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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국인 교수, 한국의 미국인 교수 / 유상근

최종 수정일: 7월 4일


필자는 현재 미국 뉴욕주에 위치한 매리스트 대학의 영문과에서 교수로 일하며 미국의 대학생들에게 영미문학, 특히 영미권 SF소설과 대중문화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인인 내가 미국의 대학생들을 가르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우는 한국의 학생들과 달리, 미국의 대학생들은 초중고 시절에 모국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로 된 문학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문학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을까 고민하던 와중에, 전미번역상을 수상한 저명한 한국시 번역자인 계명대 문예창작과의 제이크 르빈 교수가 마침 뉴욕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나는 이 기회를 빌려 올해 1월 그를 학교로 초대해 학생들이 한국시의 아름다움과 번역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들을 기회를 갖도록 했다.


제이크 르빈 교수와는 벌써 십 년이 넘게 친교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아리조나에서 태어나고 자란 르빈 교수는 십 년 전쯤 한국어와 한국시를 공부하기 위해서 서울대 비교문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하였고, 당시 같은 대학의 영문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나는 그와 같은 수업을 듣게 되면서 서로 친해지게 되었다. 당시 르빈 교수는 한국 시인들의 시를 영어로 번역해 출판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아직 한국어가 서툴렀던 그를 위해서 한국시에 담긴 어휘들의 중의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들을 영어로 설명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 이제 나는 미국의 대학에 교수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미국 문학을 가르치는 미국의 한국인이 되었고, 마찬가지로 르빈 교수 역시 그의 시 창작 능력과 번역 능력을 높이 인정받아 대구 계명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첫 외국인 교수로 임용되었다. 한국어 시에 대한 강연자로서 르빈 교수를 미국 대학에 초청했을 때, 나의 미국 대학 동료들은 그 상황을 매우 재미있게 여겼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인 나는 미국 대학의 영문학과에 있었고, 반대로 미국에서 대부분의 인생을 보낸 르빈 교수는 한국 문학에 대해 강의하는 한국의 대표로서 미국에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가져다주는 아이러니는 강연회가 끝나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더욱 크게 다가왔다. 르빈 교수는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대구의 온갖 토속음식과 맛집, 그리고 사투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경상도의 시인들이 그러한 사투리를 시에서 어떻게 창의적으로 활용하는지 알려주었고, 나는 반대로 뉴욕이란 도시에 대해 르빈 교수가 모르는 이야기들을 한참 떠들었다. 이제는 나보다 훨씬 더 한국 사회와 국문학에 대해 잘 알게 된 르빈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내가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반대로 르빈 교수야말로 이제는 나보다 더 한국인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특히 나는 성인이 된 후 삶의 절반 가까이를 미국에서 보냈기에, 르빈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내가 아직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해도 괜찮을지, 이제 나는 미국인이 되었거나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한국인과 미국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하는 중간자적 존재가 된 것은 아닌지 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한국SF에 대해 강의 중인 유상근 교수 (출처: https://www.facebook.com/dryooofficial)

이 일화는 물론 내가 개인적으로 겪은 것이지만, 오늘날과 같이 국경을 넘어 활발한 문화적, 인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에 과연 한국인이란 무엇이며 한국학은 누가 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지점들을 던져준다. 최근에는 특히 미국에서도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수가 많이 증가했다. MLA가 작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미국 대학 내 대부분의 외국어 수강생 수가 급감했으며, 특히 기존에 강세를 보이던 독일어, 프랑스어, 아랍어 등의 수강생 수는 20~30%가 감소했다. 그러나 반대로 한국어의 경우 5년간 무려 학생 수가 38%나 증가했다. 이들 중 몇몇은 K팝이나 한국 드라마에 대한 막연한 관심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해, 나중에는 한국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전문 연구자나 번역자가 되기도 한다. 르빈 교수처럼 한국의 역사와 언어, 문화에 대해 한국인보다도 더 잘 아는 외국인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어와 한국학에 대한 관심은 비단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며, 동남아시아나 남미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로 열기가 뜨겁다. 이들 중 많은 수가 자국에서 한국어 수업을 들은 뒤,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거나 혹은 한국의 대학원에 지원한다. 이와 같이 한국 내 외국인 유학생 수의 빠른 증가와 한국인 학령인구 수의 급격한 감소가 서로 맞물리게 되면서, 한국의 대학들은 빠른 속도로 한국인 대학생들을 외국인 유학생들로 대체하고 있다. 지방의 대학들에서는 한국인보다 외국인 유학생 수가 더 많은 것이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고, 심지어 외국인 유학생 수가 99%에 달하는 대학도 등장했다. 대학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23년 기준 전체 국내 대학원생 중 외국인 유학생 비율은 무려 19.6%에 육박하며, 이는 한국 학계의 미래를 끌고 갈 미래 연구자의 5명 중 1명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가 한국 대학에서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가령 이들 대학들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가지는 문화적, 종교적 특수성을 섬세하게 배려하거나 지원해주지 않은 채, 이들을 잠시 머물고 돌아갈 “뜨내기손님” 혹은 등록금 벌어주는 “돈벌이”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내 대학원 과정의 비싼 등록금, 순수학문에 대한 지원 부재, 졸업 후 유망직장 취직의 어려움, 학계 내의 외국인 차별 등 다양한 문제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 외국인 유학생들은 한국이 좋아 한국에서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 후 한국 사회에 편입되어 보탬이 되기보다는, 상당수가 고국에 돌아가거나 혹은 제 삼의 다른 나라에 취직을 한다. 가령 2021년 자료를 보면 한국 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총 15만 명이며 이들 중 무려 80%인 12만 명이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몽골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국의 대학에는 수많은 중국, 베트남, 몽골 학생들이 학업을 하고 있지만, 왜 한국의 학술대회를 가보면 연구자나 교수들 중에 이들을 찾아볼 수 없을까? 왜 이들은 소위 말하는 인기 대기업,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민)나 삼성, LG, 하이닉스에서 전혀 볼 수 없을까? 실제로 법무부가 발표한 ‘2023년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를 보면 외국인 유학생들 중 “한국 학위가 취직에 도움이 돼서” 한국 유학을 선택했다고 답한 비율은 단 10퍼센트밖에 되지 않으며, 한국에 취직한 외국인 근로자 중 94퍼센트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고, 이들 중 절반 이상이 200만 원대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와 같이 외국인 유학생을 어떻게 한국 사회의 주류로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장기적 계획 없이 당장 빈 정원만 외국인 유학생들로 채우고 보자라는 근시안적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의 대학을 곧 외면할지 모른다. 당장 지금은 K팝의 인기로 이들의 수가 유지될지는 모르지만, 이들이 한국에서 교육을 받더라도 한국의 학계나 산업계에 정착할 수 없다면 이들은 앞으로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대신 더 정착과 취직이 용이한 미국이나 캐나다 혹은 제 삼국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바로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거 받아들여 가까스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한국의 대학과 학계의 붕괴가 우려되는 이유이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뒤, 한국에 남지 않고 외국을 선택하는 것은 비단 외국인 유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인 학생들조차 한국의 대학, 대학원, 학계를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예를 보면, 미국의 대학은 한국보다 더 먼저 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을 받아들였지만, 미국의 대학을 채우고 있는 유학생들 중 인구수 대비 가장 많은 외국인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의 학생들이다. 절대적 숫자만 본다면 중국과 인도에서 온 유학생들의 수가 각각 28만 명 26만 명으로 1, 2위를 다투고 있지만, 그 뒤를 4만 3천 명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뒤따르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인구수가 각각 14억 명으로 한국보다 서른 배가량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은 인구수 대비 무려 4배가 많은 수의 학생들이 미국으로의 유학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내 유학생 수로 4위, 5위를 차지하는 베트남이나 일본과 비교하더라도 한국은 이들 국가에 비해 인구수가 절반 밖에 되지 않지만 두 배나 많은 학생들이 미국을 선택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4배나 많은 한국의 학생들이 미국행을 선택한다는 것에 대해서, 단지 “세계화”나 “국제화”라는 이름으로 허울 좋게 포장해, “외국에서 활약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이라는 “국뽕”의 방식으로만 접근해서는 매우 곤란하다. 물론 세계 유수의 대학이나 실리콘밸리 등 세계적 기업들에서 한국인들이 두드러진 활약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고무적인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국뽕”의 이면에는, 한국에서 고생해 학위를 받아 봤자 양질의 직장에 취직하기는 어렵고, 운 좋게 취직에 성공해 평생을 일하더라도 집 한 채 살 수 없다는 “탈조선”의 논리가 숨어 있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밈을 유행시키며, 오늘도 “탈조선”의 꿈을 꾼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미국에서 지난 8년간 유학생활을 하고 이후 교수로 일을 하며 느낀 미국이란 사회가 외국인 유학생 혹은 외국인 학자들에 대해 어떻게 대하는지 살펴본다면, 적어도 몇 가지는 한국 사회가 새겨 볼 만한 지점이 있을 듯하다. 미국의 대학이나 학계를 덮어두고 사대주의적으로 칭송할 생각은 없다. 미국의 고등교육 현장 역시 아직 심각한 인종차별과 성차별, 외국인에 대한 차별의 문제가 존재하고, 매년 유리천장(여성 차별), 대나무천장(동양인 차별)을 깨는 용감한 혁신가의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요원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미국 대학에서 활동하며 보고 느낀 몇 가지 요소들을 언급하고 싶다.

     

먼저 첫 번째로, 미국 학계의 순수학문연구에 대한 지원을 언급하고 싶다. “문송”(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말이 유행어가 된 한국의 학계에서 전통적인 문과 전공들은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졸업 후 취직률과 기대 수익이 높은 컴퓨터 공학이나 법학, 의학 등의 인기가 높은 것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인 것이 사실이기에, 미국의 대학들 역시 철학, 역사학, 문학, 미학 등 전통적 인문학 대학원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수가 매년 줄어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역대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 세계적 “인문학의 위기” 시대에도 아직은 미국의 학계가 인문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대학원생들에게 훨씬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다.


실제 내가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는 매년 수백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비롯해서 따로 생활비까지 마련해야만 했다. 당시 최저시급이 지금의 절반가량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달 이백만 원 정도의 금액을 벌기 위해서는 파트타임 알바가 아닌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 다녀야했는데, 따라가기 벅찬 대학원 연구를 하면서 직장에 풀타임으로 근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나 역시도 과외나 강연 등의 알바를 통해 생활비를 일부 마련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이 없었더라면 아마 석사 학위를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똑똑하고 유능한 학생들이 집안의 경제적 지원이 없다고 해서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우리 사회 전체에 엄청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미국에 유학을 갔을 때 오히려 경제적 부담이 더 적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미국대학의 대학원 프로그램의 경우 MBA(전문경영석사)나 MED(전문교육석사)등 전문대학원 과정은 천문학적 액수의 등록금을 요구하지만 (특히 외국인에게는 내국인보다 더 큰 등록금을 요구한다), MA나 PhD를 수여하는 정규 석, 박사 과정의 경우 대부분 합격만 할 수 있다면 전액장학금을 지원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더불어 상당수의 인문 사회계 석박사 과정은 대학원생들이 교수들의 수업조교, 연구조교를 맡게 하거나, 혹은 신입생 대상 강의를 맡게 하고, 이를 통해 매달 생활비를 지급한다.


대학마다 조교 월급이나 생활비 지원 금액에 대한 차이는 있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시기 이후 미국 연방정부의 제로금리정책으로 인해 집값과 물가가 오르게 되자, 캘리포니아 대학의 석, 박사들은 기존의 월급으로 생활이 어렵다며 수업과 강의, 조교업무 등을 전면 거부한 채 6주간의 파업에 돌입했다. 사실상 캘리포니아 대학이 두 달간 마비되었고, 그 결과 $23,250에 불과하던 대학원생들의 최저월급을 무려 $34,000로 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물가가 특히 더 많이 오른 UCLA, UC버클리, UC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이보다 더 높은 $36,500으로 50%가량 올라가게 되었다. 비록 UC계열 캘리포니아대에 국한된 예시이기는 하지만, 이들 미국의 대학원생들은 등록금을 내지 않으면서도 학교의 수업조교 등의 업무를 통해 매월 3000불정도, 즉 한화로 4백만 원가량의 월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 대학들이 대학원생들에게 높은 등록금을 부과하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미국에 비해 턱없이 낮고, 사실상 정부 차원에서 등록금 통제를 받고 있다 보니, 부족한 재정을 대학원 과정을 통해 메우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로 인해 대학원 과정은 연구에 열정 있는 유능한 인재들의 학술현장이 아닌, 돈 많은 집 자제들만 올 수 있는 공간으로 변질된 것이다. “자본주의 끝판왕”으로 알려진 미국에서조차 대학원생들의 대대적 파업이 주민들의 지지와 공감을 얻고, 결국 50%의 임금 상승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왜 한국에서는 대학원생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파업에 돌입한다는 것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울까? 나는 이런 차이가 대학원생에 대한 사회적 인식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학계가 대학원생을 학계를 이끌어가는 엔진이자 곧 동료교수가 될 대등한 연구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데 반해서, 한국의 학계는 대학원생을 교수보다 열등한 학생, 혹은 사회의 잉여 자원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나 한국사회에서 순수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으로 살다 보면 “쓸데없는 거 공부한다고 집안 재산 다 털어먹는다”거나 “여자가 쓸데없이 가방끈만 길면 시집 못 간다”든가 “어디 조교가 감히 교수에게”와 같이, 대학원생을 교수와 차별되는 열등한 사회적 잉여 자원으로 비하하는 표현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21세기를 맞이하여 세계의 질서는 총칼로 하는 전쟁이 아닌 문화와 경제 전쟁으로 결정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학계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혈하고, 학부생들을 지도하며, 미래의 학계를 이끌어갈 대학원생들이 없다면, 누가 국가의 문화 자산을 발전시키고, 사회 문제를 미연에 경고하며, 미래의 가치관과 방향성을 설정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주변 강대국들이 자국 중심의 역사 새로 쓰기나 영토분쟁 문제를 들고나올 때, 이를 학문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역사학자나 고고미술학자들이 한국에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면, 도대체 나라를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가? 지금과 같이 넷플릭스 영화 한 편이나 K팝 노래 한 곡을 팔아 벌어들이는 수익이, 자동차나 냉장고를 팔아서 벌어들이는 수익만큼 커진 시대에, 글을 읽고, 영화를 분석하며,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가르칠 대학원생들이 없다면 어떻게 문화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들이 부족한 운영자금을 대학원생들로부터 충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대대적 순수학문 지원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학원생에 대한 국가적 지원에 대한 요구를 “복지병 걸린 철없는 대학원생들의 공산주의 논리”정도로 무시한 채, 단지 수요-공급의 자유시장경제 논리에만 맡겨두어서는 대단히 곤란하다. 앞서 말했듯 한국보다 먼저 자본주의를 시작한 북미와 유럽 국가에서조차 대학원생들의 연구 환경을 단순히 수요-공급으로 결정되는 자유시장경제 논리로만 미뤄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능하고 실력 있는 학생들이 돈 걱정하지 않고도 대학원에 진학해,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도 세계적 학자가 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 줘야 한다.

     

두 번째로는 뛰어난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 번 한국에 왔다면, 이후에도 한국에 남아 한국 학계의 연구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을 비롯해 외국인 연구자에 대한 학계의 차별적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미국 내 대학원과정의 경우 컴퓨터공학, 전기공학, 경제학, 통계학 등 소위 말하는 인기학과의 70-80퍼센트가 외국인 유학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이 졸업 후 미국 학계에 남거나 실리콘밸리 등 미국 기업에 취직한다. 이와 같이 미국 사회가 유능한 대학원생들을 미국 사회에 흡수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앞서 말했듯 대학원 전액장학금과 생활비 지원이 미국인과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고 동일하게 지원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외국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등록금 한 푼 내지 않고, 오히려 학교로부터 일정 금액의 생활비 지원을 받으며 5년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마칠 수 있었다. 미국은 이렇게 졸업한 학생들을 이후 OPT제도나 취업비자 제도, 더 나아가 영주권 부여 등을 통해 미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도록 지원한다.


물론 이들 외국인 유학생들이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집처럼 편하게 느낄 수 없다면 이러한 경제적, 법률적 지원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학들은 유능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경제적, 법적 지원을 떠나 문화적, 사회적 지원 역시 적극적으로 제공한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의 학계가 여전히 심각한 인종차별, 성차별, 외국인차별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지만, 이러한 차별이 과연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심각한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박찬욱 감독이 드라마로 연출한 <동조자>의 원작 소설을 쓴 비엣 응우엔 교수는 베트남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온 이민자이다. 그는 UC버클리를 졸업한 뒤 현재 미국 최고의 명문대인 USC(남가주대)의 교수로 일하며 퓰리처상, 맥아더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가 미국 대신 한국으로 이민을 왔다면 어땠을까? 베트남에서 태어난 베트남 학생이 서울대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한들 과연 한국 대학의 국문과에 교수로 취직할 수 있을까? 다른 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호주나 프랑스, 독일, 일본 등 국가의 학계에서 흑인이나 다른 소수 인종의 비율은 인구 전체의 비율과 비교해 보았을 때 현저히 떨어진다. 앞서 말했듯, 한국인인 내가 미국에서 미국문학을 가르치는 연구자,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이 미국의 학계가 외국출신 연구자에 대해 보다 더 개방적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상근 교수의 수업 풍경 (출처: https://www.facebook.com/dryooofficial)

외국인 연구자를 학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이를 단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려는 시혜적 차원의 복지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자본주의 끝판왕” 미국은 외국인 학자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미국 사회에 취직시키고, 그들의 연구가 외국이 아닌 미국에서 진행되도록 하는 게 실용적으로 가치 있는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외국인을 배려하는 것이 “돈 드는” 일이 아니라 “돈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에 투자하는 게 소수인종의 작품과 주제의식을 널리 확산하려는 인도적 복지 차원의 결정은 결코 아닐 것이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에 투자한 뒤, 그 지적재산권을 사고, 이후 패러디 컨텐츠와 각종 2차 저작물을 판매해 결국 투자한 금액의 몇 배에 달하는 (LA타임즈 추산 최소 9천억 원) 수익을 거둬들였다.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온 많은 유학생들 역시 이후 실리콘밸리에 취직해 미국의 기업들을 세계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사회적 지원책의 일환으로 상당수의 미국 대학들에서는 DEI(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부서라고 불리는 소위 말해 “다양성, 평등, 포용”의 문제를 다루는 부서나 혹은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 DEI부서는 주로 학내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조직 구성원의 인식개선교육, 인종차별 가해자에 대한 조사 및 처벌, 타 국가 및 소수인종의 문화행사 운영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내가 속한 매리스트대학의 경우 DEI부서의 장을 부총장(Vice President)급으로 격상시키고, 학내에서 총장 다음으로 큰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의 많은 대학이 마찬가지인데, 내가 속한 대학 역시 전 교직원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차별에 대한 인식개선 강의를 필수적으로 수강하도록 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각 대학에 DEI부서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지금처럼 외국인 유학생의 수가 많고, 앞으로 훨씬 더 증가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에 유학 온 학생들이 문화적 사회적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흑인 학생들이나 동남아국가 출신 학생들이 교실 안팎으로 알게 모르게 겪고 있는 인종차별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만약 인종 차별적 발언이나 불이익을 겪었다면 어디에 신고를 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학내 구성원 중 누군가가 인종차별적, 성차별적적, 성소수자 차별적 발언을 한 것이 확인된다면, 그것이 교수나 총장이라고 할지라도 강력하게 처벌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 유학을 온 무슬림 학생들이 하루 다섯 번 인간적인 조건에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베트남,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 각각 언어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겪는 불편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성소수자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닌지 등 다양한 소수자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물론 학내 개개인의 모든 취향과 불편함을 전부 고려하는 극단적 방식의 비효율적인 다양성 지원을 하자는 말은 아니다. 각 대학마다 고유한 사정들이 있을 것이고, 한국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으로는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화적 차이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외국인 학생들의 요구가 정의, 평등, 자유 등 인간 보편의 가치관과 배치되지 않고 그러한 배려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수가 일정 정도 된다면 대학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배려하려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영화 <울지마 톤즈>로 유명해진 고 이태석 신부가 키운 남수단 출신 제자 토머스 타반아콧과 존 마옌루벤이 인제대학교 의대로 유학 온 뒤 성공적으로 졸업하고 백병원에서 전임의 과정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들 역시 고국을 위한 봉사정신에 뜻이 있어 언젠가는 남수단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는 밝혔지만, 서구 강대국 출신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 이들이 한국의 병원에서 전임의로 근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더 많아져야 한다. 한국에 외국인 유학생 수가 늘어나고 또 외국인 이민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한국 문화에 맞춰서 살든가, 한국이 싫으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차별적 시각으로 이들을 상대해서는 곤란하다. 점점 많아지는 이민자들의 요구를 “세금 거덜 내는 복지병 걸린 외국인들”로 보는 대신에, 미래 한국 사회에 돈을 벌어다 줄 중요한 사회경제적 자원이자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네팔 출신 유학생이 한국에서 국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 소재 대학의 국문과 교수가 되거나, 중국 출신 유학생이 한국의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한 뒤 이후 교수로 채용되어 중국어로 강의하는 교수가 된다거나 하는 일들이 가능한 학계가 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미국문학 가르치는 한국인이 늘어나는 것처럼, 한국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외국인들을 우리가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학계의 자산이자 자양분으로 끌어안고 키울 수 있는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학술 연구의 토양은 자동차 공장 만들 듯이 단기간에 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처럼, 학술연구 분야는 오늘날의 대학원생들이 성장해 십 년 뒤 부교수가 될 때쯤에야 가시적 성과가 나오는 초장기 투자와 인내가 필요한 분야이다. 만약 어떤 학술단체나 연구 분야가 연구예산부족 혹은 대학원생 입학 미달로 붕괴한다면, 나중에 사후약방문격으로 급하게 필요하다고 해서 이를 되살리려 해도 그 때는 이미 늦었다. 붕괴된 학계를 살리는 데는 다시 십 년 이상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원 귀한 줄 알아야 한다.



유상근 (뉴욕 매리스트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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