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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번역, 140권의 약속/신상후


첫 번째 결실, 생애를 건 약속


안동섭 선생님(이하 저자)의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4 번역서의 머리말 첫 문장은 이렇다. “이 책은 주자어류 전체를 번역하는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실입니다.”



이 문장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안동섭 선생님이 오래오래 건강하셔야겠다’라는 것이었다. 『주자어류』는 140권 156만여 자에 달하는 방대한 문헌이다. 이 문헌 전체를 번역하겠다는 계획은 한 사람의 생애를 걸어야 하는 과업에 가깝다. 단순 계산만 해 보아도, 매년 세 권씩 꾸준히 간행한다고 가정할 때, 전권 완역까지는 40년이 넘게 걸린다. 강의와 행정, 논문 집필과 학회 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대학 교수가 매년 세 권의 번역서를 꾸준히 출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사정을 알기에, 한 명의 독자로서 머리말의 저 선언은 참으로 반가웠다. 이제 저자는 물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다음 권은 언제 나옵니까?”라고 물을 것이고, 저자는 이 질문을 오랫동안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주자어류』 전권 번역은 대단히 야심 찬 기획이다. 그런데 정작 저자가 이 작업을 바라보는 방식은 매우 신중하고 겸손하다. 저자는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초역(初譯) 주자어류’로 하고자 했다고 한다. 비록 편집 과정에서 최종 제목에는 반영되지 못했지만, 나는 오히려 ‘초역’이라는 제목이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이 책의 번역이 미완성이거나 허술하다는 뜻이 아니다. ‘초역’이라는 말에는 자신의 번역을 결정판으로 내세우기보다 후속 연구와 재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선행 연구와 학문 공동체의 축적 속에 자신의 작업을 위치시키려는 태도가 담겨 있다. 실제로 책 곳곳에는 개인의 성취보다 학문 공동체의 축적을 중시하는 학문관이 드러난다. 저자는 자신이 활용한 판본과 참고문헌, 디지털 자료 등을 숨김없이 공개하고, 기존 연구자들의 성과를 존중하며 계승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초역’은 단순한 겸사가 아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학문적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철저한 준비, 충실한 번역


이 책의 학술적 성실함은 「판본에 관한 사항」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번역서에서 판본 소개는 흔히 참고 사항 정도로 취급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저자는 『주자어류』의 성립ㆍ전승 과정과 주요 판본의 계통, 각 판본의 특징과 장단점을 매우 충실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는 『주자어류』라는 문헌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으로 전해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독립적인 연구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부분만 읽어도 『주자어류』 판본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판본 연구의 현황을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저자가 각종 판본과 참고 자료에 접근하는 방법까지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와 디지털 자료를 소개하고, 자신이 어떠한 자료를 활용하여 번역을 진행했는지를 일일이 공개하고 있다. 이는 번역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후속 연구자들이 동일한 자료를 활용하여 검토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작업이다. 자신이 얻은 성과를 독점하기보다 공유하고, 후속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저자의 학문관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번역에 관한 사항」 역시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다. 어떤 용어를 어떻게 옮길 것인지, 번역문을 어느 정도까지 한국어답게 다듬을 것인지에 대한 고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고심은 실제 번역에 반영되었다. 번역문은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읽히면서도 원문의 의미를 변경하거나 흐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훌륭한 점은 번역이 명료하다는 것이다. 번역 작업을 직접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난해한 문장을 만났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의미를 모호하게 남겨두는 것이다. 번역자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일수록 번역문도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의 번역은 명료하다. 저자는 애매한 표현 뒤에 숨기보다 원문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끝까지 추적하여 가능한 한 의미를 확정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번역자가 의미를 확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는 주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석에는 교감과 판본 문제에 관한 설명은 물론이고, 주요 개념과 철학적 내용에 대한 해설까지 폭넓게 수록되어 있다. 독자는 이를 통해 원문이 지닌 의미와 맥락까지 함께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주자어류』의 번역서이자, 『주자어류』 이해의 길잡이이며, 주자 철학으로 진입하는 믿음직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욕심과 바람, 우리 전통 학술공동체 자산의 적극적 활용


이 책을 읽고 나니 앞으로 이어질 『주자어류』 번역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다. 그래서 어쩌면 저자에게는 다소 과한 요구일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바람을 덧붙이고 싶다. 그것은 조선의 학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해 온 『주자어류』 독해의 성과를 앞으로의 번역과 주석에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달라는 요청이다.


조선의 학자들은 주희의 글을 반복하여 읽고 토론했다. 그 결과 『주자대전(朱子大全)』에 대한 가장 상세한 주석서인 『주자대전차의집보(朱子大全箚疑輯補)』가 탄생했다. 『주자어류』에는 저자도 중요한 주석서로 참고한 문암(文菴) 이의철(李宜哲, 1703~1778)의 『주자어류고문해의(朱子語類考文解義)』가 있다. 조선조 여러 학자의 문집에도 주자의 글을 읽고 토론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실제로 이번 번역서를 읽는 과정에서도 조선 학자들의 독해 성과를 활용했더라면 번역과 주석의 완성도를 보다 더 높일 수 있었을 사례들을 몇 가지 발견하였다.


첫 번째 사례는 16조목에 나오는 ‘식차책(食次冊)’이다. 주자는 『대학』의 체제를 “오늘날 식차책과 비슷하다.”라고 하고, “우선 이렇게 개괄한 후에야 먹을 수 있는 부분이 나온다.[都且如此呈說後 方是可喫處]”라고 설명하였다. 식차책에 대하여 저자는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주희의 설명을 고려해보면 식재료와 조리법 등을 정리한 서적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석하였다. 또한 이를 식단ㆍ메뉴와 같은 것으로 추정한 일역판의 해석도 소개하였다. 식차책의 정확한 의미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러한 추정은 설득력이 있다.

조선의 학자들 역시 이 문제를 고민한 바 있다.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은 「답김윤범어류문목(答金允範語類問目)」에서, 식차책에 대해 “이는 주자 당시의 속어인 듯한데, 아마도 지금의 식회도기(食會到記)와 같은 것인 듯하다.”라고 추정했다. 도기는 성균관이나 사학(四學)에서 사용하던 식당 출석부이다. 유생들은 출석부에 서명한 뒤에 식사할 수 있었다.

식차책을 무엇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이 비유의 초점도 달라진다. 식차책을 메뉴나 조리서로 본다면, 이 비유는 ‘『대학』이 앞부분에서 전체 구조를 먼저 제시함’을 가리킨 것이 된다. 반면 식회도기와 같은 출석부로 이해한다면, 전체 구조를 파악한 뒤 여러 내용을 차례로 익혀 나가야 비로소 본격적인 학습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 곧 공부의 절차와 선후를 강조하는 비유로 읽을 수 있다. 송병순의 해석을 함께 검토했더라면, 이 비유에 대한 또 다른 이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24조목에 나오는 ‘축저처(築底處)’이다. 주희는 격물(格物)ㆍ치지(致知)의 정도를 설명하면서, 이를 서원에 들어가는 일로 비유하였다. 서원의 대문을 들어온 것과 서원의 축저처에 이른 것이 다르듯이, 격물치지와 물격(物格)ㆍ지지(知至) 또한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축저처’를 ‘서원의 밑바닥까지’라고 옮기고, 주석에서 “‘축저처’는 서원의 밑바닥 기반부를 말한다.”라고 설명하였다. 문자적으로만 보면 틀린 번역은 아니다.

그러나 이의철의 『주자어류고문해의』를 참고하면 ‘축저처’의 의미는 더 분명해진다. 이의철은 축저처를 “궁극에 이른 곳을 말한다.[謂窮極處]”고 해석하고, 이어 “서원의 방실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그 뜻은 『주자대전』 「육자정에게 보낸 편지 뒤에 붙인 글」에 보인다.[ 指書院房室所在 義見大全陸子靜書後語]”라고 하였다. 이의철이 지목한 편지는 ‘무극(無極)’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육구연과 주희의 논쟁과 관련되어 있다. 주희는 ‘무극’의 ‘극’이 ‘궁극’을 뜻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형체가 있는 것을 가지고 말하면, 사방팔면이 모두 모여들어 와서 이 축저에 이르면 다시는 나아갈 곳이 없고, 이로부터 미루어 나아가면 사방팔면이 모두 앞뒤의 구분 없이 일체가 균등하다. 그러므로 극이라고 하는 것이다.[以有形者言之 則其四方八面合輳將來 到此築底更無去處 從此推出 四方八面都無向背 一切停勻 故謂之極耳]” 여기에서 ‘축저’는 단순한 바닥이 아니라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궁극의 도달점을 가리킨다.


이의철 저, 이영호ㆍ정선모 주편,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3.
이의철 저, 이영호ㆍ정선모 주편,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3.

그렇다면 『주자어류』 24조목의 ‘축저처’ 역시 단순히 밑바닥이나 기반부를 뜻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것은 방실이 있는 서원의 가장 깊숙한 곳, 곧 공부가 도달해야 할 궁극의 지점을 가리킨다. 축저처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끝내 물격지지는 아니다.”라는 말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물격이란 물리의 지극한 곳이 이르지 않음이 없는 것이고, 지지란 내 마음의 아는 바가 극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物格者 物理之極處無不到也 知至者 吾心之所知無不盡也]”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저자는 물격과 지지를 “사물에 나아갔고 앎이 지극해졌다.”로 번역하였다. 물론 오역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번역하면 ‘극처’의 의미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축저처’를 ‘서원의 밑바닥’으로 번역할 때 궁극이라는 의미가 희미해지는 것과 같은 문제이다. 『주자어류고문해의』의 “謂窮極處”라는 짧은 주석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짚고 있다. 이 주석을 적극 활용했더라면, ‘축저처’와 ‘물격지지’의 의미는 한층 더 선명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세 번째 사례는 40조에 나오는 ‘전후경(前後經)’이라는 표현이다. 주희는 책을 읽을 때 경문의 뜻을 위주로 읽고 주석은 그 이해의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고 하면서 “예를 들어 『대학』을 읽을 때에는 먼저 전후경을 읽어 그 자체로 분명해진 다음에 전(傳)을 읽어야 한다.[如看大學 先看前後經亦自分明 然後看傳]”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저자는 전후경을 그냥 ‘경’이라고만 번역하였다.

번역만 읽었을 때는 문제가 없는 듯했지만, 원문을 보니 ‘전후경’이라는 표현이 보였다. 『대학』에는 원래 경 1장과 전 10장이 있을 뿐인데, 여기에 다시 ‘전후’라는 구분을 덧붙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의문을 따라 『주자어류고문해의』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주석이 보였다. “맨 앞에서부터 ‘물유본말’까지가 전경이고, ‘고지욕명명덕’부터 끝까지가 후경이다. 『주자대전』의 「대학강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自首至物有本末爲前經 自古之欲明德至末爲後經 大全集大學講義可見]” 이 주석의 안내를 따라 『주자대전』의 「경연강의(經筵講義)」를 찾아보니, 이런 구절이 있었다. “‘즉근도의’ 이상은 전장이고, ‘고지욕명명덕어천하자’ 이하는 후장이다.[自則近道矣以上爲前章, 自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以下爲後章]”

이 대목을 읽고 나서야 전후경의 의미가 분명해졌다. 조선의 주자학자들과는 달리 나는 『주자대전』의 내용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니, ‘전후경’이라는 표현 하나만 보고 곧바로 「경연강의」의 전장ㆍ후장 구분을 떠올릴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현대의 도구들이 있지 않은가? 컴퓨터 검색도 있고 생성형 AI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연결은 쉽지 않다. 글자도 다르고 문맥도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한 문자열 검색만으로는 찾기 어려운 사례이다. 그러나 조선의 주자학자들은 『주자대전』과 『주자어류』를 반복하여 강독하고 토론하면서 두 문헌을 하나의 사유 체계 속에서 읽고 있었다. 『주자어류고문해의』에 보이는 짧은 주석은 그러한 독서와 강론의 축적이 남긴 결과물이다.

이 때문에 나는 앞으로 이어질 『주자어류』 번역에서도 조선 주자학자들의 독해 성과가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에는 수백 년 동안 『주자어류』를 읽고 토론하며 해석해 온 전통이 존재한다. 더욱이 이 번역은 선행 연구와 학계의 공동 자산을 존중하는 태도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후속 번역에서는 조선 주자학이 남긴 방대한 독해의 유산까지 풍부하게 활용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주자어류』를 번역하는 작업인 동시에, 한국 주자학의 축적된 지적 유산을 계승하는 작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개인적인 바람을 덧붙이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저자는 기존 번역이 있다는 이유로 권14부터 번역을 시작하였다. 일리 있는 선택이다. 다만 언젠가 권140까지의 번역이 모두 끝나게 된다면, 그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권1부터 권13까지도 번역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래야 비로소 한 질의 『주자어류』가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앞으로 간행될 후속 책들을 꾸준히 읽으며,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 작업이 완성되는 날까지 성원을 아끼지 않겠다.


신상후(한국학중앙연구원)
신상후(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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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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