 선보인다고 했다.

레코드숍은 현재 폐업했고, 식당은 남았다. 초행자들은 쉬이 지나칠 법한 골목 안에 자리하고 있다. ‘힙지로’ ‘망리단길’ 같은 마구잡이 조어에 아연함을 느끼면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의 횡포가 못마땅하면서도, 나는 도시의 속살을 채워나가는 이런 변화들이 과연 무엇인지 유심히 바라볼 의향이 있다. Monday Off Please(이하 먼데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해 전 봄. 우리나라에서 ‘양평이형’이라 불리는 일본 출신 기타리스트인 하세가와 요헤이, 음반 콜렉터로도 알려져 있는 그의 디제이세트(DJ set, 디제이가 주체가 되어 음악을 트는 행사)가 있었던 날이다. 그곳을 찾아갔던 날은 거리에 인파가 많았다. 바로 전날이었던 5·18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과 대절 버스들이 옛 전라남도청사 앞을 즐비하게 메우고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큰길을 건너 카페 거리에 이르자 골목마다 주말을 즐기러 나온 태연한 젊은이들 뿐이었던 광경을 잊지 못한다. 근래에 관용어로 쓰이다시피 하는 ‘온도 차이’라는 말, 그 차이의 급격함에 당황했고, 방금 건너온 길 하나가 절벽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같은 해 가을, 다른 이유로 그곳을 찾았다. 배우이면서 교육자, 영화평론가이면서 음반 콜렉터이고, 편의점을 포함한 다양한 도시 공간에서 파격적 디제잉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진 유이치 키시노가 광주를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아시아무용커뮤니티’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올리는 공연을 앞두고 제작PD인 나도 광주에 머무르던 중이었다. 서울에서 열렸던 2017년 ‘아시안뮤직파티’(박다함 기획)를 계기로 그를 알게 된 나하고는 그간 아시아 음악을 공통분모로 드물게나마 교류를 나누고 있었다. 키시노는 자신의 서울 공연을 알리며, 광주에서도 디제잉을 할 만한 장소나 기회를 연결해 줄 수 있는지 물어왔다.

[사진 1. 유이치 키시노]

대뜸 먼데이를 떠올렸다. 괜찮은 생각일까 싶어 양평이형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고맙게도 주선에 나서 주었다. 그런 뒤 나는 직접 논의를 이어갔다. 먼데이 주인장은 유이치 키시노의 방문을 반겼다. 국경과 종교와 세대를 가로지르는 선곡, 그리고 개성 있는 공연 캐릭터로 살아 숨쉬는 ‘월드뮤직’이 아니던가. 어느 잡지는 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키시노 유이치는 일본, 한국,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곳곳의 음악을 연구하는 동시에 ‘Out One Disc’란 실험적 레이블을 운영하는 디제이 겸 뮤지션이다. 충분히 넓어진 듯하지만, 사실 키시노 유이치는 그 정도로도 좀 설명하기 어려운 남자다. (…) 그의 디제잉이나 공연 영상을 살펴보면 그저 음악을 틀거나 노래를 부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때로 여장을 하거나 우산을 쓰고 객석을 휘젓기도 한다. 물론 음악의 함량만큼은 꼿꼿이 지키는 채로 그렇다.” 수십 년에 걸쳐 각국을 다니며 모은 음반들 중에서도 1900년대 초~중반의 동남아시아 팝 음악들은 (그 자신보다도) 듣는 이들의 자랑이다. 동·서양, 전통·현대, 자국어·유럽어의 영향이 묘하게 교차하는 음악은 독특한 매력과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역시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이러한 미개척 분야의 음악 발굴에 앞장선 사람들 중 한 명으로, 키시노는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분명 존경 받을 만한 입지에 있었다. 일본의 클럽씬에서도 한국의 고전가요를 자주 소개하고, (COVID-19 이전에는) 한국 음악인들을 초대하여 곳곳에서 함께 활발히 투어를 펼쳤다.

[사진 2. <수염의 미망인((ヒゲの未亡人)>으로 분한 유이치 키시노]

[영상 1. 유이치 키시노, Le Mellotron 디제이세트]

[영상 2. <수염의 미망인((ヒゲの未亡人)> 퍼포먼스]

[영상 3. <수염의 미망인((ヒゲの未亡人)> 중 대표곡 “친구로 지내요”]

“그런데 준비 없이 섭외하는 것이라, 공연료 마련이 걱정이네요.”

멋쩍게 사정을 고백하는 주인장의 근심을 예견했던 듯, 이번 광주 방문이 이루어진다면 그런 걱정을 하지 말자고 키시노는 내게 미리 귀띔했었다. 즉흥적인 기획이 상대에게 불편을 끼칠 것이 아무래도 미안했던 것이다. 이러한 의사를 전달하고 먼데이 측을 안심시켰다.

“그런데 디제이에게 아무래도 최고의 예우는 사람들이 많이 보러와 주는 것 아니겠어요? 제가 저희 아시아무용단원들을 전부 데려오지요.”

호기롭게 패를 열었다. 공연료가 없는 대신 나는 관객을 동원하고, 가게에서는 키시노와 무용단원들에게 약간의 먹거리를 제공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것이 받아들여져 협상이 체결됐고, 다행스럽게도 무용수들과 스태프들 또한 초대를 흔쾌히 수락했다. 비즈니스는 이렇게 하는 것인가? 키시노는 공연장을 얻고, 먼데이는 프로그램을 얻고, 무용단원들은 사교의 시간을 얻게 된 것.

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인도, 태국, 라오스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열일곱 명의 무용수들, 그리고 제작진까지 더해 그 숫자를 훨씬 넘는 인원이 광주에 모여 ‘HereThere’(안애순 안무)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2017-18년 두 해에 걸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주최하고 상연한 이 작품은 아시아 16개국의 참여로 아시아무용위원회가 발족한 2011년 이래, ‘아시아무용커뮤니티’라는 명칭 하에 기획되는 사업들 중 하나였다. 아시아무용커뮤니티는 아시아 국가 간 문화예술 교류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아시아의 무용 자원을 공동으로 발굴하려는 목적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HereThere’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 민속에 퍼져 있는 원무(circle dance) 중 하나인 강강술래를 차용하여, 몸에서 몸으로 옮겨가고 반복되며 지금으로 건네진 춤은 하나의 이미지로 수렴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예컨대, 보라색 원반이든, 빨강 파랑의 패턴들로 가득한 원반이든, 빠르게 회전시킬 때에는 모두 보라색으로 보이지 않던가. 그러나 중앙에서부터 가장자리까지 균일한 색으로 채워진 것과 서로 다른 색과 모양들로 이루어진 것이 원천적으로 같을 수는 없다. 원경에서 보는 하나의 모습, 근경에서 보는 입자성·개별성은 서로 다른 가치 안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들다. 그 점이 강강술래를 통해 재구성되었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무용수들이 만나 각자의 상이한 전통과 현대를 몸에서 몸으로 옮기고 건네며, 매일의 리허설을 통해 크고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사진 3. “HereThere” 공연 중, 사진_최영모,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사진 4. “HereThere” 리허설 중, 사진_Fujimoto Takayuki]

[사진 5. 원무(圓舞) 콘셉트를 반영한 “HereThere” 포스터]

그날의 리허설이 끝나가던 무렵, 서울에서 출발한 키시노가 광주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먼데이까지 직접 안내하기로 한 나는 극장을 벗어나, 그의 숙소가 있다는 근처의 거리로 걸음을 옮겼다. 이동할 채비를 마친 그의 어깨와 양손에 의탁한 커다란 LP 가방들. 나누어 들겠다고 하니, 정중하게 사양한다. 그는 조금 서툰 영어로 아마 이런 얘기를 했었던 것 같다. 스스로의 무기를 감당하지 못하면 안 된다고. 극장에서부터 같이 걸어온 나의 동료는 일본어를 곧잘 했다. 해가 짧아 이미 한참 전에 가로등이 밝힌 거리를 걸으며, 우리는 어떤 상점을 가리키며, “~다네”의 어미로 종결되는 일본어 몇 마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소박하고 잔잔한 대화가 좋았는데, 내 일본어가 너무나 짧아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따름이다.

먼데이에 도착한 그를 주인장은 저녁을 대접하겠다며 밖으로 안내했고, 나는 무용단 식구들을 데리러 우리가 합숙하던 건물로 향했다. 그날의 주인공이자 관객인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맛있는 피자와 맥주가 곁들여진 음감회가 시작되었다. 짧게는 30년, 길게는 1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 한국, 대만,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라오스, 캄보디아, 홍콩, 말레이시아에서 차곡차곡 모인 음악들이 쏟아져나오고, 어떤 전통은 너무 멀리 있지 않아서 손에 닿고 만져질 수 있는 것임을 다 같이 느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자리에서 추었던 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인도, 태국, 라오스의 춤이 말한다. 그날 내가 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제국주의와 전쟁, 산업 성장과 경쟁 속에서 소외 받아온 아시아의 음악과 춤. 제구포신(除舊布新)의 독트린이 채 함락하지 못한 변방에서 맥을 이어온 리듬과 몸짓. 오랜 여정을 통해 수집된 아시아의 소리들과, 현대적 몸 안에 퇴적된 전통적 움직임들이 서로 서로를 줄줄이 소환하는, 기이하면서도 통쾌한 광경이었다.

[사진 6. 먼데이에서 디제잉 중인 키시노]

[사진 7. 먼데이에서 디제잉 중인 키시노]

[사진 8. 키시노를 보러 온 아시아무용커뮤니티]

키시노 유이치(岸野雄一)

1963년 도쿄 출생. 게이힌형제사의 주최자. 배우, 음악가, 저술가 등 다방면에 걸친 활동을 포괄하는 명칭으로 스터디스트(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도쿄예술대학 대학원 영상연구과, 미술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해외 아티스트 초청이나 일본 국내 투어 주선, 이벤트 기획 등에 다수 참여하였으며 그 외에 음악비평, 영화비평 집필도 많이 한다. 2016년 직접 제작, 총지휘, 주연을 맡은 음악극 “올바른 수의 개념”이 제19회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엔터테인먼트 부문 대상을 받았다.

[소개글 출처_Helicopter Records]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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