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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학자의 고독 / 김동규

유럽대학의 이념사를 회고하면서, 오늘날 우리 대학의 문제점을 ‘고독’이라는 열쇠말로 비판하는 논문을 쓴 적이 있다. 그때 논문의 심사평 중 하나에는 대학의 문제를 교수 책임으로 돌리는 논지에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이 있었다. 일방적으로 교수 탓만 했다면, 심사위원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는 주장이었는데도 그런 심사평을 쓴 것을 보면, 회피성 과민반응으로 보였다. 빌 레딩스의 신랄한 표현대로 대학이 ‘폐허(ruins)’가 된 책임의 일부가 교수에게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누가 뭐래도 교수는 대학의 핵심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훔볼트는 근대 대학의 이념을 기획한 철학자다. 이념을 만드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심지어 그 이념을 바탕으로 독일의 교육 정책을 입안․실행하던 실무자이자 베를린 대학의 건립자이기도 했다. 대학에 관한 그의 핵심 사상이 피력된 글, 「베를린 고등 학술 기관의 내외 조직에 대하여」에서 훔볼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각각의 대학은 최대한 학문의 순수 이념과 마주할 때에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에, 고독과 자유야말로 이곳을 지배하는 원리이다.

여기에서 훔볼트는 대학을 지배해야 하는 원리로서 ‘고독’과 ‘자유’를 제시한다. 언뜻 보았을 때, 고독과 자유, 이 두 개념은 매우 유사해 보인다. 타자로부터 분리․독립하는 고독이 자유의 한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만 해석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훔볼트의 글을 우스꽝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문제 말이다. 말하자면 대학의 원리와 이념을 제시하는 중요한 맥락에서 훔볼트가 무의미하게 동어반복을 말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훔볼트는 대학의 ‘내적 원리’로서 고독을 제시한다. 반면 자유는 대학의 ‘외적 원리’로서 외부 기관, 대표적으로 국가 기관으로부터의 자율을 뜻한다. 고독이란 학문만을 추구하는 학자의 삶의 형식에 묻어난 정조다. 동시에 고독은 자유라는 외적 원리가 내면화된 것이기도 하다. 최초로 근대 대학 이념을 설계한 칸트는 대학 내 상위학부와 하위학부의 합법적인 ‘불화’를 통해 대학의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여기서 상위학부는 사회와 국가가 필요로 하는 법학, 의학, 신학이며, 하위학부는 쓸모없어 보이는 기초학문 곧 철학부를 가리킨다. 세속적 유용성을 지향하는 국가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자는 고독하다는 점에서 칸트적 불화는 훔볼트적 고독의 이전 단계이다. 이외에도 고독이란 학적 창의성의 실존적 정조다. 독창성의 원천은 결국 ‘고독한 자기’에 있다.



훔볼트의 이런 지적은 단지 과거의 일에 불과한 것일까? 백년 뒤에 하이데거도 강단 철학 교수에 대해 이렇게 질타한다. “한 사람의 철학하는 이라면, 어째서 고독함을 버리고 공적인 교수라는 신분으로 시장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가?” 이것은 비단 독일 대학만의 특수성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훔볼트와 비슷한 시기의 미국 학자도 유사하게 생각했다. 에머슨 역시 비슷한 취지로 학자적 고독을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그는 고독이 자기와 친숙해질 수 있기에 고독해야 한다고 말한다. 참된 자기와 자주 만날 수 있는 자만이 독창적인(original)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학자는 신부를 안듯 고독을 껴안아야 합니다. 학자는 자신의 환희와 슬픔을 오롯이 혼자 느껴야만 합니다. 스스로의 평가가 충분한 척도가 되어야 하며, 스스로에 대한 칭찬이 충분한 보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학자는 고독하고 과묵해야 할까요? 그래야 자신의 사고들과 친숙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딴곳에 있더라도 군중과 자기 과시를 갈망하며 괴로워한다면, 그는 그 외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마음은 시장에 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보지 않으며, 듣지 않으며,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지성계는 1980년대 말까지 유럽 의존도가 높았다. 엄청난 물량 공세를 통해 유럽 지식인들을 불러왔고, 조금씩 자체 생산 채비를 갖추었다. 20세기 초반 가장 먼저 과학기술 쪽에서 유럽을 능가했다. 인문학의 경우는 80년대 중반까지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물론 찾아보면, 퍼스, 제임스, 듀이의 실용주의가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에머슨이 있었다. 에머슨은 최초로 미국의 지적 독립선언을 했던 학자다(한갓 ‘선언’일 뿐이었지만). 유럽으로부터의 정치적인 독립선언 이후 얼추 백 년 가량은 걸린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제 강점기 이후 지적 독립선언을 한 적이 있을까?


그렇다면 지적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에머슨은 미국의 학자들에게 어떤 주문을 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고독’의 미덕이다. 여기엔 지금도 음미해 볼 만한 구석이 많다. 정보의 바다에 빠지는 것만을, 특히 ‘물 좋은’ 트렌드에 몸 담그는 것만을 중시여기는 우리 학자들에게 고독은 꼭 필요한 미덕일 것이다. 개인 수준에서의 ‘독창성’과 공동체 수준에서 ‘한국적인 것’을 지향하는 학자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김동규(철학자, 한국연구원 학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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