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태의 세계] 이후 / 박성관

최종 수정일: 6월 15일



1.[중동태의 세계]는 2017년에 일본에서 출간되었고, 나는 2018년에 번역 의뢰를 받아 2019년에 한국어 번역본을 냈다. 수십만부가 팔리고 각계 각층에서 공감어린 서평이 쏟아졌던 일본 만큼은 못했지만, 우리말 번역본도 언론을 통해 꽤나 많은 호평을 받았다. 능동태와 수동태 이전에 중동태가 있었다는 것, 아니 실은 기원전까지는 오래도록, 넓은 언어권에서 중동태와 능동태만 존재했다는 사실에 일반 독자들도 신기해하며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그런데 약 2000년 전부터 중동태에 있던 일부 기능이 점점 강화되었다. 나중에는 중동태 자체보다 훨씬 비중이 커지면서 거꾸로 중동태를 대체해버렸다. 이것이 수동태다. 그러니까 능동과 수동은 인간의 원초적인 언어 형식 및 사고 방식이 아니다. active voice(능동태)와 passive voice(수동태)는 장구한 인간의 역사로 볼 때는 신참자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이행이 발생한 것일까?

2. 저자 고쿠분 고이치로의 가설은 이렇다.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행동에 책임을 지울 필요가 강하게 대두되었고, 그리하여 행동은 각 행위자의 의지에 따른 결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고대 말에 큰 도시가 형성되면서 친밀도가 높지 않은 사람들 간의 관계가 많아진 상황을 상정해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 도시에서, 가령 사회에 큰 해를 끼친 행동을 누가 한 것인지, 그 행동에는 그의 의지가 얼마나 포함된 것인지를 구별할 필요가 생겼다. 지배 체제의 권력이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도 좋다. 아무튼 그리하여 생겨난 언어 구문이 바로 능동태와 수동태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 태로 언어를 구사하게 되면서, 역으로 개인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는 현상이 더 가속화되고 강화되기도 했다.

3. 반면, 중동태는 능동 아니면 수동으로 판연히 구분되지 않는 수많은 행위들을 훨씬 더 풍부하게 기술할 수 있는 태였다. 그런 기능 때문에 현재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잔존해 있다. 서양 현대어의 재귀 대명사 구문이나 I am shown 같은 이상한 문장이 중동태의 변형된 생존자들이다.

4. 󰡔[중동태의 세계]󰡕는 인간에게 행위의 책임을 묻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잘 보여주었고, 많은 독자들이 그에 공감했다. 그러고 보면, 현대의 개인들은 사회의 압박에 얼마나 시달리며 갑갑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하지만 내게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또 출간이 된 이후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그래도 책임이나 의지에는 소중한 의의가 있지 않느냐는 거다(참고로 책의 부제는 [의지와 책임의 고고학]이다). 또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순연한 의지 따위 불가능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분명히 옳다. 그렇지만 의지를 꼭 그렇게만 정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예컨대 비슷한 조건, 비슷한 환경에서도 이 사람은 이렇게 행동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지 않는가? 중소 규모의 집단 속에서 내가 책임의식을 갖고 활동하거나, 어떤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행위 중 자연스러운 경우도 꽤 있지 않은가? 요컨대 책임이나 의지 문제는 좀 더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다수자의 권력 장치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희생 제의에는 절대 반대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나의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5. 지난 주,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 연구]󰡕를 배송받았다. 2020년 12월에 일본에서 출간되었고 책 거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2021년 5월 10일부로 4쇄 발행이라고 되어 있다. 고쿠분 고이치로와 구마가야 신이치로의 공저다. 구마가야는 소아과의사이자 도쿄대학 첨단과학기술연구 센터의 교수다. 신생아 가사(假死) 후유증으로 뇌성마비 환자가 되었고 이후 휠체어 생활을 해왔다. 대표적인 당사자 연구자다. 이런 구마가야와 고쿠분이 ‘책임’의 문제를 둘러싸고 대담을 나누고 거기에 미니 강연을 곁들인 기록이 이 책이다. 책 소개를 보니, 타락해버린 ‘책임’ 개념을 근본적으로 다시 묻고, 중동태적으로 다시 포착하려는 시도라고 한다. 이를 통해, 전반적으로 무너진 일상으로 새로이 나아가려는 이야기라고. 아~ 내가 궁금해하던 내용들이 상당히 들어있겠구나! 그렇지만 결론이 어떻게 되냐고 묻지 마시라. 아직 반도 못 읽었다.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 연구]

6. 책의 서장은 「중동태와 당사자 연구」다. 여기서 구마가야는 의존증자들이나 정신장애자들을 예로 들면서 지각, 기억, 운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대목은 내게 강한 흥미를 유발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7. 나를 포함해 한국인 대부분은 󰡔[중동태의 세계󰡕]를 통해 중동태를 처음 접했다. 그래서 이 책이 일본의 중동태 논의에 대한 강한 비판서기도 하다는 점을 알지 못했다.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적인 정신의학자 기무라 빈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중동태의 세계]󰡕보다 4년 전인 2013년에 󰡔[예술의 중동태 – 수용 및 제작의 기층]󰡕이라는 책도 나온 상태였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중동태의 세계]󰡕는 기존의 논의에 맞서, 스피노자와 들뢰즈 등을 장착한 새로운 중동태론을 펼친 책이다. 나는 󰡔[중동태의 세계]󰡕 한국어본을 출간한 뒤, 󰡔[예술의 중동태󰡕]와 그 외의 중동태 논의들을 읽어보며, 고쿠분의 논의와는 다른 지평(주로 정신장애에 관련된)을 깨달으며 중동태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되었다. 구마가야가 맨 처음 출발하는 장소가 이 지평과 관련되는 것이어서 내게 더더욱 흥미로웠던 것이다.

󰡔[예술의 중동태 – 수용 및 제작의 기층]󰡕

8. 󰡔[중동태의 세계]󰡕의 본문과 저자 후기에 조르지오 아감벤의 󰡔[신체의 사용]󰡕이 나온다. 2014년에 이탈리아어로 출간되었고 2015년에는 불역본이, 2016년에는 일역본이 나왔다. 이 책의 에필로그는 「탈구축적 가능태의 이론을 위하여」다. 나는 2015년에 나온 영역본 󰡔[The Use of Bodies] 󰡕로 보았는데, 고쿠분의 책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역시나 방대하고 섬세한 논의가 매력적이었다. 무슨 내용이냐 하면 그게, 그게 ...... 잘 모르겠다. 재밌게는 읽었지만 쉽지 않았고 또 영어로 읽은 탓에 기억이 더욱 흐릿하구나. 일역본을 보니 일역자가 아감벤의 의도를 이렇게 정리해놓았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존재론적 장치, 즉 ‘존재’의 양상을 뒤나미스(가능태)와 에네르기아(현실태)라는 두 항으로 분리한 다음, 전자에 대한 후자의 우위라는 방향으로 양자를 절합(節合)하고자 하는 장치를 탈구축하여, 도리어 아뒤나미아, 즉 하지 않을 능력(하지 않음)으로부터 전망되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표명해보이고자” 한다고.

9. 일본어를 가르칠 때 수강생들에게 대략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능동과 수동은 서양 언어의 구조일 뿐,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수동과 능동 중 우열을 따지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게다가 양자의 대립 구조에 구애받을 필요도 없다. 다만, 서양 언어의 능동 수동을 잘 배웠다면 필요한 대목에서 잘 구사하면 된다. 거의 이런 수준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생각에도 거의 발전이 없었다. 그러다가 󰡔[중동태의 세계]󰡕 번역을 계기로 이후 중동태에 대해 적잖은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풍부하게 느끼는 데는 물론이고 표현하는 데에도 꽤 힘이 된다. ‘중동태’에 대한 책들이 활발하게 번역되고, 한국인들도 한국어라는 유니크한 언어의 사용자로서 또 다른 중동태론을 펼쳤으면 하고 바란다.

10, 2018년에는 오타기리 겐타로라는 모르는 저자에 의한 책 󰡔[중동태・지평・부뚜막 : 하이데거의 존재 사색을 둘러싼 정신사적 현상학]󰡕도 나왔다. 이건 또 무슨 내용일까? 󰡔[존재와 시간]󰡕 초반에 하이데거가 ‘현상’이란 말을 분석하며 중동태 얘길 했다는 기억이 있긴 한데, 흠... 책값이 6000엔이 넘네.


[중동태・지평・부뚜막 : 하이데거의 존재 사색을 둘러싼 정신사적 현상학]





박성관(독립연구자, [중동태의 세계]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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