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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협업과 매개: 창조적 긴장 속에서 발견되는 가능성 / 김보슬

작성자 사진: 한국연구원한국연구원

십 수 년 전, 내가 미국 디자인스쿨에 재학 중이던 시절, Integrated Learning이라는 독립적인 부서는 다양한 교수진과 융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각 학과에 제공했다. 그 강좌들 중 하나였던 Neighbor-Gap-Bridge라는 과목은 학교 인근 주민이나 상인들, 기업들에게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매개자로 기능하여 로컬 콘텐츠를 만들도록 유도하고, 또는 그 반대로 주민과 기업이 서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을 매개하여 독특한 지역성이 담긴 제품을 만들게 도왔다. 이 과목은 단순히 학내 강의에 머무르지 않고 캠페인으로 발전하며 여러 학기에 걸친 수강생들과 해외 참여자들까지 함께하는 공동의 활동으로 성장했다.

'융합'이라는 단어는 2000년대 이후 학문과 산업 전반에 걸쳐 등장한 트렌드로, 개별화와 세분화에 반대되는 전체론적 비전 담을 뿐 아니라 거기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진화에 관한 담론을 펼쳤다. 특히, 예술에서의 융합적 접근은 사회적으로 요구 받는 경계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도구로 제시된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예술적 협업을 위해 인위적인 장치를 만들어야 하는가? 매개자의 존재는 예술의 자율성을 저해하지는 않는가?


예술과 사회서비스 사이의 긴장

2024년 부산문화재단은 부산지역 예술가들과 서울 기반의 참여자들이 함께 진행하는 협업 프로젝트를 주최했다. 부산에서는 다소 낯선 시도로, 이들은 여기에 ‘매개자’를 포함하여 다소 이례적인 모델을 설정했다. 장르와 장르 사이, 장애와 비장애 사이, 그리고 지역이나 문화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활동을 지원하고 촉진하는 특수한 역할을 둔 것이다. 여기서 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둘러싼 흥미로운 논쟁이 펼쳐졌다. "예술이 사회서비스로 작용하는 프로젝트라면 매개자의 역할은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주장과 "예술 협업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이어야만 가치가 있다"는 상반된 시각이 충돌했다.

이는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현대 예술이 직면한 본질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예술은 순수한 자율성을 추구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양자택일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두 가치의 창조적 긴장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질문을 통해 참여자가 스스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매개자의 핵심 역할이다." 한 매개자의 이 말은 매개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매개자는 단순한 조정자가 아니다, 창작의 방향성을 제시하면서도 참여자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균형감각의 조율자여야 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갈등에 대한 매개자들의 접근법이다. "갈등은 문제적 상황으로 간주되기보다는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로 다뤄져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창작의 동력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한편, 예술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갈등은 그 자체로 ‘촉진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부여받은 매개 역할보다 더 자연스럽고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따라서 매개자들은 해당 프로젝트에서 “성공적인 매개”를 달성하는 데 목표를 두는 대신, 매개라는 개념 자체에 관한 유의미한 시사점을 남겨 향후의 예술 융복합 프로젝트들에 기여하기로 했다.


창조적 긴장의 가치

창발 플레이 매개자들 사이의 이견은 역설적으로 예술 매개의 풍부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사회서비스로서의 예술을 강조하는 입장은 예술의 공공성과 책임성을, 자발성을 강조하는 입장은 예술의 본질적 자유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 두 관점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긴장 관계야말로 현대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예술가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법, 자발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공공성을 추구하는 방법을 찾는 것. 이것이 바로 매개자들이 직면한 창조적 과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매개는 결코 쉽지 않다. 그들은 사회적 요구와 예술적 본질 사이에서 끊임없는 내적 갈등을 겪는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고민을 넘어,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사회적 역할 사이의 긴장관계를 보여준다. 또한, 매개자의 역할은 종종 오해받거나 과소평가된다. 소극적 개입은 무능력으로, 적극적 개입은 권위주의로 해석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매개자는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하고, 이를 참여자들과 투명하게 공유해야 할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서로 다른 입장의 매개자들이 결국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술적 협업에서 중요한 것은 최종 결과물이 아닌, 그것에 이르는 여정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매개자는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예술의 자율성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창조적 긴장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조적 동반자여야 한다. 또한 매개자들은 각자의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미래의 협업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들의 실천은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실험이자,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시도다.


교환의 순간에서 발견되는 예술의 힘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공연 영상이 있다. 인도의 전통춤 카탁과 스페인의 전통춤 플라멩코를 각각 추는 두 무용수가 마주 선다. 인도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플라멩코 춤이 시작되고, 카탁 댄서는 상대방의 춤을 재현하며, 플라멩코 댄서도 카탁의 리듬에 맞춰 자신의 춤을 변형한다. 이 단순한 구조의 콜라보레이션이 감동을 준 이유는 단순히 기술적 완성도에 있지 않다. 관객은 이 결과물이 충분한 연습, 의견 교환, 신뢰와 우정의 시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두 예술가의 협업은 물리적으로 직접적인 매개를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서로의 문화와 표현을 존중하며 교차시킨 순간, 새로운 형태의 창조적 에너지가 생겨났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각자의 개성이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경계를 넓혀가며 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예술적 교류가 단순한 기술적 결합이 아닌, 깊은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적 경계를 넘는 여정을 이루어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두 전통의 춤이 하나의 무대에서 융합되는 과정은, 마치 서로 다른 목소리가 하나의 합창을 이루는 듯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협업은 반드시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개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무대 위에서 때로는 일상 속에서 서로 다른 세계가 자연스럽게 결합할 때, 그 자체로 강력한 창조적 힘이 발휘된다. 예술은 단순히 개별적인 창작을 넘어 다양한 형태들의 연결과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 가치를 더욱 확장시켜 나간다. 이 콜라보레이션은 경계를 개의치 않는, 예술 본연의 교감과 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었다.


Aditi Bhagwat와 Bena Caston의 공연, <A Jugalabandi To Remember>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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