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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숭고 2: 독일 철학의 특징 / 김동규

하이데거는 헤겔의 친구였던 낭만주의 시인 횔덜린을 근대 속에서 탈근대를 살았던 선구자로 칭송한다. 횔덜린이 친구 뵐렌도르프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우리에게 민족국가라는 것을 자유롭게 사용하기를 배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네. 그리고 내가 믿기엔 서술의 명료성(Klarheit der Darstellung)이 우리에게 자연스럽듯이, 그리스인들에겐 하늘의 불(Feuer vom Himmel)이 그렇다네.” 여기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석은 이렇다. “독일인들에게 함께 주어진 것은 포착 능력, 영역을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 조직될 때까지 계산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과제로 주어진 것은 존재를 만나 놀라는 일이다.”


Friedrich Hölderlin by Wilhelm Schulz, in Simplicissimus, 1921|© Chronicle/Alamy

하이데거 해석을 따른다면, 여기서 서술의 명료성이란 개념(Begriff)으로 포착해내는(greifen) 합리적 사유능력, 근거를 따지는 이성적 능력을 뜻한다. 독일인들에게는 이런 능력이 천부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반면 그리스인들의 선천적 능력인 하늘의 불은 존재론적 감수성을 뜻한다. 즉 그리스인들은 존재에 대한 경이감에 탁월하게 예민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독일인들이 철학하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존재론적 감수성을 반드시 겸비해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결핍된 감수성을 얻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서술의 명료성은 독일 관념론자들이 능숙하게 구사한 덕목이며, 하늘의 불은 낭만주의자들이 간절히 동경했던 덕목이다. 하늘의 불이란 존재와 접촉하여 한꺼번에 전체를 직관하는 감성적 능력 혹은 온몸으로 존재를 수용하는 능력인데, 그것이 독일인들에게 부족하다. 그래서 횔덜린은 『휘페리온』에서 자기네 민족을 이렇게 질타한다.


“가혹한 말이긴 하지만 이것이 진실인 이상 나는 이야기하겠다. 나는 독일인만큼 전체성을 상실한 민족을 생각할 수 없다. 수공업자는 보여도 인간은 없고, 사상가는 보여도 인간은 없으며, 사제는 보여도 인간은 없고, 주인과 하인, 청년과 분별 있는 중년은 보여도 인간은 없다.” 기능화로 인해 파편화된 인간은 결코 존재 전체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동시에 존재론적 감수성이 부족하였기에 일차원적 인간이 됨을 쉽게 허용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동경은 감수성이 넘쳐나서라기보다는 감수성 결핍에 따른 반발에서 유래한 것이다.


거의 모든 근현대 독일 지성인들(괴테, 횔덜린, 헤겔, 낭만주의자들, 빙켈만, 니체, 하이데거 등등)은 그리스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대개 동경은 어떤 장애 때문에 발생한다. 높다란 장애물에 막혀 당장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동경을 키우는 촉매제다. 물끄러미 프랑스 혁명을 옆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던 독일인들은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고서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동경에의 열정을 불태웠다.


실러가 쓴 『독일의 위대성(1801)』이란 글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독일 사람들은 정치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인 가치를 설정했다. 비록 신성로마제국이 쇠퇴해가도 독일의 품위는 손상당하지 않은 채 남아있을 것이다.” 일종의 자기변명 혹은 자기정당화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당장의 정치적 행위에서 거리를 두면서 장기적인 전망을 담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교육과 예술, 문화와 철학의 방면에서 그런 프로젝트를 구현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대 그리스 문화는 좋은 모범이자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근대 독일 철학의 유/무한 해법에 반기를 든 사람이 바로 니체와 하이데거이다. 이들은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함께 근대의 주체 철학을 전복시킨 현대 철학자들이다. 그들이 보기에, 무한은 이성적 주체의 권능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헤겔의 생각대로 인간 정신이 절대정신으로 고양될 수는 없다. 주객의 행복한 화해와 지양은 불가능하다. 정신이 아무리 부풀어 올라도, 결국 터져 버릴 기포에 불과하다.


하이데거

현대 독일 철학자들은 인간화된 신을 거부하고(니체의 ‘신은 죽었다’), 무한의 타자성이성적 주체를 통한 포섭 불가능성을 강조한다. 주체 권능의 추락과 실패가 오히려 무한이 드러나는 방식이라고 본 것이다. 예컨대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차이는 유한과 무한 ‘사이’, 이 차이의 부단한 생성 속에서만 무한자가 일면적으로 드러난다는 각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무한은 유한을 유비적으로 추론해서 얻어낼 수 있는 실체적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유한과 전적으로 무관한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유한의 일면성을 여지없이 폭로하는 부단한 부정 과정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여기서 사유되어야 하는 무-한한 것(Un-endliche)이란 단순히 끝없는 것(Endlose), 즉 그것의 획일성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성장도 허용하지 않는 끝없는 것과는 철저히 다른 것이다.” 그것은 차이를 무한히 산출하면서도 오히려 가까워지는 관계이자, 그리하여 “일면적이지 않은 것(Nicht-Einseitige)”, 개방적인 것이다.

존재자를 존재하게 하는 하이데거의 존재는 단적으로 차이의 관계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차이들이 무한한 시간 속에 침전된 어두운 깊이이자 근거(Grund)들의 근거인 심연(Abgrund)이다. 화려하게 차이나는 윤곽들을 산출하였다가 다시금 한 점에 수렴시키는 카메라 옵스쿠라의 어두운 구멍 같은 것이다.


하이데거는 횔덜린의 작품,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에서 다음과 같은 시 구절을 인용한다. “가장 심오한 것을 사유한 자는 가장 생동하는 것을 사랑한다(하이데거 강조).” 이 문구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유명한 말을 연상케 한다. “여보게, 이론이란 모두 회색빛일세. 푸른 건 인생의 황금나무지.” 말년의 하이데거가 시와 사유(Dichten und Denken)의 차이를 낳는 무한한 관계 해명에 몰두한 것은 관념론과 낭만주의를 새로운 지평에서 통합하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주체 패러다임이 아닌 (존재의) 매체 패러다임 속에서 유/무한 관계를 다시 풀려는 것이다.



지난 2017년은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논제를 붙여 종교개혁의 불을 지핀 지(1517년 10월 31일) 5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독일 철학의 출발점을 이룬 칸트(1724-1804)가 태어나기 200년 전에 이미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무한자인 신과의 새로운 만남을 꿈꾸었다. 칸트를 비롯한 독일 철학자들은 루터의 후예임을 부인할 수 없다. 유한과 무한의 관계를 끊임없이 새롭게 모색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근대 계몽의 시대 이후 더 이상 종교는 지상에서 발 디딜 곳을 잃어가고 있다. 세속화된 근대 이후, 독일 철학은 과거 종교가 독점했던 유/무한이라는 문제를 승계했다. 예술과 함께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려 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그 과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남게 된 독일 철학의 표징은 무엇일까?


화려한 숭고라는 아우라와 차이들로 우글거리는 사유의 두툼한 깊이이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코흐 같은 독일이 배출한 걸출한 과학자들이 그 민족의 천성인 서술의 명료성을 극대화하는 길로 들어섰다면, 3H로 악명 높은 헤겔, 후설, 하이데거는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그 민족에게 결핍된 하늘의 불마저 확보하려 분투했다. 한마디로 독일 철학이란 진, 선, 미가 통합된 전인(全人)을 무한과 접속시키려는 거대하고도 야심찬 지적 기획이다. 성패와는 관계없이 이 기획의 전모(全貌)에서, 우리는 다시금 화려한 숭고가 진하게 발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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