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한국학 연구의 최전선>의 원고 의뢰를 받고는 무엇을 써야 하나 한참 고민했다.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한국학과 관련된 나의 연구 분야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글’을 써 줄 것을 부탁 받았는데, 순간 한국학과 관련한 내 연구 분야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머리에 떠올랐다.
최근 들어 나의 연구는 내 주전공이라 생각했던 ‘16~18세기 동아시아 문학과 출판문화’에서 공간은 한국과 중국, 일본을 넘어 이제는 서양으로까지 뻗어 가고, 시간은 위로 당나라 필사본과 송대 목판 인쇄술, 고려시대 불경 판목에서 아래로 20세기 초 근대의 연활자 기술까지 내려오고 있다. 주제 또한 불교와 유교, 기독교의 출판과 동아시아 한자 문화, 훈민정음과 가나(仮名)의 한문 언해 작업, 서양 인쇄 기술과 동양 문자 출판의 융합 등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끝도 없이 확장되는 중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결국 내 연구는 ‘문헌을 매개로 하여 넓고도 유구한 시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사유와 감정을 연구한다’라고 한 줄로 요약될 것이다.
문헌이란, 물질이란 무엇인가
문헌(文獻)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서는 ① 옛날의 제도나 문물을 알기 위한 증거 자료나 기록 또는 ② 연구의 자료가 되는 서적이나 문서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니까 대략 ‘옛 시대를 연구하기 위한 증거물’ 정도로 정리되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다루는 것은 ‘문자와 그림’ 즉 ‘도서(圖書)’로 기록된 자료이다.
문헌에는 크게 두 가지 요소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문헌이 담고 있는 ‘내용’이며, 다른 하나는 그 내용이 쓰인 ‘수단’이다. 이때의 수단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내용을 쓰는 방법 즉 그림과 문자이며 다른 하나는 내용을 담은 그릇 곧 재료이다. 이때의 재료들은 파피루스ㆍ돌ㆍ청동기ㆍ점토ㆍ죽간ㆍ비단ㆍ양피지 등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역시 기록을 남기는 가장 대표적인 재료는 ‘종이’다.
나의 연구는 문헌의 내용과 문자 그리고 재료에 이르기까지 그 안과 밖의 모든 요소에 주목하여 텍스트의 이해를 넘어 문헌을 탄생시킨 당시 사회를 발견하고 복원하는 작업이다. 문헌을 만들고 향유하는 작자와 독자만이 아닌 물질을 통해 그 문헌을 탄생시킨 세상을 재현하고자 하였다. 문자로 말하지 못하는 종이의 촉감과 붓의 흔적, 먹의 빛깔에서 당시 사회의 풍경을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재료(물질)’라는 속성을 더해 문헌 뒤에 펼쳐진 세상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연구 영역을 확장했다.
그러나 내가 속했던 국어국문학과에서는 그러한 공부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방법을 뚜렷이 알 수 없었다. 문헌의 ‘내용’과 ‘언어(문자)’를 통해 작자와 독자들의 사유와 감정을 읽어내는데 관심을 두던 나의 연구 집단에서 문헌의 재료에 집중한 연구는 쉽게 접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내가 어떠한 계기로 문헌의 물질적 속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떻게 그 물질을 연구하는 방법을 배워나갔는지에 대한 나의 짧지 않은 연구 여정에 대한 중간보고서이다.
형태서지학은 자료를 찾아다니는 여행이다
문헌의 외적 형태와 물질적 재료를 다루는 것은 문헌정보학 안에서도 서지학(書誌學, Bibliography) 그중에서도 ‘형태서지학’으로 특화된 연구 분야이다. ‘서지학’은 곧 ‘문자를 수단으로 표현한 본문과 그 본문이 나타내는 지적 소산의 내용 그리고 그것을 담고 있는 물리적 형태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천혜봉, 한국 서지학, 민음사, 1997, 13~72쪽) 이는 좀 더 세분하여 1) 원문의 교감을 중시한 ‘원문서지학’과 2) 지적 소산의 내용을 중시한 ‘체계서지학’ 3) 책의 형태 기술을 중시한 ‘형태서지학’으로 분류된다.
그중 형태서지학은 ‘책의 물리적 형태의 특징과 변천 과정을 실증적 방법으로 연구하여 책의 필사와 간행 시기를 고증하고 그 우열을 식별하며 책에 관한 문제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책의 명칭, 장정과 책의 종류 및 변천, 필사본에 있어서의 원고본ㆍ전사본ㆍ사경(寫經)의 종류, 간인본에 있어서의 목판본ㆍ활자본 등의 종류, 목판본의 조판인쇄ㆍ기원ㆍ발달 및 판각술의 시대적 특징, 각수, 활자본의 활자 종류와 특징, 책의 판식, 서체(書體), 장서인, 서적의 반사(頒賜) 및 전래, 종이와 먹의 종류, 먹색의 특징, 책의 수집법, 표장법(表裝法), 보존관리법 등을 다루는 분야이다.
형태서지학의 범위 중 어떤 부분은 실물을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관련 기록들을 통해 증명할 수도 있고, 고해상도 이미지 파일만으로도 확인된다. 그러나 문헌에 대한 기본 정보가 충분치 않거나, 오래된 자료 또는 유일본일 경우 오로지 남아 있는 책의 외적 형태만으로 판별해야 하기에 실물 확인이 필수적이다.
2020년 10월에 일본의 게이오(慶應) 대학의 동양학연구소 사도문고(斯道文庫)에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논어 필사본을 공개하였다. 이 자료는 일본 서지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문자 형태나 종이의 재질로 판단할 때 6세기 후반 중국 수(隋)나라의 남북조 통일 시기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 직후 2020년 11월에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에서 ‘비대면(ZOOM)’으로 개최된 국제학술회의 <동아시아 문헌학의 신지평-자료와 환류, 서목과 수장>에서 연구책임자였던 스미요시 도모히코(住吉朋彦) 교수의 <게이오 기주쿠 대학 도서관 소장 ‘남북조말수(南北朝末隋)’ 필사본 논어소(論語疏) 권6의 문헌 가치>라는 발표로 외국 학계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현재 이 자료에 대한 고해상도 사진과 상세 해제 및 비교 대상 판본을 수록한 자료집이 간행되었고 게이오대학교 도서관 홈페이지에서도 자료에 대한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다./慶應義塾大学論語疏研究会編, 論語疏巻六(慶應義塾図書館蔵)ㆍ論語義疏(慶應義塾大学附属研究所斯道文庫蔵)影印と解題研究(勉誠出版、2021))
당시 학회에는 한중일 삼국의 서지학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하였고 모두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유교 경전의 발굴에 흥분하였다. 만약 이 자료가 일본 연구팀의 주장대로 6세기 말에 필사된 것이라면 세계 문헌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일이기에 이 자료의 진위를 판단하는데 모두들 신중을 기하였다.
문제는 현전하는 ‘세계유일본’이기에 다른 자료와의 비교가 불가능하였다는 점이다. 결국 최종 결정은 연구자의 직관과 감각에 의존해서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자료의 가치 판단을 위해 종이의 질과 먹의 색깔, 서체의 특징 등이 근거들로 제시되었다.
평소 같으면 한중일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료를 ‘직접’ 열람하면서 각자의 고문헌에 대한 축적된 경험을 교환하며 그 가치를 판단하였을 테지만, 한참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공개된 자료라 이러한 직접 교류가 봉쇄되면서, 외국의 전문가들이 실물 자료를 보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게이오 대학에서는 최고해상도의 자료 사진을 제공하며 외국 학자들의 의견을 구하였으나, 결국 아무리 고해상도라 하더라도 실물을 직접 보지 않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중국과 한국 학자들의 의견이었다.
당시 나온 여러 가지 가능성 중 하나로 그 자료가 중국만이 아닌 고대 한반도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본 고대 헤이안 시대(平安, 794~1185) 초기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인장이 찍혀 있어 10세기 이전 일본에 들어온 점이 확인되어 일본의 견수사나 견당사를 통해 중국에서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어쩌면 우리나라 고대 삼국 중 한 나라 특히 일본과 교류가 활발했던 백제를 경유했다거나 백제에서 직접 필사한 글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백제의 학자 왕인(王仁)이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으니 그리 생각하는 것도 전혀 말이 안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현재 백제의 종이로 만든 서책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만에 하나 그 자료가 진짜 백제의 것이라 해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비교 대상도 없으며 그 누구도 백제 자료라 확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문헌의 종이 질ㆍ글씨체ㆍ먹색ㆍ배접(장황) 등의 경우 고서에 대한 상당한 경험이 축적되어 있지 않으면 쉽게 언급할 수 없으며, 그 판단은 연구자의 오랜 훈련과 경험으로 습득된 직관과 감각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미세한 감각의 세계에서는 원본의 실물 확인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결국 형태서지학 공부는 자료를 찾아다니는 여정인 것이다.
운명처럼 다가온 고서와의 만남과 인연
내가 처음 고문헌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20여 년 전으로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고서 해제 사업에 참여하면서부터의 일이다. 해제는 ‘책의 저자ㆍ내용ㆍ체재ㆍ출판 연월일 따위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해설’ 보다는 서책의 서지적 사항에 보다 집중하는 작업이다. 정확한 해제를 위해서는 대상의 실물을 직접 조사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규장각 고서들을 꺼내어 직접 한 장씩 넘겨보고, 판본 비교를 위해 여러 이본들도 함께 확인하면서 개별 책들이 지니는 미세한 특성을 살피고 고서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학교 안에서는 규장각 해제원으로 활동하고 학교 밖에서 학제의 경계를 넘어선 연구 모임인 <문헌과 해석>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전공자 선생님들과 교류하는 가운데 문학 이외의 문헌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그곳에서 만난 선생님들과의 인연을 통해 학교 정규 과정에서 배울 수 없던 고서에 대한 날 것의 지식들을 접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 고서전문가 박철상 선생님과 인사동 고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시장에 나온 고서들을 살펴볼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때 만난 고서점 주인장들에게 살아 있는 고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고서 유통의 현장을 보여주는 생생한 정보들을 다 녹음해서 기록으로 남겼어야 했다. 이제는 고서점들도 많이 문을 닫고 돌아가신 분들도 적지 않아 너무 안타깝다.
나는 규장각에서 중국 서화류 해제를 시작으로 수년 간 중국과 한국본 문집 해제 및 17~18세기 한국본 문집해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해제 작업을 수행했다. 이후 경험이 쌓이면서 점차 다양한 기관의 사업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일본과 미국 유학 기간 중에는 다산학술문화재단의 <해외소장 정약용 필사본 연구> 사업의 연구원으로서 해외에 소장된 다산의 필사본 자료를 조사하였다. 그 과정에서 정약용과 주변 인물들의 미발굴 자료를 찾아내어 국내 학계에 소개하기도 하였다. 또한 성균관대 연행록, 고려대 해외소재 한국 고문헌, 단국대 연민문고 고서, 한국 고전번역원 문집 등 국내 대표적인 자료 소장 기관들의 해제 사업에 참여하였다. 그밖에 개인적으로 일본과 미국, 러시아 등지에 있는 한국고문헌 소장 서고를 조사하고 이를 학계에 소개하는 글을 학술잡지 문헌과해석에 연재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나는 고서에 대한 감각과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고, 이러한 경험은 일본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기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내가 유학을 떠났던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금속활자를 중심으로 서책의 형태나 인쇄 기술에 주목한 연구는 상당한 성과가 축적되어 있었지만, 출판을 둘러싼 시대와 사회문화적 배경을 서지학적 지식과 접목시켜 해석하는 ‘출판문화’에 대한 연구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일부 국문소설 연구자들의 세책본과 방각본 연구에서 문헌 자료와 사회 현상의 관계를 다루는 연구가 발견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 학계에서는 목록학과 판본학을 넘어 문헌과 사회문화 현상을 접목하여 다루는 책과 인쇄, 독서 행위와 독자의 역사와 같은 출판문화사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한 학계 분위기 속에서 나는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인연들과 만나며 고서 연구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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