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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의 물질성을 찾아서 ③: 일본에서의 우리 고문헌 조사 / 노경희

일본 유학 기간 중 운명처럼 한국의 고서와 조우할 기회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일본인 학자로 평생을 한국의 고서 연구에 매진한 후지모토 유키오(藤本幸夫) 선생님과의 인연이 그렇고, 일본 내에서도 서지학 연구로 특화된 게이오대학 사도문고(斯道文庫) 선생님들의 소개로 게이오대의 한국 고서를 조사하거나, 교토의 사찰 건인사(建仁寺) 양족원(兩足院)의 고서를 조사하는 작업에 참관할 수 있던 일이 그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산학술문화재단의 ‘다산 저술 정본화 사업’에 참여하여 일본 전 지역에 산재한 다산 저술의 필사본 자료를 조사하기도 하였다.


일본에는 5만 권에 이르는 우리 고서가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후지모토 선생님은 평생에 걸쳐 전국의 소장처들을 하나씩 돌아다니며 그 모든 자료들을 일일이 조사하여 <일본현존조선본연구-집부/사부>라는 불세출의 업적을 내었다.(현재 자부ㆍ경부ㆍ보유ㆍ도록편의 출판을 준비 중이다.) 이 역작으로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여러 차례 학술상과 훈장을 받으시고, 최근에는 일본에서 가장 영예로운 학술상이라는 천왕이 내리는 은사상(恩賜賞)을 받고 또한 일본학사원의 회원이 되었다. 한국 서지학 연구에 평생을 바친 후지모토 선생님의 생애와 학문에 대해서는 최근 일본의 유서 깊은 ‘동방학회’에서 <학문의 추억>이라는 기획으로 열린 동료들과의 좌담회에서 정리된 바 있고, 그 기록은 <동방학보>(145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진단학회의 <진단학보>에도 한국어로 번역되었다.(노경희 번역, <학문의 추억-후지모토 유키오 선생을 둘러싸고 (1)/(2), 진단학보 140/141호, 2023.)


후지모토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일본에 우리나라 고서가 생각지도 못한 장소까지 소장되어 있고, 일찍부터 선학들의 노력으로 기본 목록이 작성되며 꾸준히 정리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학술 기관 및 연구자들의 조사 작업을 통해 작성된 목록 등이 전하며, 귀중 자료의 경우 복사물과 마이크로필름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들어와 열람이 가능하다. 후지모토 선생님의 작업뿐만이 아니라 심우준 선생님의 <일본방서지>(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8)나 ‘한국해외전적조사연구회’(1991~2002)와 ‘국립문화재연구소’(2003~2014)에서 천혜봉ㆍ이정섭ㆍ박상국 선생님들의 주도로 작성된 <해외전적문화재 조사목록> 등도 주요한 성과들이다. 이 작업들은 2014년부터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주관하고 있다.

     


게이오대와 교토 건인사 양족원의 우리 고문헌 조사

     

게이오 대학 도서관의 ‘와타나베 도우수이(渡邊刀水) 문고’에는 적지 않은 분량의 한국 고전적이 소장되어 있다. 이 책들에 대한 정보는 심우준 선생님의 <일본방서지>에 소개된 내용을 통해 개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나는 교환학생 기간 동안 1년에 걸쳐 그 책들을 하나씩 다 꺼내어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때는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랐는데, 한참 뒤 일본 전역의 도서관을 다니며 조사하는 경험을 쌓으면서, 당시 게이오 대학에서 제공한 배려와 혜택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기본적으로 일본의 도서관에서 고서를 열람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내가 그렇게 서고를 마음껏 출입하며 보고 싶은 책을(그것도 귀중본을!) ‘맘대로’ 꺼내보고 사진 촬영까지 할 수 있던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되었다. 지금은 게이오대에서도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때 더 열심히 책을 보는 것이었는데, 늘 그렇듯이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후회와 아쉬움이 따른다.   



[사진 1] 게이오대 도서관의 와타나베 도우수이 문고

      

교토대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에도 게이오대 사도문고 선생님들과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사도문고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 이미 10년 이상을 교토의 오래된 사찰인 건인사(建仁寺) 양족원(兩足院)의 고서를 조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조사원들이 교토에 머물면서 양족원의 자료를 하나씩 꺼내 보며 검토하고 상세 목록을 작성하였다. 나는 유학 기간 동안 사도문고 선생님들의 배려로 매번 그 작업을 옆에서 견학할 수 있었다.


양족원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수집된 한중일의 고전적이 다량 소장되어 있었다. 그곳의 승려들이 대대로 조선통신사의 통역관이었던 사연으로 조선의 고서 또한 적지 않았다. 양족원 자료를 통해 일본 내 한국 고서의 전승이 다양한 경로로 이루어졌음을 알았다. 선생님들은 일부러 내가 관심을 가질 만한 조선본 자료들을 열람 목록에 추가하여 책을 꺼내 주기도 하였다.


지금도 당시 건인사 한쪽의 외부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문으로 들어가 양족원의 다다미방에 앉아, 오랜 세월 서고에 잠자고 있던 책들을 꺼내 하나씩 살피던 그 공간의 기억이 선명하다. 한참 책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는 돌아가신 주지스님께서 교토의 오래된 과자집의 간식과 말차를 준비해 들어 오셔서는 잠시 쉬었다 하라고 권하곤 하셨다.


먼지 한 톨 없이 정갈한 나무 건물, 아침마다 빗자루로 쓸며 매일 새로운 문양을 만드는 자갈 정원, 외부의 소음과 차단된 적막한 방, 그 안에서 들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 어쩌면 나는 책의 내용보다 그러한 것들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2/3] 건인사 양족원의 출입문과 정원

     


일본 소재 다산 정약용 필사본 조사

     

내가 일본에서 우리나라 고문헌을 본격적으로 살피게 된 것은 다산 정약용의 저술을 조사한 일 또한 중요한 계기였다. 2004년 교토대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다산학술문화재단(이하 ‘다산재단’)으로부터 일본에 소장된 정약용의 필사본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당시 다산재단에서는 정약용 저술의 정본화(定本化) 사업을 진행하면서 국내와 해외에 산재한 다산의 책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일본에 소장된 다산의 저작으로는 오사카 부립도서관의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밖에 몰랐고, 일본 내에 다산의 저작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조사가 진행되면서 일본에 엄청난 수량의 우리나라 고서가 전국적으로 산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마침내 정약용 저편서만 54종을 찾아내었다.(지금도 계속 발굴되는 중이다.) 이후 미국의 버클리대와 하버드대에서 연구할 기회를 얻게 되면서, 미국에 소장된 정약용 저술을 조사하기도 했다.(노경희, 「일본소재 정약용 필사본의 소장현황과 서지적 특징」(<다산학> 9, 2006) / 「미국소재 정약용 필사본의 소장현황과 서지적 특징」(<다산학> 15, 2009))


이 작업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기존의 목록들을 참고하여 일본에 소장된 정약용 저작의 1차 목록을 작성하고 그 실물을 확인하여 목록에 나오지 않은 서지 사항을 정리하였다. 기존의 목록에는 서명과 저자 등의 사항만 간단히 정리되어 있을 뿐이었으나 자료를 직접 확인하면서, 크기ㆍ표지ㆍ장정ㆍ종이질 거기에 전체적인 느낌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기존의 잘못을 교정하고, 도서카드 검색과 사서의 도움으로 새로운 자료들을 발견하는 성과도 얻었다. 그리고 이어 다산재단 연구팀과 함께한 2차 조사가 이루어졌다. 두 차례에 걸쳐 도쿄와 간사이(오사카ㆍ교토) 지방의 주요 도서관을 돌면서 이루어졌는데, 국내의 서지 전문가가 동행하여 더욱 정밀하게 진행되었다.


이상의 작업을 거쳐 최종 목록이 작성되었고 중요 자료의 복사를 신청했다. 필사본의 경우 각각의 자료가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전체 자료를 모두 일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에 소장된 자료에는 국내에 전하지 않는 유일본이나 선본(善本)들이 많기에 이를 국내 학계에 소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일본 도서관의 경우 복사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전권 복사가 허용되지 않는 곳이 많으며, 무엇보다 그 비용이 매우 비싸 복사 작업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전권 복사’를 신청한 자료들 중 일부는 도서관의 전권 복사 금지 조항으로 인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최근 한일 양국의 소장 기관들에서 고문헌 디지털화 사업을 통해 중요 자료의 이미지 파일들을 공개하면서 연구자들에게 큰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해외 소장 한국 고문헌 자료들에 대한 정보는 ‘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 자료센터(http://kostma.korea.ac.kr/)’를 참고할 수 있다.


작업 과정에서 뜻밖의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 다산의 아들 정학연(丁學淵)의 시집인 <삼창관집(三倉館集)>(1책)을 궁내청 서릉부 도서관에서 발견한 것이다. 국내에는 정학연 및 정학유의 시문집이 제대로 전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이 자료의 발견은 더욱 각별했다. 이 책은 <다산학> 6ㆍ7호(2005)에 두 차례에 걸쳐 영인본과 해제를 실어 학계에 소개되었고(‘삼창관집’의 해제와 영인, <다산학> 6ㆍ7호, 2005), <다산학단 문헌집성>(대동문화연구원, 2008)에도 수록되었다.     


[사진 4] 정학연의 <삼창관집> 본문

[사진 5] <삼창관집>이 소장된 일본 궁내청 서릉부

     

다산은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였던 만큼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최소한 1~2종이라도 소장하고 있었기에 작업 과정에서 일본의 한국 고전적 소장 기관을 대부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귀국 이후 <문헌과해석>이라는 학회지에 <일본서고기행>이라는, 일본의 한국 고서 소장 기관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였다. 교토대 가와이(河合)문고(49호, 2010), 오사카부립 도서관 한본(韓本)문고(50호, 2010), 게이오대 와타나베문고(62호, 2013), 세이카도(靜嘉堂)문고(68호, 2014) 등 4곳의 자료들을 소개하였고, 최근에는 러시아와 미국 소장 기관과 함께 도쿄의 한국 고서를 정리하였다.(86호, 2020)


일본에서의 경험은 귀국 이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해외 소장 한국고전적 조사 작업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제까지 세이카도문고와 와세다대학 소장 한국 고전적 자료의 목록과 해제집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2023년부터는 사노시(佐野市) 향토박물관에 소장된 스나가 하지메(須永元)의 조선 관계 문헌 자료를 조사하는 작업에 참여하는 중이다.(<일본 세이카도문고 소장 한국전적>(2018) / <일본 와세다대학 도서관 소장 한국전적>(2020))


돌이켜 보면 일본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실물 자료를 확인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것들을 조사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익힌 것이다. 또한 일본에 소장된 우리나라 고문헌과 그 소장 기관에 대한 정보들을 축적한 것도 중요한 학적 자산이다. 이 모두는 책을 통해 머리로 이해한 것들이 아니라 직접 뛰어다니며 얻은 깨달음들로, 어쩌면 현재 내가 지닌 능력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학자들에게 중요한 자산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인데 ‘내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는 일 또한 그중 하나이다. 지식과 통찰은 아직 부족하지만 체력과 열정만은 넘쳐나는 젊은 시절이라면 이런 식으로 몸으로 부딪쳐가며 하나하나 배워가는 경험을 쌓는 것은 분명 미래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러하였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리석은 자가 산을 옮긴다.’

     

적어도 인문학에서 만큼은 이 말이 가장 큰 배움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노경희(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 동아시아 문헌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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