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아니어도 좋을 연극 : 드림플레이 테제21 <자본3:플랫폼과 데이터> / 최엄윤
- 한국연구원
- 2024년 7월 2일
- 4분 분량
제 45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인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 <자본3:플랫폼과 데이터>(2024년 5월 31일 ~ 6월 9일, 미마지 아트센터 눈빛극장)은 ‘플랫폼’과 ‘데이터’로 연결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파트너라 불리는 ‘초단기노동자(Gig Worker)’의 모순적 지위와 불안정한 노동, 그리고 거대 플랫폼 자본이 인간의 데이터를 무단으로 수집, 축출하여 이익 창출에 사용하는 비윤리적 행태를 주제로 다룬다.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마이스터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현장 실습으로 친구를 잃고 배달노동자가 된 ‘늘찬’과 라이더 유니온의 ‘리키’, 세 살 무렵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실리콘밸리의 데이터 전문가 ‘애니’, 애니의 대학 동기이자 한국의 떠오르는 플랫폼 기업 스타트업 창업자 ‘마틴 유’, 그리고 언론 매체 ‘디지털 에브리데이’의 온라인 편집국장과 인턴 기자, 총 6인의 캐릭터가 펼치는 서사를 통해 플랫폼 산업, 데이터, 노동 등 21세기 자본주의 테제를 중심으로 관객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질문을 던지는 연극이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 긱 워커(Gig Worker)
클릭 한번으로 어디서든 음식을 배달받고, 새벽 배송으로 물건이 문 앞에 놓이고, 핸드폰이 없으면 택시를 잡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다. 필요한 요구를 신속, 편리하게 해결해 주는 얼굴 없는 일손들. 하지만 애플리케이션 이면에는 물속의 분주한 오리발처럼 폭우와 폭염, 폭설에 상관없이 모든 사고 위험을 본인이 떠안은 채 신속 서비스를 위해 거리를 분주히 달리는 배달 라이더가 있다. 이렇듯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린 긱 경제의 플랫폼 노동을 무대 위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납작하고 평평하게 지나쳤던 현실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게 해 준다.
필요할 때마다 사람을 구해 계약을 맺고 ‘고용 없는 노동’을 의뢰하는 긱 이코노미에서 플랫폼 기업은 노동법규로부터 자유롭고, ‘독립계약자’로서 필요시에만 일할 수 있는 초단기 노동자, ‘긱 워커’는 유연성과 자주성을 누릴 수 있어 노동의 가치와 산업 풍경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 경제 침체 시기 고용 시장에 나온 밀레니얼세대(1980~2000년 출생자)들은 모바일 하나로 실시간 초연결된 사회에서 ‘N잡러’를 추구하며 긱 워커 종사자의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러한 임시직 경제, 긱 이코노미는 단순노동에서부터 전문 인력이 참여하는 서비스까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2022년 7월 한국경제 기사에 의하면 국내 긱 워커 규모는 약 1,000만 명으로 전체 노동 활동 인구 3명 중 1명에 육박한다. 2021년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20~30대 구직자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6%가 ‘긱 이코노미’ 트랜드에 관해 긍정적인 답변을 했고, 2022년 ‘사람인’에서 성인남녀 2,8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8.6%가 ‘긱 워커로 일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여러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긱 이코노미는 일상에 깊이 자리 잡은 현실이고 더 확장될 전망이다.
한편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로서 ‘긱 워커’는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인간이 소모품처럼 사용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200여 년 동안 힘겹게 쟁취한 노동자의 권리는 후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주위에서 농담처럼 자조적인 말로 ‘갈 데 없으면 쿠팡으로 가겠다’는 말을 듣고 때론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직업에 대한 낙인을 품고 있다. ‘긱 워커’의 증가로 취업 인구가 늘어나 실업률 절감에 기여한다고 하더라도 ‘질 낮은 일자리’라는 낙인은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랜 기간 비정규직, 한시직, 파견직 등으로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해 온 노동의 문제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연극 <자본3:플랫폼과 데이터>은 박정훈 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의 저서와 인터뷰로부터 많은 정보와 모티브를 얻었고 공연에서도 ‘늘찬’과 ‘리키’는 라이더 유니온 조합원으로 배달 노동자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한다. ‘파트너’라 불리며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배달 노동자들의 실상은 플랫폼사의 감시와 고객의 평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오토바이 유지비, 보험료 및 거리에서 생기는 배달상의 사고 위험은 모두 자비로 해결해야 하는데, 한 시간 안에 서너 건의 배달을 접수해야 최저 시급 정도의 금액을 벌 수 있고, 일을 수락하지 않으면 벌점 제도 등을 통해 경제적 위험에 처하게 된다. 플랫폼사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평가하고 배제하는 ‘갑’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2019년 5월 출범한 라이더 유니온은 흩어져 고립 노동을 하는 라이더들이 연대해 플랫폼사에게 수당, 퇴직금 등을 요구하고 지각, 조퇴 등에 벌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폐지시키기도 했다. 마침, 6월 21일에는 라이더유니온과 자영업자들이 뭉쳐 ‘배달의 민족’과 ‘쿠팡’의 일방적 배달운임 삭감과 상점 배달수수료 인상에 맞서 배달플랫폼의 횡포 규제와 공정한 분배체계 마련을 촉구하는 <배달라이더 x 배달상점주 배달플랫폼 규탄대회>를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기도 했다.
메커니컬터크(Mechanical Turk)와 미세노동
<자본3:플랫폼과 데이터>는 타인의 삶의 흔적을 무단으로 추출하여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데이터로 사용하는 플랫폼 기업의 윤리에 대해 문제제기 하기도 한다. 실리콘 밸리의 인공지능 프로그래머 ‘애니’는 보안 감시용 AI를 개발하던 중 처음 보는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이 무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 공공데이터를 의미 있게 활용하는 방향으로 일과 삶을 새롭게 구축해 나간다.
한편 18세기 헝가리 발명가 요한 볼프강 리터 폰 켐펠렌은 세계 최초의 완전 자동 체스 로봇인 ‘메커니컬터크(기계 튀르크인)’을 만들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국적 복장의 꼭두각시 형태를 한 이 로봇은 사실 그 안에 인간 체스 고수를 숨겨두고 있었다. 그는 체스판 안쪽 숨겨진 칸에 웅크리고 앉아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윙윙거리는 바퀴들과 반짝이는 다이얼, 복잡한 기계 사이를 돌아다니며 체스 말을 움직였던 것이다. 아마존닷컴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 제프 베이조스는 알고리즘이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를 선별하고, 확인하는 초소형 “인간지능 작업‘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 플랫폼의 이름은 아마존 메커니컬터크(www.mturk.com)로 사람에게 아웃소싱하여 새로운 종류의 ‘미세노동(Micro work)’을 만들어냈고 전 세계 사용자들이 접속하여 자발적 데이터 노동을 바치고 있다.

‘데이터(Data)’는 한국어로 ‘자료’로 번역되지만, 인간을 중심에 두고 봤을 때 개인의 자료라는 것은 개인 정보와 구분이 모호한 지점이 있다. 개인정보는 법에 의해 보호를 받지만, 개인 자료를 보호하는 법은 없는데 핸드폰, 컴퓨터를 열기만 하면 뜨는 알고리즘에 의한 추천 영상, 광고 등을 보는 것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빅브라더의 감시와 통제 속에 살아가는 것 같다. 실상 이렇게 디지털화된 세상은 알고리즘이 아닌 푼돈을 받고 육체를 갉아 먹는 인간의 노동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비좁고 통풍마저 잘되지 않는 작업장에서 시간당 1달러 정도를 받고 데이터의 생성 과정에서 초단기 작업으로 기계 학습을 돕는 일을 하는 라벨링 노동자, 검열자, 즉 미세 노동자 중 다수는 아프리카 빈민, 시리아, 팔레스타인 난민 등 사회경제적 최약자층이다.
결국 기계화, 자동화라는 허울 속에 인간의 노동을 감춘 플랫폼 자본주의에서는 간신이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는 수준의 일자리가 점점 늘어나고, 특수형 사이트에서 특별한 기술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작업을 수행한다고 할지라도 한때 고임금을 받던 전문직이 어떤 권리나 복지도 기대할 수 없는 임시직으로 분쇄되는 자본의 폭력을 겪고 있는 것이다.
<자본3:플랫폼과 데이터>에서는 19세기에 화재로 소실된 ‘메커니컬터크’를 불태운 건 혹시 좁고 복잡한 기계 안을 돌아다니던 체스 고수가 아닐까 하는 웃을 수만은 없는 질문을 던진다. 김재엽 연출은 “역사와 경제라는 동시대의 테마에 주목하는 드림플레이 테제21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감각의 변화를 위하여 ‘연극이 아니어도 좋을 연극’을 꿈꾸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연극이 아니어도 좋을 연극’이란 한 번의 관람과 소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처한 그 지점에 대한 윤리적 성찰과 삶에 있어 주체적 선택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고, 길잡이가 되는 공연을 의미할 것이다. ‘연극이 아니어도 좋을 연극’을 마주한 ‘관객이 아니어도 좋을 관객’의 역할을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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