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베넷의 <생동하는 물질> 리뷰 / 맹미선

“활력 넘치는 사물과 정치를”

–베넷의 정치생태학, 여전한 빈자리



2020년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전 세계의 문제로 부상하며 인류는 오랜 시간 눈앞에 두고도 외면해 온 거대한 주제를 다시 보게 되었다. 바로 환경 문제다. 그레타 툰베리의 활동으로 지구 온난화 현상에 대한 국제 사회에 관심이 늘어나던 차, 코로나19 대유행은 마치 대자연의 경고처럼 인류를 덮쳤다. 에이스, 에볼라, 사스-코로나, 코로나19―20세기 이후 발견된 이들 바이러스는 인간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여러 전문가는 다른 생물 종의 서식지를 분별없이 침투한 인간의 ‘지구 약탈 행위’ 때문에 인수공통감염병 사례가 더욱 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인간은 여태껏 자연에 무슨 죄를 지어 왔던가? 인간과 자연은 지금이라도 새로운 상생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정치 철학자 제인 베넷의 『생동하는 물질(Vibrant Matter: A Political Ecology of Things)』(현실문화, 2020)은 이러한 위기의 시점에 출간된 책이다. 약 10년 전,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전통적 구도를 깨고 ‘생동하는 물질’과의 정치를 꾀하려 했던 저자의 시도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인식하는 데 어떤 통찰을 줄까?



죽은 물질을 인간의 정치로 끌어오기

“이 책은 하나의 철학적 기획이자 그에 대한 하나의 정치적 기획이다.”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물질을 철학적으로, 정치적으로 분석하겠다고 선언한다(7쪽). 그의 첫 번째 기획은 물질의 존재론적 지위를 격상하는 것이고, 두 번째 기획은 인간과 생동하는 물질(비인간) 모두를 정치 주체로 아울러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베넷은 스피노자·라투르·들뢰즈와 가타리 등의 논의를 빌려와 물질이 인간처럼 제 나름의 힘을 가진 행위소(actant)라는 점을 논증한다. “죽은 쥐, 플라스틱 병마개, 실 한 타래”는 보통 그저 눈앞에 놓인 것, 인간의 힘이 닿아야 효과를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들 사물은 인간에게 어떤 효과를 자아내는데,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죽은 쥐를 보고 혐오감을, 버려진 병마개를 주우며 만족감을, 실타래를 감으며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인간의 인식적 특권을 강조하는 세계관이라면 인간이 가진 고유한 능력 때문에 이러한 감흥이 일어났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베넷은 물질의 고유한 활력으로 같은 현상을 다르게 해석한다. 물질에는 “생기를 불어넣는, 어떠한 행위를 하는, 극적이고 미묘한 효과를 생산해내는, 활기 없는 사물들의 기이한 능력”(46쪽), 곧 ‘사물-권력’이 있다는 것이다.


물질을 활동성 있는 주체로 간주할 때,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에는 더 많은 행위소가 연루된다. 각 행위소는 인간과 비인간이 모두 존재하는 이질적인 배치 속에서 자신의 사물-권력을 키운다. 베넷은 2003년 8월 북아메리카 일대에 벌어진 정전 사태로 이를 설명한다. 오하이오주와 미시간주 일대에서 시작된 정전은 다른 연결망에 큰 부하를 주어 연쇄 반응을 일으켰고, 미국과 캐나다에 거주하는 5000만 명 이상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대규모 정전 사태로 불거졌다. 당시 전문가들은 연쇄 반응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다. 사건의 주범은 낡은 전력망을 보수하지 않은 몇몇 전력 회사일지도, 전기 소비량을 늘린 소비자일지도, 전력 민영화를 추진한 규제 위원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넷은 인간 행위자에게 정전 사태의 책임을 묻는 대신 전기·전선·핵연료·컴퓨터 프로그램·법률·경제 이론 등 비인간 행위소의 활력을 면밀히 살피자고 말한다. 특정한 조건에 형성된 전력망은 인간의 의도와 무관하게 제 나름의 특성과 한계, 즉 고유한 사물-권력을 가지며 이는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비인간 행위소를 포함하는 생기적 유물론의 관점을 채택한다면 인간-권력의 관점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정전 사태의 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베넷의 시도는 생동하는 물질을 공중으로 참여시킬 때 더 나은 정치가 가능하리라는 규범적 주장으로 이어진다. 가령 생기적 유물론은 비인간을 인간의 보호 대상 혹은 인간의 행위를 제안하는 무언가로 간주하는 환경주의 담론에서 다루지 못하는 여러 질문을 해석해 줄 수 있다. 민중이 공통된 몫에 대해 독특한 분열을 일으킬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발현된다고 한 랑시에르의 주장처럼, 그는 새로운 유물론이 사람들이 보는 것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지각 가능한 것의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베넷의 정치적 기획은 ‘새로운 자기 이해’를 갖춘 인간(276쪽)이 갈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보다 기존 담론의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을 점치는 데 그친다.



생동하는 물질을 포함한 정치학?

물질과 생명을 엄격히 구분해 살아 있는 것의 권위를 높이 산 고전적 생기론, 물질에서 어떤 생기를 포착하려 한 칸트·드리슈·베르그송 등의 논의를 차례로 살피며 생기적 유물론을 위치 지으려 한 베넷의 작업은, 현대 사회를 가득 채운 물질(공산품)의 매혹을 주제로 한 전작 《The Enchantment of Modern Life(근대적 삶의 매력)》의 한 축을 발전시킨 것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는 과연 신성 혹은 그에 필적한 ‘자연의 섭리’를 벗어났는가? 탈-신성화되었다는 사회에서 환경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기존 연구 질문에서 발전된 『생동하는 물질』은 출간 이후 역사학·문학·식물학·중세학 등 여러 관련 분과의 주목을 받았다. 2011년 인문 지리학회지 《Dialogues in Human Geography》는 기획 세션을 꾸려 신유물론·포스트휴머니즘의 주요 논의 중 하나로 이 책의 논의를 폭넓게 다룬다. 2012년 《New Literary History》에서는 베넷과 다른 방식으로 라투르의 논의를 발전시킨 그레이엄 하먼과 티모시 모턴이 직접 논평에 나서기도 했다.


『생동하는 물질』의 분석은 분명 인간과 비인간의 이분법을 타파하려는 ‘물질적 전회’ 논의에 유용한 자원을 제공한다. 그러나 베넷의 목표가 활기 넘치는 사물의 철학적 위치 짓기뿐 아니라 그러한 사물을 포함한 정치적 이점을 논하는 데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생동하는 물질의 정치생태학이 제언 이상으로 어떤 지침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물질의 존재론적 지위를 높이려는 그의 시도는 결국 인간이 어떻게 더 나은 윤리적 선택을 내릴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한 선행 작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2012년 한 인터뷰에서 베넷은 비록 인간은 우리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 HIV를 사랑할 수는 없지만, HIV·콘돔·실험실·실험 동물 등 비인간 행위소의 활력을 포함할 때 인간-권력의 틀로 보지 못했던 생명 정치 문제의 이면을 볼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베넷이 오메가3이라는 또 다른 사례로 인간과 비인간의 이질적인 배치를 설명할 때, “지방이 인간의 의지, 습관, 생각의 권력을 약화하거나 향상시킬 때의 작용과 궤적”(122쪽)을 드러내어 비만 문제를 다루자고 할 때, 나는 비인간의 활기에 관련된 앎이 다시금 인간의 판단 혹은 권력의 문제와 관련된다고 느낀다. 전기를, 오메가3를, 코로나19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여러 자본이 동원되어야 하며 자본에서 구축된 자료를 확고한 지식의 반열에 올리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렘케는 2019년 발표한 그의 논문에서 베넷의 두 번째 기획을 두고 ‘새로운 정치 지형을 그리기보다 개개인의 새로운 윤리적 감수성을 그리려는 시도’라고 논평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생동하는 물질』은 생기적 유물론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강하게 외치기보다 그 철학적 토대를 두텁게 쌓는 저서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생동하는 물질』이 국내에 소개되기 직전 출간된 베넷의 신작 《Influx and Efflus》(2020년 5월 출간)는 『물질』의 자기-이해를 발전시킨 윤리적 자아 모델을 포함한다. 이산화탄소의, 온실 효과의, 코로나19의 위력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끼는 2020년도의 우리에게, 10년이란 긴 시간에 걸쳐 숙성된 베넷의 두 저서가 서로를 보완하는 짝패로 찾아오길 바란다.


맹미선(이성과감성 편집자)











[참고 문헌]

제인 베넷, 문성재 옮김, 『생동하는 물질』(현실문화, 2020).

김종미, 「제인 베넷: 호수와 나무에도 법적·정치적 권리가 주어져야 하는가?」,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이성과감성, 2020).

김환석, 「사회적인 것에 대한 과학기술학의 도전: 비인간 행위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사회와 이론』(한국이론사회학회, 2012): 37-66쪽.

Alan R. Van Wyk, “What Matters Now?,” Cosmos and History Vol.8, no.2(Open Humanities Press, 2012): pp.130-136.

Bruce Braun et al, “Book review forum,” Dialogues in Human Geography Vol.1, no.3(SAGE, 2011): pp.390-405.

Christopher N. Gamble, Joshua S. Hanan, Thomas Nail, “What is New Materialism?,” Angelaki Vol. 24, no.6(Routledge, 2019): pp.111-134. [크리스토퍼 갬블·조수아 하난·토마스 네일, 박준영 옮김, “신유물론이란 무엇인가?”, 호랑이의 도약, http://tigersprung.org/?p=2494, 2020년 9월 29일 접속.]

Gulshan Ara Khan, “Vital Materiality and Non-Human Agengy: An Interview with Jane Bennett,” G. Browning et al.(ed), Dialogues with Contemporary Political Theorists(Palgrave Macmillan, 2012).

Janell Watson, “Eco-sensibilities: An Interview with Jane Bennett,” The Minnesota Review Vol.81(Virginia Tech, 2013): pp.147-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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