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판때기’ 짜기 / 김보슬

2019년 11월 10일 업데이트됨

프로듀서라는 직업군


내 직업에는 명확한 이름이 없는 듯하다. 사람들은 나와 내 동료들을 ‘기획자’, ‘문화기획자’, ‘공연제작자’, ‘프로듀서’, ‘피디’, ‘무용 피디’, ‘프로덕션매니저’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우리도 그런 표현에 기대고 있지만 어쩐지 석연치 않다. 투명하게 머릿속에 들어오는 말들이 아니다.

기획자라고? 세상에 기획이 아닌 일이 어디 있는가? 오히려 문화가 과연 기획의 대상일 수가 있는지, 기획의 대상으로 볼 필요가 없는 아주 몇 안 되는 영역이 아닌지 묻고 싶어진다.


프로듀서라고? 재화를 생산하는 행위는 모두 프로듀싱(producing)이고 보면 어떤 직업을 프로듀서의 범주에 넣지 않을 수 있으랴.

공연제작자? 전시기획자? ‘공연’ ‘전시’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모호함을 좀 벗는 듯하지만 제작이나 기획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일이 다시 남는다. 그리고 우리 중 일부는 여러 장르 사이를 지그재그로 다니며, 공연에만 또는 전시에만 머무르지도 않는다.

무용 피디? 여러 장르들 중에서 내가 자주, 그리고 가장 애정을 가지고 다루는 장르이기 때문에 종종 무용이 앞에 붙는다. 물론 음악 피디, 국악 피디라는 말도 가능하다. 피디라는 용어는 아마 방송에서 제일 흔하게 접할 테지만, 공연, 영상, 광고, 이벤트 등의 분야에 두루 존재한다. 실무지휘자로서의 역할 범위도 비슷한 것 같다. 그렇지만 PD가 Producer를 줄인 것인지, Producer & Director를 줄인 것인지는 여전히 자의적이며 묘연하다.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당사자의 책임과 자세가 달라질 텐데 말이다.


아직 이런 식으로 불리며 기관에서, 혹은 프리랜서로서 우리가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공연이나 전시를 만든다. 나는 자주 ‘판때기’ 짜는 일을 한다고 나를 소개하곤 한다. 즉, 하나의 공연이나 전시, 예술작업이 이루어지기 위한 판과 틀을 짓는 것이다. 기금을 조성하고, 예산을 운영하고, 분야별 인력을 섭외하고, 홍보를 계획하고, 공연이나 전시가 실제로 벌어지는 현장진행을 하는데, 대체로 어디에선가 공적 기금을 지원 받아 펼치는 사업이기 때문에 정산과 보고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A부터 Z까지 전체를 어루만지는 과정 속에서 작품을 창작하는 주체, 즉 작가(무용 작품일 때는 안무자나 연출자, 음악 작품일 때는 작곡자나 연주자, 다원예술이나 전시일 때는 해당 분야의 창작자 등)와 지속적으로 콘셉트를 논의한다. 작가의 의도가 구현되도록 ‘판’을 조직하면서, 함께 자료를 조사하기도 하고, 작업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따라서 스스로 작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혹은 작가만큼의 비중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예술에 대한 배경지식, 기술·기능, 감각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또 좋아해야 한다. 흔히 작가보다 더 넓게, 멀리 시선을 두어야 한다.


안무 논의 중, 김보슬 제공

작업 노트 중, 김보슬 제공

올해 3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사업의 무용 부분 최종작으로 선정된 김이슬 안무가의 <Cross-eye HD, 비하인쥬>를 함께 준비하며, 작업의 초반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 있다. 이슬은 나에게 ‘기획자는 무얼 하는 사람이냐’고 솔직한 호기심을 비추어 왔던 것이다. 이에, “창작자를 ‘안사람’이라 한다면, 기획자는 ‘바깥양반’에 빗댈 수 있겠지요. (웃음) 이슬 씨가 무대 안에서의 예술적인 부분을 맡는다면, 저는 그 바깥을 맡는 거예요. 우리 둘을 작품의 좌뇌, 우뇌라 할 수도 있을 테지요.” 라고 대답한 바 있다.


우리가 조금 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때도 있다. 예술적이고 개념적인 구상에 동참하지 않고, 단순히 행정적이고 기계적인 역할에만 머무르기도 한다. 그럴 때에는 ‘프로덕션매니저’와 같이 부르는 게 보다 안전할 터인데, 이 명칭은 소극적인 구석이 있다. ‘프로듀서’라고 할 때에 비해 예술적 지위를 양보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의 매니저 기능에 가까워진다.


나는 무엇이고 싶은가


어쨌든 분명히 존재하는 직업군이기는 한데, 용어나 경계가 다소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회의에 잠길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저 한 걸음 뒤로 물러서,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스스로 정의하는(또는 진단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되지 않을까. 거기에서 발견하는 개성 있고 다양한 이름들을 차지하면 되지 않겠는가. 고정된 이름을 바라야 할 필요도 없다. 이름으로부터 자유롭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색과 모양을 변화할 수 있는 이 직업의 특성을 즐겨도 될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목표하는 역할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는 시도는 더욱 중요해진다. 나의 경우, 공연기획자나 프로듀서가 되고자 한 적이 없을뿐더러, 앞으로도 그것이 최종 목표는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바라는 나의 역할이란, <한 작품 안에서 시작되어 그 작품 안에서 소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별 프로덕션 단위에서 성패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한 작품으로부터 다른 작품 사이에 길을 내는 것, 작품들이나 장르들을 아우르는 유기적 고리를 만드는 것, 지형을 그리는 것, 그리하여 이것들을 다음 세대에 남길 수 있는 총체적인 ‘유산’으로 변모시키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비장하게 들리더라도, 그렇다.


그것을 직업의 차원에서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서둘러 이름 붙여야 할 이유는 없다. 내 머릿속에서 콘셉트는 명확한 셈이다. 그러니까 이제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하나씩 다루게 될 각각의 예술 현장은 그저 우연히 고른 것이 아니다. 무용 작품, 연주회, 해외 축제, 관주도 예술사업, 민간에서의 창작자 논의 등 두서없이 이러저런 상황과 현상들을 기웃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각각은 이러한 의도 안에서 경험한 것들로서 소환될 것이다.


내가 가진 직업에 스며있는 이 불분명함은 그 자체로 소개할 만한 현상이기도, 앞으로 다룰 이야기들을 여는 열쇠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누적되어 장차 어떤 전망을 그려 내기를 바란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는 것 또한 소중한 배움의 과정이리라.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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