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이후 한국의 종교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정체성 위기에서 벗어난 한국의 종교학은 이때를 기점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저술, 학위논문, 번역서 등 연구물이 증가하였고, 연구자들의 전공 영역도 다변화하는 현상이 뚜렷하였다.
특히 석박사 과정에서 한국종교 전공자들의 수가 다른 분야에 비해 두드러졌다. 한국종교에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한국종교사를 서술하려는 의지도 강하게 나타났다. 한국종교사 서술은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광범위한 분야의 선행 연구가 축적되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에는 연구 역량의 한계를 절감해야만 했다(한국종교연구회, 『한국 종교문화사 강의』, 청년사, 1998). 다른 분야에 비해 한국종교 연구자의 비중이 높다는 발언은 그저 상대적인 평가일 뿐이다. 한국 종교학계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한국종교 연구자의 수는 아직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종교 전공자 중에서도 근현대 시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나머지 고대나 중세는 빈 공백이 생기는 난점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이러한 상황은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한국종교사 서술을 위해서 넘어야 할 난관은 그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가장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는 그 어려움은 한국종교사가 개별종교사의 단순한 종합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말하자면 한국종교사는 한국불교사, 한국유교사, 한국도교사, 한국기독교사 등의 개별종교사를 단순히 합한 것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종교지형은 단일 종교의 독점이 아니라 여러 종교의 공존이 빚어낸 복합체였다. 어떻게 하면 이 종교 복합체를 시대별로 효과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가에 한국종교사의 성패가 달려 있다. 여기에는 가령 개별종교들이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유하고 있었던 공통의 기반에 대한 이해, 종교 간 소통과 갈등의 상황, 각 시대의 한계를 반영하거나 넘어섰던 종교의 역량 등 고려해야 할 사안이 무수히 많다. 한국종교사 서술에 앞서 복합적이며 중층적인 종교지형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방법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한국종교사 서술에서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사안이 ‘종교’ 개념이다. 엄밀히 말해서 ‘종교’ 개념은 한국종교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실 ‘종교’ 개념은 한국 종교학 전반에 걸쳐서 종교학자라면 한 번쯤은 성찰을 요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 한국 종교학은 70년대 이후 정체성 위기를 해소하는 방안을 모색하던 중 ‘종교’ 개념의 한계를 절감한 바 있다. ‘종교문화’ 개념은 이러한 성찰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대안이었다. 현재 ‘종교문화’ 개념은 종교학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학술 용어로 정착하여 통용된다. 그런데 이와 다른 차원에서 ‘종교’ 개념을 문제 삼는 분위기가 80년대 후반부터 새롭게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80년대 후반은 한국 학계에서 탈근대성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한 시기이다. 한국 종교학계는 근대성 자체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근대 이후 현재까지 우리가 경험하는 종교지형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밝히는 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앞서 한국종교 전공자 중에서 근현대 시기 종교를 선택하는 비중이 높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근대성 논의가 표면화되면서 근현대 종교에 관심이 높아진 점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근대성은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는 조건이라는 인식은 종교학에서는 ‘종교’ 개념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보통 어떤 개념과 그 의미의 관계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인 양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종교’ 개념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동안 일상은 물론 학술적으로도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해 왔다. 그러나 근대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종교’에 대한 상식적인 견해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종교’는 서구 근대성의 산물로서 역사적 한계를 지닌 개념이다. 서구어 ‘릴리지온(religion)’의 번역어인 ‘종교’는 개항기 이후 서구 근대 문물과 더불어 도입되어 정착한 개념이다. 오늘날 ‘종교’는 그리스도교, 불교, 유교, 도교 등 개별종교들을 포괄하는 유적 범주로 사용된다.

한편 한국 사회는 본디 전통적으로 ‘종교’라는 말이 없었다. 이는 ‘종교’에 해당하는 지시물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말하면 오늘날 ‘종교’에 속하는 유교, 불교, 도교가 전통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범주로 인식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혹 불교와 유교를 ‘철학’이라는 범주로 묶는다고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철학’이라는 개념도 서구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한국 전통사회에서는 낯선 개념이었다. ‘종교’든 ‘철학’이든 새로운 인식 범주로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점을 의미한다. 앞의 유교, 불교, 도교를 가지고 말하자면 이들은 ‘종교’라는 범주로 묶이는 순간 전통사회와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서구 근대성의 체제에서 ‘종교’ 개념이 탄생하고 한국에 들어와 정착되는 과정을 따져보는 일은 매우 복잡하며 흥미롭다. 하지만 여기서 자세히 언급할 사안은 아니다(장석만, 『한국 근대종교란 무엇인가?』, 모시는사람들, 2017). 근대성이 낳은 ‘종교’ 개념이 어떤 의미인지를 간단히 살피는 데 그친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정 종교와 관련된 신념과 행위를 공적인 차원에서 드러내는 일은 금기시된다.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원칙은 종교의 활동 범위를 제도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신도들의 모임인 종교공동체는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종교는 개인의 영역 중에서도 내면의 세계와 관련된다. 육체적이거나 물질적인 차원은 종교에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종교에서 말하는 신앙이란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을 가리킨다. 신앙의 대상인 초월적 존재와 인간의 만남은 내면의 세계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초월적 존재는 세속적 세계와 철저하게 차별화되며 신앙과 같은 특수한 방법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만약 누군가가 ‘종교’의 정의를 내려달라고 요구하면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답변을 제시할 것이다. 하지만 세부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말한 의미의 범위를 대체로 벗어나지 않는다. ‘종교’ 개념이 근대성의 산물이라는 말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근대성이 출현하기 이전부터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등은 각각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용어는 부재하였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일반범주로서의 ‘종교’ 개념은 근대성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났다. 여기서 서구 프로테스탄티즘은 ‘종교’ 개념을 대표하는 모델로서 채택된다. ‘종교’ 개념의 내용에 프로테스탄티즘의 분위기가 흠씬 풍기는 이유는 이런 배경에서 기인한다.
대부분 종교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는 보편적 실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종교’ 개념에 관한 성찰적 연구는 이러한 관성에 제동을 거는 효과를 발한다. ‘종교’라는 창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라보았던 종전의 태도가 과연 타당한 것이었는가 하는 회의를 부른다. 당장 한국종교사를 서술하는 일만 해도 그렇다. ‘종교’가 서구 근대성의 산물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종교의 역사를 서술할 수 있는가. ‘종교’가 없었던 시대의 종교사를 기술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한국종교사를 기술한다면 ‘종교’ 범주를 ‘종교’가 없던 시대에 투영하는 오류, 연구자의 관점이 연구 대상을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종교’ 개념의 시대적 한계로 인해 딜레마에 빠지는 것은 한국종교사 분야에 국한하지 않는다. 종교학의 정체성도 그로 인해 흔들릴 위험성에 노출된다. ‘종교’ 개념의 해체와 함께 종교학 자체도 해체될 위기에 처하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종교학은 궁극적으로 문화연구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음을 참작하면 이러한 평가가 비현실적이지만은 않다. 개념사 연구가 전하는 자극은 비단 종교학에만 국한하지는 않는다. 현재 대학의 각 학문 분과별로 다루어지는 연구 대상들 대부분이 근대성의 산물임을 고려하면 근대적인 학문 체제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다고 당장 근대적인 학문 체제가 붕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우리가 현재 발 딛고 서 있는 자리의 역사적 기원에 대해서 성찰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근대성과 ‘종교’ 개념의 관계를 규명한 이와 같은 개념사 연구가 논쟁의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동아시아는 근대 초기 서구의 ‘종교’ 개념을 수용한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전통적으로 ‘종교’에 해당하는 개념이 이 지역에 아예 부재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물음에 대하여 중국과 일본 등을 사례로 열띤 찬반양론이 벌어지는 중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 개념이 서구로부터 일방적으로 유입된 것에 불과한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 개념을 수용할 수 있는 바탕이 이 지역에 마련되어 있었던 것인지 매우 중요한 문제이므로 앞으로 논쟁의 추이를 계속해서 따라갈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 종교학계도 서구 ‘종교’ 개념의 도입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견이 표출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좀 더 성숙한 토론과 논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여기서 도출된 연구 성과는 한국종교사 서술이나 종교학의 정체성을 따지는 작업에 방법론적 기초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종교학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종교’ 개념과 씨름한 이력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종교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종교’ 대신 ‘종교문화’를 선택한 일이었고, 두 번째는 ‘종교’ 개념의 구성주의적 맥락을 파악한 것이었다. 양자의 목적과 의도는 다르지만 ‘종교’ 개념이 지닌 한계를 지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종교학이 ‘종교’ 개념의 한계를 인식하는 사태는 역설적이면서도 근본적이다. 종교학은 일반범주로서 ‘종교’ 개념이 발생한 이후 등장한 학문이다. ‘종교’ 개념은 구체적인 개별종교들을 관통하는 공통의 요소를 바탕으로 도출한 것이 아니라 서구 근대성의 체제에서 그리스도교를 모델로 삼아 출현하였다. 따라서 ‘종교’ 개념은 개별종교들의 특성을 반영하기보다는 그들이 도달해야 할 기준으로써 종교 간 위계를 형성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의 종교학은 ‘종교’ 개념의 한계가 부각될 때마다 정체성을 새롭게 다지는 기회로 활용하였다. 현재 한국의 종교학자들은 ‘종교’ 개념으로는 포괄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 종교학자들이 생각하는 종교는 ‘종교’와 다른 것이 분명하다. ‘종교’ 개념의 관점에서 보면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무시당하거나 탈락한 것, 세속적인 것 안에 숨어 있는 종교적인 것 등이 모두 종교학자가 생각하는 종교의 범위에 포함된다. 종교학자들이 보여주는 이와 같은 태도는 한국 사회에서 ‘종교’ 개념을 축으로 형성된 위계 구조를 문제 삼는 것이기도 하므로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종교학자들은 종교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이들의 종교 정의는 ‘종교’ 개념과 무엇이 다를까. 연구의 출발점에서 가설적인 수준이라도 자신만의 정의가 있기 마련이다. 한국 종교학의 특성이 있다면 여기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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