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강의도 수고하셨습니다.
모두들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주에 만납시다.”
온라인 라이브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과 인사를 나눈다. 중간에 카메라를 꺼둔 학생들 중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학생들이 있다.
“OO학우, 질문할 것이 남았나요?”
순간적으로 내 강의에 감명을 받아서 더 듣고 싶거나 질문거리가 생겨서 남아 있나보다 착각했다. 두어 번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라이브 강의를 끝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학생들은 어느 순간부터 ‘내 강의를 듣지 않고 있었겠구나’ 싶다. 조금 서운하기도 하지만 한편 내 강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학생들이 시간과 열정을 바칠만한 강의를 하고 있는가?’
코로나19는 교육체제 뿐만 아니라 교수자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필자 15년 정도의 초등학교 교사 경력과 겸임교수를 거쳐 대학교수가 된지 7년 차이다. 가르침의 대상은 변했지만 교수자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교수자의 역량은 지식을 가르치는 대상에 맞게 재구성하여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배움의 열정을 일깨우는 수업을 할 수 있느냐가 가름 짓는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수업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달인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묻는다. 진짜 수업의 달인이 맞느냐고. 진짜 수업은 단순한 지식전달을 넘어 앎의 기쁨을 누리게 하고 배움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수업이어야 한다. 나는 그런 교육자인가?
코로나19는 교육의 방향을 묻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학교라는 체제가 시작된 이래로 전쟁으로도 멈추지 못했던 교육의 공간은 물리적인 학교였고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난 공교육을 상상할 수 없었다. 혹자는 우리나라 시스템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늦게 변화하는 분야가 교육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교육 분야의 변화는 힘들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성역처럼 여겼던 교육방식을 무너뜨렸다.
현재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은 12년 학제와 학년별로 구분되어 있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국민공통교육과정 체제로 기본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 정해져있다. 매년 진급하려면 법정 수업일수를 채워야 한다. 여기서 수업이란 일반적으로 물리적인 교실이나 환경에서 교육받는 경우만 인정되는 상황이었다. 대학교육에서도 온라인 수업은 일부, 대략 20%이내에서만 인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로.
교실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되자 교육부는 새로운 대안을 내놓았다. 현대 교육체제를 갖춘 이후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순차적 개학과 온라인, 오프라인을 병행하는 교육 형식을 시도했다. 3월 개학을 몇 차례 미루고 4월 9일부터 학년에 따라 순차적으로 개학을 시작하게 되었다. 온라인 개학을 맞이한 학생들은 교육부에서 제공한 e학습터와 온라인 클래스로 접속하여 EBS,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교육개발원 등의 공공기관 콘텐츠와 민간기관의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였다.
필자도 중학생,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데, 아이들의 일과를 살펴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온라인 클래스에 접속, 출석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내내 온라인 강좌를 수강하고 오후에는 제시된 과제를 수행하는 일과를 보낸다. 학교에서 일과는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동일하게 움직여야 하지만 집에서는 정해진 기한 내에 온라인 수업을 수강하면 되므로 자신의 시간표에 따라 일과를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온라인 수업은 아이들의 일과를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잠재력도 이끌어냈다. 그동안 정해진 규율과 시간표에 의해 일과를 보내던 아이들이 스스로 계획하고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자신의 일과를 판단하고 결정하게 되었다. 학습속도도 스스로 조절하기 시작했다.
기대와 달리 학습 효과 측면은 그룹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충남교육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온라인 수업이 학습 효과가 있었는가에 대한 설문에 학생들은 보통(39.61%)이 가장 많았고 부정적인 의견이 긍정보다 많았다. 반면, 교사들은 보통(45.02%)이 가장 많았고 긍정이 부정보다 높게 나타났다. 학생들의 경우 수업의 질이나 집중도에서 온라인 수업이 교실 수업에 비해 미흡하다고 느낀 반면, 선생님들은 이렇게라도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온라인 교육의 긍정적인 요인에 대한 답변은 학습시간의 자유(교사 46.21%, 학생 52.96%)가 가장 높게 나타나 언제 어디서나 학습이 가능한 온라인의 장점이 반영된 결과를 보였다.
이번 온라인 수업의 가장 긍정적인 결과는 교육의 결손을 방지했다는 부분일 것이다. 온라인 수업이 가능하지 않았다면 정해진 교육과정의 내용을 학습할 기회조차 없었겠지만 다행히도 온라인 수업을 통해 수업의 결손을 방지했다는 성과를 얻었다. 학부모 설문결과 학습결손 예방에 도움이 되었다는 반응이 62.6%로 나타났다(교육부, 2020). 또 하나 눈여겨 볼 결과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저력을 확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사들 스스로 각종 커뮤니티를 개설하고 원격수업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흐름이 생겨났고, 교사온, 교사 1만 커뮤니티 등의 원격수업을 지원하는 교사 커뮤니티가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는 점이다. 특히, 온라인 수업 초기에는 기관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이용하던 현상이 시간이 흐르면서 교사들이 직접 제작한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흐름을 보였다(4.21. 기준 약 230만개). 이런 결과는 교육부의 올바른 정책과 교사들의 열정이 조화를 이룬다면 위기상황도 충분이 극복할 여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간과 공간이 변한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이 기본조건이었으나 앞으로의 교육은 시간과 공간의 조건이 변하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수업에 참여해도 학점으로 인정하는 흐름이 많아질 것이다. 물론 온라인 실시간 수업도 병행 되겠지만 수업 인정의 기본조건이 다양화될 것이므로 각 형태의 장단점을 분석하여 상황과 대상에 맞는 수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부에서 제시한 실시간 쌍방향 수업,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 과제 수행 중심 수업과 같은 구분을 기본으로 교과의 내용과 학생들의 수준에 따른 다양한 조합의 수업 모델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1교시에는 콘텐츠를 활용한 개념학습을 하고, 2교시에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통해 토의, 토론, 실습 등을 진행한 후, 3-4교시에는 실시간+과제 수행 중심 수업을 통해 산출물을 제작하는 형태로 구성할 수 있다.
수업의 공간도 교실에서 다양한 장소로 변경이 가능하다. 지금처럼 학교에 나올 수 없는 상황이면 학생들은 집에서 수업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고, 선생님이 직접 전문가를 방문해서 그 장소에서 실시간 쌍방향 수업으로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장소의 확장이 가능하므로 선생님의 상상력과 제도의 뒷받침이 가능하다면 서로 다른 장소에서도 역동적인 수업을 만들 수 있다.
체제가 변할 수 있을까?
교육체제가 변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이상적인 교육체제를 상상해 보자. 우리나라 초중고 교육체제는 마지막 관문인 대학입시로 귀결된다. 필자의 고등학교 아들은 중학생일 때 향유하던 여러 가지 취미를 고등학생이 되면서 접었다. 아들은 초등학생 때 포토샵을 배운 후 중학생이이 되자, 친구들에게 로고를 그려주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재미있어 했고, 그림을 받은 친구들이 좋아하면 자기도 기쁘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된 후, 상황이 바뀌었다. 아들은 모든 시간과 일정을 입시준비에 맞추기 시작했고, 그렇게 좋아하던 로고 그리기도 멈췄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021년 대학입시도 변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3학년 1학기의 수상실적, 봉사활동 실적 등을 반영하지 않기로 했고, 최저 등급 기준도 완화하였다. 내부에서의 변화는 불가능해 보였는데 뜻하지 않게 코로나19의 외부 충격이 내부 변화를 유도한 격이다. 대학입시 제도가 변할 수 있다면 교육체제도 바뀔 수 있다. 대학은 진짜 공부가 필요한 시기에 지원하게 하고, 중・고등학교 때는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블랜디드 교육환경에서 다양한 도전을 허락하는 것이다. 독일의 교육제도가 이와 비슷하다 하겠다. 얼마 전 EBS 공사 20년 특집방송 ‘더 체인지, 미래교육’을 시청하다가 패널 중 독일 사람인 다니엘 린데만이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시기와 방법이 다양해지고, 줄 세우기, 표준화된 성적에 의해서만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바꿀 수 있다면 출결이력, 모의고사 점수, 면대면 수행평가와 같은 제도에 억매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아이들도 중・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950년대의 ‘스푸트니크 호 사건’으로 미국의 교육이 변화했던 것처럼 2016년에 ‘알파고 사건’으로 우리나라 교육 변화는 예견되었다고 생각한다. 2020년, 코로나19가 우리나라 교육계에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준비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기술중독사회’에 나오는 해결책처럼 교육의 주체인 정책가, 교사, 학생 및 학부모 모두가 나서야 할 때이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미래를 남겨주지 않으려면 모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The future is already here. It's just unevenly distributed)”
/ 윌리엄 깁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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