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것’에 관하여 / 김동규

우연히 유투브에서 BTS의 <다이너마이트>를 보았다(아니 들었다!). 세계인들을 열광시킨 노래라는데, 그동안 대충 넘겨듣기는 했어도 제대로 집중해서 듣진 못했다. 무엇보다 힘 있고 경쾌하고 흥겨웠다. 다 듣고 난 뒤, 이 노래에 소위 ‘한국적인 것’이 들어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열심히 뒤져보았는데 결국 못 찾았다. 당연한 일이다. 그 음악이 한국적인지 아닌지를 묻기 이전에, 묻는 나부터 한국적인 게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 한국적이라는 건 아예 없는 게 아닐까? 한 시절 풍미했던 이데올로기나 환상 같은 게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어떤 감(感)으로는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젊은 시절 판소리에 빠져든 적이 있다. 음악에서의 한국적인 것을 찾기 위해 이번에는 그때 들었던 임방울의 <고고천변> 한 대목을 들어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것이라서 그 음악을 무한반복 듣던 옛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겼다. 그러느라 한국적인 것을 찾으려 했던 원래 의도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판소리에 심취했던 그 시절, 마음이 울적하고 이런저런 번뇌로 머리가 복잡해지면 목포행 야간열차를 탔다. 꼭두새벽 목포 시내 한복판에 도착하면(지금은 기차역을 도시 외곽으로 옮겼다), 걸어서 시내를 가로질러 해변에 있는 유달산에 올라갔다. 해가 뜰 무렵 산꼭대기에 앉아 바다로 나가는 고깃배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상하게도 사위었던 생의 의욕이 불끈 솟구치곤 했다. 유달산에서 만난 두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는데, 하나는 아침 산책 겸 운동 삼아 산에 오르는 목포시민들이 예외 없이 흰옷을 입고 있던 모습이다. 누가 백의민족이 아니랄까봐 모두 흰색 옷을 입고 나온 것이다. 딱 한 명 색깔 있는 옷을 입은 사람을 발견했는데, 그도 역시 얼마 되지 않아 웃옷을 벗어 제치고 흰 런닝 차림이 되었다. 아마 이건 백의민족이라는 언어적 편견이 은밀히 배후 조종해 만들어낸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다른 한 장면은 봉우리 언저리에서 본(아니 들은!!) 것이다. 유달산에는 여러 봉우리가 있는데, 어느 봉우리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판소리 한 소절을 구성지게 불렀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는데, 잠시 후 더 황당한 일이 발생한다. 다른 봉우리에서 누군가가 답가를 부르는 게 아닌가. 또 다른 봉우리에서 또 다른 사람이 계속해서 소리를 이어가고 … 상상해 보시라. 이산 저산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어쩌면 서로 알고 지내던 사람일 수 있다. 나만 몰랐던 것일 수도) 주거니 받거니 노래를 이어 부르는 장면을 말이다. 그들은 전문적인 가인들은 아니고 아마추어들이었다. 하지만 산봉우리 사이의 거대한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화음(和音)과 공명(共鳴)은 터질듯한 감동을 주었다. 판소리 명창의 남도 소리는 아마추어들의 이런 문화적 토양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멋진 자연경관이 발동을 걸어 누군가 흥겨워진다. 그래서 자연을 공연 무대 삼아 노래를 하니까, 또 다른 누군가가 기꺼이 화답하며 화창(和唱)한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로 일어나는 곳은 대단히 풍요로운 문화적 풍토이다. 자연발생적인 아마추어 동아리를 낳을 수 있는 터전이야말로 귀명창들의 고향이다. 그리고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에서 더 나아가, 최고의 소리를 뽐내는 명창은 오직 이런 귀명창들의 산실에서만 탄생할 수 있다. 음악의 으뜸 조건은 민간의 이런 문화풍토다.



독일의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는 생존 시에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오페라 작곡가다. 노년의 바그너는 바이로이트에 전용 극장을 만들어서 자신의 오페라를 정기적으로 상연했다. 그가 죽은 다음에는 후손들이 바이로이트 음악 축제를 이어가고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는 소위 ‘바그너 산업(Wagner industry)’을 일으킨 재벌 기업의 1세대 창업주이다. 그런 바그너가 당시 세계적인 민족주의 조류에 발맞춰 자신의 음악을 진짜 ‘독일’ 음악으로 포장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일기에 “나는 가장 독일적인 사람(der deutscheste Mensch)이다. 나는 독일 정신(der deutsche Geist)이다”라고 천명할 정도로 골수 민족주의자였다. 조금 삐딱하게 본다면, 상업적인 광고로 써먹기 위해서라도 ‘독일적인 것’을 알아야 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인지, 바그너는 『독일적인 것은 무엇인가?(Was ist deutsch?)』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도 했는데, 거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독일적인 것’이란 자신이 태어난 흙에서 고유한 언어와 관습을 유지한 게르만인에게 주어진 칭호입니다. 아름다운 이탈리아에서도 독일인은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따라서 그는 로마 황제를 떠나 고향의 왕자에게 더 큰 친밀함과 신뢰를 보냅니다. 긴 겨울 동안 거친 숲속에서 부엌의 따뜻한 화덕 연기가 구름 속으로 높이 치솟아 오르게 함으로써, 그는 대대로 전승되는 조상들의 행위를 생생하게 기억하죠. 말하자면 토착 신들의 신화를 한없는 노래(Saga) 그물망으로 엮습니다.


민족적인 것에 대한 바그너의 착상 가운데 여전히 유효한 개념은 모국어인 것 같다. 모국어 속에 담긴 전통의 지혜, 곧 신화(오랫동안 민간에 뿌리내린 이야기) 말이다. 그는 북유럽 신화로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만들었고, 그 지역 중세 시절 이야기로 <탄호이저>, <로엔그린>, <마이스터징어>를 창작했다. 그랬기에 가장 독일적인 음악을 만들었다고 호언장담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BTS는 어떤가? 그 음악은 어떤 점에서 ‘한국적’인가? 나는 바그너 같은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BTS를 비롯한) 한류를 책임지는 기획사 사장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 음악 속에 한국적인 게 있다고 전제하고 그게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BTS 음악에는 유달산에서 보았던(아니 들었던!!!) 화창(和唱)의 기미가 엿보인다고 말이다. 전체주의적인 군무(群舞) 떼창이 아니라, 자연이든 타인이든, 마주 선 독립적인(그러나 한없이 연약한) 상대들에 호응하며 자연스레(굴곡 있게) 어우러지는 화음과 율동에 있다고 말이다. BTS가 그런 춤과 노래를 공연할 수 있는 까닭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아미(A.R.M.Y)라는 동아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적인 만남 형식에 세계시민이 들어온 형국이다. 범박한 내 추론은 여기까지다. BTS가 선보이는 서사의 신화적 측면과 음악학적 측면에 대한 핍진한 연구를 한국학 관련 동료 학자들에게 부탁드린다.


김동규(철학자, 한국연구원 학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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