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들을 위한 재난은 없다 / 김헌주

2020년 3월 8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보험사 위탁 콜센터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후 이틀 사이에 확진자는 급증하여 3월 10일 현재 직원 66명과 가족 등 70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이 콜센터 근무자들 중에는 서울 외에도 인천, 의정부 등 수도권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서울·수도권 지역 전반으로 확진자가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고 있는 수도권의 집단 감염 사례에 민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다수 언론에서는 수도권의 감염 확산을 경계하는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서 감염 확산 못지않게 재난에 취약한 약자들의 삶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콜센터는 1미터도 안되는 좁은 간격으로 칸막이를 두고 쉴 새 없이 고객응대를 하는 공간이며 콜센터 직원의 상당수는 저임금 여성노동자이다.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인 것이다. 또한 마스크 착용 시 안내사항이 고객에게 잘 들리지 않아 항의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연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 생계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이들의 ‘재난’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 실제로 유엔여성기구는 코로나19 재난 사태로 인해 일용직 노동자와 소상공인, 비공식 부문 종사자 등으로 일하는 여성들의 피해가 가장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BBC News/코리아, 2020.3.10)



이미지 출처: m.biz.khan.co.kr

사실, 비슷한 사례는 이미 지적되고 있었다. 최근 한 자동차 회사에서 정규직 직원과 하청업체 직원들이 서로 다른 마스크를 지급받아 논란이 된 사건이 발생했다. 정규직 직원은 '1급 방진 마스크'를, 하청업체 직원은 '방한용 천 마스크'를 지급받았던 것이다. 명확한 차별이자 사내 위계질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보통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대체로 고용안정성, 임금과 복지 수준의 차별 등이 지적된다. 일상적 노동 하에서 어떤 인센티브가 주어지느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재난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건강(혹은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권리마저 차별당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사건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재난은 그간 가시화되지 않았던 소수자들의 위치성을 알게모르게 각인시킨다. 유엔여성기구 마리아 홀츠버그 인도주의 및 재난위험 특보는 “위기는 항상 성차별을 심화시킨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한국의 워킹맘 성모 씨는 “육아 때문에 회사에 가지 못하면 월급이 깎이거나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며, 회사가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지만 육아에 신경을 쓰면 일에 대한 경쟁심이 부족하다고 본다. 따라서 일하는 여성들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고 언급했다. 맞벌이 부부라고 하더라도 여성에게 육아 부담이 보다 많이 전가되는 것은 여전한 현실이며, 이 현실은 재난 속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장애인의 삶은 어떨까. 생후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생긴 뇌병변장애로 인해 온몸이 굳는 1급 지체장애자가 되었던 김모 씨의 사례를 살펴보자.(<국민일보>, [이슈&탐사] 중증장애인, 왼팔로만 버틴 11일의 자가격리, 2020.3.6.) 소속 단체(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활동지원사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었던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11일간 자가격리 생활을 했던 시간을 생존을 위한 분투의 시간으로 기억한다. 즉석요리로 된 밥과 카레를 먹기 위해 싱크대까지 기어가서 싱크대 옆 의자에 겨우 걸터앉아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2일 째에는 생쌀과 생배추가 나왔는데 요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닌 그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직업적 약자, 성별 약자, 신체적 약자 등에 대한 차별은 지금껏 상존해왔고 재난이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이들에 대한 차별과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젠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그 관심과 경각심은 재난 앞에서 쉽게 한켠으로 치워져버린다. 그리고 관심과 경각심은 재난이 끝난 뒤에야 다시 원상복귀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 기억하자. 약자들에게 ‘재난 이후’는 없으며, 약자들을 위한 재난도 없다는 사실을.


김헌주(충북대 박사 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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