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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결단의 가벼움 / 마준석

호르무즈 해협은 앞으로 단순한 바닷길이 아닐 것이다. 이란은 지금까지 상상만 해오던 자신들의 지정학적 ‘무기’가 얼마나 강력한지 확인했다. 미국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한 나라의 지도부를 갈아버릴 수 있는 권능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정확히 그것까지만 할 수 있다는 무능력도 내보였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제 협상과 폭력, 돈과 종교, 봉쇄와 봉쇄에 대한 봉쇄가 한꺼번에 겹쳐진 정치·외교적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 공간을 둘러싼 전쟁은 느닷없이 시작되었고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미국과 이란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휴전을 간절하게 원하는 만큼 전쟁은 아마 느닷없이 끝날 것이다.

 

출처: MALLEY TODAY
출처: MALLEY TODAY

 

애초에 미국의 대이란 강경책은 미국의 거시적인 전략의 일부였다. 풍부한 에너지 생산지인 중동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미국의 핵심적 관심/이익(interest) 공간이다. 세계 평화(?)를 위해 지금까지 지출했던 금액을 줄이면서도, 동시에 미국이 지닌 국제적 패권을 잃지 않으려는 모순적인 목표 속에서, 미국의 중동 구상은 최근 변화하고 있다. 과거처럼 전쟁의 수렁 속에 직접적으로 휘말리기보다는, 걸프 국가들과의 투자, 기술, 에너지 협력을 강화하고, 그 과정에서 이란과 그 연계 세력을 약화시켜 미국에 유리한 질서를 재편하려 한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이때 중동은 목적 그 자체라기보다, 미국이 더 큰 경쟁, 무엇보다 중국과의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 빠르게 정돈하고 관리해야 할 공간으로 간주된다.1)

 

그러나 지난 3월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균열을 목격했다. 대이란 강경책은 분명 미국의 계산된 전략의 일부임에도, 정작 전쟁으로 넘어가는 실제 결단은 기이할 만큼 조급하고 우발적인 방식으로 내려졌다는 것이다. 국가의 장기적인 대전략 자체는 ‘관념적’이기에 보편적이지만, 그것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과정은 언제나 우연적이고 즉흥적이다. 결단의 순간에 상황실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냉철한 분석과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미심쩍은 예감과 감언이설, 유아적 영웅심과 구차한 자존심, 그리고 참모들의 왜곡된 충성심이었다.2) 그 중심에 바로 대통령 트럼프가 있다.

 

출처: 백악관
출처: 백악관

지난 미국 대선 기간에 적지 않은 이들이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했다. 설령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오더라도, 미국은 어디까지나 법률 체계와 권력 분립에 근거하는 입헌 공화정이므로, 한 개인의 개성이 곧바로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와해시키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 말이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이 기대가 얼마나 순진한 낙관이었는지 확인했다. 관세 전쟁과 그린란드 병합 협박부터 온갖 국제법 위반과 ICE의 폭력 집행까지, 그는 예측 불허의 언사로 언제나 모두를 미치게 만드는 국제 뉴스의 슈퍼스타였다.

 

문제는 단지 트럼프가 거시적인 안목과 도덕을 결여한 거짓말쟁이 사업가라는 점에 있지 않다. 자아가 비대한 탓에 사랑받지 못하면 폭주하는 응석받이라는 점에도 놓여 있지 않다. 핵심은 한 인간의 즉흥적 분노와 정체 모를 자기 확신이, 국가의 최종 결정에 깊숙이 침투하는 것을 허락하는 구조에 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애초에 정치인의 우연한 개성을 구성적인 원리로 포함하는 정치 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정치인이 아니라 저 정치인을 사랑하는 까닭은 그가 객관적으로 유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하는 방식이나 그의 외모 혹은 그의 괴상한 성격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가 지닌 우연한 자질들 때문이다.

 

헤겔은 입헌군주제라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분명 보수적이고 실효성 없는 이론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했다. 그러나 그가 군주 이론을 통해 성취하려 했던 바는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의 이론적 목표는 정치적 최종 결정권자로부터 그의 우연한 개성을 ‘최대한’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3)

 

출처: @KMWeiland
출처: @KMWeiland

우선 헤겔은 국가를 입법 권력, 정부 권력, 군주 권력으로 이루어진 유기적 전체로 파악한다. 입법 권력이 보편적 법과 원칙을 세우고, 정부 권력이 그것을 구체적 사안과 행정의 차원으로 매개한다면, 군주 권력은 그 전 과정을 하나의 인격적 결단 속에서 끝맺는다. 그래서 군주의 역할은 어떤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에도, 또는 정치적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데에도 놓여 있지 않다. 국가의 모든 내용은 전문가로 구성된 각료 집단이 산출하기 때문에, 군주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국가를 이끌어가는 자가 아니라, 이미 심의되고 준비된 국가의 의지에 최종적 형식을 부여하는 자다. 다시 말해 그는 국가가 실제로 결단할 수 있도록 마지막 점을 찍는 존재, 국가의 통일성과 결정 능력을 인격적으로 표상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헤겔의 군주론에서 중요한 것은 권력의 양이 아니라 결단의 형식이다. 국가 안에는 언제나 다양한 주장과 반론, 특수한 이해관계와 행정적 숙고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심의만으로도 국가는 끝없이 머뭇거릴 수 있다. 찬성하는 이유 하나가 제시되면 반대하는 이유 두 개가 소리치는 현기증 나는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이것을 단순한 '예' 혹은 '아니오'로 전환하는 가장 어려운 행위를 떠맡아야만 한다. 헤겔이 보기에 국가는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하나의 주체로서 “이제 결정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바로 그 형식을 담당하는 자가 군주다. 따라서 군주의 역할은 국가의 보편 원리를 사유하는 철인도 아니고, 정책의 내용을 설계하는 행정가도 아니다. 그는 국가의 관념적 통일을 단지 하나의 실존하는 주체로 응축시키는 자리인 것이다.

 

같은 이유로 헤겔이 세습 군주제를 옹호한 것도 군주의 자의성을 확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 자리를 당파적 경쟁과 사적 이해관계로부터 떼어내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최종 결정권자를 가능한 한 비개인적이고 형식적인 결정의 자리로 만들기 위해서다. 실제 책임은 각료들이 지고, 군주는 그 위에서 국가의 결단을 재가하는 기능적인 역할에만 머문다. 요컨대 헤겔의 군주론이 겨냥하는 핵심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지배해야 한다는 명제가 아니라, 국가라는 보편적 의지가 어떻게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존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그리고 그 실존은 필연적으로 군주 혹은 정치 지도자라는 우연한 개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적인 정치 제도가 목표로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은, 국가의 최종 결단이 지도자 한 개인의 우연한 기질, 변덕스러운 자의, 사적인 욕망과 유치한 자존심에 휘둘리지 않도록 방지하는 정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분명 헤겔은 입헌군주제 너머의 더 성숙한 정치 제도를 끝내 충분히 사고하지 못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그의 사유의 한계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속했던 시대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헤겔이 당시의 프로이센 국가를 아무 비판 없이 이성의 구현으로 찬양한 국가 철학자라는 표준적인 비판만큼은 거부되어야 할 터인데, 그의 군주론은 국가의 최종 결단을 우연이 최대로 배제된, 공허한 형식으로 만들고자 한 기획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 또한 과거의 돌발적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죽은 헤겔을 다시금 읽어야 할 이유이다. 그러니까 계엄이라는 그 기묘하고도 터무니없는 실패를 다시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출처: EBS 캠페인
출처: EBS 캠페인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 동시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추진하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주된 초점은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해제에 관한 법률이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대통령의 연임 제한에 대한 법률이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개헌은 몇몇 조항을 손보는 기술적 보수 작업으로 끝날 수 없다. 이는 국가의 본질과 정체성을 다시 묻는 일이다. 국가는 무엇인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절차를 통해 국가를 대표하고 결정하는가. 권력은 어디에 집중되어 있고, 어디에서 분산되며, 무엇에 의해 제한되는가. 개헌이 진지한 정치적 사건이 되려면 바로 이 물음들이 전면에 나와야 한다.

 

 

3) 헤겔, 『법철학』: § 275 ~ § 286.

 

 

 

마준석(연세대 철학과 석사) wegmarken1213@naver.com
마준석(연세대 철학과 석사) wegmarken12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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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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