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물리학자가 만진 이상 문학의 코끼리 코 / 오상현

공리1: 언어는 언어적 표현을 생성(span)하는 기저 집합(basis set)이다.

공리 2: 언어의 해석은 개인의 경험, 지식, 사상의 연속적 함수이다.

공리 3: 서로 다른 개인의 경험, 지식, 사상이 같음이 보장되지 않는다.


정리1: 서로 다른 두 개인에게 임의의 언어/언어적 표현의 해석이 동일함이 보장되지 않는다.

정리 2: 서로 다른 두 개인의 경험, 지식, 사상이 유사할 수록 임의의 언어/언어적 표현에 대한 두 개인의 해석은 유사하다.


결론: 작가의 언어적 표현에 대한 독자의 해석은 독자의 경험, 지식, 사상이 작가와 유사할수록 작가의 해석과 유사하다.



위의 논리전개는 전형적인 수학적/논리학적 증명의 구조로 쓰였다. 먼저 세 가지 공리(axioms)를 가정하고, 그로부터 두 가지 정리(theorems)를 이끌어내며 결론을 지었다. 수학적/논리학적 개념/용어/증명에 익숙한 사람들은 위 글을 편안히 읽어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당혹감이나 어려움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의 결론은 바로 그 점, 즉 ‘필자의 작문에 활용된 지식을 공유하는 독자는 글을 더 온전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작가 이상(1910~1937, 본명 김해경)의 문학작품 또한 그러하다. 이상이 가졌던 경험과 지식과 사상을 공유하는 독자는 그의 시를 더 온전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첫 번째 문제는 시간적 차이, 그리고 그에 따르는 사회적/문화적 차이이다. 1900년대 초의 한국과 일본에서 이상이 무엇을 경험하고 느꼈을지를 한정된 자료만으로 추측하고 충분히 복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두 번째 문제는 언어적 차이이다. 이상의 초기 작품은 일본어로 쓰였고, 이후 작품들에도 여러 한자어와 고어/옛한글, 외국어/외래어 등이 뒤얽혀 그 진의를 파악하는 데에 수고로움이 든다. 세 번째 문제이자 가장 어려운 문제는 지식의 다양성이다. 이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일제 강점기 전신) 건축과에 진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하고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근무하였으며, 학창시절 미술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이후에도 건축잡지의 표지를 그려 공모하여 수상하곤 하였다. 그의 배경지식을 정확히 추산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건축에 필요한 이공학/건축학적 지식, 그리고 미술/문학적 지식을 갖고 있었음은 자명하다.


이에 더해 그는 그의 작품에서 여러 조어를 만들고 언어유희를 즐겼는데, 조감도(鳥瞰圖, 새처럼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그림)라는 단어에서 새 조(鳥) 자를 까마귀 오(烏) 자로 변형하여 오감도(烏瞰圖)라는 조어를 만들고 연작시의 제목으로 삼은 것이 가장 유명한 예시이다(1934). 더 재미있는 예시는 "건축무한육면각체: AU MAGASIN DE NOUVEAUTES"에 가타카나로 적힌 "アナタノカホイロモスヅメノアシノヨホデス。(당신의 안색도 참새의 발 같습니다)"라는 난해한 표현이다. 이때 スヅメノアシ (雀のあし, 참새의 발)는 참새 작(雀) 자의 발(あし, 글자의 아래쪽 부수)을 일컫는 것이며 이는 새 추(隹) 자이다. 이는 아름다울 가(佳) 자와 매우 유사한데, 이로부터 "당신의 안색도 참새의 발 같습니다"라는 표현은 "당신의 안색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을 여러 번 돌려 말하기 위해 고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김지우•이수정, 2019).


본래 일본어로 쓰여진 연작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첫 시인 < AU MAGASIN DE NOUVEAUTES>

위의 문단을 읽고 혹시 ‘무슨 시를 저리 어렵게 돌려 썼나’하고 골치가 아파진다면, 미안하게도 여기 더 큰 골칫거리가 있다. 바로 상대성이론을 포함한 현대물리학이다. 이상은 당시 상대성이론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었으며, 작품 속에 그 흔적을 분명하게 남겨두었다. 아래 시구들은 이상이 1931년 발표한 연작시 "삼차각설계도"에서 발췌한 내용이며,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밝혀진 물리적 속도 제한(광속 이하. 광속은 약 30,000 km/s), 그리고 운동에 따른 시간 팽창 등에 대한 상념을 보여준다(권영민(2013)의 한국어 번역을 따르되, 가독성을 위한 띄어쓰기를 추가하였다).



“속도etc의 통제 예건대 빛은 매 초 당300,000킬로미터 달아나는 것이 확실하다면 사람의 발명은 매 초 당 600,000 킬로미터 달아날 수 없다는 법은 물론 없다.” – “삼차각설계도: 선에관한각서1” 일부

“사람은 빛보다 빠르게 달아나면 사람은 빛을 보는가, 사람은 빛을 본다”, “확대하는 우주를 우려하는 자여, 과거에 살으라, 빛보다도 빠르게 미래로 달아나라” – “삼차각설계도: 선에관한각서5” 일부

“공기 구조의 속도—음파에 의한—속도처럼 330 미터를 모방한다(광선에 비할 때 참 너무도 열등하구나)” – “삼차각설계도: 선에관한각서7” 일부

이처럼 여러 방면으로 다재다능했던 이상은 자신의 지식을 작품 속에 녹여서 난해해 보이는 글 속 깊이 자신의 메시지를 숨겨놓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보면 왜 이상의 여러 작품들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온전히 파해되지 않고 여전히 난해시로 남아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이상의 작품에 대한 온전한 해석을 위해선 그의 작품과 삶에 대한 관심과 정보, 이상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역사적/사회적/문화적 지식뿐만 아니라, 이공학/건축학, 미술/문학, 일본어와 한자와 한자 파자를 이용한 언어유희, 그리고 현대물리학에 대한 지식 등이 총동원돼야 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갖춘 연구자가 여럿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아 보이고, 대신 연구자 각각이 코끼리의 일부를 만지는 장님이 되어 서로가 만진 부분을 연결해내는 다학제간 융합연구가 필수적일 것이다*.


필자는 물리학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연구자로서, 얼마 전 기하학/물리학적 관점을 가지고 이상의 초기 연작시인 "삼차각설계도"(1931)와 "건축무한육면각체"(1932)의 제목과 일부 내용에 관한 흥미로운 풀이를 제시하였다(오상현•이수정, 2021). 필자에게 놀라웠던 한 가지 사실은, 연작시의 발표 이후 약 9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두 연작시의 제목조차 명쾌히 해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님과 코끼리의 비유로 돌아가보면, 아직까지 코끼리(작품)의 가장 큰 특징인 코(제목)를 제대로 만진 장님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이유는 피상적으로는 현재까지 연작시에 대한 발상과 논의가 주로 2/3차원 공간상에 한정됐기 때문으로,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상 문학 연구에 기하학과 물리학에 대한 충분한 전문지식을 갖춘 연구자들의 유입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미지 출처: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

필자의 연구에서는 발상과 논의의 공간을 4차원으로 확장시켰으며, 초구면좌표계(hyperspherical coordinates)를 활용하여 ‘삼차각’과 ‘육면각체’를 정합적이고 일관되게 해석해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이전까지 제시되지 않았던 두 연작시 제목의 밀접한 관계를 새로히 규명하였고, 동일한 관점에서 연작시 내용에 나타난 차원 확장 장치(스펙트럼, 사각형 중심 결합) 등을 함께 풀이하였다. 아직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리고 문학 논문으로선 여러 모로 다소 파격적인 논문이기 때문에 앞으로 학계에서 이러한 해석을 얼마나 받아들일지 추정/판단하기에는 이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해석이 물리학 전문지식을 갖춘 다른 연구자들이 독립적 발견(independent discovery, 어떤 연구를 참조하지 않았음에도 그 연구와 동일한 내용을 발견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 있고 분명한 해석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한 분야의 문제에 다른 분야의 관점으로 접근하고 해결하는 것은 종종 멋진 결과로 이어지곤 한다. 일례로 18-19세기 생물학자들이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발견한 미세 입자의 브라운 운동은 1905년 아인슈타인에 의해 분자들의 충돌에 의한 통계적 운동임이 온전히 해설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원자론의 가장 강력한 증거이자 마지막 쐐기가 되었다. 더 최근의 예로는, 이제 일일이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는 머신러닝에 의한 문제 해결이 있다. 발전된 머신러닝 기술을 통해 기존에는 풀기 불가능하게 보였던 혹은 오랜 시간이 걸렸던 문제들이 더 유연하고 빠르게 해결되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있다.


"한 분야의 전문가는 다른 분야의 비전문가"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한 분야의 지식/권위를 가지고 다른 분야에 대해 성급히 관여하기를 지양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 기존의 방법으로 " 만족한 결과를 수득치 못”할 때 "야외의 진실"이 신선한 관점과 돌파구를 제공하기도 할 것이다**. "안구에 아무리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은 안구 뿐"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상 문학뿐만 아니라 여러 다학제적 연구에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논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혹시 아는가? 그렇게 산발적으로 형성된 관심의 지평선들이 병합되며 한 분야를 꿰뚫는 놀라운 통찰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주


* 과학계 연구의 큰 프로젝트는 수십 명 이상이 공저자가 되기도 하는데, 문학계도 그런 대규모 프로젝트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국문학자, 일문학자, 역사학자, 건축학자, 물리학자 등이 모여 이상문학 연구 드림팀을 구성하고 같이 다양한 연구 협업(e.g. 원문 대조, 기존 번역 검토, 데이터베이스 구축, 기존 연구 리뷰, 새로운 해석 제안 등)를 해나간다면 꽤나 흥미로운 결과들이 나올 것이다. 혹은 교육/연구재단에서 기금을 마련하여 ‘이상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젊은 이상 연구자들을 모집을 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이겠다. 일본어, 한자, 역사, 미술, 문학, 건축학, 그리고 물리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는 학생들을 선발하여 그들이 이상에 대한 공부와 연구와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 모든 배경지식을 두루 갖춘 사람들이 나타난다면 축복일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이 교류하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게 돕는다면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창발하고 이상 작품 연구에도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 이상. (1934). 오감도: 시제8호 해부. 조선중앙일보. 일부 시구 인용.

*** 이상. (1960). "손가락 같은 여인이"로 시작하는 무제(유고). 현대문학. 일부 시구 인용.



참조



김지우•이수정. (2019). 근대 사회와 그 속의 자신을 진단하는 지식인-「AU MAGASIN DE NOUVEAUTES」를 중심으로. 한국시학연구, 57, 169-198.

오상현•이수정. (2021). 이상 시의 4차원 시공간 설계 및 건축: 「삼차각설계도」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연결, 그리고 차원 확장. Journal of Korean Culture, 54, 107-156.

권영민, (2013).이상 전집 1. 태학사.


오상현(UC머세드 물리학 박사과정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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