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학이라는 학문의 핵심은 형이상학(形而上學), 즉 세계관이다. 이 형이상학이 맞는지 따지는 인식론, 그것을 개인의 삶의 규칙에 적용한 윤리학, 사회와 국가에 구현한 사회 철학과 역사 철학, 그리고 이성적 추론의 규칙인 논리학 등이 철학을 구성한다.
누가 철학-형이상학-세계관을 가지려 하는가? 자신의 뜻에 따라 주체적으로 행위하고, 이 세계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철학은 강자의 학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그리스와 로마, 영국과 독일, 미국 혹은 중국 등 그 세계를 주도하는 자들이 철학을 만든다. 이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정복 전쟁을 해서 이긴 자는 주인이 되고, 진 자는 노예가 된다. 승자는 패자에게 묻는다. 노예가 될래? 죽을래? - 죽음을 두려워하는 비겁한 자가 노예가 된다. 노예는 노동을 하되, 생산물을 하나도 소유하지 못 한다. 주인은 노동하지 않되, 모든 것을 소유한다. 제로-섬 게임이다. 노예는 소유가 금지된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 사유와 의지를 가지면, 그것은 죽을죄이다. 노예는 주인의 감정과 욕망, 사유와 의지를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가져야 한다.
2. 요즘 한류가 초강세이다. 사실상 세계를 제패했다. 여기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철학과 세계관이다. 대중가요 가사에 학문 이름이 그대로 나오는 것은 ‘철학’이 유일할 것이다. (하긴 ‘수학’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사도 있다고 한다.) G-idle의 ‘nxde’라는 노래에는 “철학에 미친 독서광 (hah), Self-made woman”이라 하면서, 신문을 찢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마릴린 몬로를 기린 것이다. 그녀는 지적인 사람으로 굉장한 독서광이었지만, 대중들은 오직 섹시한 모습에만 열광했다.
아이돌 그룹이 쏟아져 나오면서, 저마다 그룹의 탄생 설화, 멤버별 캐릭터, 가사와 춤에서 자신들의 세계관을 추구한다. 심지어는 최고의 세계관을 지닌 아이돌을 뽑는 투표도 할 정도이다. 한류가 전세계에 먹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세계관을 가질 수 있겠는가? 미국의 마블의 히어로물이나 세계관을 가진다. 이외에 세계관까지 들먹이는 대중 문화를 가진 나라는 없다. - 철학은 강자의 전유물이다.
3.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자유와 연대(동맹)’을 주문(呪文)처럼 외고 다닌다. 유엔에 가서도, 미국 상하 양원에서도 연설의 핵심이 그것이다. 그의 ‘자유와 연대’는 결국 따지고 보면, 세상을 ‘자유 민주주의’ 대 ‘공산 독재’로 나누고, 자유 민주주의와 연대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세력과 연대·동맹을 해서 중국-러시아와 맞서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국의 생존을 도모한다. 태극기 할배들의 철 지난 냉전적 사고에 불과한 모호한 이념에 왜 이렇게 매달릴까?
국제 관계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철저하게 적용된다. 2등 이하는 최강자에 붙어야 생존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도 최강자가 허락할 때 가능하다. 생존하는 2등 이하는 분리된 환경이 있어야 하며, 나아가 최강자의 철학과 문화 등을 따른다. 자신과 모든 면에서 같아지려는 자를 최강자는 용인할 수 있다. 국제 관계에서 2위 이하는 1위에 의해 생존이 결정된다.
이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와 비슷하다. 철학은 최강자, 주인에게 필요하다. 2위 이하는 최강자의 철학을 그대로 가져야 한다. 최강자의 감정과 욕망, 사유와 의지를 체화해야 한다. 만약 노예가 철학을 가지면, 독립한다는 말이고, 이는 주인에게 정면으로 대드는 일이 된다. 죽을죄이다.
우리 역사는 이를 잘 보여 준다. 신라의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당나라에 빌붙어 백제를 병합하는 통일을 하고, 인조가 명나라에 올인했다가 병자호란으로 거의 나라가 망할 뻔했고, 고종이 청나라에 빌붙어서 정권을 유지했다가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고종 때문에 여전히 중국은 한국을 속국 취급한다.
현재 한국도 최강자에 붙어야 겨우 생존이 유지되는 궁박한 처지인가? 이제 한국은 경제력이 세계 10권이고, 군사력은 6위이고, 한류는 세계를 휩쓴다. 이제 우리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도 있지 않은가? 뭣에 씐 것처럼 일본에 미국에 빌붙어야 하는가? 한국의 보수는 강대국에 안겨서 생존하려 한다. 빌붙어 사는 존재들에게 무슨 철학이 필요하겠는가? 강자의 철학을 그대로 노예처럼 추종하면 된다.
4. 우리나라의 철학은 중국의 것과 거의 같다. 신라 고려의 불교, 조선의 유교가 그렇다. 김춘추가 한반도 남부만 통일한 이래 우리는 3위 이하가 숙명이 된다. 물질적 힘으로 강대국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문화적인 힘에서 최강이 되려 한다. 최강자의 문화를 그대로 구현하면, 최강자와 거의 같아질 수 있다. - 신라 이래 한국이 가진 기본자세이다. 김구 선생이 말했다. “우리의 강력(强力)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 그는 한반도의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 본 것이다. 문화의 힘의 핵심은 노예가 아니라 주인의 자세이다.
중국철학을 전공하면서 나는 몇 번 격렬한 논쟁도 했다. 이 과정에서 느낀 것 둘만 들자면,
첫째, 논리에 근거한 증명이 없다. 단지 비유를 증명으로 간주한다. 이는 맹자 이래 중국 철학의 고질병이다. 맹자 - 마음에 선한 본성이 있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 (반론 - 본성과 물은 아무 상관도 없다.)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애를 볼 때 마음이 깜짝 놀람(측은지심)은 선한 본성의 발로이다. (반론 – 측은지심은커녕, 이익을 볼 기회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드는 것이 증명은 아니다.)
둘째, 신유학 연구에서 고질병은 의인화 현상이다.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현상 사물 혹은 의인화시킨다는 점이다. 47 논쟁에서 리와 기의 관계를 사람이 말을 타고 가는 것으로 비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4단(도덕적 감정 욕망)은 리(理)가 발하면 기가 따름이요, 7정(육체적 감정 욕망)은 기가 발하면 리가 올라타야 함이다.” - 이는 정말 기괴한 신화이다. 그런데 정색을 하고 말을 한다.
5. 울산대학교는 내년부터 철학과의 신입생 모집 중지를 결정했다. 2년 연속 정원 미달이었다는 이유에서이다. 정원 미달인 과가 생기면, 그 과를 없애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아니 그 이전에 울산에서 철학이란 사치인가? 지잡대에서 무슨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이래저래 우울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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