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 역사왜곡금지법 발의에 부쳐 / 김헌주

2020년 6월 1일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의원을 중심으로(총 31명) 역사왜곡금지법안(이하 역사왜곡법)이 발의되었다. 집권 여당 의원 31명에 의해 제법 진지하게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법안이 제정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조사해본 적이 없는 터라 법안의 일반적 형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역사학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내용이 너무 엉성하다는 점만 지적해둔다. 이 글은 역사왜곡법의 내용을 살펴보고 이 법이 가지는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사왜곡법의 제정목적은 다음과 같다. “제1조(목적) 이 법은 일제강점기 전쟁범죄, 5·18민주화운동 및 4·16세월호참사 등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왜곡하는 행위 및 독립유공자와 전쟁범죄 피해자,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및 4·16세월호참사 피해자 등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국민의 역사의식을 제고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처벌의 수위는 각 항목마다 그 형량은 다르지만 1년~7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징역과 벌금형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법은 형법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일제 식민통치 옹호단체에 내응하여 그들의 주장을 찬양·고무, 선전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처벌(안 제6조).”한다는 내용도 있다. 찬양, 고무, 선전이라는 단어는 국가보안법의 용어와 정확히 일치한다. 법안 발의자들이 사상의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했던 지난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역사왜곡’의 구체적 대상은 신문, 잡지, TV와 각종 발표와 토론회, 시위 등의 발언이라고 적시되어 있다. 물론 “학술적 연구, 예술 활동, 보도 또는 이와 유사한 목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관하여 한 것인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삽입하여 학문과 예술의 표현의 자유를 형식적으로 보장하고 있긴 하다. 사상의 자유 침해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왜곡이 법률로 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가 제약될 것임은 너무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학술적 연구와 예술 활동의 범주 또한 매우 자의적이다. 예컨대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모욕적 표현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은 일종의 선전물이지만, 동시에 학술서적이다. 이런 경우 어떤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만약 학술서적이라서 처벌할 수 없다면 법의 무용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해당 서적을 출판금지시키고 저자들을 처벌한다면, 반발심으로로 인해 [반일종족주의]의 역사관은 오히려 음지로 더 확대될 것이다. 이 법이 전혀 실효성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일제시대, 5.18, 세월호 사건에 관한 진실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며 누구도 쉽게 정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이다. 물론 5.18 부정론자들과 일베 사이트의 세월호 유족 모욕 등의 행태를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회의 병균들이다. 완전무결한 사상의 ‘멸균’ 상태를 만들었으면 좋겠지만, 인류 역사에서 그런 적은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히려 병균들과 적극적으로 싸우며 면역력을 키우는 사회가 훨씬 건강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 헌법은 사상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고 있다. 법안 발의자들은 이 지점을 다시 한번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해당 사건의 관련자들과 유족들이 불쾌감을 느낀다면 현행 형법으로 처벌하면 될 것이다. 역사왜곡의 기준을 법률로 규정하고, 사법기관의 담당자들에게 역사 문제의 심판을 맡기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또한 가장 중요하게 전제되어야 할 것은 ‘왜곡’의 기준을 누가 정하느냐의 문제이다. ‘역사왜곡’이라는 용어 자체가 자의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왜곡’이 성립하려면 정사(正史)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무엇이 기준일까? 예컨대 일제시대의 경우를 살펴보자. 역사교과서에서 이 시대에 관한 정설적 견해는 일제가 수탈했고 조선인이 저항했다는 역사상이다. 이러한 역사상은 일제시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로 이 틀거리 자체를 문제시하는 연구성과들이 많이 산출되었다. 과거에는 입에 거론하는 것조차 불경시되었던 식민지기 경제성장(혹은 식민지 자본주의)은 이제는 최소한 연구자들에게는 ‘상식’이 되었다. 물론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의 과실이 과연 조선인에게도 제대로 배분되었는가의 문제이지만(조선인들에 대한 수탈은 분명 존재했으므로), 그럼에도 경제사 연구자들의 통계연구가 새로운 ‘사실’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성장론 위주의 일원적 근대화론을 뛰어넘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행되었다. 도시, 문화, 젠더, 규율권력, 생태환경 등 다양한 관점에서 식민지 시기를 재해석하는 연구들이 역사학/사회학/문학 연구자들에 의해 제출되고 있다. 이런 모든 연구들은 식민지기를 ‘근대’라는 관점에서 접근했기에 가능한 연구였다. 수탈과 저항의 역사상이 무조건적인 정사(正史)로 기능한다면, 1980년대 식민지 半봉건사회론이 유행했던 시절에 ‘역사왜곡금지법’이 발의되었다면, 지금 이 연구들이 과연 빛을 볼 수 있었을까?


이러한 복잡한 사안을 학문적 토론과 사회적 합의의 과정으로 남겨두지 않고 사법의 차원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과연 옳은가? 모든 정치적 문제의 사법적 귀결이 너무나 많은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가장 예민하고 쟁점이 많은 근현대사 문제를 법의 테두리 안에 귀속시킨다는 발상이 과연 적합한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역사문제는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여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이 무너질 때, 역사는 결국 정치권력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지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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