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무역전쟁에 즈음하여 한일시민연대를 꿈꾸며 / 김헌주

2019년 11월 10일 업데이트됨

광화문과 아사쿠사의 프리허그


8월 24일 광화문. 일본과 아베 총리를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린 그곳에서 일본인 구와바라 고이치(桑原功一)는 한국 시민들에게 프리허그를 제안하고 있었다.

"일본의 일부 극단적인 방송은 '모든 한국인은 일본인을 싫어한다'고 보도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저를 믿어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안아주세요!"

반일투쟁의 중심에서 벌어진 연대의 손길에 시민들은 손을 내밀고 그와 포옹했다. 한일 시민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비슷한 시기인 8월 말, 한국인 윤수연은 혐한 운동의 중심지인 일본 도쿄 아사쿠사에서 프리허그를 진행했다. 많은 일본인들이 활짝 웃으며 포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윤수연은 ‘국가와 정부가 아닌 우리가 만드는 한일관계’를 위해서 총 12일의 시간동안 12개 도시를 순회하는 한일 우호 프리허그 일본일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미 3년 전 반한시위가 벌어지는 일본 오사카에서 프리허그를 진행한 바 있기도 하다. 윤수연의 SNS에 올린 동영상에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참지 못하고 프리허그를 진행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는데 가장 찡했던 장면은 일본의 장애인 여성과 부둥켜안는 장면이었다. 민족과 국가라는 장벽을 뛰어넘는 보편적 인간애가 그 짧은 포옹의 순간에 발현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서울 중구청장의 반일 구호 배너 설치 시도와 좌절


지난 8월 초에 서양호 중구청장이 서울 중구 일대에 반일 구호가 새겨진 배너를 시내중심가 곳곳에 설치하려고 하던 시도가 있었다. 중구는 이날 "광복절인 오는 15일까지 퇴계로, 을지로, 태평로, 동호로, 청계천로, 세종대로, 삼일대로, 정동길 등 22개 거리에 태극기와 함께 ‘노 재팬 깃발’ 1100개를 내걸겠다"고 밝혔다. 중구청은 8월 6일 오후 남대문 일대 도로에 깃발을 거는 등 15일까지 차례로 서울 도심에 깃발 1100개를 내걸 계획이었다.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가 시작되고 이에 대한 한국 내 여론이 매우 적대적인 상황에서 나온 조치였다. 또한 대중의 반일 정서에 기민하게 대응하고자 하는 의도도 엿보였다. 하지만 그 시도는 官은 중심을 잡고 ‘개싸움’은 民이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좌초되었다. 시민들이 중구의 반일 구호 배너를 철거하라는 청와대 청원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서양호 중구청장은 “중구청의 NO재팬 배너기가 일본 정부와 일본국민을 동일시해 일본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와, 불매운동을 국민의 자발적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비판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언급하면서 반일 배너기를 철거했다.


이는 불매운동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관주도 민족주의 선동이 대중에 의해 통제된 사례이기도 하다. 불매운동은 아베 정권과 일본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바탕이 되었다. 더하여 대통령이 충무공과 의열단 정신을 언급하면서 일본 비판의 수위를 높였고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조국의 애국/이적 발언도 이러한 현상에 불을 지피면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 현상은 특기할 만하다.


식민주의 비판과 反아베 한일연대를 위하여


한일 시민의 프리허그와 반일 배너 구호 설치는 과거와 달리 양국의 관제 민족주의 선동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지만, 현재 일본 정부의 식민지배 사과 불이행과 한국 정부의 대응이 같은 층위에서 비판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문제가 좀 더 발전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관제 민족주의에 기반한 양국의 충돌양상으로는 한계가 있다. 좀 더 근본적인 식민주의 비판이 필요하다. 현재까지의 상황에서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식민주의 비판이라는 인식론적이며 추상적인 가치를 너무나 손쉽게 반일과 연결시켜 버렸던 관성이다. ‘제국 일본’과 그 계승자인 현재의 ‘일본국’에 식민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한 켠에서 일본의 시민사회, 진보적 지식인, 대중이 벌여왔던 그 무수한 식민주의 극복 노력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예컨대 2019년 8월 4일 일본 도쿄 신주쿠역 동쪽 출구 광장에서 있었던 ‘NO 아베’ 시위를 상기해보자. 당시 광장에 모였던 일본 시민들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해결을 하지 않고 한국의 대응을 빌미로 경제 보복 조치에 나선 아베 정권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전 세계, 전 인류의 보편적 정의를 공유하기 위해 우리 일본 시민들이 한국 시민들의 ‘NO 아베’에 연대의 뜻을 표명합니다.”


이렇듯 ‘NO 아베’는 한일시민연대의 중요한 자산이다. ‘NO Japan’에서 ‘NO 아베’로 구호를 바꾸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매우 본질적인 운동의 전환이 될 수 있다. 향후 한일관계의 발전과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도 이러한 운동의 전환이 필요하다.


결국 한일 정부가 강대강으로 부딪히는 상황에 대해 한일 시민사회가 아래로부터 연대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NO일-NO아베 반일 전선’에서 ‘NO아베 한일공동전선’을 만들어서 아베와 일본 극우 세력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중심을 지키라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압박해야 한다. 이러한 행동은 문제의 근원인 아베와 극우세력을 고립시키고, 한일 갈등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정치권의 희망을 꺾어버림과 동시에, 한일 시민이 연대하여 과거사 문제를 직시하고 그 역사적 책임도 엄중하게 묻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김헌주 (충북대 박사 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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