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공공예술의 자리 / 김보슬

최종 수정일: 3월 9일

계속되는 최황 작가와의 대화.

지난 달 “변종산행(3): 인터넷산악회의 진짜 산행”으로부터 기약했던 공공미술에 관한 내용이다. 그사이 이들의 다큐 시리즈 <어쩌다 클라이머>가 유튜브에 오른 가운데, 나는 미술의 공공성과 장소성 위주의 대목들을 따로 모았다. 전체에서 부분을 떼어낸 결과가 다소 매끄럽지 못할지라도 핵심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만 된다면, 본 지면의 끝자락에다 매번 공공예술 전공 이력을 써먹는 나로서는 밀린 숙제를 조금이나마 하는 셈일까.

최황: 혹자는 예술가가 사회에 반응하는 것이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라거나 의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그런 이야기들은 너무 비장하잖아요. 애초에 예술에 그런 의무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요. 어떤 예술가들이 사회에 관심을 쏟는 건 그냥 성향이지,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예술 활동을 하겠다는 게 아니거든요. 저 역시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10년 동안 소위 ‘사회생활’이란 걸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세계와 시대와 사회에 관해 할 말이 좀 생겼던, 그런 성향의 사람이었던 거고요. 게다가 이 사회라는 소재가 조각가의 FRP나 화가의 독성 미디엄처럼 인체에는 해로운 물질이라서 만지면 만질수록 작가 본인에겐 손해거든요. 그러니 예술의 책임, 의무, 역할 같은 걸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예술 혹은 예술가와 거리가 멀 겁니다. 예술은 자기를 갉아먹는 그런 게 아니어야 해요.

나: 저는 <광장/조각/내기>(http://p-p-p.site) 프로젝트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그중 하나로 작가님의 <누구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작품을 보다가 ‘와, 이거 빼박(빼도 박도 못하다)이야.’ 하는 생각이 스치고는 빼박의 어원이 잠시 묘연했어요. ‘빼다 박은 듯’의 준말이던가 하고요. 마침 그 작품에서 “기념비의 기념비”, “기념비의 기념비의 기념비”, 최종적으로 “기념비”라는 자막이 순서대로 등장합니다. 빼박과 기념비로 인해 재현이 가지는 은폐 기능을 감지했어요. 원형이 풍화되고 망각되는 거죠. 장소의 진정성 측면에서는 고유한 정체성이나 상징적 의미가 사라지고 나면 ‘장소 상실’이 시작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장소성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었어요. <광장/조각/내기>에서 다룬 장소 인식과 등반의 장소 인식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요?

[사진 1. <광장/조각/내기> 웹사이트 홈 화면 http://p-p-p.site]

최황: 기본적으로 <광장/조각/내기>에서 저와 참여 작가들은 도시의 장소들을 지목합니다. 우리가 흔히 공공미술이라 부르는 것들이 서 있는 곳이 도시이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가 공공미술을 펼쳐놓고 싶은 곳도 도시니까요. 도시를 벗어난 곳에 공공미술이 필요할까요? 그게 어떤 것에 대한 기념비가 아니라면 저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현재까지 펼쳐진 관 주도의 K-공공미술의 면모를 보면 말이죠. 물리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기관이 판을 깔고 그 위에 공공미술이라며 펼쳐놓는 것들은 다 어트랙션에 불과하거든요. 기관 입장에선 ‘우리 이런 거 만들었다’는 방식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만든 기획자나 작가들 입장에선 포트폴리오를 한 줄 늘리는 방식으로 이 어트랙션이 작동하니까요. 여기서 공공성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공공미술은 항상 실패하고 있죠. 다시 말하면 공공미술은 도시라는 장소특정성을 반드시 포함해야 해요. 도시는 예산이 넉넉한 공공기관이 있을 뿐 아니라, 프로젝트를 맡길 예술가가 몰려드는 곳이어야 하죠.

반면 산에서 도시가 아닌 변두리와 지방을 자주 감각합니다. 물론 서울에서 지하철로 갈 수 있는 북한산이나 도봉산, 관악산도 있지만 그런 산 주변은 분명 ‘서울’과 다르죠. 강원도 정선과 태백 산간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설악산의 케이블카 설치를 두고 속초에서 벌어지는 일들, 지리산을 중심으로 경상도와 전라도로 뻗어가는 도로 주변의 다른 풍경들, 각 산맥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확연하게 보이는 소멸들을 감각할 수 있죠. 이건 예산이 넉넉한 기관과 몰려드는 예술가들이라는 공공미술의 필요조건에서 감지할 수 있는 것과 아주 많이 다릅니다. <인터넷산악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니까 훨씬 다양한 장소를 감각할 수 있게 됐죠. <광장/조각/내기>가 서울이라는 장소에 기반했다면 <인터넷산악회>는 서울 외부의 장소를 기반으로 두고 전개되니, 스스로도 앞으로의 작업들이 기대됩니다.

나: <인터넷산악회>가 작업대 확장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겠군요. 그간의 다른 작업과는 어떤 식으로 연관될까요?

최황: 그동안 제 작업들을 돌이켜보면 어떤 특정 사건에서 시작해 그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고 자료를 모아 재구성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요. 을지로 개발 과정에서 드러난 당시 서울시장의 철학적 모순을 가지고 만든 <박원순개인전>도, 공공기관 주도로 구성되는 공공미술 사업과 그걸 수행하는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실패작들을 다룬 <광장/조각/내기>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작업실 없는 조각가의 실존을 개인전으로 펼친 <행복이 가득한 방>도 전부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들로부터 시작했죠.

[사진 2. <박원순개인전> 전시 포스터]


[사진 3-4. <행복이 가득한 방> 전시 포스터 및 전시장, 사진 출처_전시공간(全時空間)]

한편, 등산은 18세기 서양 백인 남성들로부터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성의 담론으로부터 파생됐어요. 그 이전까지 사람들은 몽블랑의 정상엔 악마가 산다고 믿었거든요. 18세기 후반에 오라스 베네딕트 소쉬르라는 스위스의 과학자가 몽블랑 등정에 현상금을 걸었고, 실제로 사람들이 몽블랑 정상에 올라 악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면서부터 우리가 말하는 등산, 즉 알피니즘이라는 것이 탄생한 거죠. 이렇게 근대의 등산은 서양 백인 지식인층의 모험 활동으로 자리잡아 유행했고, 이게 제국주의의 물결을 타고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왔던 것이 19세기 후반입니다. 당연히 일제시대 때 처음으로 ‘산악회’라는 것이 이 땅에 조직됐고요.

피식민 경험이 있는 한국인들이 일제시대 때 들어온 등산문화에 친숙해지는 과정을 파악하면서 작업으로 연결 지을 수 있는 사건들이 굉장히 많다고 판단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 후반 불어닥친 국제 금융위기의 여파로 등산 붐이 일어난 것과 2000년대 후반 한국 산악인들이 직지심체요절을 홍보하겠다는 일념으로 그 어떤 관계도 없는 파키스탄의 무명봉에 올라 ‘직지봉’이라 이름 붙인 것입니다. 후자는 특히 식민주의적 활동이라서 더 흥미롭죠. 저는 이 세계의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지점에 관심이 많은 사람 같아요. 산에도 그런 게 즐비하죠.

나: ‘그랜드투어(grand tour)’가 떠오르네요. 도강(渡江), 도항(渡航), 월경(越境)이 권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되었던 18세기에는 영국 상류사회를 중심으로 여행이 저렇게 불렸다지요. 전시 감상도 지금처럼 예술품이 순회하는 전시장 방문을 의미하지 않고 성곽이나 성당을 찾아 먼 여정에 나서는 일이었다고 하고요. 지금은 광장, 기념비, 경관, 공공미술, 문화도시가 얽힌 타래가 ‘공공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도시에 살고 있어요. 그런데 산에 올라 거기서 멀어지는 느낌은 어떤가요? 그런 거 안중에 없다, 산에 오를 땐 예술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셔도 좋습니다.

최황: 산에서 마주치는 가장 흔한 공공예술 혹은 기념비 비슷한 것은 산 봉우리의 이름이 적힌 비석이나 산에 얽힌 전설이 적힌 표지판 같은 것들인데요, 저는 이걸 볼 때마다 좀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옥녀봉’ 같은 이름이 적힌 봉우리들이 꽤 많잖아요. 와중에 어쩌다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설명하는 표지판엔 더 이상한 설화 같은 것이 적혀있죠. 등산이라는 것이 18세기에 등장한 이성적 사고와 함께 탄생했는데, 역으로 21세기 한국에서는 비이성적인 상상력이 꽤 많이 등장하는 곳이 산이에요. 산악회들이 매년 초 지내는 시산제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것들을 공공성에 부쳐 바꿔보는 프로젝트를 떠올리기도 해요.

나: 공공예술에는 수도와 지방, 도로, 공원, 광장에서 골목까지 광범위한 장소적 배경들이 동원돼 왔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가 십오 년 넘게 계속되고 있고, 이즈음에는 수원에도 공공예술프로젝트가 생겼어요. 올해 개최되었던 ‘가상정거장’은 가상의 공간을 그 무대로 점유하기도 했으니 공공예술을 논할 수 있는 곳이 비단 광장이나 골목만이 아님이 훨씬 분명해지고 있네요. 도시가 아닌 곳에는 공공미술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한편으로 매우 수긍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가장 먼저 공공미술을 전공 분야로 도입했을 당시 그 이름이 ‘도시환경미술학과’이기도 했고요. 그러면 자연에는 공공예술적 관심이 전혀 파고들 자리가 없을까요? 자연이 가지는 장소성, 또는 무장소성에 새로운 관심을 가져볼 만하지 않은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황: 공공예술이 어디에 놓이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예술작품이 공공장소에 놓인다고 공공예술이 되는 것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언급했듯 공공예술의 필요조건이 어떤 매무새로 형성되어있느냐, 그리고 그 결과값에 어떤 공공성이 확보됐느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그게 광장이든 골목이든 가상 공간이든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광장/조각/내기>도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라는 정부 기관의 예산과 서울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라는 조건, 즉 인프라가 있었기에 다른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매무새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광장/조각/내기>를 통해 분명히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과연 우리가 무엇을 공공예술이라 부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죠. 여기서 나아가면 왜 그곳에 공공예술을 놓아두려 하느냐는 질문과 마주칠 수 있겠어요.

계속 산이 예가 되었으니, 한국인들이 히말라야 자락 어느 봉우리에 어마어마한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잖아요. 직지봉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겠어요. 한국과 아무 상관도 없는 땅의 산봉우리에 직지봉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모자라 ‘직지루트’라는 등반 루트까지 만들기 위해 나섰다가 두 명이 실종되기도 했어요. 어떤 산에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 더 큰 규모의 모뉴먼트 만들기가 또 있을까 싶어요. 이때 물리적 장소성은 산이라는 곳에 있지만 사실 그런 물리적 장소성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프로젝트가 형성된 과정과 그 과정 전체를 추진한 멘탈리티가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우리는 다시 공공예술로 돌아와서, 공공예술이 추진되는 동력에 대해 되물을 만한 시기가 아니냐는 반문을 해 봅니다. 저는 그 동력에서 욕망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앞에서 ‘나를 찾는 여행’이 실패한 이유가 여행이 아니라 여행자 자신에게 있었듯, 공공예술의 성패도 그것이 놓이는 장소가 아니라 공공예술 자체에 있겠죠.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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