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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Here and I Am There, 두 지역살이 (I): 아티스트 레지던시 / 김보슬

최종 수정일: 2023년 5월 3일


[그림 1. ≪Here, There≫ 김보슬.]

두 지역살이는 하나의 지역에서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두 지역을 오가면 살게 되는 거주 형태를 말한다. 주중에는 근무 지역에서 지내고, 주말에는 원래 살던 지역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지내는 주말부부처럼 말이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떠오른 도시탈출에 대한 열망은 귀농·귀촌의 움직임으로 이어졌고, 최근에는 ‘워라밸’과 여가에 대한 관심이 더해져 세컨드홈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서로 다른 지역을 번갈아 거주하는 현상을 2022년 국립국어원 새말모임에서는 ‘두 지역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건축학이나 언론 등에서는 체류형 인구, 다중거점생활, 듀얼라이프, 유사거주 등의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렇듯 분분한 용어는 해당 현상이 증가 추세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두 지역살이의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의 두 지역살이는 일반적인 직주분리와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주로 ‘레지던시‘라 불리는 입주작가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지역을 오가며 살게 된다. 레지던시란, 창작자가 거주에 대한 고민을 덜고 마음 놓고 창작활동을 하고 다른 분야와도 교류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에 한하여 무료 또는 실비로 제공되는 작업공간을 말한다. 생산 3요소인 노동·자본·토지는 예술 창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작품을 제작하는 인력과 제작비도 꼭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안정된 작업공간이 절대적이다. 장르나 작가에 따라서는 공간이 먼저 주어져야 그 규모를 바탕으로 작품 설계에 돌입할 수 있을 정도다. 따라서 예술기관이나 개인이 제공하는 레시던시 프로그램은 많은 예술가들이 관심을 갖는 사안이다. 레지던시가 제공되는 곳이라면 그 지역을 잘 몰라도 일단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뒤 찾아가기도 하고, 반대로 특정 지역에 기반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오래도록 그곳에서의 레지던시 기회를 기다리기도 하는 게 작가들이다. 생생한 작품 소재를 찾기 위해 탐사보도 취재원만큼 지역 리서치에 열심인 이들 또한 작가들이다. 그러나 레지던시 공간은 한시적으로만 사용이 허락되는 공간이다. 기존 지역에 있는 일터와 작업실을 돌보기 위해 이들은 두 지역을 오가며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이들은 지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더 넓은 공간을 체험하고 확장된 영역 안에서 기회를 찾는다. 많은 두 지역 거주자들의 특징일 것이다. 그러나 ‘주거분열’로서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그것은 작가로서의 창작 욕구와 결부된 성장전략이기도 하면서 그 거주 형태의 임시성에 어떤 불안 요소도 도사리고 있을 것 같다. 나는 궁금했다.


[그림 2. 두 거주지 사이의 이동.]

미술가이자 큐레이터인 오종원이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10년 넘게 퍼포먼스, 설치, 영상 등의 작품을 발표하고 최근 ‘피그헤드랩(Pighead Lab)’이라는 전시장 겸 예술실험 공간을 운영하는 그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부산, 광주, 인천 등에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하, = 질문자, - 구술자.

= 왜 두 지역살이를 하게 되었나.

- 2010년부터 2017년까지 거의 매년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렇게 됐다. 한 번의 지속 기간은 짧으면 3개월, 길면 9개월이나 10개월. 평균적으로는 6개월. 우선은 집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레지던시를 찾기 시작했는데, 프로그램 예산의 근거가 되는 거점에 어떤 지정학적 배경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 그 거점으로 이동할 때는 주소지를 옮겼나.

- 옮기지 않았다. 남자들은 예비군 훈련도 있고 해서 주소지 변경이 민감한 사항이다. 그리고 생업을 위해 촬영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기 때문에 매주 서울에 올라오게 되는 구조가 발생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두 지역을 이동했나.

- 이동주기는 평균 주 1회였는데 교통비 부담이 있어서 2주에 한 번씩일 때도 있었다. 광주의 경우에는, 원래 그곳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막상 거기서 연애까지 하다 보니 아예 광주에 자리를 잡을까 하는 고민도 했다. 그런데 문화적 차이가 확실히 있다. 목적이 있는 한 그 지역은 나에게 대상화될 수밖에 없겠더라. 방문객으로 보는 시선도 불가피하다. 어떤 지역을 단순히 방문하는 것과 그곳이 내 삶의 거점으로 변화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 그런 생활이 가족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 가족들에게 ‘쟤가 저곳 사람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주게 된 듯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자주 쓰는 식기들 사이에서 내 것만 빠져있거나 내 방이 창고처럼 돼 있거나. 서운한 마음도 조금 들었다. 동생 부부도 상당히 오래 주말부부 생활을 하는데 그들에게는 오랜 기간을 두고 정해진 패턴이 있다. 나는 그런 규칙성이 없으니까 집에서 점점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 가장 큰 장단점은 무엇이었는가.

- 교통과 생계의 불안정성이 가장 불편했다. 그리고 기존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것도 같았다. 물론 나의 정체성을 인지하는 방법이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은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집과 분리된 나만의 공간을 가지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식비와 교통비를 해결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 이동과 주거를 분리할 수 없을 때의 제일 큰 어려움이 무엇일까.

- 지역의 경계를 가로지는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위생과 건강이 보장되는 시설을 찾기 어렵다는 것. 특히 의료 같으면, 병원 가기를 참았다가 서울(집)에 와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레지던시에서는 취사가 불가한 경우가 있고, 기초적인 식단을 꾸릴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지 않을까. 추가적인 생활비, 그리고 불안정한 상황 발생이 가장 공통된 문제일 것으로 짐작한다.

= 자, 기존에 살던 집에서 탈영역화됐다. 레지던시에서의 적응은 재영역화되는 과정이다. 원래 살던 집과 낯선 작업공간 사이에서 완전한 탈거도 완전한 정착도 부재하는, 노마드의 선형적 궤도와도 다른, 반복적 회귀에 초점이 맞춰지는 라이프스타일. 소속감을 두는 곳이 있었나.

- 나에게는 일이 있는 레지던시가 메인, 집은 서브였다. 크고 작은 새로운 인간관계와 조직을 경험하는 레지던시 지역에서 소속감을 찾게 되더라. 회사원에게 어느 순간부터 집이 부속 공간이고, 회사가 주(主)가 되는 느낌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사귀는 애인이 지방에서의 구직을 고려하다가 결혼한다면 주말부부로 살게 될 가능성에 관해 묻기도 하더라. “거기 가면 나는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거점이 그리 옮겨갈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거점 주변에 사냥터를 잡는 게 일반적일 테데, 이건 마치 사냥터를 찾아서 거점이 따라가는 현상과 같지 않은가. 농경사회에서 수렵사회로 퇴화하듯.

= 그것이 서울이나 도시에 대한 집착과 관련이 있을까.

- 주변을 관찰해 보면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직하면서 앞으로 점점 주류사회에 속하기 어려울 거라는 심리적 압박을 느끼거나, 능력이 안 돼서 지방으로 내려갔다는 부끄러움마저 갖더라. 그게 이해가 안 되지 않는다. 만일 내 아내 될 사람이 울릉도로 간다면 내가 그리로 아예 이주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꼭 직업 때문이 아니더라도 서울에서 지킬 것들이 있다. 나이 들수록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 말이다. 가령, 의료.

= 레지던시 공간에서의 ‘장소 만들기(placemaking, 주변 환경을 개선하고 사회적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공간을 창조적으로 활용하고 변화시키는 행위)’ 실천은 어떠했는가.

- 갈수록 온전히 내 공간이 되어야 잠들 수 있게 되었다. 영역과의 싸움. 딱 내 자리라 여기는 곳. 이걸 확보하는 데에 상당히공이 많이 들었다. 화장실포비아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화장실 개척이 어려웠다. 그래서 오히려 병원, 백화점 화장실을 이용한다든지 깨끗한 화장실이 있을 만한 시설을 탐색해 두었다. 그리고 어느 가게를 뚫어놓으려고 하는 습성이 생겼다. 경험상 퍼마켓이나 분식집이 가장 무난하다. 들락날락 하면서 현지인 이웃을 사귀고, 정보를 얻기에도 적합하다.

= 두 지역살이를 해 본 뒤 그러한 거주양식이나 지역살이에 대한 인식변화가 있었는가.

- 오래 지속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 더 하고 싶지는 않다. ‘떠나는 것도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예상보다 큰 기회비용을 따른다. 애완동물 돌보기처럼 한 군데 있어야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물론, 이동을 통해 정체성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마치 온라인에서에서 그렇듯 타지에서 익명성 구축이 가능하다.

이후에 다른 자리에서 여러 사람들과 두 지역살이에 관한 토론을 이어갔다. 혹자는 그것을 한국에서만의 독특한 현상으로 보고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다만, 이제까지는 학자들이 주로 국가 간 이동과 관련지어 ‘이곳에 속하면서 동시에 저곳에도 속하는(I am here and I am there)' 네트워크 발생을 분석했는데, 그 네트워크를 국내 거주에도 적용해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다른 생각도 들었다. 두 지역살이를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것을 대하는 한국인의 자세에는 일종의 고유함이 배어날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대학을 다닌 뒤에 주로 베를린이나 뉴욕에서 살았던 백남준 씨가 한 말 중에 아직도 인상적으로 기억나는 게 있다. 한국인은 약간 수렵민적인 성향이라서 사냥감이 있으면 어디든 따라가며 산다. 사냥감이 다른 쪽으로 옮겨가면 그것을 찾아 이동한다. 하지만 일본인은 어민적인 성향이라고 할까, 원양어업에 나서기는 해도 자신의 포구,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 말을 해주었다. 그게 맞는 말이라면 나 역시 지금은 원양어업을 나와 있지만 이러다가 문득 내 포구, 내 마을로 돌아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4월 타계한 류이치 사카모토는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p. 181~182)에 이렇게 남겼다고 한다. 서울과 떨어진 여러 도시에서 각종 레지던시를 경험했던 오종원이 들려준 이야기도 같은 선상에서 여운으로 남는다. 그는 자신의 이동을 “마치 사냥터를 찾아서 거점이 따라가는 현상”에 비유했다. “농경사회에서 수렵사회로 퇴화하듯” 끝없이 새로운 기회를 앙망하며 신체와 물자를 지역에서 지역으로 나르는 생존의 무게를 느꼈다.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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