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 오문석

6월 3 업데이트됨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 하나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더 이상 신입생을 받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체육센터를 짓는다는 공지문이 엘리베이터에 걸렸다. 그 전부터 폐교 얘기가 있었고 졸업생의 항의로 다시 살아났던 학교였다. 결국은 이렇게 되었구나 싶었다. 그저 동네의 이정표 하나가 사라지고, 버스정류장 이름 하나 바뀌는 일이겠지. 코로나 19 이후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한 교정이 오늘따라 더욱 휑하다.


생각해보면, 학교 주변으로 문을 닫은 가게들이 여럿이다. 오랜 단골집도 어느 날 갑자기 임대 전화번호만 덜렁 붙여두고 문을 걸어 잠갔다. 유리창 너머로 급하게 쓸어담은 흔적이 먼지를 뒤집어 쓰고 누워 있다. 낯선 전화번호만 쳐다보다 돌아올 뿐 어쩔 도리가 없다. 찬 바람 불면 찾아온다던 만두가게도, 문 앞에서 언제나 뜨거운 김을 뿜어내던 대형 가마솥의 부재가 어색하다. 허공으로 사라진 그 자리가 물리적으로 손에 잡히는 듯하다.


절단된 신체 부위에서 통증이 전달되는 것을 환상통이라 한다지. 동네 여기저기에서 잘려나간 빈 자리마다 알지 못할 통증이 전해진다. 운동장을 가득 채운 아이들의 소음과 지나가는 행인을 낚아채던 그 찜통의 냄새가 사라졌는데도 내 몸이 놓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 소음과 그 냄새를 붙잡고 놔주지를 않는다. 쿨하게 단념할 줄 아는 정신의 승리를 애도(哀悼)라고 했던가.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죽어도 놓지 못하게 하는 몸의 습관이 삶의 진짜 주인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듯하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BC, AC로 부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코로나 19는 사라지는 것들은 다시 되돌아올 수 없다는 것,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말하자면 애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골목이 사라졌다 골목 앞 라디오 수리점
사라지고 방범대원 딱딱이 소리
사라졌다 가로등 옆 육교 사라지고 파출소
뒷길 구멍가게 사라졌다 목화솜 타던
이불집 사라지고 서울 와서 늙은 목포댁 재봉틀 소리
사라졌다 마당 깊은 집 사라지고 가파른 언덕길도
사라졌다
(중략)
사라진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오늘의
뒤켠으로 사라진 것들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런데 왜 옛날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것일까 어느
끈이 그렇게 길까 우린 언제를 위해 지금을
살고 있는지 잠시 백기를 드는 기분으로
사라진 것들을 생각하네 내가 나에게서
사라진다는 것 누구나 구멍 하나쯤 파고 산다는
것일까 사라진 것처럼 큰 구멍은 없을 것이네
- 천양희, 「사라진 것들의 목록」 중에서

그러나 그 전부터 그랬다. 끊임없이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들이 구멍이라는 것을, 아주 커다란 구멍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라진 것들 앞에 서 있노라면, 그 구멍으로 지금의 내가 사라질 수 있을까. 사라진 좁은 골목길에서 코 훔치며 내달릴 수 있을까. 시인이 사라진 것들을 하나씩 호명할 때마다 움찔거리는 정신의 근육들이 있다.


김기찬, 서울 만리동, 1980.

물론 말보다 더 강한 사진들이 있다. 예컨대 사진작가 김기찬의 골목길 풍경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데가 있다. 그의 사진들을 보자면, 사진이라는 것이 사라지는 것들을 붙들어 두고 싶은 인류의 욕망에 대한 기술적 응답임을 실감하게 된다. 사진의 출현 이전까지 이미지의 역사는 바로 그 고정을 향한 욕망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욕망에 대한 기술적 응답이라고 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해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사라지는 것들을 성공적으로 고정시키자마자, 그 이미지도 빠르게 부패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사진 속에서 고정된 대상은 마치 방부 처리된 미이라처럼 죽음의 냄새를 더욱 강하게 풍기게 된다. 왜냐하면 이미지 속의 대상은, 바로 그 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강하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진의 배신에 대해서 수전 손탁은 이렇게 말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또는 사물)의 언젠가는 죽어야 할 운명, 연약하고 변하기 쉬운 성질의 것을 기록하는 것이다. 바로 이 순간순간을 쪼개내어 그것을 정착시킴으로써 모든 사진은 시간의 불가항력적인 소멸의 흐름 속에서 덧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 수전 손탁, 「사진론」 중에서

사진이 고정시킨 것은 이미지만이 아니다. 그 이미지의 대상에 새겨진 시간,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말 뿐인 시간의 덧없음도 같이 고정되는 것이다. 시인이 사라진 대상을 하나씩 호명할 때마다 딸려나오는 것도 바로 그 덧없음이다. 그 줄을 따라서 사라진 것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구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덧없음으로 통하는 구멍이다. 흐르지 않는 시간은 향수를 만들지 못한다. 덧없기 때문에,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물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 사물들과 뒤엉켜 살다가 어느날 그것이 사라진 자리에 나 혼자 서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긴 그 구멍은 그 사물들이 가리고 섰던 덧없음의 구멍이다.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던 구멍이다. 그리고 그 구멍 때문에 나와 거리, 사물들이 밀착해서 뒤얽혀 살게 되는 것이다. 오늘 저 초등학교의 텅빈 교정이 크게 흔들리는 것도 그 까닭이다. 그 초등학교는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문석(조선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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