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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입양 70주년, 더 많은 사랑의 방식을 탐구해야 할 때 / 최엄윤

작성자 사진: 한국연구원한국연구원

최종 수정일: 2024년 10월 25일

오슬로에서 온 남자

     

2017년 12월 노르웨이로 입양된 40대 남성이 생물학적 부모를 찾고 싶어 한국에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김해의 한 고시텔에서 홀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8살에 입양된 그는 2013년부터 한국에 머물며 생모를 찾으려 노력했으나 고아원으로 보내지기 전의 삶, 출생과 부모에 관한 기록 등 어떤 배경정보도 찾을 수 없었고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술만 마시며 보냈다고 한다. 죽으면 한국에 묻히고 싶다고 했던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해는 결국 노르웨이에 있는 양어머니에 돌아갔다.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 (박성현 작/연출, 2024.8.30.~9.8.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사리아(산티아고), 해방촌, 노량진, 오슬로, 의정부의 도시 이름을 조각난 지도처럼 이어 피난민과 이재민, 실향민, 입양, 다문화 등 한국전쟁 이후 이식되거나 경계에 머무는 이들의 삶을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엮은 드라마이다. 공연 제목과 같은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극 속 하나의 에피소드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또 다른 에피소드인 ‘사리아에서 있었던 일’에서는 한국 전쟁고아를 입양한 벨기에 노인이 “한국인들은 왜 자기 것들을 잘 간직하고 잘 키우지 못하냐”며 비난하기도 한다.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에는 ‘핏줄과 신경’으로 연결되었으나 우리 사회가 품지 못한 이들에 대한 미안함, 부끄러움의 정서가 공연 전반에 흐르고 있다.

     

“비행기 안에서 잠에서 깨어나 둥근 창밖 파란 하늘을 보면서 울다 다시 잠든 것, 그것이 제 인생 최초의 기억이었습니다.”

     

노르웨이로 입양된 욘은 사망하기 전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에게 편지를 남긴다. 욘이 기억하는 입양되던 날의 모습은 삶에서의 최초 기억이었고 8살 이전 한국에서의 삶은 아마도 깊은 무의식에만 남았을지 모른다. 그는 생물학적 부모가 누구인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알 권리’도 없었다. 사라진 ‘기억’을 ‘기록’이 채워주지 못해 그의 죽음은 더욱 쓸쓸하다. 그를 지원하며 그에 대한 연극을 준비해 오던 연출가와 자원봉사자가 전해주는 편지로 관객들은 생모를 그리워했던 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지만, 그는 여전히 경계에 머무는 대상으로만 남는다.

 

6.25 전쟁 이후 시작된 해외 입양은 2024년 70주년이 되었다. 1953년 이래 약 20만 명의 한국 아동이 해외로 입양되었고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2023년까지도 지속되었다. 전쟁 후 한국에서는 ‘고아’의 범주가 아주 넓었는데 혼란한 상황에서 부모 없이 혼자 길 잃은 아이, 부모가 있으나 형편이 어려워 잠시 고아원에 맡겨진 아이 등이 대리 입양제도를 통해 해외로 보내졌다. 1960년대 말부터는 미혼모의 아이들이, 1970-80년대는 입양 관련 기관들이 돈벌이를 위해 서류 조작이라는 방법으로 ‘아기 수출’을 하기도 했다.

     

2022년 세계 최대 한인 입양인 커뮤니티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KRG)과 입양인 당사자 372명은 해외 입양에서의 인권침해를 조사하도록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 요청했다. 이에 진실화해위는 4개의 입양 알선 기관 실태 전수조사에서 생모의 출산 기록과 아이의 입양 정보 불일치, 부모가 살아있는데도 ‘무연고 고아’로 작성된 경우 등 불법 입양으로 보이는 조작 사례를 일부 확인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불법적 방식으로 진행된 국제 입양의 실태가 잇달아 확인되면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는 외국인 아동의 입양 중단을 발표했고 이러한 경향은 유럽 전체로 확산하고 있기도 하다. 가족이 없는 아동에게 가정을 찾아주는 일은 가치 있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아동의 육체·정신 건강을 고려한 안전한 입양, 그리고 입양 후 관리 등을 위해 공공의 책임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고, 현재 성인이 된 입양인들의 '알 권리' 문제까지 입양에 관한 공식적이고 활발한 논의가 더 많이 필요하다.

     

     

도달하지 않는 언어를 채우는 음악과 몸짓들

     

우연인지 운명인지 꽤 많은 입양인을 만났다. 그들 중엔 생물학적 가족을 찾은 친구도 있고, 몇 번이고 한국으로 되돌아와 자신이 처음 발견되었던 길을 서성이는 친구, 생물학적 부모를 찾고 싶지 않아도 한국에 관심이 있는 친구 등 다양하다. 생물학적 가족을 찾는다 해도 그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오랜 기간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했고 언어 문제, 정서와 사고 등 떨어져 산 세월만큼이나 관계를 다져가야 할 물리적 시간과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23년 개봉한 영화 <리턴 투 서울>은 우연히 한국을 방문하게 된 프랑스 입양인 프레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태풍으로 인해 우연히 도착한 한국, 우연히 알게 된 입양기관 방문, 생부와 친척들과의 계획에 없던 만남. 프레디는 만나는 순간부터 불쑥 감정을 침범해 다가오는 생물학적 가족들과의 불편하고 이질적인 관계 속에서 복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럼에도 어머니로 짐작하며 지갑에 넣어 다닌 오랜 사진처럼, 의미를 부여하거나 생각하며 살지 않아도 가끔은 궁금했을 법한 인간의 기원 같은 것이었을까? 프레디는 처음 본 악보를 무작정 연주하는 ‘시주(視奏)’처럼 이 우연이라는 두려움 속으로 뛰어들어 부딪히고 깨지고 흔들리며 태풍의 눈을 찾아간다.  



부계 대대로 어부로 생활하다 지금은 에어컨 수리기사가 된 생부의 거칠고 일방적인 애정, 뒤늦은 부모 노릇이라도 하려는 듯 간섭하고 집착하는 그의 태도는 폭력적이기까지 한데 이런 기이하고 당혹스러운 모습은 프레디의 화를 부른다. 그런데 이 화의 근원은 드러나는 것보다 복잡하다. 우연한 첫 한국 방문과 생부와의 만남 이후 프레디는 그의 연락에 오랫동안 답하지 않다가 7년 만에 애인과 함께 생부를 찾아 단정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식사 자리에서 늘 오류가 일어나는 언어가 아닌, 프레디를 생각하며 작곡한 아버지의 피아노곡을 듣고 그녀는 동요된 듯했다. 처음 가족 안으로 끌어들이려 애쓰던 생부가 다시 일방적으로 택시를 잡아 프레디와 애인을 서둘러 보냈을 때 그녀의 표정은 복잡하게 일그러진다. 이때 “처음 치고는 괜찮은데”라며 애인이 생부의 작곡에 대한 평을 하는데, 프레디는 그에게 “나는 널 내 삶에서 언제든 지워버릴 수 있어”라고 잔인하게 말하고 스스로 망가져 버리기도 한다.

     

조심스럽게 프레디의 상처 난 쇄골뼈를 만지는 아버지, 법적으로 불가능했음에도 입양센터 어느 직원의 도움으로 끊임없이 전달된, 오랜 기간 만남을 거절해 온 생모와의 만남, 그리고 그녀에게서 반송된 이메일. 도달하지 않는 언어를 대신할 어설프고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며 영화는 끝난다.

     

“나는 널 내 삶에서 언제든 지워버릴 수 있어”라는 프레디의 말을 슬프게만 듣고 있을 수 없다. 욘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것만으로 그쳐서도 안 된다. “너를 지우지 않겠다.”는 정확한 약속과 안도를 주는 행동이 필요하다. 만남이 주는 감동과 감격은 오래가지 못하고 이후에도 지속되는 삶에서 때로는 오해와 균열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함께 사랑의 방식을 계속 탐구하고 행해야 한다.

     

     

되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안녕을

     

북미나 유럽으로 흩어진 입양인들은 몇몇 SNS 사이트로 소통하고 자신들의 출생 정보 등을 공유하며 번역이나 정보를 요청하고 있다. 매해 국내외 입양 기관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입양인들과 그 가족들이 한국 문화를 체험하거나 부산, 제주, 경주 등 관광 도시와 산업 시설을 방문하고 생물학적 가족과 만나기도 한다. 20만 명 이상의 해외 입양인과 그 가족, 그리고 다음 세대까지 해외 입양인 문제는 개인과 민간을 넘어, 적극적인 사회·국가적 담론으로 이야기할 때가 되었고, 그들을 맞이할 공식 기관과 섬세하게 계획된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필요하다.

     

지난 8월 1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 서울국제대안영상페스티벌 (이하 네마프(nemaf))에서는 ‘떠도는 기억, 그 너머의 흔적, 한국 입양 70년’이라는 주제로 디엔 볼쉐이 림, 말레나 최, 제인진 카이젠, 거스톤 손 딘-퀑, 키무라 별 르무안 등 해외 입양이라는 초국적 강제이주 경험자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이 중 키무라 별 르무안(Kimura Byol Lemoine)의 <입양아에서 입양인으로: 한국 국제 입양의 70년(2023)>은 한국 입양의 역사, 단체, 활동을 다룬 개인적이고도 역사적 아카이브라 할 수 있다. 영상 마지막은 대한민국의 국제 입양 전면 중단을 요구하고 국제 입양 시 수행되어야 할 조건들을 주장하는 선언의 형식으로 마무리된다. ‘대량 국제 입양을 자행한 것에 대해 입양인들과 생물학적 가족들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사과를 할 것’, ‘한국에 정부와 입양국으로부터 전면 경제 지원을 받는 입양인 공간을 설립하여 아카이브, 정보, 커뮤니티, 예술 센터, 도서관, 예술가 레지던스 기능 및 숙소, 무료 번역 서비스 등을 제공할 것’ 등을 요구하는데 나는 그 의견에 적극 지지하고 동의한다.

     

예전에 40여 년 만에 생물학적 가족을 만난 입양인 친구를 따라 통역을 하러 시골에 내려간 적이 있다. 일주일 정도의 짧은 여정 끝에, 친구의 오빠가 나에게 동생에게 전할 간단한 프랑스어를 알려달라 요청했다. 어떤 말이 간단하면서도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사랑해”, “건강하렴”, “다시 만나자” 세 문장을 알려줬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손을 흔드는 사람들, 수하물을 싣는 사람인지 이륙 지점을 알려주는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무사와 안녕을 기원하며 떠나가는 비행기를 향해 웃으며 인사를 전하는 직업이라면 나는 하루 종일 키 큰 나무처럼 서서 손을 흔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낯선 나라를 향해 새로운 탄생과도 같은 긴 여정을 떠났다 되돌아오는 사람들, 그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여전히 무사와 안녕을 빌며 손 흔들며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최엄윤 / 독립문화 기획자 예술가와 행정가, 연구자와 활동가를 넘나드는 경험을 쌓고 독립문화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는 말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언젠가 결국은 창작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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