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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꾸 둥굴구 서뚜르게 : 귀여움에 관한 단상 / 최엄윤

최종 수정일: 2022년 12월 20일



'귀엽다'는 예쁘고 곱거나 또는 애교가 있어서 사랑스럽다는 뜻으로, 나무위키에 따르면 크게 4가지 어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훈민정음 서문에 나오는 "내 이랄 윙하야 어엿비 너겨"의 '어여쁘다'가 '불쌍하다'는 뜻이듯 '귀엽다'는 '가엾다'에서 유래했다는 설, 모가 난 모서리인 '귀'가 없다는 것에서 파생되어 '모난 곳이 없다'가 '귀엽다'로 변했다는 설, 귀할 귀(貴)와 –엽다의 합성어라는 설, 그리고 사랑하다의 옛말인 '괴다'에서 파생된 '괴옵다(사랑스럽다)'가 변형되었다는 설.


안무가 권령은의 펫 육성 튜토리얼 퍼포먼스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는 '인간화된 귀여움의 이면 탐구'라는 부제를 달았다. 통상 귀여움이란 아기 또는 동물처럼 보호하고 싶은 대상을 떠올리게 한다. 제목을 된소리로 표기하면서 그것을 읽는 사람들도 잔뜩 오므린 둥근 입 모양으로, 마치 귀엽고 연약한 존재에게 말하듯 저절로 작고 둥글고 서툴러지게 만든다.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는 코로나19로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예정되었던 작업이 미뤄지면서, 예술가의 생존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해 '전략적인 귀여움'이라는 주제로 2021년 초연되었다. 2022년 같은 제목으로 재창작된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는 귀여움의 작동 원리를 ‘펫’을 키워내는 훈련에 빗대어, 반려견의 인간화, 즉 인간 욕망에 의해 대상화된 귀여움을 제시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위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무대를 내려다보는 객석, 창백한 조명, 회색 톤의 어두운 의상과 다양한 체형을 가진 6명의 무용수는 각각 독립된 3개의 장 속에서 반려동물을 기를 때의 친숙한 훈련에 맞춰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훈련의 시작을 알리듯 육성으로 터져 나온 ‘빵야’ 소리에 쓰러지는 무용수들의 반복적인 동작은 리얼한 총성에도 계속되고, 총을 맞고 쓰러진 서로를 일으키고 옮기고 돕는 과정 속에서도 몸속에 탑재된 ‘빵야’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안무가에게 반려동물의 ‘빵야’ 훈련은 예배춤, 즉 워십댄스(Worship Dance)를 떠올리게 했다고 한다. 강 같은 평화 테크닉, 물 위를 걷는 테크닉, 내 마음의 평화 테크닉. 사랑이 제일이라 테크닉, 나팔 소리 테크닉 등. 반려동물이 ‘빵야’의 쓰러지는 동작으로 인간을 기쁘게 하는 것과 인간이 신에게 순종하고 숭배와 찬양을 통해 기쁨을 주는 것이 닮았다고 생각하며 ‘빵야’의 테크닉이 추가된 워십댄스로 첫 번째 챕터는 마무리된다.


©Aiden Hwang

인간화하기 위해 다소 길게 느껴질 정도로 반복되는 훈련. 그렇게 동물의 신체에 행하는 행위와 태도들은, 좋은 무용수가 되기 위해 먹은 것을 게워 내는 행동이나(<몸멈뭄맘>, 2015), 군 면제를 받기 위해 치밀하게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기술(<글로리>, 2016) 등 ‘신체를 대하는 가학적 태도’라는 권령은 안무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와 맞닿아 있다. 무용수 개인의 몸으로부터 우리가 의심 없이 믿고 따르는 제도, 시스템, 현상 등을 복원해 냄으로써 관객의 신체 어딘가에 균열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살아남기와 귀여움


두 번째 챕터는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의 초연과 동일한 장으로 무용수들은 다리를 짧게 하여 무대를 아장아장 걸어 들어와 각자의 귀여운 동작을 제시하고 서로 싸우고 쓰러지고 이기는 과정에서도 귀여움을 잃지 않고 반복적으로 그 동작들을 상품화하듯 보여준다. 이 장은 ‘사냥에 적합하거나 더 귀여워 보이거나’라는 소제목이 붙었는데 세 개의 챕터 중 관객들이 가장 편하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생존하기 위해 '사냥에 적합해지거나' '더 귀여워 보이는' 것 중 하나, 또는 두 가지 모두를 지녀야 한다면 관객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위치에 따라 이 장면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무용수의 위치에 이입할 수 있을 것이다.


©Aiden Hwang


앞서 제시된 4가지 귀여움의 어원 중 '모난 곳이 없다'는 것으로부터 둥글둥글 귀엽다는 것은 모양을 나타냄과 동시에 유순한 성격으로도 읽힌다. 종종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모난 사람 취급받기도 한다. '모난 정이 돌 맞는다'는 속담이 있듯 둥근 귀여움의 형질은 생존에 유리하고 약자이기 때문에 가져야 하는 전략이 되기도 한다. 공연 후 개인적인 친목 모임에서 20~40대의 몇몇 여성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귀여움에 관해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를 보지 않은 친구들이었지만 그들은 내 집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제목이 주는 귀여움에 즉각 반응했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한 친구는 전략적으로 서투른 척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설득하는 과정이 무척 피곤하기 때문에, 혹은 잘 모르고 미숙한 척해야 필요한 도움을 쉽게 얻어내기 때문에. 반대로 대다수의 동료가 남성인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한 친구는 귀엽게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써온 경험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여기서 귀엽게 보인다는 건 무시를 당할 수도 있고, 능력만으로 오롯이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 권령은 안무가는 바이러스나 백신 등이 캐릭터화될 때 우리가 경계를 낮추듯 귀여움은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무언가를 은폐하기도 하고 달리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작꾸 둥글구 서뚜르게> 속에서도 귀여움을 위해서라면 필요한 것들을 취하고, 존엄성, 자존심 등 매우 중요한 가치라도 내 생존을 위해 제거할 수 있는 것.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작업의 의도이기도 했고 그것이 관객과 만나 화학작용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한다.


©Aiden Hwang

세 번째 챕터에서는 엘리자베스 카라를 목에 건 무용수들이 초상화 속 귀족이나 왕족처럼 포즈를 취하며 우아하게 움직인다. 엘리자베스 카라는 16~17세기 패션의 아이콘이자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이었다. 인간이 행하는 반려동물 중성화 수술을 비튼 장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의 완성을 위해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은 생식기관의 일부를 제거하고 대신 그곳에 아름다운 왕관, 즉 엘리자베스 카라를 씌우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인간화라고 하면서 그들의 지위를 승격시켜 줄 것 같지만 사실 한 존재의 생식기관을 제거해도 되는가에 대한 찬반은 뜨겁다.


이 모든 것이 혼재한 귀여움을 신체에 장착한 채 무용수들은 무대와 함께 아래로 내려가며 퍼포먼스를 마친다.




“이 작업에서 귀여움은 생존을 위한 전략 도구이자 방법론으로 언급되고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무대 위 퍼포머의 위치를 하강시키며 관객과 퍼포머의 시선에 위계를 줘요. 귀여움을 바라보는 시각이 가진 폭력성을 누군가 체험하길 원했어요.”


작자 미상의 아주 오래된 안무를 기다리며


귀여움에 대한 복잡한 질문은 여전히 머릿속에 남는다. 아기나 동물이 가진 순수한 귀여움이 전략과 무관하듯, 나는 자연스럽게 귀여운 할머니로 나이 들고 싶고 사랑하는 대상을 귀엽게 바라보고 싶다. 그것은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며 애정의 표현이다.


귀여움에 대한 권령은의 마음은 ‘케이팝 댄스 플레이 게임’과 ‘관광버스 춤’ 등 사회의 부정적 시선과 편견에서 벗어난 춤으로부터 출발한 <당신은 어디를 가도 멋있어(2019)>, <암호명 부곡하와이(2021)>에서 보여 준 태도와도 유사하다. 춤의 신성함에 대해 이야기함과 동시에,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춤을 모여 추는 것에 대한 열망, 행복감, 체화된 기억 등, 그 양면적인 태도를 드러냄으로써 춤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듯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에서도 순수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 그리고 그걸 얻기 위해 저지르는 비이성적인 행위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때론 삶 속에서 약자의 위치에 처할 때 권령은 역시 귀여움을 무기처럼 사용하기도 했고, 동시에 그건 자신이 가지지 못한 다른 무엇 때문에 필요한 조건이라는 마음도 들었다고 한다. 진짜 가지고 싶은 것이 귀여움은 아니지만 그나마 그거라도 있을 때 칭찬과 보호를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략으로 사용되는 귀여움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귀여운 사람이고 싶은 본인에게도 속한 귀여움에 관한 양가성. 그녀는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


2022년 모므로 살롱에서 보여 준 <엄마 입>이라는 작업에서 권령은은 “작자 미상의 아주 오래된 안무들은 내 엄마로부터 전달되었다”고 했다. 정체성에 대해 인정받기보다 서투르고 부정된 상태로 덜 익은 채 크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르게 불리는 이름처럼 자신이 누군지를 명명할 만한 그것을 정확히 갖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현대 무용 씬에서 꽤 이름을 알린 안무가이고 입지도 다졌다고 생각한 그녀의 뜻밖의 고백 앞에서, 자신을 식물에 비유한다면 허브와 같았으면 좋겠다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흔들리며 짙은 향을 퍼뜨리는 허브처럼 오래된 안무의 씨앗들이 땅을 뚫고 뻗어 나와 마음껏 자랐으면 좋겠다.


최엄윤, 사무엘 베케트의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는 말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언젠가 결국은 창작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omyu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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