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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의 도구와 신화 계승의 줄다리기 -강명관, 『홍대용 평전-실천적 정주학자』(푸른역사, 2025) 서평 / 채송화

  1. 불편과 카타르시스 사이에서

     

그날이 언제인지도 어떤 학술대회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학원생이었던 필자에게 저자의 발표는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주류적 이해”(1권 5면, 이하 “권수-면수”로 표시)의 세례를 받은 대학원생의 직관적 거부감과 그 권위의 ‘해체’에서 오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충돌해서 생긴 부산물임을 인정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당시 학계의 연구 동향을 주시하는 조선 후기 한문학 연구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자의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의식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현재 한국학 연구자들이 이 책에 큰 관심을 가지는 이유 또한 저자가 오랜 시간 우직하게 밀어붙인 그 문제의식의 결론(끝의 의미가 아닌 정수라는 뜻의 결론)이 담겨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한몫을 했으리라 짐작한다.

  이 책은 18세기 조선을 살아간 담헌 홍대용이라는 인물의 평전이다. 총 2권으로 전체 분량이 약 1400여 면에 달한다. 여항 문학 연구로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를 풍속과 학술을 중심으로 종횡무진 누비던 저자의 연구 여정이 어째서 굳이 홍대용의 평전으로 귀결되는지 그 연결고리를 찾기가 일견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종일관 수없이 반복되며 선명하게 드러나는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홍대용이여야만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저자의 연구 인생을 둘러싼 학계 상황이나 홍대용 연구 업적의 배경 설명보다는 최대한 이 책의 내용과 의미 및 그 논리 구조에 집중하여 소박하나마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1. 조선 한문학 연구 글쓰기 그 너머의 가능성

     

이 책은 홍대용이 “경화세족”이자 “실천적 정주학자”라는 관점에서 기존 통념과는 다른 홍대용의 다양한 면모에 집중하여 그의 생애를 재구하고 있다. 기존의 홍대용 연구는 “사실이 아닌 신화”(2-478)에 가까우며 이는 위당 정인보가 쓴 “허접”(2-472)한 「담헌서 서문」에서 비롯되었다는 문제의식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선행 연구들을 비판하면서 저자가 내세운 방법론은 기존 권위(논의)의 해체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담헌 개인사, 그리고 텍스트 분석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담헌이 남긴 모든 분야의 텍스트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문학 및 한문학뿐만 아니라 수학·천문학·경학·철학 등 학제 간 경계를 넘나들며 텍스트를 분석하고 그 깊이를 이해하는 것은 연구자 개인이 도전하기는 쉽지 않은 경지이다. 이를 “퍽 어렵고 또 무모한 일”(1-7)이라고 표현한 것은 저자의 용기와 노고를 온전히 담기에는 너무 소박한 겸사라고 생각한다.

특히 2권의 3장은 전근대 시대 서양과 중국 그리고 조선의 수학과 천문학의 전통과 배경을 성실하게 소개한 후에, 『주해수용』을 비롯한 수학·천문학·음악학에 대한 홍대용의 기록을 다루고 있는 서술 방식이 인상적이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해당 텍스트를 온전하게 해석하기 위해 저자와 함께 서가에서 관련 서적을 하나씩 꺼내어 해당 내용들을 차근차근 따져보면서 점점 더 홍대용 저술의 실체에 다가가는 기분이 든다. 이러한 한문학 연구 방식의 글쓰기 덕분에 이 책의 독자들은 홍대용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일일이 찾아봐야 하는 정보들을 너무나도 손쉽고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은 1권 4장이다. 여기에서는 홍대용 문집인 『담헌서』 내집의 서두에 있는 홍대용의 경학과 역사학에 대한 기록을 분석하였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후반부에 있는 연행 체험이나 수학에 관련된 기록에 비해 매우 적은 분량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생애 기록이 없다시피 한 청년 시기 홍대용의 글이기 때문에,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자료이기도 하다. 이 시기 대부분의 글은 유교 경전과 역사 기록에 대한 홍대용의 생각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출처를 일일이 확인하고 분석하면서도 유기적으로 그 의미를 추출하는 작업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마치 본인의 연구 노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과 같이 매우 자세하게 해설하는 글쓰기를 구사하고 있다. 먼저 해당 구절의 원출처를 밝히면서 여러 문헌을 바탕으로 그 의미를 해석하고, 이러한 내용이 당시 조선 후기 경학의 흐름과 홍대용과 그의 스승 김원행의 학문적 맥락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짚어주고 있다. 대학원 시절에 해당 부분을 독학하며 여러 번의 좌절을 거듭했던 필자 입장에서는 앞으로 홍대용을 공부할 대학원생들이 부러워지는 장이기도 했다. 저자의 논리와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와 별개로 이 장의 내용은 홍대용의 저술을 비롯한 한국 한문학 텍스트의 행간을 읽어내는 첫걸음을 도와주는 매우 친절한 가이드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 장은 또한 책의 부제인 “실천적 정주학자”적 면모가 서술된 1권 5장의 예비적 고찰이자 그 실체에 해당하는 내용이므로 저자의 논지에서도 핵심적인 장이라고 볼 수 있다. 경학에 대한 홍대용의 사색을 섬세하게 분석하면서 “성현의 언어를 비판하고”(1-127), “공자의 출처出處에 내포된 모순을 예리하게 지적”(1-134)하며, “주자의 주해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거두지 않았”(1-138)던 홍대용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덕분에 독자들은 조선 후기 성리학 학통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의심하고 균열하는 젊은 시절의 홍대용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수없이 흔들리는 청년이었던 홍대용의 매력적인 면모를 포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유가적 근본주의자”(1-251)라는 이름표를 붙인 것은 다소 유감스러운 대목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홍대용 연구 대상에서 소외되었던 경학 텍스트를 전면에 내세워 역동하는 젊은 홍대용의 사상에 초점을 둔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또한 배경지식과 자구 해석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는 글쓰기 방법을 통해 독자를 설득하는 그의 논리 전개 방식은 이후 한문학 연구의 방법과 글쓰기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1. 흔들리고 유동했어야 할 홍대용의 생애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주 길을 잃게 된다. 분명히 홍대용 평전인데 자꾸 홍대용을 놓친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긴 분량이 이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이 책의 정체가 과연 ‘평전’인가라는 원론적인 의문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평전이라기보다는 홍대용 문집에 대한 저자의 연구 노트적 성격이 강하다. 이로 인하여 홍대용의 생애를 만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주변 정보와 저술 해석을 헤쳐 나가야만 한다.

먼저, 서술의 초점이 홍대용이라는 인간이 아니라 그가 남긴 문집에 맞춰져 있는 점이 아쉽다. 평전의 독자는 저자가 홍대용의 글을 얼마나 정치하게 분석했느냐보다 홍대용의 생애가 궁금해서 책장을 넘긴다는 사실을 놓친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물론 홍대용은 그 생애를 유추하는 데에 남겨진 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전근대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의 문집에 수록된 글을 분석하는 것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작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평전 글쓰기에서 문집 분석은 생애를 추적하는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므로 홍대용의 생애보다 문집에 수록된 글들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데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이 책의 서술 방식에 아쉬움이 많이 남을 수밖에 없다. 앞서서 기존 한문학 연구 글쓰기와는 다른 서술 방식이 이 책의 성취라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이 평전 글쓰기라는 측면에서는 그 기본 궤도를 한참 벗어나는 서술로 평가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정체성이 평전이라는 측면에서 홍대용의 연보가 수록되어 있지 않고, 저술 소개가 소략한 것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평전에서 연보는 뼈대이자 길잡이라고 생각한다. 평전 집필 과정에서 연보가 당연히 그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하는데, 이를 독자들과 공유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또한 책의 마지막 부분에 「담헌 관계 자료 간략 해제」라는 제목으로 홍대용의 저술을 간단하게 해제하고 있는데, 이 책이 대중서보다는 학술서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나치게 간략하다. 검색만 하면 해외 소장 자료부터 최신 연구까지 학계에 소개되고 있는 홍대용의 저술 정보들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홍대용의 저술을 분석하는 책에서 그 저술의 실체를 소상히 밝혀주지 않는 점은 유감이다. 일례로 연활자본 『담헌서』의 편집 과정에 대해 불확실한 정보들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2-471, 479~481 등) 이미 그 선행본과 편집 과정에 대한 연구가 학계에 제출되면서 그 후속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임미정, 「연세대학교 국학자료실 소장 위당문고 자료의 성격과 가치 (1) : 『여유당집(與猶堂集)』과 『담헌서(湛軒書)』를 중심으로」, 『동방학지』 195,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21, 226-232면)

무엇보다 책머리에서 스스로 던진 문제 제기에 대한 대안 제시가 논리적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기존 연구들의 담론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해체하여 내세운 최종적인 대안이 “실천적 정주학자”라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저자의 논리 구축 과정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저자는 「에필로그」 서두에서 담헌의 생애는 항주 선비들과의 교유를 분기점으로 하며 그 이후의 생애가 더 의미 있다고 서술했다. 그렇다면 홍대용의 생애를 집약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책의 부제는 대략 20대에 남긴 글이 아니라 연행 이후의 삶을 분석한 결과인 것이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저자가 내세우는 이 책의 키워드는 홍대용의 20대 기록이 근거가 된 “실천적 정주학자”인데, 이 책에서 홍대용의 중요한 텍스트라고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글들은 담헌의 30대 이후의 작품인 것이 논리적으로 어색하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기존 연구와 전혀 다른 면모의 담헌을 구축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그 근거가 되는 텍스트는 선행 연구들과 거의 일치하는 논리 구조에 수긍이 가지 않는다.

이와 같이 문제 제기에서 대안 제시로 이어지는 논리 전개가 어색하고 주장과 근거가 어긋나는 서술이 이 책에서는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홍대용의 생애가, 이 책의 목적이 아니라 담론 해체의 도구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홍대용의 생애는 “실학자, 북학파, 개혁적 사회사상가, 지전설과 우주무한설을 주장한 과학자”(1-5)인 홍대용을 해체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 20대의 공부 메모에서 평생을 벗어나지 못한 평면적인 존재로 서술된다. 저자 스스로 홍대용의 가장 중요한 저작이라고 평가한 「의산문답」· 「임하경륜」 역시 그 처지는 마찬가지여서, 저술의 새로운 가치가 밝혀지기는커녕 비판을 위한 비판의 도구가 되어 기존의 가치마저 퇴색되었다. 이쯤 되면 이토록 평면적이고 밋밋한 홍대용의 일생을 16년 동안 연구하여 원고지 5500매 분량의 평전으로 풀어낸 이유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저자가 기존 학계의 헤게모니를 해체하기 위한 도구로 홍대용의 생애를 선택하여 기존 연구 성과를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 평전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혐의를 두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홍대용의 생애가 궁금했던 순진한 독자들이 왜 자꾸 서평 안에서 홍대용을 놓치고 길을 잃을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전통적인 평전 글쓰기를 지향하면서 기존 담론을 ‘해체’하는 방법론을 구사하여 사뭇 다른 홍대용 상을 구상했다면, 무엇보다 홍대용 생애의 의미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막연한 상상을 해본다. 이 책의 방대하고도 섬세한 분석을 토대로 홍대용 생애의 의미는 기존 담론으로 고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유동한다는 데에 있음을 증명했다면, 이 책은 아마도 홍대용 연구와 평전 글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4. 『홍대용 평전』: 담론 해체의 도구인가, 담헌 신화의 계승인가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저자가 기존 담론을 ‘해체’하기 위해 그 담론에 천착하고 있다는 지점이 가장 흥미롭다. 선행 연구의 홍대용에게 “별 관심이 없다”(1-5)는 저자는, 사실 끊임없이 선행 연구를 의식하며 그 자장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어쩌면 저자가 선행 연구들과 전선을 구축하여 16년 동안 벌인 치열한 전투의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를 비롯한 홍대용 연구의 걸출한 학자들이 각자의 일가를 이루어 냈지만, 후속 세대 연구자들에게는 “담헌 신화”(2-458)에 일조한 선행 연구자들이라는 지점에서 일군의 집단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들에게서 가장 멀리 서 있었다고 자부하겠지만, 그 역시 18세기의 담헌을 21세기, 그것도 2025년에까지 호명하여 한국학 연구의 중심에 자리하게 한 장본인임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홍대용을 연구하는 필자에게 이 책은 넘어서야만 하는 문제적 저작이다. 하지만 학위를 받은 지 이제 겨우 3년 차인 필자에게 이 책은 저자가 처했던 시대와 학계 상황에 대응하며 그 책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증표로 보인다. 또 이 책은 원고지 150매짜리 주제에 쩔쩔매며 이렇게 연구 인생이 마무리될 것만 같은 초라함에 힘겨워했던 필자에게, 언젠가는 단행본에 담을 수밖에 없는 묵직한 주제를 고민할 기회가 있으리라는 꿈을 꾸게 한다. 이 책을 비롯한 수많은 선배 연구자들의 연구들을 자양분 삼아 시대가 한국학 연구자들에게 새롭게 요구하는 문제의식을 예각화하면서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나가는 미래를 조망할 기회를 준 저자께 감사함을 전하며 서평자라는 무거운 임무를 내려놓고자 한다.

     



채송화(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채송화(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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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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