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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채식주의자』란 유해도서 / 마준석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간의 문학적 성취가 다시 한번 상징적으로 인정받은 것이기에 축하드리고 진심으로 부럽다. 여기서 노벨상 받은 얘기를 더 하려는 것은 아니고,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곁가지로 일어난 하나의 논쟁을 다루고자 한다. 지난해 11월 경기도교육청은 “학생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협의에 따라 적합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청”1)했으며, 그 결과 각급 학교에서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2500여 권이 폐기 또는 열람 제한되었다. 경기도교육청은 폐기할 도서들을 특정해서 안내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으나, 보수 성향 학부모단체의 주장을 곧바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지는 못했고, 교육청의 조치가 일종의 도서 검열이 아닌지 갑론을박이 오갔다. 이러한 논쟁을 경유하여 결과적으로 도달한 근본적인 물음은, 과연 『채식주의자』가 유해도서인지 여부였다. 


출처 : 데일리안

국정감사장에서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채식주의자』의 작품성은 인정하면서도, 일부 학부모단체에서 걱정하듯이 “학생들이 보기에는 저도 좀 민망할 정도의 그런 내용들”이 있으며 “저희 아이들이라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읽으라고” 권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며 넷상에서도 『채식주의자』에 대한 보다 노골적인 거부가 이어졌는데, 익명의 많은 독자(?)들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는 퇴폐적이고 추잡한 성관계와 기괴한 정신병이 끔찍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학생들뿐만 아니라 성인에게조차 해롭다는 것이다. 다른 독자들은 이러한 주장들이 문학의 본성을 오해하고 있다고 짚으며, 표면적인 서술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작품 이면의 핵심적인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반론했다. 


서로 대립된 양자의 주장 중에 나는 단호하게 한쪽 편에 동의한다. 그러니까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진실로 유해한 책이다. 그러나 그 작품이 유해한 까닭은 형부와 처제 간의 금지된 성관계 때문이 아니고, 온몸에 꽃을 그려 넣은 채 뒤얽힌다는 성적 판타지에 사로잡히기 때문이 아니며, 뺨을 때려가며 입안에 억지로 고기를 밀어넣고 그러다 자해하는 폭력적인 묘사 때문도 아니고, 나무가 되는 망상이나 거식증과 같은 정신병적 증상이 서술되기 때문도 아니다. 물론 ‘영혜’에게 가해지는 강압적인 규범이나 착취는 그 자체로 끔찍하게 폭력적이지만, 그럼에도 『채식주의자』에서 진정으로 폭력적인 것은 영혜 본인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모든 인간관계와 사회적 삶을, 나아가 자신의 세계 전부를 날려버리고서라도 자신의 진리를 포기하지 않고 결국 관철하고야 마는 영혜의 지독한 완고함이다. 기존의 규범이나 사회가 무위로 돌아가는 진리-지점을 구현한다는 바로 이 점에서 『채식주의자』는 유해한 도서고 폭력적인 책이다. 



그러므로 나는 『채식주의자』를 흥미롭게 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나 몇 번이고 반복해서 탐독하고 심지어 그로부터 어떤 교훈을 끌어내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국가』 10권에서 플라톤이 역설하듯이 예술작품은 아이들과 순진한 사람들을 기만하고, 옳고 그름을 뒤흔들며, 이성적인 것을 파괴하기에 단순히 비진리적인 것이 아니라 반진리적이다. 『채식주의자』는 나날의 행복한 삶과 사회의 안정을 위해 국가로부터 추방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독자들은 직접적 위협이라도 당한 듯이 『채식주의자』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한다. 격렬하게 작품을 부정한다고 해서 그들이 예술적 감수성이 없거나 문학의 본성을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정말 끔찍하다’는 탄식은 예술의 괴이한 본질을 예감하고, ‘이것을 도저히 읽을 수 없다’는 무능력은 그들의 진솔한 고백일 것이다. 작품에 대한 거부는 예술 애호가들의 도취된 숭배나 의심스러운 자기만족보다 예술의 진리에 더 가까이 있다. 우리가 작품의 요구에 진정으로 부응한다면 우리는 일상의 평화로운 삶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글을 읽으면 더러워진다.


『채식주의자』가 유해한 책인지의 물음 외에도 우리는 규제 자체에 대해서도 논해야 한다. 만약 『채식주의자』를 유해도서로 지정하고 이를 학생들로부터 제한한다면, 일부 학부모단체와 경기도교육청이 의도했던 바가 달성되는가? 다시 말해 학생들은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해 부적절”한 외설적인 작품으로부터 성공적으로 보호되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학생들이 그러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경로로 『채식주의자』를 입수할 수 있음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규제가 실패하는 까닭은 규제 자체가 지닌 내적 모순 때문이다.


출처 : 위키피디아

2003년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해안 전체를 12,000여 장의 사진 기록으로 남기는 주 정부 지원 프로젝트가 시행되었다. 그런데 그중 하나의 사진에 어떤 유명한 가수의 저택이 찍혔고, 사생활이 침해되었다고 느낀 그 가수는 5천만 달러의 소송을 걸어 사진을 삭제하려 했다. 그러나 이 소송은 예상치 못하게 화제가 되어, 여섯 번의 조회수에 그쳤던 사진은(심지어 그중 두 번은 가수의 변호사들이었다) 단 한 달 동안 42만회 이상 조회되었다.2) 사생활 노출을 막으려는 시도가 오히려 사생활을 폭발적으로 노출해버린 것이다. 규제의 내적 모순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한다는 정신분석학의 대원칙을 유념해야 한다. 만약 『채식주의자』를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로 규제한다면, 바로 그 규제 때문에 『채식주의자』는 모든 다층성을 상실하고 오직 외설적인 책으로만 읽히고 말 것이다. 규제가 제거하고자 했던 것이 규제 덕분에 돌아오는 것이며, 그렇게 『채식주의자』는 불가능하기에 가능한 사물이 된다. 캘리포니아 해안을 찍은 평범한 3850번째 사진에 억압이 가해진 순간, 그 사진이 스타의 은밀한 사생활을 폭로하는 음란한 사물의 지위를 가지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따라서 억압된 것은 억압될만한 내용 탓에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으로 인해 억압된 내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은폐하려 할 때, 바로 그 행위가 무언가를 창조한다. 따라서 『채식주의자』에 대해 보수 진영이 요구하는 규제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출처 : BBC

2017년 왕가뉴 지역의 마오리 이위 부족은 왕가뉴 강의 행위성을 인정하는 기이한 입법화에 성공했다. 그러니까 강은 앞으로 하나의 ‘생물체’로서 사회정치적 사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인간은 이러한 강의 요구를 법적으로 조율해야만 한다. 이러한 입법화의 명시적인 내용은 강이 인간처럼 말하고 필요할 경우 인간을 고소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짚듯이 이러한 법안이 실제로 목표하는 바는, 강도 인간처럼 행위한다는 환상을 관철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비인간 타자들과 얽혀있으며 그 관계 속에서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었다.3) 그러니까 강에 대한 법안이 겨냥하는 대상은 강이 아니라 사실 인간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규칙이나 입법은 명시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그에 수반되는 부가적인 메시지를 지니며, 때때로 그 잉여가 애초에 겨냥했던 핵심일 수 있다.


학생들에게 『채식주의자』라는 유해한 책을 권하는 것은, 아이들이 이를 잘 이해할 수 있고 인격 발달에 유용하며 삶의 교훈을 끌어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실로 허황된 주장이다. 학생들은 일부 사람들이 우려하듯이 『채식주의자』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음란하게 읽을 것이며 그 앞에서 당혹스러워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채식주의자』를 권해야만 하는 까닭은, 이를 통해서만 아이들에게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있다는 부가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며, 사실 이것이 교육이 애초에 겨냥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삶과 세계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주체로서 간주할 때, 두려워하고 절망하면서도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주체로서 간주할 때, 아이들은 실제로 그렇게 자라날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더럽고 유해한 존재로서 공동체를 뒤흔들 것이고, 사회를 바꾸어나갈 것이다.



  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3552

  2. https://en.wikipedia.org/wiki/Streisand_effect

  3. 『학문을 횡단하는 연구자를 위한 글로서리 : 후기질적 연구, 신물질론,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의 얽힘』, (2024), Karin Murris 편저, 이진희 외 27인 공역, 374-375쪽.



마준석(연세대 철학과 석사) wegmarken12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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