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선SF키드의 회상: 환상특급과 금강산 댐 추억, 그리고 방공호 / 임태훈

내 유년기의 감수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작품이 있었으니, 그중 하나가 올해 헌정 비평집을 냈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1982)이고, 또 하나가 <환상특급 The Twilight Zone>(시즌 2 1985-1989)이다. <환상특급>이 한국에서 처음 방영된 날은 1986년 10월 26일이었다. 그때 나는 국민학교 1학년이었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시리즈인 줄도 몰랐고, 볼 계획도 없었다. 저녁 먹고 TV를 보다가 우연히 보게 된 것뿐이었다.


그날 그때의 내가 애타게 기다렸던 방송은, 저녁 9시 넘어 방송하는 <전설의 고향>이었다. 무서워서 이불 뒤집어쓰고 보면서도 일요일이 항상 기다려졌다. 김용식 성우의 중후한 내레이션이 들릴 때마다 브라운 관에서 신비의 차원이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은하철도 999>의 내레이션 역시 이분 목소리다. 목소리 자체로 한 시대의 사운드스케이프인 분이다.


우연히 보게 된 <환상특급>은 <전설의 고향>과는 또 다른 신세계였다. 오프닝 영상과 음악부터 충격적이었다. 그레이트풀 데드의 키보디스트 멀 손더스(Merl Saunders)의 연주가 짧지만 강렬하게 이어지다가, 프랑스 작곡자이자 지휘자인 마리우스 콘스탄트(Marius Constant)가 창안한 불길한 음색과 신호음이 울린다. 신비로운 빛이 쏟아지는 창문으로 뒷걸음치는 영상도 환상적이었다. 그날 내가 본 방송은 1950년대 방송됐던 <환상특급>의 첫 번째 리메이크 시리즈였다.


방송 이후, 워낙 반응이 좋아서 그 후로도 재방송을 몇 번 더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 방송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북한이 금강산 댐을 폭파해서 수공(水攻)을 할 거라는 난리가 벌어졌다. 평화의 댐 모금도 시작돼서, 나도 그때 500원을 바쳤다. 뉴스고 뭐고 온 나라가 기괴한 환상특급 상태였다. 이 시기 국가안전기획부는 1980년대 한국 SF 판타지계의 블록버스터 창작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역사에 길이 남길 업적이다.

어쨌거나 국민학교 1학년이 뭘 알겠나. 나는 세상이 무서웠다. 63 빌딩이 물에 절반이나 잠기는 화면을 뉴스에서만 수 십 번을 반복해 봤다. 담임 선생님에게 질문도 했다. 진짜로 서울이 물에 다 잠기냐고. 근데 자세한 설명을 안 해주셨다. 물어봐도 뭔가 퀭한 눈으로 딴소리를 하셨다. 지금은 왜 그러셨는지 다 이해한다.

그때 우리 집에는 아버지까지 부재했다. 리비아, 사우디로 일하러 가셔서 3학년 때에야 귀국하셨다. 의연하게 잘 지내긴 했지만 마음에 그늘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심란한 시기였다. 결국 나는 <환상특급>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 리메이크 시즌에 참가한 작가진은 훗날 나의 최애 작가가 된다. 할란 앨리슨과 조지 R R 마틴이 주도적인 활약을 했고, 그 시절 의욕 넘치는 젊은 연출가였던 조 단테, 월리엄 프리드킨,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참여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1950년대 오리지널 시리즈에 존경과 애정을 표하며 만든 극장판 <환상특급>은 85년 리메이크 시리즈보다 2년 앞선 1983년에 개봉된 작품이었다. 한국에선 정식 개봉은 못하고 비디오 샵으로 직행했다. 삼화 비디오에서 나왔다. TV에서 방송된 것은 1991년 7월 20일 주말의 명화 납량특집이었다. 1950년대 오리지널 시리즈는 내가 대학생 되고 나서야 접했으니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환상특급>같은 이야기를 더 많이 접하고 싶다는 열망은 SF에 대한 본능적인 호감으로 이어졌다. 내 연배의 분들이라면 이게 어떤 체험이고 감성인지 아실 것이다. 어린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 아이가 접하는 이런저런 콘텐츠가 훗날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하다. 40대가 된 나도 생각과 마음을 리셋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마다, 원래 내가 뭘 좋아했던 사람이었나 되돌아보게 된다. 세월이 흐르며 첫 체험에 덧씌워진 정보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런 내 마음을 유튜브 알고리즘이 알아차렸던 모양이다. 가만 보면 어지간히 용한 점쟁이보다도 유튜브 알고리즘이 더 신묘하다.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스으윽 눈앞에 내민다.

이번에 다시 보게 된 <방공호 Shelter Skelter> 에피소드도, 한 아이의 아버지로 살고 있는 2020년대의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어릴 때 봤던 에피소드가 아니었던 것으로 봐선, 국내 방영은 안 됐던 모양이다.

<방공호 Shelter Skelter> 에피소드의 한 장면

‘해리 도브스’라는 백인 남성이 주인공이다. 그는 아내와 아들 하나, 딸 하나(대니카 매켈러가 연기, <케빈은 12살 >에서 위니를 연기했던 배우)를 둔 아버지다. 이 가족이 사는 집은 미군 미사일 기지 근처다. 해리 도브스는 핵 전쟁에 대비하며 집 안에 방공호를 설치하고, 아들에게 사격을 훈련시킨다. 아내와 딸은 이런 아버지가 한심하고 무섭지만 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심상치 않은 국제 분쟁 뉴스가 연일 이어지자, 해리 도브스의 핵전쟁 강박증은 점점 더 심해진다. 하루 종일 방공호에서 지내며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낸다. 결국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떠나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도브스가 두려워했던, 어쩌면 기다렸던 그날이 온다. 갑자기 창밖에서 하얀 섬광이 치솟고, 집 안이 화염에 휩싸인다. 그는 방공호 안으로 대피한다. 하지만 외부와의 연락 수단인 안테나를 펼치지 못한 상태로 고립된다.

이후 시간이 흘러, 공동묘지 앞에 있는 도브스의 가족이 등장한다. 세상은 핵 전쟁으로 멸망하지 않았다. 공군 기지에서 핵미사일 오작동 폭발이 있었을 뿐이다. 마을은 초토화됐고 방사능 오염을 막기 위해 지역 전체가 콘크리트 돔으로 봉인됐다. 도브스는 이중(二重)의 방공호에 갇혀 다시는 나올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아직도 방공호 속에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묘한 표정을 짓는다. 위의 사진이 이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에피소드를 다시 감상하면서, 부모 된 입장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 아버지는 영화나 만화와는 비교도 안 되게 아이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는 생체 콘텐츠다. 아포칼립스 한복판에서 살더라도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야 애도 그걸 보고 배운다. 절망에 빠질만한 상황이라도 어떻게든 희망을 찾는 걸 보여줘야 아이도 그렇게 산다. 우리 아빠 따위가 했으니 내가 못할 리 없다, 이런 마음으로.


<방공호 Shelter Skelter>는 미소 냉전이 끝나지 않았던 1980년대의 상상력이다. 금강산 댐과 평화의 댐이 전두환 파쇼 시대의 상상력인 것처럼. 오늘날 '방공호'를 소재로 이런 걸 만든다면, 세계관 설정의 전제는 좀비 아포칼립스나 환경 재앙일 것이다. 앞으로 미중 갈등이 과거 미소 냉전처럼 격화된다면 잊고 지냈던 핵 전쟁의 공포가 되돌아올 수 있겠다.

실제로 올해(2022년) 1월 3일에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는 ‘핵전쟁 방지와 군비 경쟁 금지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네 나라는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대만, 우크라이나 문제의 당사국이기도 하다. 북한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 북한은 미국 본토를 핵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전력을 이미 갖췄고, 2017년 이후 중단되었던 중거리급 이상의 탄도 미사일 실험을 재개했다.

시대의 불안은 소비로 이어진다. 큰 불안은 큰돈이 필요한 소비로 이어진다. 미국 부자들이 서바이벌 콘도라는 걸 사들인다고 한다. 참고로 서울 서초구의 부자 동네에 있는 트리움하우스 5차에도 방공호가 설치되어 있다.

오늘 저녁에는 우리 아이에게 행복하고 평화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동화책을 읽어줘야겠다. ​

임태훈(조선대학교 기초교육대학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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