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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번역, 140권의 약속/신상후
첫 번째 결실, 생애를 건 약속 안동섭 선생님(이하 저자)의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4 번역서의 머리말 첫 문장은 이렇다. “이 책은 주자어류 전체를 번역하는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실입니다.” 이 문장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안동섭 선생님이 오래오래 건강하셔야겠다’라는 것이었다. 『주자어류』는 140권 156만여 자에 달하는 방대한 문헌이다. 이 문헌 전체를 번역하겠다는 계획은 한 사람의 생애를 걸어야 하는 과업에 가깝다. 단순 계산만 해 보아도, 매년 세 권씩 꾸준히 간행한다고 가정할 때, 전권 완역까지는 40년이 넘게 걸린다. 강의와 행정, 논문 집필과 학회 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대학 교수가 매년 세 권의 번역서를 꾸준히 출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사정을 알기에, 한 명의 독자로서 머리말의 저 선언은 참으로 반가웠다. 이제 저자는 물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다음 권은 언제
SG Lee
Jun 96 min read


주자어류(朱子語類) 권 14 서평/안동섭
『주자어류(朱子語類)』를 홀로 완역하겠다는 계획은 좋게 말해도 무모하고 나쁘게 말하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책을 내겠다고 결심한 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어쩌다 그런 (바보 같은) 결심을 하게 되셨어요...?”라며 위로에 가까운 질문을 건네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짧은 버전 스토리와 긴 버전 스토리가 있으니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다고 답하는데요, 아쉽게도 지금까지 그 누구도 긴 버전을 고르지 않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한 번 길게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성리학을 전공한 이래로 『주자어류』는 늘 애용하는 문헌이었습니다. 실제로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지난 20년간 어떤 형태로든 『주자어류』의 문장을 읽지 않은 해가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240개월간 한 번도 읽지 않은 달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뿐만 아니라 조선사나 동양철학 등 유관 분야 연구자라면 누구라도 어떻게든 꾸준히 읽어왔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문헌이고,

한국연구원
Jun 96 min read


역사의 거대한 변화, 우리의 미미한 변화 / 나종현
‘실학의 신화’와 ‘담헌 신화’ 조선시대 역사 서술에서 ‘실학(實學)’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역사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었다는 식민사학에 맞서, 많은 연구자들은 한국사의 자체적 발전성을 증명하고자 노력했다. 그 노력이 집중되었던 시기 중 하나는 조선 후기, 근대로의 이행 가능성이 다양한 모습으로 발아하던 시기였다. 봉건적 질서를 뒷받침했던 정주학(성리학)에 맞서 근대지향적 새로운 사상도 검출되었다. 그것이 바로 ‘실학’이며, 실학의 근대성에 입각한 조선후기 사상사 서술은 실로 ‘실학의 신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학파는 ‘실학의 신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용후생학파 또는 중상학파라고도 불리는 이 학술집단은 정주학의 세계관인 화이론에서 벗어나 오랑캐인 청으로부터도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조선 지식인들은 병자호란으로 청에게 비참하게 무릎을 꿇은 다음에도 화이론을 버리지 못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중

한국연구원
Apr 214 min read


해체의 도구와 신화 계승의 줄다리기 -강명관, 『홍대용 평전-실천적 정주학자』(푸른역사, 2025) 서평 / 채송화
불편과 카타르시스 사이에서 그날이 언제인지도 어떤 학술대회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학원생이었던 필자에게 저자의 발표는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주류적 이해”(1권 5면, 이하 “권수-면수”로 표시)의 세례를 받은 대학원생의 직관적 거부감과 그 권위의 ‘해체’에서 오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충돌해서 생긴 부산물임을 인정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당시 학계의 연구 동향을 주시하는 조선 후기 한문학 연구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자의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의식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현재 한국학 연구자들이 이 책에 큰 관심을 가지는 이유 또한 저자가 오랜 시간 우직하게 밀어붙인 그 문제의식의 결론(끝의 의미가 아닌 정수라는 뜻의 결론)이 담겨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한몫을 했으리라 짐작한다. 이 책은 18세기 조선을 살아간 담헌 홍대용이라는 인물의 평전이다. 총 2권으로

한국연구원
Apr 216 min read


불안과 부끄러움, ‘동아시아 비교문학’을 역사화·현재화하는 정동들-『동아시아 비교문학:근대성의 서사, 담론, 정동』 (서영채, 소명출판, 2025) 서평 / 신지영
하나의 분기점, ‘동아시아’ 비교문학 이 책은 하나의 분기점 위에 있다. 한국 비교문학 연구가 30년간 걸어온 역사를 체현하면서도, 현재의 복합위기 속에서 이 시간을 어떻게 현재화할 것인가 하는 물음 위에 이 책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근대문학은 시작부터 ‘서구’와의 비교 속에서 스스로를 형성해왔다. 비교를 둘러싼 온갖 반응 속에서도 이 책은 문학적인 것이 생성되는 원형적 계기로서 불안과 부끄러움에 주목한다. 따라서 책 제목 ‘동아시아 비교문학’은 지역적이기보다는 미학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동아시아’의 경험을 담은 비교문학을 제시하는 선언적 효과를 지닌다. 최근 비교문학과 관련된 책들이 꽤 많이 출판되었다. 문학을 넘어 영화, 법학, 역사, 디지털 인문학까지 포괄하는 벤 허친슨의 『비교문학』(민현주 이유진 역, 교유서가, 2025)은, 다양한 문화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위대한 유토피아적 꿈”이라고 비교문학을 정의한다. 미국

한국연구원
Jan 314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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