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에 대하여 / 김동규

몸싸움은 대개 근력의 세기로 판가름 난다. 더러 기지를 발휘하여 판세를 뒤집는 경우도 있으나, 본능적인 민첩함과 근력이 승패를 가른다. 칼과 창이 등장하고 난 후에도, 물론 도구 사용 능력이 덧붙여 요구되었지만, 여전히 근접전에서는 근력과 민첩성이라는 몸의 역량이 결정적이었다. 이런 싸움의 판도를 현격하게 바꾼 것이 바로 활(弓)이다.


활이 등장하면서 전투의 양상은 완전히 바뀐다. 활은 원거리에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채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다. 심지어 정확히 보이지도 않는 적을 향해 화살 세례를 퍼붓기도 한다. 이제부터 전쟁의 승패는 인간 몸의 근력이 아니라 도구 기계의 성능으로 결판난다. 근대전에서 ‘포문을 열다’라는 말이 전쟁 개시를 뜻할 정도로 대포의 위력은 엄청났다. 특히 보이지 않는 표적을 어김없이 타격할 수 있는 곡사포는 가히 위협적이었다. 이런 점에서 최첨단 대륙간 탄도 미사일도 처음 활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는 활을 가리키는 두 개의 낱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톡소스toxos이고 다른 하나는 비오스bios다. 흥미롭게도 비오스라는 단어는 앞 음절에 강세가 있으면 ‘활’이란 뜻으로, 뒤 음절에 강세가 있으면 ‘생명’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동음이의어를 가지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활이 생명을 뜻하는 말이지만, 하는 일은 죽음이다.” 활이라는 게 자기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무기이기에, 이런 역설적인 문장이 가능하다.


활은 인간의 행위와 운명을 설명하는 비유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이라는 책에서 그리스 비극을 설명하면서, ‘하마르티아(Hamartia)’라는 단어를 소개한다. 하마르티아는 비극의 주인공들이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끔 하는 어떤 실수, 잘못을 가리킨다. 그런데 원래 이 단어는 화살을 쏠 때 과녁에 빗맞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인간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행위하더라도 뜻밖의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시위를 떠난 활은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예컨대 청년 오이디푸스는 부친을 살해하고 모친과 동침한다는 신탁이 꺼림칙해서 자기 고향을 떠난다. 당시 그가 알고 있던 부모는 실은 양부모였다. 이웃 나라로 방랑하다가 성질 고약한 노인(친부 라이오스 왕)의 행패를 응징하다 죽이게 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역병을 퇴치한 영웅이 된다. 마침 왕이 실종된 그 자리를 오래 공석으로 놔둘 수가 없어서 사람들은 그 영웅과 왕비(친모 이오카스테)의 결혼을 주선한다. 어떤 점에서 오이디푸스는 아무 잘못이 없다. 무지 상태에서 선한 의도로 행위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쏜 선의의 화살은 번번이 과녁을 빗나갔다. 결국 그의 손을 떠난 화살은 자기 눈을 맞춘 꼴이 되었다.


동양 고전에도 활이 등장한다. 『중용』에 보면 이런 말이 등장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활쏘기는 군자와 비슷한 것이 있으니 정곡을 잃으면 돌이켜서 그 자신에게서 구한다.”(子曰 射有似乎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己身)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한다는 뜻의 ‘반구(反求)’라는 말에도 이처럼 활을 쏘는 태도가 내포되어 있다. 반구란 뜻대로 안 될 때 남 탓을 할 게 아니라 자신의 자세나 태도를 변경시키는 것을 뜻한다. 자기 수양의 방법이다. 실패했을 때, 보통 사람들은 남 탓을 한다. 딱히 탓할 사람이 없으면 환경이나 조상에게까지 탓을 돌린다. 잠시 마음이 편할 수는 있어도, 그렇게 해서는 같은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타자의 반응에 호응하여 자신을 조정하는 방법, 그것이 반구다. 이것도 활쏘기에서 나온 말이다.



예로부터 한국인은 활쏘기에 능숙했다고 하며, 지금도 수십 년 간 양궁은 올림픽 금메달 효자 종목이다. 한민족을 가리키는 동이(東夷)라는 말은 원래 ‘활 잘 쏘는 동쪽의 민족’을 뜻한다고 한다. ‘오랑캐 이(夷)’를 큰 대(大)와 활 궁(弓)으로 풀이한 설명이다. <정사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동이족(가운데 읍루)에 대해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곳 사람들은 활쏘기에 뛰어나 사람을 쏠 때에는 모두 눈을 적중시킨다. 화살에는 독이 칠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에 맞으면 모두 죽는다. … 이웃 나라 사람들은 그들의 활과 화살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끝까지 항복을 받을 수 없었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 하였다. 최근 우리네 문화 창작자들이 세계를 향해 활을 쏘고 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봉준호의 <기생충>, BTS의 노래들이 그것이다. 그들의 활이 정작 세계인의 선한 심중에 꽂혔는지, 행여 살상 무기는 아닌지, 혹은 편협한 민족주의자들의 농간으로 하마르티아로 판명되는 것은 아닌지, 반구의 성찰을 가질 때다. 이것이야말로 현재 긴요하게 한국학이 수행해야 할 과제다. 우리의 활은 ‘살림’의 비오스여야 한다.


김동규(철학자, 한국연구원 학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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