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는 제2의 <기생충>인가? / 김청강

최종 수정일: 5월 13일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한국 영화계는 즐거운 소식으로 북적이고 있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수상에 이어, 올해도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 6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의 언론은 <미나리>를 K-영화라는 이름으로 거리낌 없이 끌어안았다. 봉준호 감독 열풍이 국내를 휩쓸며 온갖 인터뷰 명언이 언론을 도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은 K-영화를 넘어 “K-할매”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까지 불리며, 위트와 까칠함이 뒤섞인 (그래서 사실 ‘호감’과는 거리가 멀었던) 과거의 명언들까지 소환되어, 당당한 한국의 할매상이 마치 한국에 항상 존재했던 것 마냥 떠들썩하다. (윤여정 배우를 존경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해는 마시라. 누구보다 그녀를 배우로서 존경해왔지만, 현재 갑자기 쏟아지는 그녀에 대한 신화화가 조금 불편할 뿐이다.) 과연 K-영화 광풍이 다시 한 번 불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 K-영화의 연속적인 성공신화 아래에서, 우리는 “영화 <미나리>는 제2의 <기생충>인가?”라는 질문에 답해볼 필요가 있겠다. 답하기에 앞서 아래 <씨네21>에 실린 정이삭 감독의 인터뷰를 살펴보자.


“미국에서 미국 제작사와 함께 영화를 찍었지만 우리는 한국 관객을 위해 올바른 방법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의 디아스포라를 진정성 있게 표현하기 위해 저희가 최선을 다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이 인터뷰에 따르면 <미나리>는 한국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담은 명확한 디아스포라 영화이다. 감독과 주연배우, 그리고 스텝의 상당수가 한국계 미국인이었고, 거기에 미국인과 한국인의 콜라보가 이루어졌다. 스티븐 연 또한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자신들 (한국인 디아스포라)가 가진 “제3의 문화”를 그려낸 것이라며, 이 영화의 국적 혹은 ‘문화의 위치(Location of Culture, 호미바바)’를 설명했다. 다시 말해, 한국과 미국 양쪽에 속해 있으면서도, 완벽하게 그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는 디아스포라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 <미나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 “영화 <미나리>가 제2의 <기생충>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답은 “아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것과 달리, 대사의 상당 부분이 한국어였음에도 불구하고,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에 오르지 않았던 간극. 그것이 바로 <미나리>가 처해있는 바로 ‘문화의 위치’일 것이다. 같은 이유로 한국에서 <미나리>를 K-영화로 명명하는 순간, 미나리 가족이 애써 구축한 그들의 “제3의 문화”의 경계성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기에 나는 <미나리>를 K-영화로 쉽게 명명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미나리>는 어떤 디아스포라 영화이며, 그들이 구축한 “제3의 문화”는 어떤 방식으로 영화에 드러나는가? 디아스포라 영화의 오래되고도 극단적인 예이지만 <조이럭 클럽>과 같은 영화에서 아시아계 디아스포라는 트라우마에 싸인 피해자로서의 모습, 혹은 그들의 곤경이나 어려움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종종 재현되어 왔다. 그러나 <미나리>는 결코 그러한 종류의 디아스포라 영화는 아니다. 또한 베네딕트 엔더슨이 명명한 바 있는, 디아스포라가 가진 모국보다도 강한 민족주의인 “장거리 민족주의(Long distance nationalism)”가 표현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미나리>의 감독 정이삭과 배우 스티브연은 공통적으로 이 영화가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고정된 시선을 거둬낸 휴머니즘에 관한 영화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나아가 스티븐연은 이민자 1세대인 자신의 부모님에게 자식인 자기마저 갖는 이민자에 대한 고정된 시선, 고정된 서사를 거두어 내느라 노력했다고 고백한다. 나는 여기에서 스티브연이 자신의 삶에 대한 상당히 괜찮은 관찰자라고 느꼈는데, 결국 이들이 만들고 싶었던 것은, 디아스포라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정치적인 톤을 거둬내고, 온전히 한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영화였던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어느 정도 그러한 지점들을 성취했다고 생각한다.


한 인터뷰에서 스티브 연은 이 영화가 <기생충>처럼 서사의 맥락과 정치적 태도가 명확히 드러나는 영화도 아니고, 반대로 테렌스 맬릭 감독의 영화처럼 (아마도 <트리 오브 라이프>와 같은 영화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유추해보는데) 철학적이지만 사회적 맥락과는 거리가 먼 세계를 그리는 영화가 아닌, 그 중간쯤 되는 지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 말을 조금 더 해석해 보자면, 이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어 했던 “제3의 문화”가 갖는 휴머니즘은 한국인 디아스포라가 처한 모든 상황을 암시적으로 맥락화하하면서도, 일반적인 인생의 경험들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삶의 경이로움과 철학을 드러낼 수 있는 영화가 되기를 바랬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바람은 한국인 디아스포라가 가진 “제 3의 문화”를 구성하는 두 가지 이질적인 이야기를 영화에 녹이는 방식을 통해 연출된다.


먼저, <미나리>의 서사는 정이삭 감독이 밝혔듯이 <서부극>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영화의 초반 주인공 제이콥은 미국의 흙을 손으로 떠서 만져보며, “이 흙 때문에 이곳에 왔다”며 기뻐한다. 이 한국인 농부의 모습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타라의 흙을 떠서 만지는 아일랜드 이민자가 가진 땅에 대한 집착을 연상하게 한다. 또, 농산물 사업의 성공을 위해 가족을 버릴 결정까지 하는 아버지 제이콥의 모습은 자기를 파괴시키면서까지 석유사업에 집착하는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한다. 기적의 땅에 뿌리내리고자 했던 ‘백인 개척자와 동등한 모습’으로 한국인 이민자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자전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이야기인 이유겠지만, <미나리>가 <김씨네 편의점>의 편의점 주인, 세탁소 주인과 같은 미국의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친근한 대다수의 한국인 이민자의 경험을 그리고 있지 않고, 미국 백인 위주의 익숙한 서부극 서사를 따라갔다는 점은 특기할만 하다. 영화 전반에 제이콥과 모니카 가족이 이 땅에 뿌리 내리게 될 것인가 라는 서부극 드라마의 서사의 장대한(?) 서스펜스와 드라마가 흐른다. 병아리 감별사라는 파트타임 직업을 가진 ‘잠시 머무르는 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곳 땅에 뿌리내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젊고 강하고 패기가 넘치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성인 주인공들의 과거에 대한 맥락은 모두 생략된 채 영화의 서사가 전개되기 때문에, 관객은 이 한국인 이민자의 서부극의 서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다른 한편,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담긴 데이빗과 할머니의 이야기에는 허샤오시엔의 영화와 같이, 작고도 친밀하고 아름답고 유머러스한 정서를 만들어내는 감정적 공간이 자리한다. 비록 매우 ‘한국적이지 않은 할머니’의 모습으로 표상되었으나, 외할머니가 가져온 봉지봉지마다 담긴 된장이며 고춧가루는 한국인 이민자의 정서를 드러내는데 효율적인 물질로 쓰인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모녀의 정서적 공감대, 삶은 밤을 입으로 깨물어 손주에게 건네주는 모습, 침대 밑 맨바닥에서 자고, 손주의 일이라면 무조건 잘못을 덮어주는 할머니의 모습은 영화의 ‘한국적’ 정서를 핵심적으로 담당한다.


정이삭 감독은 <미나리>를 찍었던 오클라호마의 털사라는 상당히 ‘빈 공간’이 오히려 매우 ‘비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구축하고자 했던 ‘제3의 문화’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기 좋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렇듯 텅 빈 공간에, 남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서부극 서사와 아이와 할머니를 중심으로 한 개인의 정서적 에피소드가 자연스럽게 섞이며, 기묘하게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서사-드라마적인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국적을 물어볼 수 없는 강렬한 자연의 이미지와 시골이라면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정서적인 소리들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 그리고 마지막의 강렬한 화재 씬은 영화의 두 이야기가 하나로 만나게 하는 강력한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이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마지막에는 제이콥이 내내 결코 신뢰하지 못했던 미국인들마저 마침내 껴안으면서, 이제 그들과도 신뢰를 나누고, 도움을 받고, 협동하게 되는, 미국 농부로서의 한국이민자가 탄생한다. 한편의 가족 드라마이자 미국 이민자의 드라마가 종국에는 이 부분에서 ‘멜팅 팟(Melting pot)’으로서의 미국이라는 가장 미국적인 엔딩으로 끝을 맺게 되는 것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영화 <미나리>는 제2의 <기생충>인가?”라는 질문에는 이미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는 <미나리>가 가진 문화의 위치가 <기생충>과 같을 수 없으며, 이를 K-영화로 명명했을 때, 우리는 <미나리>가 가진 제3의 문화를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생충>에서 봉준호 감독이 그려낸 한국 가족의 이야기를, 결코 그가 가진 문화적 유산들 -86세대가 가지고 있는 (재미있고 설득력 있지만) 계급의 문제를 상당히 도식적이고 정치적으로 귀결시키는 구조-의 개인적, 역사적 맥락을 모른다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듯이 말이다. 결국, <미나리>는 제 2의 <기생충>도 아니고, K-영화일 수도 없다. 다만,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바랬던 것처럼, 그저 그들이 가진 그 경계성이 자연스럽게 대중적으로, 한 인간의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전달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 혹은 한국 언론이 매번 저지르는 ‘성공한’ 한인 디아스포라만을 “K” 브랜드로 끌어들이며 이 영화를 논하는 방식은, 이 훌륭한 저예산 영화를 가장 존중하지 않는 방식으로 감상하는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김청강(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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