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 한국학 / 김동규

한국미에 대한 이론 가운데 야나기 무네요시의 것을 빼놓기 어렵다.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쇠잔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론의 위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그가 한국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기도 했고 일본 제국주의 시절 일본인으로서 누구보다 한국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기에, 충분히 공감될만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의 한국 미론이 상당히 평면적이며 특정 시대에 국한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간헐적으로 야나기 무네요시의 담론을 비판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비판의 범위와 깊이에 있어 통렬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비판하는 이들 대개가 옹색한 민족주의에 갇혀서 옹졸하고 박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야나기 무네요시, 출처:https://japanese.korea.net/Events/Overseas/view?articleId=179

이데카와 나오키의 『인간 부흥의 공예-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를 넘어서』라는 책은 일본 공예 연구가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과를 저울질한 책이다. 특히 야나기의 한국미에 관한 생각을 비판하는 부분은 무척 통쾌했다. 한국 학자가 아닌 일본 학자가 그 일을 해낸 것에 대해 씁쓸함이 남기는 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야나기의 미론이 무조건 부정될 이유는 없다. 다만 야나기의 한국 미론을 넘어서는 출중한 담론을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한국학 연구자들은 분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데카와의 야나기 비판은 한국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뼈아픈 반성을 촉구한다.


야나기의 한국미 담론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한국미는 첫째, 비애의 예술에서 나온 것이다. 둘째, 곡선과 흰색을 주조로 삼고 있다. 이데카와는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가지고서 비판의 포문을 열고 있다. <추초문의 항아리>가 그 작품인데, 야나기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추초문(秋草紋)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흔히 국화나 난이 자주 그려져 있다. 늘 한 가닥 쓸쓸함을 띄워 인간의 정을 마음에 지니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원래는 뚜껑이 씌워진 물건이었을 것이다”


이데카와는 여러 사료에 의거하여 야나기의 해석을 반박한다. 그것은 가을풀도 아니고 뚜껑이 씌워진 항아리도 아니다. 조선 공예품 자료를 종합해 보면, 그 무늬는 매화나 창포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항아리가 아니라 술병의 아랫부분일 공산이 크다.


여기에서 이데카와의 빼어난 추론이 이어진다. “그럼 왜 이 문양을 ‘추초’라고 애써 불렀던 것일까? 어감의 아름다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것이 그가 ‘애수의 조선’을 말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호칭이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야나기는 자기가 미리 세워둔 한국미론을 통해 확증 편향을 가졌던 셈이다. 말하자면 그는 한국미는 비애에서 나온다는 선입견을 가지고서 성급하게 작품을 예단했다. 그렇다면 날카로운 직관과 뛰어난 예술적 안목을 가진 야나기가 왜 이런 어이없는 편향에 사로잡힌 것일까? 저자는 이렇게 추측한다. 이 가설 역시 설득력이 있다.


“1919년에는 민족의 독립을 부르짖는 3.1운동이 일어나 전 국토에 탄압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참가자가 200만명, 이날부터 1년 동안 이 운동과 관련해 목숨을 잃은 자가 8,000명, 부상자가 4만 5,000명, 체포자가 5만명에 이르고, 공중에 매달거나 불로 지지는 등 실로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일제가 무참한 고문을 자행한 이 대사건의 여파가 가시기 전인 다음 해에도 그는 이곳을 방문했다. 이 비참한 상황은 야나기의 조선 공예론이 탄생하는 데 깊이 영향을 주어, 그 객관성을 없애는 원인이 된 듯하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야나기가 비정한 군국주의자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만일 이런 이유로 야나기가 확증 편향을 가졌다면, (이데카와가 지적하는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애론은 존중되어야 한다. 과하게 매도하기보다는 소소한 문제들은 지긋이 눈감아주어야 한다. 한국미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입체적인 담론을 만들어야 하는 일과는 별개로, 야나기의 담론은 전체 한국미 담론의 일부분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혹시라도 이데카와가 야나기를 비판한 듯 보이지만 실상 그를 우회적으로 찬미하기 위해서 이렇게 추론한 것일 수 있다. 그러하다면 그가 내린 추론의 역사적 진상을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나 크게 반박할 자료가 없다면, 나는 이 해석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喜左衛門 大井戶, 조선 16세기 밥그릇으로 추정.

정말 큰 문제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한국미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외국인들은 진심으로 ‘한국적인 것’을 궁금해하는데, 우리는 주야장천 글로벌 스탠다드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BTS, 한강, <기생충>과 <미나리>가 세계무대에서 혁혁한 성과를 내고 있는데도 한국미를 다루는 한국학은 후지고 촌스러운 이미지로만 우리 뇌리에 남아 있다. 야나기의 것보다 더 고약한 확증 편향이다.


김동규(철학자, 한국연구원 학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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