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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절망이라는 행위 / 박성관

최종 수정일: 2022년 10월 26일

양자역학 성립사에 관한 최고의 책 󰡔[양자혁명]󰡕. 초반부에서 저자는 플랑크가 누군가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 대목을 인용하며 이렇게 썼다.

자신의 새로운 공식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플랑크는 어쩔 수

없이 양자 발견에 이르는 “절망적인 행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양자 혁명 - 양자물리학 100년사], 만지트 쿠마르 (지은이), 이덕환 (옮긴이) | 까치 | 2014년 4월. p.39.)


1. 먼저, 번역자 이야기부터.

내가 읽은 과학 서적들은 대부분 외국 필자의 저서이고, 그러니까 그 책들을 누릴 수 있게 해준 실질적인 천사들은 번역자들이다. 그중 가장 크고 많은 선물을 안겨주신 분을 다섯 손가락으로 꼽자면 󰡔양자혁명󰡕의 역자인 이덕환 선생님이 들어간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나 [󰡔바디]󰡕는 물론이고 󰡔[현대 과학의 빅 아이디어 : 앨리스]와 [밥이 화염의 벽을 만나다󰡕], [󰡔볼츠만의 원자]󰡕 등, 하나같이 수준있고 기품있는 책들을 수없이 번역해주셨다. 이외에도(몇십명을 더 열거하며 칭송할 수 있지만) 이한음, 박병철, 전대호 선생님 등이 이덕환샘과 막상막하이며, 재미있게도 이 분들 모두 까치출판사와 많은 작업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 분들로부터, 외국의 과학자들이나 과학 저술가들 또는 국내의 훌륭한 과학 관계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도움을 크게 받았다. 나의 제1 은사님들이다.

한데 읽다 보면 역시나 번역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사실 그것은 한국의 “번역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면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나는 거기에 1도 불만이 없다. 그런 문제들을 우려해서 지금보다 덜 번역해주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필요하면 내가 원문을 확인하면 되고, 그중 일부 확인된 결과는 이렇게 글을 쓰면서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집체 번역이다. 이만큼 좋은 책들을 이렇게 신속한 속도로 번역해주시는 번역자 선생님들께 감사!!!

2.

앞서 인용한 문장의 원문은 이렇다.

Pushed to the limit in the struggle to understand his new formula, Planck was forced into ‘an act of desperation’ that led to the discovery of the quantum.

정확한 번역이야 내가 더 잘할 수 있겠는가마는, 나는 이샘이 “절망적인 행위”라 옮긴 구절을 “절망이라는 행위”로 달리 이해한다. 이는 1장의 제사 중 하나로 인용된 문장에 들어 있는 말이다.

“Briefly summarized, what I did can be described as simply an act of desperation.”

—MAX PLANCK

대략적인 뜻은, 나(막스 플랑크)가 했던 일을 말로 하자면 그저 절망을 했다는 것, 절망이라는 행위뿐이었다, 이런 의미겠다. 절망을 행(위)한다? 당신, 그런 거 행해본 적 있는가?

3.

막스 플랑크는 독일 물리학자로 흑체복사 문제의 주인공이다. 독일이 이 문제에서 선두로 치고나갈 수 있었던 건 연재 3회(「온통 검은 물체와 빛만 존재하는 곳」)에서 말했듯 철강 산업의 급속한 발달이 배경에 있다. 한데 󰡔[양자혁명]󰡕이 주는 추가 정보에 따르면, 당시 독일은 백열 전구를 개선하려는 열망에 하얗게 불타고 있었는데, 흑체 복사는 바로 이 문제의 해결과 직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4. 자외선 파탄

흑체란 자신에게 가해지는 열을 100% 흡수하고 또 방출할 때도 완전히, 100% 방출하는 물체다. 이러한 흑체 개념은 이미 1860년에 키르히호프가 도입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제작된 흑체에서 방출하는 복사광을 확인하고, 그 세기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정밀 측정 장치를 만드는 일은 기술적으로 쉽지 않았다.”(양자혁명󰡕, p.22.) 물론 그 와중에도 서구 열강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데이터는 계속 쌓여갔다. 2천도나 3천도, 아니 5천도를 넘는 고온에서 흑체가 뿜어내는 복사의 파장(또는 진동수)과 세기에 대해서도 상당량의 자료가 확보되어 있었다. 이것을 어떻게 물리학 공식으로 정식화할 것인가? 이 과제에 당시 물리학계의 거두 레일리경(1842-1919)과 진즈경(1877-1946)이 나섰다. 그들은 이미 완성 상태에 있던 열이론과 빛이론을 바탕으로 복사의 세기를 나타내는 공식을 만들어냈다.󰡔([양자역학의 모험]󰡕. p.40.)

과연 이 공식이 실제 데이터와 맞았을까?


보다시피 레일리-진스가 고전역학에 기반하여 5000도의 상황을 그려낸 그래프(그림에선 classical theory(5000K)라 되어 있다)는 실제 5000도일 때 얻었던 데이터와 일치하지 않았다. (그림에서 K는 절대온도로, 절대온도 0K는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섭씨로 –273.15도다. 거꾸로 말하면 섭씨 0도는 273.15K다.)

그나마 파장이 길 때는 차이가 크지 않다(그림에서 x축이 파장(wavelength)이다. 그중 맨 오른쪽에 있는 숫자 3마이크로미터(μm)가 제일 긴 빛이고 좌측으로 가까이 갈수록 빛의 길이는 짧아진다) 하지만 파장이 짧아짐에 따라 그래프 좌측으로 옮아감에 따라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그래프의 수직축은 방출 스펙트럼의 강도(intensity, 세기)다. 자외선 쪽으로 가까이 가다 보면 레일리-진스의 그래프는 아예 무한대가 되어버린다. 스펙트럼의 강도가 무한대일 수는 없지 않은가? 수학에서야 ‘무한’이라는 개념이라도 있지, 물리학에서는 그냥 파탄이다. 그래서 당시 이 현상을 가리켜 ‘자외선 파탄’이라 불렀다(1911년 에렌페스트가 명명).

5. 빈의 공식과 플랑크의 공식의 차이

이 상황을 보며 빌헬름 빈(1864-1928)은 당시의 이론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이론으로 무장해 새로운 도전을 하였다. 그에 따르면 열 에너지는 지금까지와 같이 온도(T)뿐만 아니라 진동수(ν)에 따라서도 변하게 된다.(온도는 temperature에서 T로 표시. ν는 ‘브이’처럼 보이지만 고대 그리스어로 ‘뉴’라 읽는다. 영어의 n에 상응한다.) 그의 공식은 실험 결과와 거의 포개졌지만 파장이 길 때 잘 맞지 않았다. 말하자면 레일리-즌스 그래프와는 정반대 쪽에서 문제였던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해결사 막스 플랑크가 등장한다. 1858년생으로 빈보다 나이가 많았던 플랑크는 화려하지 않고 조용했던, 대기만성형의 물리학자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레일리-진스와 빈의 공식이 서로 정반대 쪽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이었다. 레일리-진스 공식은 적외선쪽에 가까워질수록 잘 맞았고, 빈의 공식은 자외선쪽에 가까워질수록 잘 맞았다. 한데 두 공식의 형태는 꽤나 달랐다.


(󰡔[양자역학의 법칙],󰡕 p.49)

두 그래프 아래에 각각 공식이 하나씩 있다. 두 공식의 좌측은 동일한데(U(ν)d(ν)), 이것이 열 복사의 세기다. 한편 두 공식의 우측은 서로 다른데, 바로 (파동의 밀집도) X (단순파동의 에너지)이다. 그런데 갑자기 왠 파동이냐, 싶으시겠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지금 빛이나 전자기파가 하나하나 기본 단위가 있다는 20세기의 대발견을 향해 가는 중이다. 그러니 이 대발견 이전에는 아직 빛이나 전자기파, 열 같은 건 모두 하나 둘 별개로 셀 수 있는 입자가 아니었다. 연못에 던져진 돌맹이에 의해 널리널리 퍼져가는, 그래서 원자나 분자처럼 한 개 두 개 별개로 셀 수 없는 파동이라고만 믿어졌다. 요컨대 열이란 파동이었다. 그리고 실재하는 파동은 단순한 파동들이 여럿 더해진 복잡 파동이었다. 마치 우리가 보는 백색광이 실은 여러 가지 색깔들이 합해진 광선 복합체이듯이. 그러므로 열복사의 세기(intensity, 강도)는 단순파동의 에너지에 파동의 밀집도를 곱한 것이었다.

두 공식은 자신만만한 홈그라운드가 정반대였고 공식의 형태는 달랐다(내가 형광펜으로 애쁘게 그린 동그라미 두 개를 보라). 이를 미관상 ‘크게 안 다르네...’ 라 느낄 수도 있지만, 수학의 견지에서 보면 심히 다른 것이다. 이 상황에서 막스 플랑크는 무엇을 했을까? 일단, 그 전에 그가 한 일의 결과부터 레일리-진스 및 빈의 결과와 비교해보자.

󰡔([󰡔양자역학의 법칙]󰡕, p.50. 상단 좌측 : 레일리-진스의 공식. 상단 우측 : 빈의 공식. 하단 : 플랑크의 공식)


플랑크의 공식이 빈의 공식과 매우 비슷한데, 두 공식의 차이가 뭐지? 딱 한 가지가 다르다.

우측 분수의 분모에 ‘-1’을 집어넣은 것이다. 이게 앞서 짚어두었던 ‘절망’ 행위의 결과다. 산수는 몰라도 수학의 세계에서는 참으로 기괴해보이는 ‘-1’, 그러나 일반인들의 눈에는 너무나 사소해보이는 이 ‘-1’, 이것이 플랑크를 양자역학의 할아버지로 만들었다.

6. 플랑크의 임시방편 공식

플랑크는 1900년 10월 19일 이 공식을 독일물리학회 학술회의에서 제시했다. 기묘하게도 이 공식은 적외선 영역으로 접근하면 레일리-진스 공식으로 바뀌었고, 자외선 영역으로 접근하면 빈의 공식으로 바뀌었다(그래서 ‘자외선 파탄’이 끼어들 틈이 없다). 어떻게 이런 요술 같은 일이 가능할까, 그것도 예술이나 자연의 세계가 아니라 엄밀하고 차갑고 딱딱한 수학에서! 이에 대해 우리의 교재 󰡔양자역학의 법칙󰡕이 중학교 수학 수준으로 호쾌하게 증명해버린다.(󰡔[양자역학의 법칙󰡕.] p.51-53에서) 그러나 대체 이 ‘-1’의 물리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이것을 파악해내지 못한다면 플랑크는 (비록 대단하긴 하지만) 데이터에 맞추어 공식을 제조해낸 타짜, 손기술 좋은 장인 같은 인물로는 남겠지만, 위대한 물리학자는 될 수 없을 것이었다. “뭐라 평가하든 간에, 플랑크가 제안한 것은 실험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임시방편(ad hoc) 공식이었다.(번역본에는 ‘임시방편’이 ‘특별한’으로 번역되어 있다. 󰡔양자혁명󰡕. p.37 번역 일부 수정.)

) 이미 플랑크 이전에도 저마다의 공식을 제시했던 과학자들은 꽤 있었다. 그들은 만일 빌헬름 빈의 법칙이 긴 파장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의심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자신이 제시한 공식이 그 빈틈을 채워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던 것이다.”(󰡔[양자혁명]󰡕, p.37)

7.

이케 짧게 써서 그렇지, 실제 플랑크의 고민 과정은 심할 정도로 복잡다단했다. 자신도 정확히 자기가 어떤 생각을 전개시키고 있는 건지 불분명했고 또 반신반의했다. 이와 관련하여 위키피디아의 ‘자외선 파탄’ 항목 중 「역사속 잘못된 사용」의 한 대목을 인용하고 싶다. “(...) 이 역사적 과정을 많은 역사가들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확한 내용이 존재하는 이유는 플랑크가 양자개념을 제시하게 된 실제 동기가 요약하기에 너무 복잡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부터 이 과정을 추적하고 싶었고 그래서 토마스 쿤의 1987년 저작 󰡔흑체 이론과 양자 불연속성, 1894-1912󰡕([Black-Body Theory and the Quantum Discontinuity], 1894-1912)을 장만해두고 오랫동안 별러 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걸 읽을 만큼의 시간을 내는 데는 실패했다. 다행히도 󰡔[양자혁명]󰡕은 (아마도 실제 과정과 매우 가까울) 정확한 설명을, 대단히 간명하게 기술해준다.

8.

플랑크는 실제로 열 에너지가 양자 단위로 띄엄띄엄 나누어져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공식은 분명히 그리 나뉘어져 있어야만 한다고 시사했다. 그는 이미 공식을 발표한 뒤,

“아무리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새로운 이론적 해석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는 현실을 인정했다. 그는 “물리학 법칙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모든 확신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기억했다. 플랑크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 자신의 새 공식을 이해하려는 분투가 극한에 내몰리자, 플랑크는 ‘절망이라는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행위가 양자의 발견을 낳았다.

열 에너지가 한 개 두 개 단위 이외에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왜 데이터와 공식은 정확히 그런 것처럼 말하는 거지? 이 진퇴양난의 지경에서 마지못해, 정말 마지못해 원자론을 수용했다. 그것은 개종이었다.

“1882년 플랑크는 “그때까지 원자론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결국 물질의 연속성이라는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원자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18년 뒤인 1900년의 이 시점에서도 “원자가 존재한다는 이론의 여지없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원자론을 믿지 않았다.”(󰡔[양자혁명󰡕]. p.39) “플랑크는 자신의 흑체 공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지난 몇 년 동안 공개적으로 “원자론에 적대적”이었던 자신의 입장에서 개종하여 원자가 단순히 편의적인 소설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양자혁명]󰡕. p.40)

그리하여 마침내 도달한 플랑크의 결론 : 열 에너지가 기본 단위로만 실존할리는 없어. 하지만 실제 데이터를 정확히 반영하는 내 새로운 공식은 그렇다고 반복해서 확언하고 있어. 그렇다면 가능한 길은 하나뿐이야. 흑체의 벽을 구성하는 블록들이 기본 단위로 실존하는 거지. 마치 원자처럼 말이야. 에너지라면 말도 안 되지만 물체가 그런 기본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건 자연스럽지 않아? 아니, 그렇지 않다면 도리어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아?

열 에너지는 연속적으로 흐르지만, 그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흑체의 벽이 최소한의 기본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흑체 바깥에서 받아보는 스펙트럼 방출물은 에너지의 기본 단위나 그 정수배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본 단위를 작용양자라 명명했다. 실제로 에너지가 그런 단위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른 물체들과 상호 작용할 때만 양자로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플랑크는 이 결론이 물리학의 최종 대답이라 생각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공식이 물리적으로 말이 되게는 해준다고 생각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다. 그는 언젠가 새로운 설명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후 역사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역사는 정반대로 흘렀고, 그 파괴력은 점점 더 거대해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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