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후, 2030의 선택에 관해 엇갈리는 해석 혹은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는 몇 차례의 투표성향만 보고 특정한 세대와 성별의 성향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려는 성급한 시도도 종종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충분히 ‘공정한’ 분석일까? 우리의 분석이, 설령 인상비평의 차원일지라도 조금 더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 시선이 필요하다. 하나는 실제로 사람들의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주는 공적 행위자들, 직접적으로 말해 정당과 정치인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왔는가의 맥락이다. 다른 하나는 청년집단이, 적어도 동일한 ‘청년’인 양 여겨지는 사람들이 어떤 사건과 마주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그들 사이에 어떠한 내러티브를 만들고 공유해왔는지를 고려하는 시선이다. 물론 누군가의 자기서사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곧 그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동조하는 결론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자기서사라는 것은 대체로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또 기만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을 원망하든, 좋아하든, 혹은 대화를 통해 설득하고자 하든, 그러한 서사를 이해하지 않고는 정확한 목적지에 가 닿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약간의 정확성을 담보하려는 노력이다.
1.
대문자 정치의 맥락부터 간단하게 짚어보자.
탄핵 정국의 충격이 워낙 큰 만큼 쉽게 잊히는 측면이 있지만,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이후에도 지속될 두 가지 전략적 방향성을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 급진적인 면모를 덜어내고 소통과 합리성을 내세워 중도층을 공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30여성집단을 안정적인 정권지지층으로 확보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중도보수화’ 전략은 대체로 차질없이 실행되었다. 이미 강하게 결속되어 있던 친문 지지층은 정권이 승리를 위해 다소간의 타협을 하는 것 정도는 용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더불어 경쟁자가 (포스트-)박근혜 국면에서 비합리성의 대표자라는 태그를 벗어내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민주당의 중도층·'합리적'보수 공략은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이를 바탕으로 민주당은 2020년 총선까지 현대 한국 정치사에 손꼽힐 만한 영광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전략의 경우, 2017년 대선의 "페미니스트 대통령" 선언 이후 친여성 정책이 이어지면서, 또 기존에 구축되어 있던 여초 커뮤니티 지지층의 열성적인 활동 하에 2030여성을 문재인정권의 굳건한 지지층으로 확보하는 성과로 이어졌다(나는 정의당이 페미니스트 노선을 천명했음에도 지지층 확대에 실패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해 정의당은 여성 지지자 확보투쟁에서 민주당을 앞지르지 못했다).
2019년 조국사태는 무엇보다 '합리적' 중도층과 강성지지층의 분열과 적대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위기였다(이후 조국사태 및 파생 사건들은 실제로 그런 결과를 초래했다). 그럼에도 2020년 총선에서 정권은 두 가지 이점을 누렸다. 코로나방역에서 한국이 '서구 선진국' 대비 보여주었던 성공적인 대응은 높은 정권 지지율로 돌아왔다. 동시에 상대편의 황교안 체제의 정치적 무능은 보수 지지층조차도 학을 뗄만한 것이었다(총선 전후 네이버뉴스 댓글란이나 일베의 반응을 보면 우파 지지층의 절망과 탄식이 하늘을 찌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국회 180석이라는 기념비적인 승리와 함께 민주당은 20년 장기집권까지도 꿈꿔볼 수 있게 된다.
2.
2022년 3월 9일 이후의 우리는 민주당의 원대한 꿈이 실패했다는 결과를 알고 있다.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의 3/5을 확보했던, 그리고 세계적으로 봐도 비교대상을 찾기 힘들 만큼 활동적이면서도 충성도 높은 강성 지지층 집단을 지녔던 집권세력이 23개월만에 이렇게 하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세 가지 표면적인 이유를 꼽고 싶다.
첫째, 조국사태 및 이어진 (윤석열을 대권주자로 만들어준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된) 검찰개혁·사법파동, 그리고 박원순사태 등을 거치며 강성지지층과 중도지지층이 분열되었고, 당정청은 이를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 상황이 악화되어 가는 도중 당정청의 유력 인사들이 공개된 매체를 통해 남긴 코멘트를 상기해보자. 이들에게는 중도층과 강성층을 아우른다는 전략적 목표보다는 당장 강성지지층의 정념을 대변하고 당내에서 지지해줄 세력을 확보하려는 당장의 전술적 목표가 더 중요했다. 공식적인 정치적 대표자들이 내린 그와 같은 선택은 집권당의 지지기반 자체의 붕괴를 촉진하는 것이었다.
둘째, 당내에서 '대안세력'을 육성하지 못했다. 민주당이 정말로 20년 집권을 목표로 했다면 반드시 고민했어야 하는 문제가 이것이다. 대중민주주의에서 그 어떤 정치세력도 100% 올바른 선택만을 내릴 수는 없다. 어느 시점에 유권자들은 설령 현재보다 열등한 선택지라 할지라도 지금과는 다른 "대안"을 찾게 된다. 따라서 정당의 장기집권을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그 대안을 다른 경쟁정당이 아닌 바로 현재의 집권당 내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배분이 필요하다. 간단한 비유를 들자면 소비자가 다른 마트로 갈 필요없이 우리 마트에서 모든 쇼핑을 해결하도록 여러 브랜드의 상품을 갖춰두는 것이다. 예컨대 "이명박근혜"라는 말은 두 정권의 연속성만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박근혜는 2012년 대선에서 MB를 철저하게 비판하면서 민주당이 아닌 자신들이 진정한 대안임을 주장했고, 승리했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몇 년 간의 민주당은 과거 노무현정권 시절 당내 분파투쟁으로 붕괴했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원팀'은 특히 한국에서의 선거전에--어쨌든 한국인들은 뭔가 단합되어 열심히 하는 모습 자체에 매료되는 면이 있다--매우 강력한 효과를 보이는 전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내에서 대안적인, 즉 결과적으로는 정권연장을 가능하게 해줄 미래의 후속세대가 성장하는 데 그렇게 효과적인 선택은 아니다. 특히나 "내부총질"이라는 말에서 암시되듯이, 그러한 대안세력을 철저하게 짓밟고 싶어하는 강성 권리당원들의 성향은 제어되지 않았다. 결과는 '현 지도부에 실망한 사람들'을 여전히 정당 지지층으로 붙들어놓을 수 있는 안전장치, 즉 당내 대안세력의 부재로 다가왔다. 현재의 정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설령 아무리 성에 차지 않는 수준이라 할지라도 다른 정당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유권자에게 강요한 셈이다. 이는 20년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 취할 전략이 아니다.
셋째, 부동산 정책 문제다. 21대 총선 이전에도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있었으나, 결정적인 것은 총선 이후 강행된 임대차3법이었다. 한국의 부동산시장에 '유럽적인'(그러나 도대체 어디의, 어떤 유럽인가?) 보호장치를 도입하겠다는 의도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상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열정적인 정책추진자들은 정책의 의도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단순히 경제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도덕적 실패로까지 전이되면서 상황은 치명적으로 흘러갔다. 임대차3법의 대표발의자로서 법안 통과 직전에 임대료를 미리 인상한 박주민 의원은 이후로 '안 보이는 게 당에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다. 주택가치의 급격한 상승국면 속에서, 다주택자는 한 채만 남기고 정리하라는 지시를 따른 사람이 윤석열과 금태섭 밖에 없다는 조롱섞인 평가가 나왔다. 그 배후에는 "결국 너희들 잇속 챙기려고 모두를 힘들게 한 거잖아"라는 정권을 향한 도덕적 경멸의 감정이 들어가 있었다. 실제로 부동산 정책 추진자들의 동기가 무엇이든, 이와 같은 도덕적 불신은 쉽게 뿌리칠 수 없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LH사태는 그 흐름에 정점을 찍었다.
이후 경선에서 상대적으로 중도파의 지지를 획득하기 어려운 후보가 승리하면서--필연적으로 해당 후보는 자신의 '온건중도적' 성향을 강조하는 전략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민주당의 필승패턴은 더는 유효하게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3.
이번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관전포인트 중 하나였던 20대 남성·여성 유권자의 움직임은 위와 같은 맥락을 염두에 두되,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의 젠더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3-1. 2017년 대선 전후로 2030 여성=친민주·친문이라는 공식은 거의 확고해진 듯 보였다. 주지하다시피 그 공식을 파괴한 결정타는 2020년 여름 박원순 성폭력 고발·자살 사건이었다(안희정-오거돈 케이스도 상처가 있었지만 박원순 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성폭력 고발 및 자살이라는 전개도 충격적이었지만, 일부 친정권·민주당 인사들의 처신은 여초 커뮤니티에서 '정권유력자들이 성폭력 피해여성에게 집단적으로 2차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여론을 촉발했다. 때맞춰 터진 LH 사태와 맞물려, 2021년 서울특별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선택이라는 주장이 2030 커뮤니티에서 강력한 목소리를 얻었다. 남성은 물론 여성층 역시 급격히 이탈하면서 이제 민주당이 더는 2030여성의 지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3-2. (실제로는 대략 30대 중반 이하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는) 20대 남성집단은 정치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매우 까다로운 면모를 보이는 집단이다. 거친 스케치부터 그려보자.
이들은 한편으로 2008년 광우병 논쟁 이래 한국 공론장에서 일정한 지분을 차지하게 된 '反감성의 정치'의 회의주의를 장착하고 있으며, 더불어 2010년대 초중반에 유행한 헬조선 담론의 내러티브, 즉 586을 포함한 기성세대가 한국을 청년들이 착취당하고 무력화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인식에서 나오는 지독한 피해자 의식이 있다. 이들의 '능력주의'는, 20대의 능력주의를 분석하는 대부분의 논의가 간과하지만, 단순히 가치중립적인 지적·신체적·사회적 역량만을 중요시하는 게 아니라 치열하게 노력하려는 태도를 갖춘, 또 도덕적·법적인 규범을 엄격하게 준수한 이에게만 존경받을 '자격'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또 다른 유형의 도덕주의적 언어라 할 수 있다.
20대 남성의 '공정'은 분명 자유로운 경쟁에 기반하지만, 그것이 무제약적인 시장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강하고, 합리적이고,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잘 작동하는 고도화된 행정국가를 요구한다. 소수의 극우파를 제외하면 이들은 국가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전 세대 (신)자유주의자들의 신앙적 기조를 공유하지 않는다. 북한은 적이지만, 중국이 더 경계해야 할 또 경멸해야 할 적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민족주의는 결코 스러지지 않았다. 일선에서 고생하는 공무원·관료에게 적절한 보상과 대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갑질을 한다거나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위정자는 철저한 비판과 성토의 대상이 된다. 자신들이 개돼지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자조하면서도, 자신들을 개돼지로 취급하는 이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와 정치적 의제를 대변해줄 사람, 자신들이 존경할 수 있는 대표자를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대표자에게 어떤 약점이 있는지 상세하게 캐어보며, 그렇게 발견된 약점이 약간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언제든 지지를 철회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들은 명백히 비합리적인 선택을 내릴 때조차도 자신들이 비합리적인 열광에 굴복하는, 곧 ‘선동되는’ 존재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따라서 20대 남성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지만, 그 지지는 한 순간의 실수로 흩어져버릴만큼 불안정한 것이다. 요컨대 그들과 정치적 대표의 관계를 형성하는 과제는 극도로 까다롭고 불안정한, 무한한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단 하나의 실수만으로도 연락처를 차단해버리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3-3. 탄핵정국 이후 다수가 문재인과 민주당을 지지했던 2030남성이 점차 반정권 기조로 돌아서게 된 핵심적인 요인은 역시 (안티)페미니즘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민주당의 일부 스피커들이 20대 남성의 불만과 불안에 경멸적인 코멘트를 붙이는 실책을 저지르면서, 이들은 헬조선 담론의 서사와 결합한 독특한 안티페미니즘적 인식을 구축했다. 페미니즘 정책이란 국가성장기의 단물을 다 빨아먹은 586남성들이 여성을 차별했던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면서 이를 2030남성을 역차별하는 선택으로 속죄하는 잘못된 행위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페미니스트란 이러한 586남성의 죄의식을 파고들어, 청년남성을 희생하여 청년여성에게 자격 이상의 특권을 부여하는 사회로 한국을 재구축하는 사회악이다. 이 서사에서 청년남성은 계속해서 국가와 여성, 586 남성에게 버림받고 차별당하는 '희생자'의 역할을 맡는다. 이들이 보기에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페미니즘에 사로잡힌 586민주당 정권을 타도하고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를 추방하는 길뿐이다.
민주당과 정권으로부터 버림받고 착취당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된 2030남성에 주목한 것은 이준석, 하태경과 같은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일부 정치인들이었다. 수 년에 걸쳐 "20대 남성"의 사고구조를 이해하고 그 신뢰와 지지를 얻으려는 이들의 노력은 꽤 오랜 기간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별다른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전환점은 역시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였다. 민주당의 도덕적 우위가 붕괴한 조건 속에서 이들은 20대의 열망을 공식적인 정치에서의 발화로 연결하는 '대표'의 역할을 수행했고, 2030 남성은 보궐선거의 압승을 통해 드디어 유의미한 정치적 집단으로서의 존재감을 확보했다는 자기효능감과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진 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을 최연소 야당대표로 당선시키는 데 일조하면서 2030남성에게 국민의힘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자신만의 정치적 대표가 되어줄 유력한 후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4.
이준석과 윤석열의 지난한 투쟁은 생략하고, 이번 선거의 전환점 중 하나였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서부터 시작하자. 이재명의 닷페이스 출연 결정이 공표된 이후 곧바로 꽂아넣은 이 공약은 여전히 윤석열을 무능한 불통의 아이콘으로 바라보던 2030남성의 여론지형을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한다(직전까지 윤석열을 가장 치열하게 증오하고 물어뜯던 이들은 다름아닌 2030 우파 남성이었다). 여가부 폐지 공약이 청년 남성의 안티페미니즘을 윤석열 지지로 이끌어오리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그런 선택이 여성들로 하여금 대대적으로 이재명 지지로 집결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지 않겠는가? 2030남성을 건지려다 여성표를 잃어버리는 것은 전략적 실패가 아닌가?
여론조사를 보면, 청년 여성층이 이재명 지지로 결집하는 흐름은 선거일 직전에서야 나타났다. 물론 박원순 사태 등을 겪으면서 여성층 내부에서도 여가부에 대한 회의감이 높아졌고, 따라서 여가부 폐지 자체가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민주당, 그리고 다름 아닌 이재명 후보에 대한 여성층의 불신과 비호감이 매우 컸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당시의 이재명은 여성층 대상 비호감도가 매우 높은 후보 중 하나였다. 경선 과정에서 이낙연 캠프와 이재명 캠프의 감정이 악화됨에 따라 이낙연을 지지하는 여초에서는 경선 이후에도 노골적인 반이재명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계속 보일 정도였다. "이재명이 되느니 차라리 윤석열이 되는 게 문통을 지키는 길이다"라는 식의 주장 말이다. 여가부 폐지 공약 이후에도 "윤석열은 싫다, 하지만 이재명도 싫다"는 입장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여초의 이재명 지지자들은 막판까지 '윤석열을 막기 위해 이재명 지지자를 결집시킨다'는 과제를 효율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캠프의 안티페미니즘적 전환의 반작용이 곧바로 나타났다면, 따라서 윤석열 캠프가 안티페미니즘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면 이번 선거운동의 전개는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층의 이재명 지지세 집결이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은 관계로 전자는 이후 대선 레이스에서 대체로 본래의 입장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이재명은 그렇다고 2030남성을 포기할 수도 없는만큼 자신의 기존 컬러와 배치되는 '대통합'의 구도를 계속 밀고 나가야만 했다.
5.
20대 여성은 최종적으로 이재명 지지로 어느 정도 결집하는 데 성공했고, 결과만 놓고 보면 윤석열은 압승에 실패, 이재명은 상당히 선방한 셈이 되었다. 몇 가지 시사점만 이야기하자.
첫째, 새로운 정권이 2030남성의 철저한 대변자가 될 수 있을지는 조금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 청년 여성층이 반대편으로 결집하지 않았다면 마음놓고 2030남성을 새로운 지지자 집단으로 확고히 결속시키는 선택을 내릴 수 있겠지만, 과반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러한 방향을 고수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무엇보다 2030남성은 위에 말했듯이 안정적인 지지기반으로 삼기에는 정치적으로 너무나 까다롭고 불안정하며 비합리적인 요구사항도 적지 않은 집단이다. 내가 정치인이라면 2030남성의 지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일을 피하는 게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판단을 내릴 것이다.
둘째, 민주당 정치인들이 2030여성층과의 대표관계를 쉽게 회복할 수 있을지 역시 미지수다. 결국 막판 대결집은 어디까지나 "윤석열을 막아야 한다"는, 비호감과 적개심에 근거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번 선거 이후 이재명이 새로운 여성지지층을 확보하는 광경은 매우 흥미로운 풍경이지만,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민주당이 구축했던 안정적인 지지관계를 다시 세울 수 있을지, 세운다면 어떻게 가능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셋째, 국민의힘 혹은 민주당이 각자 자신들의 약점, 즉 국민의힘의 경우는 20대 여성, 민주당의 경우는 20대 남성 집단에게 어느 정도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 혹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적절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어쨌든 지난 6년간 한국 정치는 매우 거칠고 비효율적인 여정을 통해 20대 유권자들을 발견해냈다. 좋든 싫든 이 유권자를 무시하고 버리는 건 전략의 차원에서든 사회적 건강의 차원에서든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넷째, 이제 20대 보수화, 20대 개인화, 20대 신자유주의화... 등 몇 가지 수치화된 조사결과에 관찰자의 상상력과 편견을 불어넣어 만든 설득력 없는 '분석'은 정말로 그만둘 때가 되었다. 실제로 저 집단에서 어떤 언어와 내러티브가 유통되는지, 그리고 각 주요 정치적 행위자의 움직임이 이들에게 어떻게 해석되는가를 분석하지 않은 채 여론조사와 투표결과만 놓고 어느 세대의 의식구조를 이해하고 규정할 수 있다는 지적인 게으름은 집어치우자. 차라리 본인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다른 세대를 저렇게 규정하고 싶은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이른바 연구자들이, 그것도 인문학적이고 사회과학적인 훈련을 받은 연구자들이 최소한의 탐색도 수행하지 않은 채 자신의 편견을 그대로 대중에게 '연구'인양 공표하는 태도다. 그런 식으로 우리들의 공부와 연구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일에 도대체 어떤 효용이 있는가? 스마트폰과 SNS, 커뮤니티의 세계가 열린 이후, 우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말하고 논쟁하며 어떤 상황을 어떻게 규정하고 평가하는지를 기록한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이제 연구자들이 헛소리를 하면 사람들은 바로 명확한 근거를 들며 헛소리라고 응답하는 것도 가능하다. 바꿔 말해,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가서 읽고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6.
종종 '진보적'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내러티브를 이야기하곤 한다. 격화된 입시경쟁이, 또 신자유주의가 (1998년부터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었다고 하면, 도대체 왜 지금 20대가 더 신자유주의적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 20대의 인성을 망가트리고, 경쟁적으로 만들고, 혐오발언을 내뱉도록 하고, 공동체적 정신을 부식시키는 등...의 결과를 초래했고, 그래서 어쨌든 20대들이 ‘우리편’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연구나 분석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고전적인 유형을 되풀이하는 사례에 불과하다. 나의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지 않는 게 도덕적 파탄의 증거가 된다는 이야기는 최소한의 자기반성과 비판조차 결여한 자기맹목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런 연구자들 중 20대들이 공유하는 가혹할 정도로 촘촘한 도덕적 기준의 체를 손상없이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무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한쪽이 도덕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라, 다른 시공간, 다른 집단 속에서 다른 도덕언어를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차이를 직시하고 (설령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하는 작업을 시도조차도 하지 않을 거라면, 그런 학문은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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