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국민적 자기의식의 변화 / 문성훈

7월 20일 업데이트됨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을 선언했다. 그 이후 3개월이 지난 7월 7일 자 통계만 보더라도 전 세계 누적확진자가 1200만 명에 이르렀고, 누적사망자만도 55만 명을 헤아린다. 이런 팬데믹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확실한 전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많은 전문가들이 의견일치를 보는 것은 빠른 시일 내에 팬데믹이 종식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벌써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 19 종식 방안에 대한 논의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한 것 같다. 물론 코로나 19가 하염없이 지속될 것이 아니라면,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 시일을 따질 문제는 아니다. 코로나 19가 팬테믹 상황으로 가는 것을 예방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코로나 19 이후의 시대를 예비하는 것에도 실패해서는 안 된다.


언택트 사회냐? 탈노동사회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면 이미 단행본까지 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TV 토론회는 물론 각종 학술대회, 정부나 지자체 중심의 정책 토론회 등 다양한 방식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논의에서 주를 이루는 것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산업 전략으로서 비대면 원격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적 인프라 구축과 관련 서비스망 확대방안 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예를 든다면 5G 투자 및 활용, 클라우드 서비스 확대, 무인 자동차 상용화 등을 위한 사회경제적 인프라 구축, E-커머스, 배달 서비스 등 이른바 언택트 사회가 요구하는 서비스 산업의 확대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지금과 다른 언택트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코로나 19 상황에서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하루빨리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야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어 직장 동료나, 친구들, 아니면 고객, 그리고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들이 면대면 접촉을 재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코로나 확산 공포로 인한 면대면 접촉 기피가 코로나 블루라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음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언택트 사회로의 진입보다 컨택트 사회로의 복귀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택트 사회로의 진입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단지 감염병 확산에 대한 우려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확대일로에 있던 탈노동사회적 추세 때문일 것이다. 지식기반산업과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자동화로 인해 인간의 노동이 불필요해진 사회가 탈 노동사회이다. <노동의 종말>을 쓴 제러미 리프킨은 2050년경이면 전체 성인 인구의 5% 정도만이 고용될 것이라 예측한다.



은행거래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면 은행지점과 창구 직원은 필요하지 않다. GPS를 이용한 자율주행 시스템이 상용화되면, 택시나 화물차 기사가 불필요해지고, 패스트푸드 점포에 키오스크가 설치되면 매장 직원이 사라진다. 더 나아가 생산 자동화만이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면 생산노동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할 것이고, 쇼핑만이 아니라 교육도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고, 신문기사작성이나 법률 및 회계 서비스조차 인공지능이 대신한다.


이런 탈노동사회적 풍경은 이미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코로나 팬데믹은 탈노동사회화 추세에 그럴듯한 명분을 주었다. 탈노동사회화는 대규모 일자리 감축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마찰이 불가피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사실상 일자리 감축을 감염병 방지를 위한 언택트 사회화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언택트 사회로의 진입은 감염병 확산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한 자본의 요구일지도 모른다. 결국 언택트 사회는 탈노동사회의 다른 이름일 뿐이기 때문이다.


국민적 자기의식의 변화

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모습을 언택트 사회라는 정형화된 프레임이 아니라, 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인 국민적 자기의식의 변화에서 찾으려 한다. 사회 변화는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의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구조 변화가 의식 변화를 초래하지만, 의식의 변화가 사회구조적 변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나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 국민이 겪었던 공동체에 대한 자각, 긴급재난지원금, 전 세계의 모범이 된 K-방역이라는 3가지 경험이 앞으로의 변화를 향도하게 될 중요한 원동력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험이 국민들에게 공동체적 존재라는 자기의식을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 의식, 즉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대한 자각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신문이나 방송 등 대중 매체들이 전례 없이 많이 사용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공동체’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거리 두기, 손 씻기 등 개인방역 수칙만이 아니라, 집단방역 5대 수칙 역시 강조하였다. 이 집단방역 수칙에는 공동체라는 단어가 4번 등장한다. 공동체가 함께 노력하기, 공동체 내 방역관리자 지정하기, 공동체 방역지침 만들고 준수하기, 공동체의 책임자와 구성원은 방역관리자에게 적극 협조하기. 이렇게 보면 집단방역에서 말하는 집단이란 다름 아닌 공동체다. 따라서 학교도 공동체요, 회사나 공장도 공동체요, 공공시설, 국가 기관도 모두 공동체이며, 우리나라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인 셈이다.


자유주의적 전통에서 사회란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처럼 독립된 개인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낸 구성물이다. 이에 반해 공동체주의적 전통에서 공동체란 개인의 자아 형성의 토대가 되며, 공동체 구성원들은 공동선 실현을 통해 우리 의식을 형성한다. 이런 점에서 집단이나 국가를 ‘사회적’으로 이해하느냐, ‘공동체적’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구성원들의 자기의식이 다르다. 전자에 따르면 집단구성원들은 자기 자신을 상호 독립된 존재로 의식하며, 자기 스스로 설정한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적 차원에서 타인과 경쟁하던지, 아니면 타협한다. 이에 반해 후자에 따르면 집단구성원들은 자신을 상호의존적인 존재로 의식하며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 타인과 협력하며 연대를 형성한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드러난 사실은 우리가 상호독립적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이라는 점이다. 내가 감염되면,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감염시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나의 행동은 나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타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코로나 19의 종식을 위해서는 나의 노력만이 아니라, 타인의 노력도 필요하며, 그렇기에 이는 우리의 공동선이요,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연대는 위계적 연대가 아니라 수평적 연대이다. 코로나 19 앞에서는 사주와 종업원, 판매자와 고객, 공무원과 시민, 교사와 학생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동등한 공동체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긴급재난지원금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모든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었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정부가 원래 계획했던 것은 하위소득 70% 선까지만 지급하는 것이었고, 총선 때는 반대로 야당이 전 국민 지급을 주장하다가, 총선 후 급변하여 이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선별적으로 지급하자는 주장은 수혜 대상자를 선별하기 어렵다는 기술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수혜자와 비수혜자 간의 차별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모든 국민이 국가 앞에서 동등한 존재라면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 역시 동등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사회권의 일환으로 등장한 사회복지는 모든 국민이 향유해야 할 보편적 권리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은 비록 명칭은 다르지만 기본소득제라는 보편적 복지의 틀 속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긴급재난지원금 시행을 계기로 기본소득제가 정치권에서 쟁점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물론 긴급재난지원금이 생계유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소득계층별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모든 국민에게 일괄적으로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은 국민 개개인으로 하여금 각자 자기 자신이 대한민국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자기의식을 실질적으로 입증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어떤 사람이든 국가로부터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존중받고 있다는 의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 19가 동등한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자각을 일깨워주었다면, 긴급재난지원금은 이를 더욱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각자의 자존감마저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K-방역

신문지상이나 방송에서 자주 보도되었듯이 K-방역은 중국이나 유럽, 미국의 방식과는 달랐다. 한국 정부는 코로나 19 발생 초기부터 광범위한 검진을 통한 확진자 발견, 첨단 기술을 이용한 감염 경로 추적, 체계적인 확진자 및 접촉자 자가격리 등 공격적인 조치를 시행하여 코로나 19 확산세를 일정 수준으로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국가비상사태 선포도 없었고, 국가 봉쇄는 물론 도시 봉쇄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동 금지라는 가혹한 조치도 없었다.


이렇게 국가적 방역 조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능동적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 국민 마스크 착용은 물론 손 씻기 생활화, 사회적 거리 두기, 대규모 집단 행사 자제 등은 비록 일부의 일탈 행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의 확산을 줄일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발생했던 폭동이나 소요 사태는 물론 사재기 현상마저 없었다는 것은 한국 국민의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렇게 일상생활을 제한하는 특단의 조치 없이도 정부와 국민이 협력하여 코로나 19의 확산세를 일정 수준 억제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전 세계가 배우려 했고, 또한 배울만한 모범적인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K-방역은 우리 국민에게 자부심마저 갖게 해주었지만, 이를 더욱 강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K-방역이 미국, 유럽, 중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독자적인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미국은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 때문에 글로벌 리더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상실했고, 유럽의 국가들 역시 자국 이기주의 앞에서 유럽 내 협력조차 이뤄내지 못했다. 이에 반해 중국은 코로나 19를 종식시키고, 미국과 유럽이 무력화된 틈새를 이용하여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전 세계적 방역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중국은 코로나 19 발생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불량품으로 낙인찍힌 방역물품 때문에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모범적 방역 경험을 세계 각국과 공유할 뿐만 아니라, 코로나 19 진단키트나 KF 마스크 등 우수성이 판정된 K-방역물품을 지원함으로써 국가 간 협력을 강화했다. 그 결과 전 세계 120여 개 국가가 K-방역물품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특별기를 동원하여 직접 공수해 가는 나라도 있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한국 기업인들을 위해 예외적으로 입국을 허용하는 특별대우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이 국가로부터 존중받고 있다는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면, K-방역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줌으로써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자부심마저 갖게 하기 충분했다고 본다.


나가는 말

나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이 겪은 새로운 경험이 일종의 학습 효과를 발휘하여 자기의식의 변화를 초래했고, 이러한 자기의식의 변화가 포스트 코로나 이후 한국 사회 변동의 촉진제 역할을 할 것이라 본다. 국민적 자기의식의 변화는 향후 우리 사회에 대한 새로운 요구와 기대로 이어질 것이며, 어느 정치 세력이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정권의 향배가 결정될 것이다. 즉 국민들이 동등한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자기의식과 자존감을 갖고 있다면, 이를 훼손하는 정부 정책이나, 정치 세력은 전례 없는 저항에 직면할 것이며, 대외적으로도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당당한 주권 국가로서 활동하길 요구할 것이다.


문성훈 (서울여대 교수/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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