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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3월 외톨이의 봄 - 은둔 고립 청년들의 삶과 쉼 / 강부원

3월은 늘 소란스럽고 분주하다. 학교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도 저마다 생기가 돈다. 캠퍼스에서는 어색한 긴장과 서툰 표정이 섞인 인사가 오가고 취업 시장도 상반기 공채 준비로 활기차게 들썩인다. 즉, 3월은 우리 사회 전체가 겨우내 묵은 먼지를 툭툭 털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엔진에 시동을 걸고 예열하는 시기다.     

생동감 넘치는 풍경의 바깥 혹은 그 한가운데에서조차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정지 상태로 머물러 있는 청년들이 있다. 등교도 출근도 모임도 끊은 채 방 안에 웅크린 채 살아가는 이른바 ‘은둔 · 고립 청년’. 새 출발을 뜻하는 3월이 누군가에게는 시작의 설렘이 아닌 꼭꼭 숨는 계절이 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못 본 체하고 있는 가장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하다. 이렇듯 3월은 은둔자와 고립된 이들에게 외로움과 괴로움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절이다.

     


은둔 고립 청년은 더 이상 일부 특이한 사례가 아니며 특정한 개인의 문제만도 아니다. 여러 통계와 연구는 이 문제가 이미 구조적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국무조정실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2025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를 거의 맺지 않고 집에 머무르는 청년은 54만 명에 이른다. 전체 청년 중 5.2%에 해당한다. 고립과 은둔의 이유로는 취업 곤란과 어려움이 32.8%로 가장 많았고 인간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이 11.1%, 학업중단이 9.7%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 달 발표한 서울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6년에는 은둔 고립 청년들의 수가 전년보다 대폭 늘어나 61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한다. 양극화와 비교문화를 견디지 못하고 열패감에 빠지거나 사회적응을 포기한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 먼저 사회문제로 부각된 ‘히키코모리’ 즉 은둔과 고립 현상이 한국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에서는 일정 기간 이상 학교 · 직장 ·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청년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그 증가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온라인 수업과 재택 근무, 사회적 거리두기는 일시적 조치였지만 많은 청년들이 팬데믹 이후 사회로 돌아가는 통로 자체를 차단하고 닫아버렸다.     

은둔 고립은 단순히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다는 사실을 일컫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망의 붕괴와 자기 효능감의 상실 그리고 미래 전망의 부재가 결합된 복합적 결핍 상태를 의미한다. 국가데이터처와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2026년 1월 경제활동인구조사' 통계에 따르면 청년층(20~29세) 체감 실업률은 공식 집계보다 훨씬 높다. 단순히 일하지 않고 ‘그냥 쉬었음’에 해당하는 비율은 27.5%(44만 2천 명)이다. 직전 년도에 비해서도 5만 명 이상 늘었다. 게다가 비정규직과 단기 계약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까지를 포함하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청년들의 수는 전체의 70% 가까이에 이른다. 좌절감과 열패감에 빠진 청년들은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경험이 반복될수록 경쟁에서 탈락했다는 자책을 하게 되고 일찌감치 패배했다고 여긴다. 그 결과 사회와의 접촉 자체를 회피하게 되고 이는 다시 고립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교육 환경 역시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 사회의 교육 시스템은 오랫동안 성취 중심의 경쟁 구조를 유지해 왔다. 입시에서 탈락하거나 학업을 중단한 청년들은 제도권 경로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주변부로 밀려난다. 학교는 진학자와 성공 사례를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중도 탈락자나 부적응 학생을 포괄하는 안전망은 매우 취약하다. 3월의 분주한 개강 풍경 속에 속하지 못한 채 집에 남아 있는 학생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에서 특히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학교라는 공동체에 편입되지 않은 10대 후반의 청소년과 20대 초반의 청년들, 즉 표준화된 경로에서 이탈됐다고 손쉽게 간주되는 이들은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고 낙오자로 취급된다. 당연히 이들은 집 밖으로 나서길 주저하게 되고, 문 앞을 나서는 게 두렵고 무서운 사람이 되기 쉽다. 은둔과 고립 청년은 이렇게 생겨난다.     

물론 은둔과 고립이 발생하는 이유와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가족 구조의 변화 또한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대가족이나 지역 공동체가 개인의 실패를 완충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핵가족화와 1인 가구 증가로 인해 가족 내부의 지지 체계마저 약화됐다. 부모 역시 경제적 불안 속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녀의 심리적 고립을 장기적으로 돌볼 여력이 부족하다. 특히 중산층 붕괴와 양극화 심화는 가족 내에서도 ‘지원 가능한 자원’의 격차를 확대시킨다. 어떤 청년은 실패 후 재도전의 기회를 얻지만 어떤 청년은 단 한 번의 좌절로 사회 밖으로 완전하게 밀려난다. 즉 고립은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 사회구조적 불평등의 결과일 수도 있다.

     

출처: 뉴스1
출처: 뉴스1

디지털 환경 역시 은둔과 고립 청년들에게 양면적 기능을 갖는다. 온라인 공간은 고립된 청년에게 유일한 창구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 관계를 대체하며 고립을 고착화시키기도 한다. 익명성 속에서 최소한의 상호작용만으로도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 세계로 나갈 동기가 점점 약해진다. 게임, 영상 플랫폼, 커뮤니티는 일시적 위안을 제공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시간 감각과 생활 리듬을 붕괴시킨다. 낮과 밤이 뒤바뀌고 외출이 점점 어려워지며 결국 사회적 재진입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정신건강 문제는 은둔과 고립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이기도 하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사회공포증은 고립을 촉발하기도 하고 고립이 지속될수록 더욱 악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건강 서비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사회적 기능과 경제적 자원이 필요하다.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 가장 치료받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낙인에 대한 두려움 역시 도움 요청을 가로막는다. 은둔과 고립 청년들에게 “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느냐”는 질문은 응원이 아니라 비난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개인의 은둔과 고립이 늘어갈수록 사회의 지층은 허약해지고 넓이 역시 축소된다. 무엇보다 공동체 내부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기반이 흔들린다. 우리 사회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각자 버티는 장소로 변할 때 공생의 토대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은둔 고립을 개인의 의지 문제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립과 은둔은 취약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취약한 사회 구조의 반영이다. 지역 단위의 방문형 지원, 상담과 직업 훈련을 결합한 프로그램, 사회적 기업과 연계한 단계적 노동 참여 모델 등이 시급히 필요하다. 일본과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장기간 고립 상태에 있는 청년을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누거나 친교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접근해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시범 사업이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 전국적 시스템으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다.     

대학 역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대학이 단순히 성취도가 높은 학생을 선발하고 역량을 강화해 인력 자원을 배출하는 기관이 아니라 탈락 위험에 처해있는 학생을 붙드는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학업 중단자에 대한 추적 관리, 유연한 복학 제도, 심리 상담의 실질적 접근성 확보 등이 필요하다. 취업 중심 교육 만으로는 다양한 삶의 경로와 고유한 리듬을 가진 개인들을 모두 포괄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시선의 변화다. 은둔 고립 청년은 게으르거나 의지가 부족한 존재가 아니라 과도한 경쟁과 불안정 속에서 상처 입은 존재일 수 있다. 그 누군가를 다시 사회로 끌어내는 힘은 강압이 아니라 다정한 환대에서 나온다. “왜 지금껏 숨어 있었느냐?”는 채근 대신 “다시 돌아와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공동체가 지체된 이들을 받아들일 제도를 마련하고 심성을 갖추었을 때 은둔과 고립 청년들도 사회적 복귀를 시도할 수 있다.

     

3월의 활기차고 밝은 풍경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정 건강한 사회라면 그 움직임에서 이탈한 사람들까지 함께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 학교에 가지도 일터에 나가지도 못하고 방 안에 머무는 청년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성장만을 내세우는 사회는 겉보기만 풍요로울 뿐 내부는 점점 공허해질 수 있다. 새로운 출발의 계절 3월에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더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라 뒤처진 사람을 돌아보는 태도를 갖추는 일이다.     

은둔 고립 청년의 문제는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 오늘 방 안에 머물러 있는 청년이 내일의 동료가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천천히 기다리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점점 따사로워지는 3월의 햇빛이 닿지 않는 은둔 고립 청년들의 방 안에도 봄이 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진짜 봄을 맞이하는 성숙한 태도일 것이다.



강부원( 작가,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등 저술)
강부원( 작가,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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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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