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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도서관 100년 역사와 장서의 변천 / 백창민

     

이 땅의 근대대학과 도서관은 언제 탄생했을까? 한반도에서 ‘근대대학’은 일제강점기에 문을 열었다. 일제강점기 법적으로 유일한 대학은 ‘경성제국대학’ 하나였다. ‘대학’으로 법적 지위를 갖지 않았지만, 연희·이화·보성을 비롯한 여러 ‘전문학교’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대학도서관 제도의 정초

     

1922년 조선총독부는 「공립·사립전문학교규정」을 공포했다. 이 규정 중에는 ‘도서실’ 구비 조항이 있다. 시설을 마련해야 총독부 ‘인가’가 나기 때문에 1922년 전후로 전문학교는 ‘도서실’을 갖춰나갔다. 이화학당이 1923년 프라이홀 도서실을 개설하고, 숭실전문학교가 1924년 학당 건물을 도서실로 사용한 것도 이즈음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서관은 1927년 문을 연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이다. 우마코시 토오루馬越徹 교수는 경성제국대학을 “식민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설립한 대학”이라고 평했다. 경성제대 부속도서관 역시 일본 제국경영과 식민지배를 위한 ‘학술 분야 전진기지’였다.

해방 후인 1946년 미군정 문교부는 다수의 ‘전문학교’를 ‘대학’으로 ‘승격’시켰다. 국립서울대학교는 ‘경성제국대학’과 여러 ‘전문학교’를 합쳐 출범했다.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은 서울대 중앙도서관이 되었다. 북한도 사정은 비슷하다. 해방 이후 출범한 남북한 ‘대학’의 상당수는 ‘전문학교’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김자중은 “전문학교야말로 한국 대학의 뿌리”라고 지적했다. 한국 대학도서관의 뿌리 역시 경성제대와 전문학교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땅의 근대대학과 대학도서관 제도는 일제강점기에 ‘이식’移植 또는 ‘정초’定礎되었다.

     

해방과 전쟁, 분단시대 대학도서관

     


[사진 1]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 1923년 프라이홀 도서실로 출발한 이화여대 도서관은 2023년 개관 100주년을 맞았다 Ⓒ 백창민

         

남북한 도서관은 해방 즈음까지 하나였다. 서울대 김기석 교수는 남북 대학의 분단 과정을 ‘일란성 쌍생아론’으로 설명했다. 하나였던 대학도서관 역시 둘로 나뉘면서 ‘분단’되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국은 서울, 대구, 부산, 광주를 비롯한 여러 대도시에서 미국공보원과 USIS 도서관을 운영했다. 미국이 운영한 USIS 도서관은 장서 제공을 비롯해 대학도서관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1950년 터진 한국전쟁 과정에서 대학도서관은 시설, 장서, 사람 면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대학은 피난지에서 ‘전시연합대학’ 형태로 문을 열었고, ‘전시연합대학’은 지방 국립대 탄생의 모태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폐허 속에 대학도서관은 문을 다시 열었지만, 성장 속도는 더뎠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미국의 ‘교육원조’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미국은 교육원조를 통해 한국 대학과 도서관에 시설과 서적, 인적 교류를 지원했다. 미국의 대학 원조는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같은 특정대학에 ‘불균등’하게 집중되었다. 이런 ‘불균등 원조’가 한국 대학과 도서관의 서열을 ‘고착’시켰다. 1956년 조지 피바디 대학을 통해 추진한 ‘피바디 계획’은 우리 도서관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원조’는 교육 인프라 재건에 도움이 되었지만, 한국 교육이 미국식으로 ‘개조’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 유학이 늘면서 ‘미국 유학파’가 대학과 도서관의 주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동시에 대학과 도서관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편입되며 급속히 ‘미국화’하기 시작했다.

이승만 시대 1공화국의 대학 정책은 ‘방임’放任에 가까웠다. 정부가 대학과 고등교육에 ‘투자’도 ‘통제’도 하지 않는 시대였다. 국고 보조 없이 ‘등록금’에만 의지하는 대학 운영이 만연했고, 대학의 부실과 부패도 많았다. 주요 대학은 1950년대에 도서관을 새로 짓기 시작했다. 부산대 효원도서관, 연세대 용재관, 이화여대 헬렌관, 건국대 중앙도서관, 중앙대 우남기념도서관은 1950년대 신축한 도서관이다. 1공화국 시대 여러 대학이 ‘독립건물’로 도서관을 지으면서 대학도서관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군사권력과 대학도서관

     


[사진 2] 연세대학교 도서관 앞 민주광장. 군사정부 시절 대학도서관은 ‘민주주의의 보루’이자 ‘최전선’이었다 Ⓒ 백창민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조국 근대화’를 표방했다.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을 추진한 박정희 정부는 대학에 대한 ‘통제’도 강화했다. 국가권력은 사립대학에 ‘재정’을 지원하면서 본격적인 ‘개입’을 시작했다. 군사정권은 ‘대학’을 경제성장에 이바지하는 ‘인력 배출의 장’으로 전환하려 했다. 이것이 박정희 시대 ‘대학 근대화’의 실체였다.

1972년 유신체제 이후 박정희 정권은 ‘실험대학’實驗大學 정책을 통해 ‘대학 길들이기’를 시도했다. 유신 시대 시작한 ‘실험대학식 운영’은 전두환 정권 시기까지 모든 대학에 ‘획일적으로’ 적용됐다. 박정희 시대의 붕괴는 공교롭게도 ‘대학도서관’으로부터 촉발되었다.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은 부산대, 동아대, 경남대 도서관 앞 ‘시위’로부터 시작되었다. 도서관에서 불붙은 부마민주항쟁으로 박정희 체제는 무너졌다.

박정희에 이어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1980년 본고사를 폐지하고, 1986년까지 ‘졸업정원제’를 시행했다. 대학 설립 허가를 늘리면서, 1980년부터 1993년까지 39개 대학이 문을 열었다. 지방캠퍼스와 신설 대학이 늘면서 대학도서관 수도 그만큼 늘었다. 대학도서관이 양적으로 늘었지만, 도서관의 ‘내실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82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출범하면서 ‘대학 평가’가 시행되었다. ‘평가’의 순기능도 있었지만, 타율적 평가를 위한 ‘구색 맞추기식’ 도서관 운영이 횡행했다.

군부독재 시대 각종 민주화 시위는 연세대 ‘민주광장’을 비롯한 수많은 대학도서관 앞에서 벌어졌다. 군사정부 시절 수많은 대학에서 도서관은 유인물 배포와 시위 현장으로 활용되었다. 도서관은 왜 민주화 투쟁의 ‘무대’가 되었을까?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탈정치적’ 공간을 지향하지만, 도서관의 개방성과 접근성은 도서관을 가장 ‘정치적인’ 공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독재정부 시절, 우리 대학도서관은 ‘민주주의의 최전선’이었다. 동시에 이 시대는 한국 현대사에서 도서관이 ‘민주주의의 보루’였던 시절이기도 하다.

     

민주화 이후의 대학도서관     


[사진 3]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중앙도서관 앞은 ‘아크로폴리스’이고, 뒤에 있는 건물은 ‘관정관’이다 Ⓒ 백창민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는 도서관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987년 부산대학교를 시작으로 경북대, 전남대, 전북대에서 ‘대학도서관 개혁운동’이 펼쳐졌다. 민주화와 대학도서관 개혁운동을 통해 여러 변화가 찾아왔다. ‘서가 구조’는 ‘폐가제’에서 ‘개가제’로, ‘인력’은 전문성 있는 ‘사서’로 바뀌었다. ‘장서’도 사찰과 감시가 줄어들고, ‘서비스’ 역시 이용자의 눈높이에 맞춰 나아지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가 ‘대학설립준칙주의’로 요건을 완화하면서, 사이버대학을 비롯해 대학 수는 크게 늘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이후 대학과 도서관에도 ‘구조 조정’의 바람이 몰아쳤다. 시장과 자본의 힘이 대학에 밀려왔고, 대학에서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화두가 되었다. 대학도서관에 비정규직과 계약직 사서가 늘었고, 도서관 인재의 타 부서 유출도 많아졌다.

성균관대(삼성), 중앙대(두산), 울산대(현대), 아주대(대우), 인하대(대한한공), 포항공대(포스코)처럼 대기업의 대학 인수와 경영이 늘었다. 대학의 ‘매물화’와 ‘사유재산화’ 시대가 열렸다. ‘산학협동’이라는 미명 하에 대학의 ‘자본 종속 시대’가 펼쳐졌다. 대학도서관도 ‘삼성학술정보관’처럼 ‘기업’과 ‘자본’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자본을 확보한 주요 대학은 법학도서관, 공학도서관 같은 분야별 ‘도서관 분관’을 잇달아 건립했다. ‘민주화’ 이후 대학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시장화’되었고, ‘기업화’된 대학 안에서 대학도서관은 ‘양극화’되었다.

     


다음 시기 대학도서관과 장서는 어떤 시대를 맞을까?

     

일제강점기는 ‘도서관’이 ‘도서실’로 존재한 ‘장서 빈약’ 시대였다. 해방 후 1공화국 시기 대학도서관 중에는 장서와 시설이 중고등학교보다 못한 곳이 많았다. ‘장서 부족’ 시대였다. 군사정부 시절 대학도서관은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권력이 도서관을 사찰하는 ‘장서 검열’ 시대를 보내야 했다. 민주화 이후 대학도서관은 늘어난 소장 도서를 주체하지 못해 ‘장서 폐기’ 시대를 맞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대학도서관은 ‘도서실’에서 ‘도서관’으로 성장했고, ‘분관 체제’로 운영하는 도서관도 생겨났다. 종이책조차 부족했던 ‘장서’는 디지털 자료까지 구비하며 ‘하이브리드 도서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다음 시기 우리 대학도서관과 장서는 어떤 시대를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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