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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연극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 / 최엄윤


(설정사진)너의왼손이나의왼손과그의왼손을잡을때_두산인문극장2023_크루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잠시 시간을 내어 거울 앞에서, 또는 핸드폰 카메라 앞에서 다음의 감정들을 밋밋하게, 과하게, 또는 적당하게 표현해 보시라.

무서움, 사나움, 잔인함, 폭력성, 짓궂음, 약삭빠름, 오만, 거짓말, 음흉함, 이중성, 교활, 무절제, 성남, 짜증, 화풀이, 광기.1)

위 감정들은 정진새의 희곡 『액트리스투: 악역전문로봇』에 나오는 로봇의 연기훈련을 위한 대사이다. 미묘한 차이로 구분되는 여러 악한 감정을 표정과 몸짓, 소리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통상 사람들은 딱딱하고 기계적인 몸짓과 목소리, 감정이 잘 전달되지 않는 표정 등을 두고 ‘로봇’ 같다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정진새가 쓰고 연출한 《액트리스원: 국민로봇배우 1호》, 《액트리스 투: 악역전문로봇》의 국립극단 로봇배우들은 이천년이 넘는 연극사 속 가장 극적인 형태의 상황들에 대한 데이터가 입력되었기 때문에 인간배우보다 훨씬 연기를 잘한다는 설정이다. 2029년부터 2039년까지 국립극단의 로봇배우로 활동한 액트리스원은 노배우 성수연의 간병로봇이었는데 노배우가 인간을 더욱 진실하게 보여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자 반복되는 모방을 통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표현으로 국민로봇배우의 1호의 지위를 얻게 되고, 그 실감 나는 연기로 인해 상대 역할의 인간배우로부터 처참히 공격당해 죽게 된다. 달리 말하자면 기능 복구가 불가능하게 된다. 국립극단의 두 번째 연기하는 로봇 액트리스투(2044-2049)는 산업용이었다가 악역전문 예술로봇이 되어 연극에서 인간들이 맡기 싫어하는 역할을 하다 인간들에게 박해를 받고 난민 신세가 된다.

출처 : 국립극단 블로그 (https://blog.naver.com/ntck1234/222299362889)

철학과 유머로 가득한 이 농담 같은 작품은 로봇배우를 통해 연기와 연극의 본질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예술계 노동의 현실을 꼬집기도 한다. 작품은 기계류를 창조한 영장류, 즉 인간의 질투와 불안, 공포, 혐오가 연극계에서 로봇을 퇴출시키고, 다시 휴머니즘 시대로 퇴보, 결국은 연극마저 사라지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연극이 사라진 것은 인류 멸종의 서막이었다.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 사라지자 인간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로봇은 인간을 섬겼으나, 인간은 혐오로 되갚아주었고, 자연 또한 인간을 위했으나, 인간은 파괴로 되돌려주었다. 그리고 지구의 종말은 성큼 다가왔다.”2)

특이한 종(種) 간의 불편한 연대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 정진새 작·연출의 공연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에는 비인간 존재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들의 일부는 인간의 모방으로 구현되고 일부는 그 자체로 무대 위에 선다. 공연은 40일간 이어지는 대화재를 피해 동물, 식물, 인간 종을 실은 여덟 대의 배가 바다로 출항하고 모든 종자가 선택받을 수 없기에 탑승객들이 생존 경기를 치르는 내용이다. 무대로 구현된 동아시아에서 출발한 크루즈, 판도(PANDO)호에는 서울의 과학보육원 ‘리틀 노벨스’의 원장 조킹 박사와 보육원 출신의 노벨상 수상 물리학자 메이, 식물학자 에이프릴과 그녀가 입양한 딸 반인반로봇 릴리, 미국공군 악토버, 타이완 디즈니스카이테마파크 캐릭터 인형 미치 마우스 디즈니, 객실승무원 로봇 벨보이가 탑승했다. 그 외에도 한국의 하남 나무 고아원에서 가져온 작은 나무, 중국 베이징 인민공원의 고사리, 러시아 사할린 시드볼트의 스트로부스잣나무 씨앗, 일본 후쿠시마 붉은 숲의 은행나무, 일본아사히야마 홀로그램 동물원의 비버도 경쟁을 치른다. 그 과정에서 인물 간의 관계가 드러나기도 하고 복잡한 과학이론의 설전과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나무의 역사, 최종 생존을 위한 난센스 같은 대결 등이 펼쳐진다. 작품에 등장하는 비인간/동물/식물/기계 등은 무대에서 고유성을 가진 존재로 구현된다. 그것은 다소 낯설고 어렵기도 했지만, 인간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메시지와 연출 양식이 함께 담긴 시도로 보였다.

“왼손이 왼손을 만난다는 건 다수 종 혹은 우세에 놓인 어떤 존재가 아닌, 열세에 있거나 특이한 종들간의 불편한 연대라고 생각한다. 왼손과 왼손, 특히 셋이 왼손을 맞잡는 건 이상한 그림이고 잘 잡히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편한 연대를 시도해 보고 싶다. 다수 종들의 오만한 화합이 아닌 특이하고 낯설고 귀한 종들의 연합도 훈련하고 시도해 볼 때가 아닐까”_ 정진새3)

이러한 특이하고 낯설고 귀한 종들의 연대는 인간과 기계, 기술, 자연, 인공지능 등과의 상호작용과 연계를 강조하는 포스트휴머니즘, 탈인간중심주의에 기반을 두고 과학 기술공학을 비롯해 환경운동, 동물권 등 여러 논의와 범주를 포함한다. 작가 캐서린 헤일스는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 : 사이버네틱스와 문학, 정보 과학의 신체들』에서 “포스트휴먼이 된다는 것은 비인간적인 것과의 공존을 통해 우연성과 예측불가능성을 특징으로 하는 열린 미래를 향해 진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트휴먼은 인간성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 확실한 근원, 목적론적 궤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맹신을 철회함을 뜻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주체를 환경과 독립된 자율적 자아로 상정하기에 앞서 다른 존재와 불분명한 경계를 가진 자아로 보아 다른 존재와 함께 인간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4)고 주장한다.

한편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2000년대 이후 로봇은 무대 위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고, 신체를 가진 배우의 예술로 일컬어지는 연극에서 로봇 퍼포먼스는 미학적 차원을 넘어 연극의 개념과 의미를 되돌아보도록 질문을 던진다. 앞서 정진새의 희곡 《액트리스 투: 악역전문로봇》에서 해설자의 대사처럼 연극은 “자연을 비추는 거울“로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포스트휴먼으로서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무대는 인간에 대한 인식과 정체성의 변화를 보여주고 새로운 문화적 형태와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계와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몸으로서 배우와 현존의 개념은 새롭게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인간배우와 로봇배우

배우의 신체는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곤 한다. 그것은 동작과 표정에 나타나는 근육의 움직임과 심장박동, 호흡, 열감각 등의 육체적 인지적 반응이 배우와 관객 사이에서 상호작용함으로써 감정이입과 현존의 경험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출처 :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 https://www.doosanartcenter.com/ko/performance/1545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 속 권은혜 배우가 연기한 객실승무원 로봇 벨보이의 분절되고 정확한, 마치 세세하게 계산된 듯한 신체 움직임과 표정은 역설적으로 보는 이의 감성을 건드렸고, 앞서 언급한 《액트리스원: 국민로봇배우 1호》와 《액트리스 투: 악역전문로봇》에서도 로봇의 연기를 실감 나게 해준 성수연 배우의 탄탄한 신체연기는 극에 몰입감을 더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와 근미래에 도래할 풍경에 대한 상상을 극대화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처럼 인간배우가 재현한 훌륭한 로봇 연기를 경험한 적은 있지만 훌륭한 연기로봇을 아직 본 적은 없다. 기계와 인간이 함께하는 정금형의 퍼포먼스라던가 권병준의 《싸구려 인조인간의 노랫말2(로보트야상곡)》(2022, 대학로 극장 쿼드)에 등장하는 차갑고 약해 보이고 어두운 로봇들을 볼 때 낯설고 기괴하고 꽤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 낯설고 기괴함은 연출자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직도 무대에 선 로봇배우를 상상하는 내 머릿속은 인간 중심적인 관념들로 가득 차 감정이 없는 로봇에게 적절한 디자인과 프로그래밍을 통해 감정적인 연결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공현존의 감각은 여전히 연극에서 중요한 요소이자 연극의 의미를 환기하기 때문이다.

『한국연극학』 제74호에 실린 논문 「포스트휴먼 생명형식의 배우-되기와 그 한계」에서 권경희는 “인간의 윤리, 성취감, 도전과 실험, 질서체계, 공동체의 실현 등 우리의 관점에서가 아닌 로봇의 시선에서 가능하고 로봇이 요구하는 로봇연기가 연구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를 위해 포스트휴머니즘은 아마도 로봇을 인간의 자기투사와 도덕적 열망을 담지한 의미화체계로 간주하기 보다는 그들 자신의 코드체계를 지닌 자기 조직적 ‘기계존재론’으로 접근할 것을 제안할 것이다.”5)고 강조했다.

로봇배우와 인간의 결합은 그 이질감으로 인해 오히려 인간을 조망하게 만들고 과연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무엇이며 인간, 인격이란 무엇인지의 질문을 던짐으로써 연극이라는 예술의 가치와 존재 이유를 역설할 것이다.

1) 정진새, 『액트리스원: 국민로봇배우 1호/ 액트리스투: 악역전문로봇』, 이음, 2021, p.72-74.

2) 위의 책, p.105.

3) 장경진 <희곡개발리서치과정 미니 인터뷰> 2023.6.9. in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 프로그램북」, https://www.doosanartcenter.com/ko/performance/1545

4) 주현식,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의 퍼포먼스 – 배우로서 로봇에 대하여」, 『드라마연구』 제 51호, 2017에서 재인용

5) 권경희, 「포스트휴먼 생명형식의 배우-되기와 그 한계」, 『한국연극학』 제74호, 2020, p.63.



최엄윤, 사무엘 베케트의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는 말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언젠가 결국은 창작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omyu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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