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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종교학의 전개와 과제(2) / 임현수

한국 종교학이 5, 60년대의 정체성 혼란기를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들어와서의 일이다. 한국 종교학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작업은 다양한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그중에서 결정적인 전회라고 할 만한 몇 가지 시도를 언급하기 전에 당시 학계의 분위기를 언급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특히 인문학의 분위기는 한국 종교학의 정체성 형성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6, 70년대 한국 사회는 국가적인 모든 역량을 근대화에 쏟아부었던 시대였다.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며 여러 심각한 문제점을 노정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민주주의 실현과 경제적 불평등 해소 등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무겁게 제기되었다. 이와 같은 정치 경제적인 문제와 더불어 근대화 자체에 대한 회의와 반성의 분위기도 조성되었다. 근대화 과정은 두 가지 방면에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하나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이며, 다른 하나는 생활세계의 파괴로 인한 인간성 상실의 위기이다. 전자는 근대화의 진행 과정에서 과도한 서구화 및 전통문화의 단절로 인하여 나타난 위기였다. 후자는 근대화에 내재한 근본적인 한계, 예컨대 도구적 합리성 중시, 효율 만능주의, 산업화 및 도시화의 가속화로 인한 인간소외 등의 문제로 말미암아 발생한 위기였다.

     

이러한 위기에 가장 예민하게 대응한 분야는 인문학이었다. 인문학을 중심으로 학계의 중심 의제로 부각한 국학 혹은 한국학은 근대화 과정에서 돌출된 한국인의 정체성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이와 같은 학계의 분위기는 종교학이 학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데 깊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그리스도교 신학 중심으로 운영되던 종교학이 한국종교연구로 관심을 선회함으로써 학문적 자기 정체성을 위한 토대로 삼은 일은 매우 의미심장하다(張秉吉, 『韓國固有信仰硏究』, 서울대학교 東亞文化硏究所, 1970). 한국의 종교학은 한국종교의 원형, 한국인의 기층신앙, 한국종교의 유형 등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한국학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신학으로 오해받던 자기 정체성을 재확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오늘날 한국의 종교학자 중 상당수가 한국종교를 전공 분야로 선택하는 현상은 단지 우연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한국의 종교학이 새로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던 당시 한국종교에 부여한 특별한 관심은 추후 전개될 연구 경향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한편 근대화가 초래한 인간성 상실의 위기에 대응하여 인문학은 삶의 참다운 본질과 의미를 회복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합리적 이성과 과학주의로 인해 은폐된 인간 고유의 가치를 재발견함으로써 현실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문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현상학과 해석학은 이와 같은 노선을 따르는 대표적 분야에 속한다. 이 두 분야가 지향하는 바를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서술할 수는 없다. 다만 이글의 전개를 위하여 부득이 요약하자면 이렇다. 인간은 오랜 세월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의미로 충만한 삶의 세계를 축적하였다. 그동안 근대화 과정을 통해서 망각된 인간의 본질과 가치를 회복하려면 바로 이런 의미의 보고로부터 자원을 발굴하여 재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의 종교학이 정체성을 찾아나가던 시기에 종교현상학이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이와 같은 인문학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았다.

     

종교현상학은 서구 종교학의 한 흐름으로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걸쳐서 형성되었다. 20세기 후반은 종교현상학이 풍미한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종교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서구 종교학사에서도 종교현상학의 의의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종교현상학의 등장과 함께 종교학이 비로소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분과 학문으로서 자리할 가능성을 찾았기 때문이다(정진홍, 『종교문화의 인식과 해석: 종교현상학의 전개』,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6). 그 이전까지만 해도 종교는 인류학과 사회학, 심리학 등 주변 학문의 연구 대상 중 하나로서 다루어지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러한 분과에서 종교는 그저 사회적 실재이거나 심리적 실재의 외피로서 다루어질 따름이었다. 종교현상학은 종교를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그 자체의 독자성을 지닌 실재로서 연구한다.

     

종교현상학의 목표는 종교의 본질을 규명하는 데 있다. 종교현상학의 연구 범위는 원시 및 고대 종교에서 근현대 종교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경험한 모든 종교를 포괄한다. 광범위한 자료의 수집과 정리는 종교현상학의 기본 절차에 해당한다. 종교의 본질을 파악하는 핵심 단계는 수집자료의 비교 과정이다. 자료의 비교와 분류는 종교의 유형론으로 이어진다. 종교 유형론을 전개하는 최종 단계에서 종교의 본질과 의미가 규명된다.

     

종교현상학의 비교 방법은 단순하지 않다. 연구자가 수집한 외부 자료들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우선 ‘종교현상’으로 전환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종교현상’은 연구자가 공감 능력을 통해서 자신의 눈앞에 놓인 외부 자료를 지각한 결과물이다. 즉 종교 관련 자료를 연구자가 공감적으로 지각하는 과정을 거쳐 의식 내재적 자료로 전환된 것이 ‘종교현상’이다. 그러니까 수집한 외부 자료와 ‘종교현상’은 같은 것이 아니다. 비교는 이렇게 의식 내부로 들어온 ‘종교현상’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여러 종교현상을 비교하고 종교현상의 형태를 다양하고 무제한으로 변경시킴으로써 전형적인 유형들을 분류하는 작업이 의식 내부에서 일어난다. 연구자는 의식 작용을 통해서 도출된 유형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며, 그 과정에서 각 유형 간의 차이를 넘어서는 종교의 본질이 규명된다.

     

인류의 종교사를 기술하는 일은 종교현상학이 떠맡은 또 하나의 과제이다. 종교사는 종교의 본질이 각기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다양한 형태로 현현한 결과이다. 종교현상학자는 종교사 서술을 통해서 종교의 본질이 각각의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해석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종교현상학은 종교사를 통해서 인간은 종교적 존재(Homo Religiosus)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강조한다. 역사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형태만 달리할 뿐 종교적 인간의 본질은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총체적이며 온전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 종교학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한국의 종교학이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하여 종교현상학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던 배경은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종교현상학은 모든 종교를 편견 없이 동등하게 바라보는 안목과 방법을 제공하였다. 개별종교의 특수성을 넘어서 모든 종교를 관통하는 본질을 탐색할 수 있는 비전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특정 종교의 배타적 진리 주장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둘째, 종교현상학은 종교의 본질을 규명하는 방법을 신앙이 아닌 인식의 한계 안에서 찾았다. 이는 종교를 신학이나 교학이 아닌 일반 학문 분과에서 다룰 수 있는 토대를 다진 것이다.

     

한국의 종교학이 종교현상학과 결합한 배경은 양자의 공통된 관심사가 접점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종교학이 정체성 위기에 처했을 당시 서구에서 종교현상학도 유사한 문제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학문으로서 종교학을 정초해야 할 과제가 양자의 만남이 이루어진 계기였다. 하지만 한국의 종교학은 종교현상학의 아이디어를 원용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한국의 종교학은 ‘종교’ 개념이 지닌 한계에 주목함으로써 정체성 문제를 해결하는데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 이러한 시도는 한국 종교학이 처한 특수한 정황에서 기인하였다.

 

종교가 종교학의 연구 대상인 것은 당연하다. 누구나 종교가 존재하기 때문에 종교학이 성립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종교학의 정체성에 오히려 ‘종교’ 개념이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는 인식에 이르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한국의 종교학이 ‘종교’ 개념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이유는 이 용어가 심각한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종교란 어디까지나 인간이 경험하는 삶의 한 차원임에도 ‘종교’ 개념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게 만드는 취약성이 있다. 종교계를 중심으로 마치 종교란 인간의 삶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는 그와 같은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종교’ 개념은 종교가 태어나고 성장한 토양에 대한 인식을 어렵게 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종교’라는 용어를 대체할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의 종교학에서 학술 용어로 만들어진 ‘종교문화’ 개념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등장하였다. 현재 ‘종교문화’는 ‘종교’보다 사용 빈도가 높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종교학자들 사이에서 선호되는 개념이다. ‘종교문화’는 종교와 문화의 합성어로 다양한 의미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종교문화’가 ‘종교’ 개념의 한계에서 비롯한 조어임을 상기하면, 이 개념의 의미는 종교란 더도 덜도 아니고 문화라는 사실을 천명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종교문화’에서 ‘문화’는 말하자면 ‘인간이 경험하는 삶의 총체’이다(정진홍, 『종교문화의 이해』, 서당, 1992). 문화에는 경제, 정치, 예술, 기술, 군사 등 다양한 양태의 인간 경험이 속한다. 종교는 그런 문화의 한 요소라는 이야기이다.

     

‘종교문화’ 개념이 한국 종교학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한 측면은 명확하면서도 단순하다. 한국의 종교학이 정체성 문제에 가로막힌 근본 원인은 종교를 경험의 세계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가 상식처럼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학이나 교학 등의 호교론적 연구 진영은 자신들만이 종교를 온전한 방식으로 연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근대적 학문 분과들은 종교의 허구성을 거론하며 종교 연구의 무용론을 주장하거나 종교를 다른 실재의 외피로 취급한다. 양자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학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한 학문에 불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종교문화’ 개념의 등장은 종교를 철두철미 경험의 세계에 뿌리를 둔 실재로 인식함으로써 한국의 종교학이 근대적인 학문 분과로 정체성을 찾는 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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