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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차기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도전과 과제 / 김원식

미중 패권대결과 국제질서의 진영화 추세로 한반도에서 남과 북에 대한 원심력이 증가하는 상황 속에서 북한의 대형 도발이 재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의 전지구적 확산에 대한 낙관적 기대가 지배하던 탈냉전 시대도 급속히 종말을 고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외교안보 분야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간 우리에게 익숙해진 사고의 틀 자체를 검토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래에서는 차기 정부가 직면한 두 가지 주요 도전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대응 방향과 우리에게 요구되는 사고 틀의 변화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두 가지 도전, 국제질서의 진영화 추이와 심화하는 한반도 위기

곧 출범할 대한민국의 차기 정부는 다음과 같은 외교안보 분야의 두 가지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는 미중 패권경쟁과 국제질서의 진영화 추세로 인한 선택 압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둘째는 국제질서의 진영화 추세로 인해 한반도 남과 북에 대한 원심력이 증대하는 상황 속에서 과연 어떻게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구축에서 진전을 가져올 것인가 하는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 국면 속에서 2월 24일 러시아가 전면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하면서 향후 자유주의 vs 권위주의 진영 사이의 대결이 더욱 본격화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부터 격화되기 시작한 미중 패권경쟁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경쟁의 분야는 안보, 경제 영역을 넘어 이데올로기와 가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질서의 진영화 추세는 한국에 대해 다양한 이분법적 선택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대중국 견제를 목표로 하는 쿼드(Quad), 오커스(AUKUS) 등과의 관계 설정, 반도체 공급망과 첨단 기술 협력 문제는 물론 대만 문제, 홍콩과 신장 위구르족 인권 침해 관련 입장 표명 여부 등 다양한 문제들을 둘러싸고 전방위적인 선택 압박이 증가하고 있다. 한미동맹을 안보의 초석으로 삼고 있는 동시에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지대하고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협조도 필요한 우리의 상황에서 이러한 이분법적 선택 압박들은 심각한 도전일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는 심화되고 있는 한반도 위기 상황이다. 2017년 11월 29일 화성-15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의 ‘국가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한반도 위기 상황은 최고조에 도달했다. 이후 2018년에 진행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러한 위기는 급속히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 문제를 둘러싸고 결국 접점을 찾지 못했으며,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구축 과정은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북미 관계 교착 상태 속에서 남북관계 역시 발전 동력을 상실한 채 결국 2020년 6월에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라는 파국적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북미협상 중단과 남북관계 단절이 장기화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은 국제질서의 진영화 추세를 활용하며 한편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편승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미, 대남 압박을 위해 ICBM 발사를 재개하였으며 핵실험 재개까지 예견되고 있다. 증대된 북한 핵능력과 그간 중단되었던 도발 재개라는 한반도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선택 압박을 넘어, 규범 외교 역량을 강화해야

미중 패권경쟁 및 국제질서의 진영화 추이에 대응하기 위해 그간 사안별 대응이 필요하다거나 국익을 중심으로 하는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다양하게 제출되어 왔다. 그러나 미중의 선택 압박과 관련한 사안별 대응은 외교정책의 비일관성 문제를 노정할 우려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국익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의 경우 역시 국익 개념의 모호성은 물론 단기적 국익 계산으로 인한 외교정책 상의 비일관성이라는 동일한 문제를 노정할 우려가 존재한다.


차기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보편 규범에 입각한 외교적 대응 원칙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강대국 정치의 부활 국면에서도 주권 존중과 침략 전쟁 금지라는 규범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저항과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적 공론을 통해 나름의 생명력과 힘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둘러싼 미중 경쟁 역시 주권 존중과 자유시장이라는 동일한 규범적 원칙을 그 전제로 내세우고 있다. 주권과 인권의 우선성을 둘러싼 미중 사이의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권 증진이 보편적 규범이라는 사실 자체는 오늘날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중 패권경쟁과 국제질서의 진영화 추이가 강요하는 선택 압박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오늘날 국제사회가 회피할 수 없는 이러한 규범적 원칙들을 보다 선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주창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외교적 대응이 주권 존중을 통한 국제평화, 자유시장 확산을 통한 인류의 번영, 실질적인 인권의 증진이라는 규범적 원칙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을 때, 우리의 외교적 대응은 비로소 그 명분과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규범적 원칙을 확고히 고수한다는 것이 곧 외교정책에서 원리주의나 근본주의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규범이 구체적 상황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황에 따른 유연한 해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강요되는 선택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임기응변식의 힘의 추수나 단기적인 손익 계산을 넘어 오늘날 국제사회가 거부할 수 없는 규범적 원칙들을 통해서 우리 외교의 정당성과 일관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국제사회가 암묵적 합의에 도달한 규범적 원칙들은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의 성취를 넘어 국제사회의 선도국가로 나아가고 있는 대한민국호의 정체성은 물론 우리의 핵심적인 국익과도 부응하는 것이다. 주권 존중을 통한 국제평화와 한반도 평화, 자유시장 질서의 유지와 확산을 통한 한국 경제의 부흥, 실질적인 인권의 지속적인 증진과 구별되는 우리의 국익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힘을 통한 강대국 정치의 부활과 신냉전 추세 속에서도 규범 외교 역량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보는 근본적인 이유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틀을 모색해야

2018년 이후 진행된 한반도 평화 구축 시도가 좌절되고 동북아 질서의 진영화 추세가 한반도에서 남과 북에 대한 원심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위협도 점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면하여서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면서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과 한반도 위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의 안보를 튼튼히 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향후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한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의 안정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준비 역시 반드시 병행해야만 한다. 미중 패권대결 국면에서 한반도가 다시 힘과 힘이 부딪치는 충돌의 최전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비핵화를 위한 시도를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향후 실효적인 한반도 평화 구상을 위해서는 그간의 한반도 평화 구상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도 필요한 상황이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 정부는 냉전 종식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에 따라서 힘의 우위를 통한 전쟁 방지를 넘어 남북 협상과 경제-사회 교류 등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고자 하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였다. 민주국가들 사이의 상호존중, 시장을 통한 상호의존성의 확대가 영원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칸트의 발상이 한반도 평화 구상의 전제로 작동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러한 기조하에서 그간 진보 정부들은 주로 시장의 상호의존성 확대를 통해 평화를 모색하는 대북정책을 선호해왔다. 물론 이러한 대북 정책의 전환은 국내 정치와 맞물려 진보-보수 사이의 이념 갈등을 야기하기도 하였으며, 보수 진영에서는 시장의 상호의존성이 아니라 북한체제의 민주화를 통해서만 진정한 한반도 평화가 구축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자유주의 평화의 근간이 되는 시장과 민주주의 사이의 우선성을 둘러싼 논쟁이 오랫동안 전개되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 차이와 대립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진보와 보수가 각각 제시한 한반도 평화 구상들은 결국 민주주의 정체나 시장의 확산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칸트적인 전제에 입각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결국 시장화와 민주화의 방향으로 변화해 나갈 것이며,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가능성도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 혹은 기대는 냉전 이후 전 지구적인 민주주의와 시장의 확산 추세와도 조응하는 것이었다. 냉전 이후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은 전지구적 확산 추세에 있었고 북한 역시 시장화와 민주주의를 조만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는 결국 한반도의 평화로 이어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현재 상황에서도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이러한 칸트적인 접근 혹은 기대를 계속 고수할 수 있을까? 먼저, 민주주의 퇴행과 역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현재 상황에서 가까운 시간 내에 북한의 민주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대 세습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김정은의 북한체제는 매우 안정된 상황이다. 수세에 처한 세계 민주주의 진영이 이미 실패한 강압적 민주주의 확산 시도를 다시 반복할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또한 사회주의 민주를 내세우는 중국의 부상 역시 북한의 민주화를 더욱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독재국가들의 흥망에 대한 통계적 연구도 독재자의 집권 기간이 장기화되고, 지배정당과 의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 그 체제는 더욱 안정화되는 경향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시장의 확산을 통한 북한의 변화와 경제적 상호의존성 확대에 기초한 한반도 평화 구상 역시 현재 국면에서는 손쉽게 기대할 수 없어 보인다. 중국의 시장화가 미중 사이의 평화보다는 대결 국면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은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중국의 시장화 과정을 분석한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이미 충분히 학습했을 것이다. 시장을 통한 상호의존성의 확대가 저절로 평화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며, 시장화가 북한의 자유화와 민주화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물론 민주주의 역류와 퇴행의 시대라고 해서 평화를 수립해야 한다는 당위적 명령 자체를 포기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6.25 전쟁의 참화를 겪은 우리에게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은 포기할 수 없는 당위적 목표다. 다만 현재 상황 속에서 한반도 평화의 실현 가능한 미래를 구상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역류 상황에 부응하는 자제와 인내, 새로운 전제의 모색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체제의 변화에 대한 조급한 기대나 남북 교류나 시장의 상호의존이 손쉽게 한반도 평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퇴행과 미중 사이의 장기적인 대결이 예상되는 국면 속에서 가능한 한반도 평화를 구상하기 위해서는 북한체제의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상이한 체제들 사이의 장기적인 경쟁과 공존의 지혜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북한의 변화나 통일에 대한 조급한 기대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며 동시에 경쟁하는 방식의 장기적인 남북 평화공존을 위한 보다 현실적인 대북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원식(국가안보전략연구원 평화공존연구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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