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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지성사 연구의 혁신과 전파①: 정치사상사와 18세기 영국사의 재해석 / 이우창

본 연재는 앞으로 약 4회에 걸쳐 17-18세기 영국 정치사상사에서 출발하여 계몽(주의), 여성주의, 그리고 소설사 연구로 향하는 여정을 목표로 한다. 왜 17-18세기 영국인가? 17세기 중반 및 후반의 두 차례에 걸친 내전·혁명에서부터 18세기 후반 미국혁명·프랑스혁명에 이르는 기간 동안 영국, 특히 잉글랜드는 정치와 사회 모두에서 거대한 변화를 겪었다. 그중 특기할 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근대성(modernity)의 자의식이다. 이 시기 잉글랜드인들은 자신들의 문명이 과거와는 명확히 구별되는 “근대적인” 발전 단계에 진입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변화를 설명하는 언어를, 또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규범을 제시하고자 했다. 간단히 말해 초기 근대 영국은 근대성의 역사를 이해하는 작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앞의 네 가지 연구영역에는 도대체 어떠한 관계가 있냐는 물음이 남아있다. 정치사상사와 서양사, 영문학 사이의 교류가 매우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지는 한국 학술장과 달리, 영어권의 초기 근대 연구는 서로의 성과물을 참조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다. 본 연재는 그중에서도 20세기 중반 이래 영국 지성사 연구가 성립하고 또 다른 영역과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제한적으로나마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선을 통해 우리는 현재 한국 인문학 분과들을 갈라놓는 지적 장막을 재검토하는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첫 회는 그 출발점으로 정치사상사 연구가 18세기 영국사 연구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를 살펴본다.1)


지난 반세기 간 18세기 잉글랜드사(史) 연구의 혁신가들은 두 가지 전통적 패러다임을 극복하겠다는 기치를 천명했다. 하나는 역사가 허버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 1900-79)가 ‘휘그 사관’(whig interpretation of history)이라 지칭한 관점, 즉 영국사를 영국민의 자유와 개신교의 승리가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라 전제하고 18세기를 그 일부분으로 규정하는 통념이었다.2) 다른 하나는 왕조·정치인 중심의 고전적인 정치사 및 경제환원론적 성향을 띠었던 사회경제사와 같은 기존의 역사학 방법론이었다.


그중 한국의 독자들에게 비교적 익숙한 집단으로는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 1921-88) 및 E. P. 톰슨(E. P. Thompson, 1924-93)처럼 이후 문화연구의 출발점으로 기억되는 전후 맑스주의 역사가들이 있다. 역사는 경제적·물질적 요인만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없으며 이데올로기와 문화가 고유의 대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는 이들의 요구는 20세기 후반 인문사회과학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하지만 18세기 잉글랜드사의 연구자들은 그에 만족할 수 없었다. 직접적인 이유는 18세기가 맑스주의자들의 주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다른 영국맑스주의 역사가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 1912-2003)의 18세기 연구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18세기 잉글랜드는 17세기와 19세기의 두 혁명기 사이에 놓인 ‘부르주아적’ 세계이거나, 기껏해야 산업혁명과 노동계급의 전사(前史) 정도로 취급되었다. 특히 18세기의 사상과 언어를 탐구하려는 이들에게 맑스주의자들의 접근법은, 제아무리 ‘상부구조’를 강조한다고 해도, 여전히 경제결정론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도된’ 휘그사관처럼 보였다.


18세기 사상사 연구에 새로운 물길을 공급한 원천은 17세기 두 번의 혁명을 둘러싼 정치사상사 연구였다. 버터필드의 후임자였던 피터 래슬릿(Peter Laslett, 1915-2001)은 1950년대를 전후하여 로버트 필머와 존 로크의 저작에 대한 엄밀한 문헌사적 연구를 통해 1680년대 정치팸플릿 논쟁을 새롭게 역사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버터필드와 래슬릿의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후대에 ‘케임브리지 언어맥락주의 학파’의 핵심인사로 불리게 될 역사가들, 즉 J. G. A. 포콕(J. G. A. Pococok, 1924-), 존 던(John Dunn, 1940-)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 1940-) 등은 혁명기의 논쟁과 언어를 재구성하는 혁신적인 연구를 내놓기 시작했다. 1960년대 전후로 이들은 정전(正典)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문헌자료를 조명하면서 17세기 중후반 잉글랜드의 문헌을 이해하는 새로운 핵심주제들을 제시했다.



먼저 포콕의 『고대헌정과 봉건법』(The Ancient Constitution and the Feudal Law, 1957)은 17세기 잉글랜드 역사서술이 당대 정치적 논쟁의 중요한 무기였음을 지적하면서 혁명기 정치사상과 역사관, 학문논쟁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시선을 제시했다. 던의 『존 로크의 정치사상』(The Political Thought of John Locke, 1969)은 로크 정치사상에서 개신교 자연법이 차지하는 의미를 일깨웠다. 스키너의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The Foundations of Modern Political Thought, 전2권, 1978)와 리처드 턱(Richard Tuck, 1949-)의 『자연권 이론』(Natural Rights Theories, 1979)은 자연법 및 공화주의 사상의 연구를 통해 잉글랜드 내전기 정치사상이 근대 초 유럽의 더 넓은 지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거대한 교두보를 구축했다. 이들은 한편으로 자유주의, 보수주의, 마르크스주의적 사상사 해석의 비역사적인 면모를 철저하게 공격하면서, 동시에 영국혁명 전후로 근대적인 “정치이론”(political theory)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사상사의 17세기 혁명사 다시 쓰기는 1680-90년대 및 18세기 초의 정치 언어를 맥락화하는 새로운 연구를 촉발했다. 18세기 대서양 세계의 공화주의 정치 언어를 탐구한 캐롤라인 로빈스(Caroline Robbins, 1903-99) 및 버나드 베일린(Bernard Bailyn, 1922-2020)의 선도적인 작업과 결합하여, 정치사상사 연구자들은 공화주의·자연법·고대헌정론과 같이 혁명기에 구축된 정치 언어가 18세기에 활용되고 변용되는 양상을 추적하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중 포콕의 『마키아벨리언 모멘트』(The Machiavellian Moment, 1975)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이후 18세기 영국의 언어, 사상, 문화의 연구에 가장 크고 넓은 파급력을 끼친 저작 중 하나다. 다행히 국역본이 존재하지만, 저자가 매우 압축적인 서술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또 그가 당연하게 전제하는 많은 내용이 우리에게 낯선 만큼 책의 내용과 의의를 간략하게 짚어보자.


전체 줄거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부는 서구 정치사상에서 정치체를 역사화하는 사유, 즉 국가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흥하고 쇠망하는 기제를 설명하는 주요 패러다임들을 제시한다. 드디어 마키아벨리가 등장하는 2부는 15-16세기 이탈리아 도시공화국의 정치사상가들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정치 언어를 바탕으로 “덕성의 과학”(science of virtue), 즉 시민의 덕성에 따라 정치체의 운명이 뒤바뀌는 원리를 체계적으로 규명하는 이론적 모델을 구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근대 초 대서양 세계를 다루는 책 3부는 세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먼저 내전기 전후 잉글랜드에 수입된 이탈리아 공화주의가 제임스 해링턴(James Harrington)의 저작을 통해 잉글랜드 고유의 공화주의 정치이론으로 재구축되는 과정이 스케치 된다(10-12장). 13장 및 14장은 혁명 이후 잉글랜드가 재정혁명과 상비군을 토대로 강력한 근대 상업국가로 거듭남에 따라 잉글랜드 공화주의 정치이론이 한계에 직면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공화주의 패러다임의 ‘과학적’ 설명에 따르면 상업과 사치, 부채, 중앙집권적 상비군 모두 시민의 덕성을 부패하게 만들어 국가의 쇠망을 초래하는 부정적인 요인이었다.


하지만 18세기 잉글랜드는 그러한 도덕적 부패의 요인들이 역으로 국가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근대적’ 시공간이 되어버렸다. 상업사회의 등장을 마주하여 공화주의 정치이론은 더는 국가의 작동을 설명하는 “정상 과학”(normal science)으로 작동할 수 없었다. 마지막 15장은 18세기 후반 미국혁명의 정치 언어를 검토하면서, 혁명의 주역들에게는 로크식 ‘자유주의’보다는 오히려 (신)해링턴주의, 즉 공화주의 정치이론이 지배적인 사상으로 작용했음을 주장한다. 더는 공화주의의 언어가 그대로 지탱될 수 없게 된 영국과 달리, 북아메리카의 정치 언어는 공화주의 패러다임을 지속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마키아벨리언 모멘트』는 서구 인문학의 역사에서 가장 야심만만한 책 중 하나였다. 포콕은 기존의 공화주의 정치사상사를 18세기 잉글랜드를 근대 국가체제로 이해하는 새로운 역사연구의 맥락과 연결했다. 공화주의적 국가이론이 하나의 정상과학으로 등극하지만, 이내 중앙집권적 국가와 상업사회가 맞물려 작동하는 근대적 상황 앞에서 설명력의 한계를 드러낸다는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의 줄거리는 토머스 쿤(Thomas Kuhn, 1922-96)의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가 끼친 영향을 보여준다.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이 상업사회에서 맞이할 소외의 운명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75)의 “행동하는 삶”(Vita activa)에 관한 정치철학적 성찰을 사상사적 연구로 옮긴 것이라 해도 무방했다.


우리의 이야기에서 포콕의 작업은 무엇보다 공화주의 정치 언어와 상업사회 담론의 연결고리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18세기 영국에서 상업과 경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당연한 이야기였으나, 당시의 도덕적·정치적 담론에서 그러한 주제가 어떤 방식으로 논의되었으며 관련 개념들이 어떠한 의미망을 이루고 있는가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인식의 틀을 제공한 것은 『마키아벨리언 모멘트』의 명백한 기여였다. 앨버트 허시먼(Albert O. Hirschman, 1915-2012)의 『정념과 이해관계』(The Passions and the Interests, 1977)와 함께, 포콕의 작업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는 초기 근대 세계에서 사람들의 세계관과 인간관이, 정치이론과 도덕철학이 상호작용하며 변모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게 해주었다.



포콕은 후속 논문집 『덕성, 상업, 역사』(Virtue, Commerce, and History, 1985)에서 고전적 시민성의 이상과 근대 상업사회의 긴장, 그리고 악덕·부패의 양가성이 ‘덕성, 권리, 예절’(Virtues, rights, and manners)과 같은 18세기 영국 정치·도덕 언어의 핵심개념을 통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탐구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도덕철학과 문학연구, 젠더연구에 이르기까지 18세기 유럽 및 영국의 사상과 언어를 연구하는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으며, 나아가 연구자들이 시대를 서사화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놓았다.


이제 18세기 영국은 부르주아계급이 성장하는 지루하고 따분한, 혹은 산업혁명을 향해 뻗어나가는 단선적인 시공간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내전의 터널을 지나 자신들이 점차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인식한 잉글랜드인들의 담론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사회의 토대라 할 수 있는 강건하고 독립적인 시민의 이상이 힘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언어가 부재한 상황은 낯선 현상을 설명하고 올바른 대응 방향을 도출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의 탐색을 촉진하는 조건이 되었다. 요컨대 이제 18세기 영국은 낙관론과 비관론이, 번영과 쇠락의 감각이 공존하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시공간으로 인식되었으며, 당대인들의 언어와 사고를 복원하는 연구는 이러한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 되었다.

1980년대 이래 질과 양 모두에서 한 차례의 급속한 성장을 이룬 18세기 연구의 발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18세기에는 공화주의와 상업, 정치경제와 같은 주제를 결합하여 더욱 풍부한 의미를 끌어낼 수 있는 거대한 범주, 바로 계몽주의가 존재했던 것이다.



1) 이하의 내용은 이우창, 「영어권 계몽주의 연구의 역사와 “잉글랜드 계몽주의”의 발견」, 『코기토』 97 (2022): 227-60의 2절 및 곧 출간될 『교차 3호』(읻다, 2022)에 수록될 「문인의 글쓰기와 지성사적 전기: 제임스 해리스, 《데이비드 흄: 지성사적 전기》(2015)」 2절의 일부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2) 휘그 사관에 대한 비판과 케임브리지 지성사 학파의 관계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링크된 논문을 참조: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700419



이우창(서울대 영어영문학과 박사), 사진: 최승훈, 출처: https://communebu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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