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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영원한 낙하: 이은론 / 오영진

최종 수정일: 2023년 10월 27일

이은의 회화는 움직인다. 프레임 속의 캐릭터는 팔이나 다리를 휘두르고 있고, 얼굴에는 잔상이 남아있어 어떤 상황 속에서 감정의 변화를 겪는 것처럼 보인다. 운동은 되돌아보아도 지치지 않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다. 관객은 이 속도감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미묘한 현기증마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속도와 운동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미래파 작가 자코모 발라의 <줄에 매인 개의 움직임>(1912)을 연상케 하기도 하지만, 이은의 속도감은 단지 일직선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구역 안에서 끊임없이 회귀하며 회전운동을 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그녀의 작품에 주로 소용돌이 같은 운동이 나타난다는 점에 주의하자. 이 같은 특징은 그녀가 인터넷 밈의 방법론을 회화적으로 승화하려 노력한 결과다.


Dancing Fighting, 2023, spray, oil on canvas, 65.1x90. 작가 이은 제공9cm

오늘날 새로운 세대는 핸드폰 안에 특정한 대화 상황에 쓰일 때를 대비해 밈 이미지 몇 장 정도는 저장하고 있거나 평소에도 밈을 새롭게 수집할 수 있는 커뮤니티 활동을 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톡 등지에서 누군가 보내는 짧은 동영상 혹은 이미지를 저장해 보았다면 당신도 밈 사용자이다. 고독한 카톡방 놀이처럼 전혀 문자 텍스트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서로의 감정과 상황, 상태를 교환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GIF 혹은 짤방으로도 지칭되는 인터넷 밈 이미지는 유력하면서도 보편적인 디지털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 밈의 일반적인 특징은 원본의 영상에서 특정 부분을 무단으로 절취해 새로운 맥락에 집어넣는 재미를 선사한다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원본의 어떤 부분에서 쓸만한 이미지를 발견, 잘라내기, 반복함으로써 해당 이미지를 원본으로부터 편집해, 완전히 새로운 맥락에서 재조합할 자원으로 소환한다.

이은의 회화에서 캐릭터가 느끼는 극단적인 감정과 짧은 움직임, 그것의 무한반복은 마냥 귀엽거나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그리는 디즈니 풍의 캐릭터들은 동적인 이미지를 구사하며, 원래 그것이 배치된 맥락으로부터 부단히 탈출함으로써 저항한다. 그녀는 대중문화의 일면들을 단순히 재현하거나 소비하지 않고, 가속해 탈구시킨다. 그렇게 그녀의 회화는 레고블록처럼 어떤 방향으로 조합을 해도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단위가 된다. 관객들은 그녀가 포획해 그린 동적인 이미지의 힘을 그 자체로 즐겨도 좋고, 동시에 그 힘들을 제멋대로 조합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원래 인터넷 밈은 그렇게 불법적으로 자유롭게 분해하고 합치는 놀이다. 특히 <Storming>(2023)은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고 저렴한 품질인 인터넷 밈의 특징에서 벗어나 큰 캔버스에서 동적인 이미지 간의 연합을 통해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아가 전시장 벽에 그려진 밈 벽화는 전시공간마저도 이 밈들의 연합을 위한 커다란 캔버스로 간주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이은은 인터넷 밈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롭게 발명하고 있다.



2024년이 되는 내년이면 미키마우스라는 캐릭터의 독점 저작권은 만료된다. 수만 건의 밈이 매일 쏟아지는 중에 유독 미키마우스가 없었던 이유는 현실의 강력한 법 때문이다. 미키마우스의 다양한 에디션 때문에 만료 기한이 다시 연장될 가능성도 높다고는 하지만 언젠가 이은의 작품에 미키마우스가 추가될 날을 기다려 본다. 어쩌면 관객인 우리는 그것이 너무 빠르게 묘사되어 있어 미키마우스인지도 모를지 모른다. 속도와 운동은 교활함과 영리함을 모두 가지고 있다. 현재의 그녀의 작품이 그렇듯이.

이은의 작품에 등장하는 운동 중 낙하는 아래로 떨어지는 듯하지만 이내 다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그 끝이 없는 낙하다. 이 반복 속에서 캐릭터는 안전한 상태가 되고, 원본의 맥락으로부터 떨려 나가 자유를 만끽한다. 인터넷 밈의 절취 반복은 바닥을 향한 추락보다는 영원한 낙하의 감각을 선물한다. 그녀의 작품이 자유롭지만 편안한 이유다.


오영진(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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