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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화면 속의 학생, 선생 / 김헌주

비대면 강의를 두 학기째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화면 속의 학생들을 바라보는 것은 자못 어색하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 전체가 변화와 혼란을 겪고 있지만, 교육 현장만큼 그 체감도가 높은 곳도 없을 것이다. 1학기에는 학교도, 선생들도 어찌 대처해야할지를 몰랐다. 지침도 혼란스러웠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허둥지둥 헤매느라 한 학기를 보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격 화상회의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가장 손쉬운 방법인 녹화를 선택했고, 한 학기 내내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서 혼자 모노드라마를 찍었다. 처음엔 학생들과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이 어색했고 슬픈 감도 없지 않았지만, 이내 적응이 되었고, 어떤 측면에서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학기가 끝나고 느낀 허무함에 절망했다. 무엇을 한 것일까. 학생들의 레포트를 읽고 첨삭해주기는 했지만, 학생들과 대화 한 마디 해보지 못했다. 사람들과 부대끼지 못하는 인문학이라니. 그걸 내가 몸소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4차산업혁명, 언택트(논택트), 교육혁신 등의 화려한 수식어들이 대학사회에서 운위되고 있는 현실은 최소한 내겐 시니컬하게 느껴졌다.

2학기에도 코로나 시대는 지속되었고, 비대면 강의는 이제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나 역시 적응하기로 했다. 하지만 학생들과의 교류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기에 실시간 원격강의를 실시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새 학기에는 수강신청 학생들의 인원이 적었고, 한 화면에 학생들의 얼굴을 다 볼 수 있는 수업이 가능했다. 4주 정도 실시간 원격강의를 진행한 지금, 개인적으로 수업의 만족도는 1학기보다는 높다. 학생들과 보다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원격으로 출석을 부르고, 학생들을 계속 호명하며 질문을 던졌으며, 수업시간의 절반을 발표 및 토론에 할애해서 지속적으로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다.



내 고민은 바로 이 지점이다. 실시간 원격강의로 대면 수업 못지않은 수업효율을 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대면 수업을 하더라도 PPT를 화면에 띄우고 설명을 한 후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필요에 따라 원본 자료를 보여주는데 그것도 DB화된 컴퓨터 자료를 보여줄 때가 많다. 원격 수업은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는 각종 자료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데 용이하다는 점에서는 대면수업보다 나은 점도 있다. 실시간 녹화기능과 강의참여 시간이 자동기록 되므로 출석도 별도로 체크할 필요가 없고, 학생들의 질문 및 건의사항은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으며, 개인적인 질문사항은 메일로 체크가 가능하다.


사실, 이 고민은 지난 3월 이후 실시간 원격 화상학술회의가 일반화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학회 편집위원회 등 소규모 회의가 원격으로 진행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 십 명이 참여하는 학술회의도 모두 원격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현장 참여 인원을 소수로 제한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원격으로 참여하는 이원화된 시스템 역시 일반화되었다. 이 과정 속에서 최소한 회의는 원격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느꼈다. 원격회의라는 한계 때문인지 논의사항이 압축되었고 불필요한 잡담도 줄었다. 원래대로라면 2~3시간 소요되는 회의가 1시간 만에 끝나는 기적(?)도 경험했다. 학술회의 역시 참여가 힘들었던 국외 학자들까지 손쉽게 참여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었다.

다만, 학술회의의 경우, 현실적으로 현장에서 토론하는 것보다는 논의가 깊이 있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만나서 대화하는 것, 전화하는 것, 문자로 하는 소통의 느낌이 각각 다른 것처럼, 화면 속의 대상과 토론하는 것은 아무래도 많은 절차를 생략하게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강의시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상술한 무수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던지는 깊이 있는 질문, 토론시간에 얼굴을 붉힐 만큼 격렬한 학술적 토론 등을 비대면 수업에서는 보기 힘들다. 또한 수업 내용 외의 소통은 사라졌다. 날씨에 대한 잡담, 캠퍼스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 것, 수업시간 정각에 들어온 학생들의 헉헉대는 숨소리, 강의가 끝나고 수줍게 건네는 학생들의 눈맞춤은 모두 사라졌다. 학기가 끝나고도 연락해서 안부를 묻는 학생도 이젠 만나기 힘들게 되었다.


얼마전 대면+비대면 혼용으로 진행된 소규모 학회 모임에서 오랜만에 뒷풀이를 가졌고, 무척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그때 알았다. 최소한 나는 만나야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학술모임과 강의, 회의 모두 비대면으로 가능함을 우리는 지난 반년 동안 경험했다. 그러나 만남에서 느껴지는 사람들 간의 부대낌까지 원격으로 해결할 순 없다. 매주 보는 화면 속의 학생들이 그리운 이유이다.


김헌주(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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